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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네오 헤이븐이 평지, 그것도 구시대 미국의 역작이나 다름없는 원자력 발전소와 궤도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재건된 메트로폴리스이자 문명의 중심지라면.

         

         하베스트 플래닛은 건설 당시부터 파라다이스 사의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됐는지 기묘한 복층형 구조를 이룬 물자 생산의 허브다.

         

         살다 보니 직간접적으로 두 도시를 모두 경험하게 된 내가 평가하기엔, 메가 코프 사이의 신경전이 훨씬 덜 했을 여기가 구역 정리는 더 깔끔했다.

         

         하지만 알아주는 공학자와 디자이너 인재는 다 달려들었을 게 분명한데도.

         

         실수인지 의도적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태양의 위치와 관계없이 상층부에 가려져 자연의 빛이 전혀 닿지 않는 구획이 중층부에도 있었다.

         

         

         

         

         

         농축된 네온 원소의 광휘가 따가울 정도로 망막에 꽂힌다.

         잠재적 손님에 대한 배려따위 보다는 자기주장이 먼저라는 것처럼 앞다투어 눈을 향해 달려든다.

         

         “헬레나 언니? 분명 식당가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

         

         “? 그래서 일부러 여기로 온 건데?”

         

         ……그녀가 뭐라고 주장하든, 비주얼적으로는 절대 밥이나 먹으려고 들리는 골목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헬레나를 못 믿는 건 아닌데, 차마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눈을 굴린다.

         무수한 가게 간판들을 쳐다볼 때마다 부연 설명처럼 눈에 나타나는 광고와 등록된 가게설명을 일일이 확인했다.

         

         [ 미 피아체 까르네(Mi piace carne). 합성육 및 인조육 전문 식당에서 손님의 육식본능을 일깨워 보세요! ]

         

         [ 만화루(萬化樓). 음식의 맛은 결국 그 향이 좌우한다는 사실,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만 가지 냄새로 만 가지 행복을 즐겨 보시겠습니까? ]

         

         [ 천상의 환락(Pleasure from Above). 간편식에 지친 여러분을 위해 오직 유서 깊은 과거의 진미(Great Dish)를 재현한 메뉴만 제공하는 본 요리점에 어서 오시지요. ]

         

         “…진짜네?”

         

         이게 유흥업소 거리가 아니라고? 말도 안 된다.

         왜 진짜인지는 몰라도 가게 이름만 보고 섣부르게 판단한 것과는 전혀 다른 소개문구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시 보니까 길가에 서서 담배를 뻑뻑 피워 대고 나른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거사 이후의 현자타임을 보내는 게 아니라, 단순히 식후땡과 포만감을 즐기는 거였다.

         

         혼자 의심하고 혼자 속았다.

         

         “식당 크기는 좀 작아도 비싼 조리기계를 들여놓은 곳이 많으니까, 찬찬히 둘러봐도 괜찮고 정하기 힘들면 그냥 늘 가던 곳으로 갈 테니까. …아, 앤이 있으니 스테이크 같은 건 좀 힘들겠네.”

         

         “미안해요, 아샤. 역시 핏물이 떨어지는 건 좀 여러모로 힘들어서….”

         

         말꼬리를 흐리는 앤과 그새 애칭을 허락했냐며 배시시 웃는 헬레나.

         전자에게는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흔들어줬고, 후자에게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줬다.

         

         ……뭐요. 귀하의 유일한 절친인데다가, 꼼짝없이 근무지에서도 붙어있어야 하는 처지인 제가 어떻게 매번 아나스타샤 양이라고 불리는 걸 견딥니까? 차라리 먼저 숙이고 말지.

         

         “그럼 가게는 …언니들이 알아서 골라주세요. 저는 군것질 때문에 입맛이 별로.”

         

         나중에 그리운 음식을 파는 식당 같은 게 있는지만 개인적으로 알아보기로 한 후, 결정은 현지인들에게 전적으로 맡겨버렸다.

         

         가벼운 토론과 웃음꽃을 함께 피워내는 그녀들과 같이 22세기판 먹거리 골목을 가로지른다.

         

         은색 수선화와 갈색 히비스커스, 싸구려 성형시술로는 나오기 힘든 자연미인 둘의 행차에 사람들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 덕에 내 쪽을 내려다보는 눈길이 현저하게 줄어들은 것도 느껴지니, 시선 방파제의 중요성을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앤은 핏물이나 스테이크가 힘들다면 혈액공포증(Hemaphobia)이나 네크로포비아(Necrophobia : 사체나 그 일부에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는 병)라도 있는 걸까? …용케도 경찰 일을 몇 년씩이나 하고 있다는 감탄이 자연히 나왔다.

         

         “아샤? 이쪽이야!”

