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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20일.

       검술학부 생도들이 불칸에 오른 지 벌써 20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생도들이 정녕 목숨을 건 수련을 한 지 스무날이 지났다는 뜻도 되리라.

         

       목숨을 걸다.

         

       누군가 들었다면 과장스러운 표현이라 여기겠지만, 지난 날 그들의 훈련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자들이 있다면 저 말을 의심치 않을 터.

       그 정도로 그들의 훈련은 혹독하고도 처절했다.

         

       “끄으으윽!”

       “올라! 올라야 한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어…!”

         

       그들은 훈련이 일주일을 경과했을 시점에 생전 처음으로 절벽 오르기를 했다.

       PT체조가 웬일로 두 시간 이내에 끝났나 싶더니, 이걸 오르기 위해 일찍 끝낸 것이었다.

       그들은 아찔한 높이를 자랑하는 절벽을 오르기 위해 낑낑 대야 했으며, 온몸의 감각을 곤두 세워야만 했다.

         

       자칫 떨어지면 죽거나 불구가 될 높이.

       그들은 아직 죽고 싶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아니 눈물과 피를 흘리며 처절히 절벽을 올랐다.

         

       실상, 이 절벽을 끝까지 등반한 것도 조교 삼인방과 로엔밖에 없다.

       나머지 이들은 중간에 떨어졌다가, 절벽 밑에서 대기하던 아이린 윈들러의 염동력 덕분에 무사했을 뿐.

       이게 첫 절벽 타기에 성과였고, 이후 모두가 오르는 데 성공하기까지 나흘은 걸렸다.

         

       허나 다 오른 이후에는.

         

       툭.

         

       “앞으로 절벽을 오를 때는 이 가방을 메도록.”

         

       “……….”

         

       …교관은 악마가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어찌 모래주머니를 메고 절벽을 오르란 말을 할 수 있을까.

       허나 차마 반박하지 못한 이유는 그동안 그의 명령에 거스르지 못하도록 학습된 이유도 있지만.

         

       “교관이 먼저 시범을 보이도록 하겠다. 잘 따라오도록.”

         

       그들이 10kg 모래주머니를 메면, 저 양반은 100kg 모래주머니를 메고 절벽을 타고 있기에.

       한데 저 상태로 오른 이후 다시 절벽을 내려와서 그들과 함께 오르기를 반복하는데 어찌 불만을 내비칠까.

       이미 새싹 생도들 중 그에게 도움 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다시 9일.

       그제야 모래주머니를 메고 스스로 등반을 성공한 그들이었음이다.

         

       “-모두 잘해줬다. 슬슬 체조는 안 해도 되겠군. 딱히 체조를 안 해도 이제는 근력 쥐어짜는 법을 잘 터득한 것 같으니.”

         

       이렇듯 20일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야 칭찬을 들으니 자칫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가증스럽고 증오스러운 호루라기 소리를 듣지 않아서 감동적인 게 아니다.

       그가 인정을 해주었기에.

       이것 하나만으로도 눈물이 흘릴 이유는 충분했고, 그동안 훈련한 이들은 모두 공감하리라.

         

       그도 그럴게, 교관은 항상 그들과 함께 훈련해줬다.

       어떤 끔찍한 훈련이 있을지언정, 그가 가만히 있던 적은 없다.

       항상 끝까지 같이 하고. 그들보다 항상 10배는 더 열심히 했지.

         

       ‘도와주기도 계속 도와주시고.’

       ‘산 아래 내려가서 항상 식량도 가져와 주시고.’

       ‘강의 대체용 리포트도 갖다 주시고…, 아 이건 안 고마운 거려나?’

       ‘…안 받은 도움이 없군.’

         

       모범이 뭔지, 왜 타인에게 존경심을 품게 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더라.

       그리고 그는 충분히 존경해도 될 만한 위인임이 맞았다.

       적어도 그들에겐.

         

       그렇게 20일이 지난 지금.

         

       사감은 조금 있을지언정 적어도 그에게 원망이나 증오를 품은 이들은 없었다.

       폭력으로 그들을 억압하는 게 아닌, 모범으로 그들을 다스렸는데 어찌 원망할 수 있으랴.

       그들은 짐승이 아니었다.

         

       “앞으로 아침 뜀걸음을 제외하곤 기초 체력 단련은 모두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한다. 이제 교관이 알려주지 않아도 모두 알아서 할 수 있을 테지.”

       “저, 정말입니까?”

       “거짓말을 해서 뭐할까. 단련법은 충분히 교관이 숙련시켜줬으니 이제 알아서 해야지. 그걸 자의로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훗날이 판가름 나는 것이고.”