         “…결국은 늘 가던 거기네요.”

         

         익숙한 단골 가게가 있는듯 한 건물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녀들을 뒤따랐다.

         원색적인 불빛을 등지고 통로를 따라 조금 걷자… 돌연, 익숙하지만 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재질로 이루어진 풍경이 나타났다.

         

         “오…? 와…!”

         

         살짝 불그스름하면서 은은한 결이 보이는 다갈색 벽, 목재. 거기에 당당하게 내걸린 연등까지?

         

         자세히 보니 진짜 나무는 아니고 착각할 정도로 똑같이 도색한 인테리어와 소품에 불과했지만, 이미 내 기대치는 최고조로 올라갔다.

         

         [ 이자카야 리멘. 지친 하루에 잠시동안의 휴식을! 에나마 코퍼레이션의 뿌리와도 같은 이국의 문화를 어디 한 번 경험해 보시겠습니까? ]

         

         전혀 예상치 못한 일식당의 등장에, 따라온 목적이 식탐도 아닐진대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안 그래도 얼마전에 먹었던 볶음국수로 인해 짜면서 달콤한 맛에 대한 열망이 불붙었던 참이다.

         

         지이잉….

         

         – 어서옵쇼—! –

         

         가까이 다가가자 손으로 헤치고 들어가야할 것처럼 생긴 일본식 커튼 이미지가 한창 출력되는 자동문이 열리고.

         비록 입구에 설치된 기계가 재생하는 음원이었어도 꽤나 열과 성을 다해 녹음된 음성이 일행을 반겨주었다.

         

         점원은 어딨냐고? 안타깝지만 그런 건 모조리 긴축 당했는지, 단골 손님인 두 명도 망설임없이 구석으로 들어가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니, 잡으려고 했다.

         

         “왜 그래?”

         

         “…….”

         

         제일 안쪽에 먼저 착석한 앤, 그리고 빨리 나보고 들어가서 앉으라는 것처럼 앤 옆자리를 손짓하는 헬레나.

         

         ……잠깐만요? 세 명이서 4인 테이블에 앉는다면 당연히 인원수는 안 맞아도 한 명은 반대편에 앉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내가 저기에 앉으면 여자 둘 사이에 끼어 앉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어디까지나 관찰자에 사무치고 싶은, 아쉬운 내가 모범을 보여야겠다.

         

         “…아샤는 평소엔 참 기특한데, 가끔은 너무 매정한 것 같아.”

         

         “…전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들려진 팔 밑으로 쏙 빠져나가 무사히 건너편 좌석, 그것도 헬레나가 파고들지 못하도록 바깥쪽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사실 그녀의 신체능력을 고려하면 성공 당했다고 하는게 맞겠지만 어쨌거나.

         

         양측면에 한 개씩, 테이블에 내장된 터치 스크린을 능숙하게 조작해 음식을 주문하는 두 명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내가 먼저 실수해서 오해하게 한 점이 분명히 있긴 해도, 상당히 화끈하고 정열적이었던 헬레나의 고백이 떠오른다.

         

         편견이 없다 못해 피어난 충동을 거부하지 않는 그녀의 언사를 되짚어보면, 우정 이상의 감정을 내비치던 앤과는 사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둘은 그냥 친구 관계에 멈춰 있는 걸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앤의 속마음을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그 애틋한 감정이 짝사랑이라는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도 이 관계가 어떤 역경과 결말을 맞이하길래 이 장난기 많고 유려한 초인 경찰이 한 마리의 늑대로 변하는지 걱정된다.

         

         어쩌면 사소한 변화조차 두려워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기에, 다들 각자의 이유를 붙여 현상유지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걸지도….

         

         “……윽.”

         

         아…!! 명쾌한 해답 없는 고민을 계속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얼른 취하게 만들어서 뭐라도 좀 알아내 보도록 하자.

         

         “밥은… 각자 라멘에 교자 정도만 추가하면 되겠고. 앤은 맥주… 아샤는 어떻게 할래? 아니, 술은 마실 줄 아나?”

         

         “그야 당연히……!”

         

         좋다고 대답하려던 입을 간신히 다물었다.

         여기서 술을 못 마신다고… 아니, 아예 못 마신다고 하면 그녀들도 사양할 수 있으니까. 약하다고 거짓말을 하면 합법적으로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가히 악마적 발상이다.

         

         “…약한 걸로 부탁드려요 언니.”

         

         “음… 그럼 츄하이가 좋겠네.”

         

         삐릭!

         

         헬레나의 손이 가볍게 스크린을 두들겼다.

         그렇게 주문은 한치의 막힘도 없이 진행되었고, 음식은 그것보다 더욱 쾌속하게 완성되어 바퀴 달린 운반용 로봇에 의해 자리로 배송되어 왔다.

         

         김이 모락모락 솟는 라멘 그릇을 앞에 두고 우리는 각자의 잔부터 치켜들었다.

         건배사는 여태까지 해주고 싶었던 말을 꾹꾹 참았다는 듯 헬레나가 진심을 담아 연설했다.

         

         “자, 아샤! 이쪽 업계에 오게 된 걸 환영해! ……솔직히 어디 가서 밝히기도 애매하고, 하는 일이 전부 마음에 든다고도 절대 말 못하지만.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정의를 수호하는 길이라고 너도 믿었으면 좋겠어!”

         

         “레나도 참….”

         

         “……명심할게요.”

         

         쨍…!

         

         잔을 부딪히고 혀끝에 낭창하게 휘감기는 탄산과 합성 착향료의 맛을 즐긴다.

         

         품고 있던 도덕심을 일그러진 틀 안에 끼워 넣으면, 모양은 좀 망가질지 언정 그 본질이 바뀌진 않는다.

         역시 헬레나 발렌타인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걸 따르고 있었던 것뿐이다.

         

         “…히끅!”

         

         …근데 이 기분 좋은 부유감과 포근함을 뭘까?

         ……아, 맞아. 라멘에 교자가 남아있었지. 까먹을 뻔했네…? 그리고 빈 잔도 빨리빨리 다시 채워야 하고… 앤의 속내도 떠봐야 하고… 또….

         

         

         

         ★ ☆ ★ ☆ ★

         

         

         

         “…어머나?”

         “아?!”

         

         논알콜 음료를 제외한다면, 아마 가게에서 가장 도수가 낮은 술이 검은 소녀의 입술을 적시고 목을 타고 넘어간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쇄골부터 피부가 붉어지더니 순식간에 목덜미를 타고 얼굴 전체가 빨개진다.

         

         만약 피가 몰리는데도 소리가 났다면 펑! 하는 효과음이 식당에 울렸을 기세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보이는 동생의 극적 변화에 헬레나는 가장 가까운 야전 병원의 위치부터 검색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아직 끝마치지 못한 과업이 남아있었으니까.

         

         후루룩! 후루루룩—!

         

         “”…….””

         

         경쾌한 면치기에 이어 전투적인 교자 탐닉까지. 언니의 검술에도 뒤지지 않을 깔끔한 연속동작이 이어지고, 자신 몫의 칼로리 섭취를 완료한 아나스타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헬레나 옆자리로 이동해 어깨에 그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아샤? 괜찮아?”

         

         그녀 쪽에서 스스럼없이 다가온 걸 보면 취한 건 분명하지만… 일단 의식유무를 확인하고자 헬레나는 말을 걸었다.

         …기특한 동생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했다.

         

         “…헬레나. 최고. 항상 빛나줘서 고마워.”

         

         “…뭐?”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몇 번이나 나눠 받았던 호의와 도움에 대한 감사인사를 마치자 피곤한 몸이 이번에는 수면을 호소했다.

         

         뭘 캐내기는커녕 제 속만 비워낸 아나스타샤는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앤을 노려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 …고른 숨소리가 두 사람의 귀를 간지럽혔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가고, 그나마 비슷한 사례를 여러 번 겪어본 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쩜… 술버릇도 레나랑 똑 닮았는 걸.”

         

         “……내가 이랬다고?”

         

         “솔직해지고 엉겨 붙는 부분은…?”

         

         말을 마친 앤은 적당히 식은 면에 젓가락을 댔다.

         

         반면 헬레나는 기억을 더듬어보느라 바빴다.

         

         처음엔 그저 외모도 자기 취향에 맞게 매력적인데, 유일하게 남은 가족을 위해 목숨까지 걸어줬다는 사실을 듣고 접근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떠올려봐도 아나스타샤가 자신에게 향하는 무조건적인 신뢰의 연유에 관해서는 짐작이 없었다.

         

         음식이 식어가거나 말거나, 그녀는 잠든 동생의 머리를 빗어주면서 고민을 키워 나갔다.

         

         …물론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영락없이 친자매처럼 보였기에 이상하게 여길 건 전무했다.

         

         그렇기에, 별일 아닌 것처럼 대하면서도 앤의 생각도 점점 깊어졌다.

         우선은 자각. 거기에 적당한 계기, 감정의 흐름, 장밋빛 미래.

         

         

         “어쩌면… 아샤도 정말로 날 이해해줄지 모르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역사는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츄하이는 소주에 탄산과 과즙을 섞어 희석시킨 약한 술 입니다!

    그리고 거의 세시간을 지각 했습니다 진짜 으아아아으으ㅏㅇ어ㅓㅇ아ㅏ 너무 죄송합니다.
    연재시간을 괜히 적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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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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