       “…….”

       “아무쪼록 나태해지지 않길 바란다. 교관이 너희를 가르쳤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해다오.”

       “…….”

         

       처억.

         

       -악!!!

         

       그들은 힘차게 외쳤다.

         

       진심을 담아.

         

         

         

         

       “확실히 스무 날 전과 비교하면 신체 스펙이 엄청 발달했군요.”

       “저놈들을 아는 사람도 믿기 힘들겠어, 같은 사람인가 싶을걸?”

         

       아르노와 가란드가 내뱉은 감상이었다.

       스무 날 전 저들은 잘 쳐줘봐야 하급 용병 수준에 불과했다.

       언제 죽을지 모를 하루살이 인생이었으니.

       한데 지금.

       저들은 더는 하급 용병 수준이 아니었다.

         

       “중급, 아니 잘하면 중상위 용병은 될 것 같네.”

         

       신체 수준도 그렇지만, 기세가 심상치 않다.

       베테랑 용병의 수준.

       그것도 그냥 무난한 용병과 비교하는 게 아닌, 전설적인 용병대 황야의 늑대들 소속 용병과 비교한 것이니 가란드의 평가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으리라.

         

       “가문의 제자들과도 좋은 승부가 될 것 같군요.”

         

       왕국에서 가장 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검술 가문 오펜 가의 소공자도 같은 감상이었다.

       아르노는 가문으로 돌아간다면 이한의 수업을 도입해볼까 진지하게 궁리했다.

         

       그때.

         

       “그래도 아직, 맨몸으로 곰을 잡을 정도는 아니다.”

       “…쿤타의 기준은 좀 이상하군요.”

       “우리 부족 아이들, 곰이나 악어, 아니면 괴물 한 마리 잡아야 전사로 인정해준다. 그리고 전사 수준 되면, 주술사 안 무섭다. 하지만 아직 새싹이들 그 정도 아니다. 지금, 주술사랑 싸우면, 아직은 못 이긴다. 새싹이들, 아직은 허약하다.”

       “……으음.”

         

       서투르지만 무슨 뜻인지 대충 다 알아들을 것 같은 그의 감상을 듣고 두 사람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말한 주술사가 마법사를 일컫는다는 것도 알겠으며, 역시 스무날 단련한 것으론 아직 부족하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부족한 점을 지금부터 채워주면 되는 거지.”

         

       그 모든 이야기를 듣던 이한의 확답이었고, 사람들은 기대감이 최고조로 오른 표정으로 이한을 보았다.

         

       “2번 병아리.”

       “네네!”

       “그걸 가지고 오도록.”

       “알겠어요.”

         

       아이린 윈들러가 익숙한 듯 이한의 명령에 따랐다.

       그동안 조교 생활을 하며 여러모로 이심전심하게 되어서인지, 뭘 가지고 와라 콕 짚진 않아도 알아먹는 것.

       남몰래 아이린 윈들러가 뿌듯해 하는 요소였다.

         

       쿠웅.

         

       순간 땅이 들썩거렸다.

       상당한 숫자의 나무들.

       죽거나 썩은 나무들을 뽑거나 베어내어 모아 놓은 것들이다.

         

       투욱.

         

       “나중에 만져보면 알겠지만, 이 나무는 상당히 딱딱하다. 썩고 죽은 나무들이지만, 가혹한 불칸의 환경을 이겨내고 자란 녀석들이니, 단단하지 않은 게 이상하겠지.”

         

       만져볼 것도 없이, 겉보기로도 나무의 단단함이 짐작된다.

       엄청난 거대함도 그렇고,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죽은 나무였음에도 저 정도인데, 여전히 싱싱한 불칸의 나무들은 얼마나 단단한 것일까.

       불칸이 간직한 마력의 신비에 다시금 경외감을 느끼고 만다.

         

       “뭐, 겁먹지 마라. 너희를 기죽이기 위해 보여준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알아둬야 한다. 주문쟁이란 인종은 이러한 묵직한 나무도 홀로 움직일 수 있는 인종이란 걸.”

         

       “!!?!”

         

       그가 마냥 귀찮아서 나무를 아이린 윈들러에게 옮기게 한 게 아니다.

       그는 보여준 거다.

       마력이란 신비를 품은 이들이, 주문세계란 이해 못 할 힘을 간직한 이들이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못해도 1.5톤은 될 거다. 그런 의미에서 2번 병아리. 이걸 드는 게 쉬웠나?”

       “어어, 좀 까다롭긴 했지요? 염동력은 뭐랄까, 마력으로 이 나무 자체를 모두 감싸서 드는 거니까요.”

       “너라면 얼마나 많은 나무를 들 수 있지?”

       “마음먹고 들면, 한 네 그루 정도?”

       “음, 그렇군.”

         

       평온하게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아이린과 이를 당연시하게 믿는 이한.

         

       두 사람의 덤덤한 대화에 생도들은 오싹함을 느꼈다.

         

       네 그루의 나무를 마음대로 들 수 있다.

       대략 6톤.

       저러한 막대한 질량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니….

         

       괜히 마법사가 공포의 대상으로 불리는 것이 아님을 재확인한다.

         

       일인부대.

       홀로서도 그들은 충분히 전장의 현황을 좌지우지할 이들이었음이다.

         

       그러나

         

       “쫄지 마라 이것들아.”

         

       이한은 담담히 그들을 나무랐다.

       그동안 훈련한 게 아깝다는 훈계.

       생도들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고, 교관의 선명하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래, 생각한 것보다 더 불합리하게 느껴졌을 거다. 저만한 질량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신비한 힘도 막 다루니까. 2번 병아리, 혹시 불꽃도 다를 수 있나?”

       “으음, 특기 분야는 아니네요. 전 물 속성과 바람 속성으로 주문세계를 연지라….”

         

       놀라운 말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 마법사가 있었다면 대경실색했을 거다.

       웬만한 마법사는 모두 한 가지 속성만 가지고 있으며, 이를 주력으로 파는 자들이니까.

       한데 그녀는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했다.

         

       더블.

       대마법사나 가졌을법한 놀라운 특성이다.

         

       허나 마법사의 대단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마법 혐오자는 심드렁한 얼굴로.

       

       “잡설은 됐고, 다룰 수 있어 없어?”

         

       결론만 물었다.

         

       “시, 시간은 걸리겠지만, 다룰 수는 있겠죠?”

       “그럼 지금부터 그 나무에 불의 마력을 걸고 나에게 있는 힘껏 날려라.”

       “…네에?”

       “되묻지 말고. 얼른.”

       “……네.”

         

       여전히 떨떠름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그녀는 시키는 것을 따랐다.

         

       화륵!

         

       일순 공중으로 부양한 나무가 불로 뒤덮였다.

         

       아이린 윈들러.

       세기의 천재로 알려진 마법사.

       앞으로 100년 이내로 그녀만한 재능이 나타나지 않으리라 평가받고 있는 바.

       한 세기를 대표할 만한 재능이었고, 그녀가 어째서 무수한 주목을 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만한 재능을 지닌 마법사가 제 마력을 때려 부어 불의 마법을 영창했다.

       위협스럽다.

       불이 가진 뜨거운 화력도 그러했지만, 마력으로 인해 이글거리는 불은 그 밀도가 남다르다.

         

       지금 이 순간 불타는 통나무는 마냥 그저 불에 타는 통나무가 아니라, 불의 마력을 지닌 거창(巨槍)이 된 것이다.

         

       [공성무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바.

         

       한데 이러한 무기를.

         

       “지, 진짜 던져요?”

       “잔말 말고, 전력으로 던져라.”

       “…꿀꺽.”

         

       아이린 윈들러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 말을 따르고 말았다.

       정말 모든 힘을 다해.

       저가 가진 마력을 모조리 담아 염동력을 발동했고, 그 위력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후우우욱!!

         

       나이테가 보인다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을까.

       새해를 밝히던 종을 울리는 용도가 아닌, 마치 거대한 대종(大鐘)을 꿰뚫을 듯한 압박감이다.

         

       그러나 곧장 날아오는 불꽃의 거창을 상대로도 이한은 한 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보았고, 서서히.

         

       “단련된 인간의 육체는 튼튼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튼튼한 몸이 가진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콰득!

         

       이한의 발이 강하게 땅을 파고들며 고정됐다.

       조금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겠다는 듯이.

         

       “허나, 힘이 어떻게 흐르는지, 그 힘을 어떻게 다루고 응용하는지에 따라 이런 것도 가능하다.”

         

       이한은 거침없이 몸의 회전을 넣고 주먹을 날렸다.

         

       정권 지르기.

         

       깔끔하고도 정돈된, 모범적이지만 그 어떤 자세보다 굳건한.

         

       후웅!

         

       그의 몸에서 회전이 걸리며 그를 중심으로 와류가 형성됐다.

       주먹을 뻗는다.

       그 간단한 행위가 저토록 웅장할 수 있었나 싶었고, 다음 순간.

         

       콰아앙!!

         

       정권과 거창이 부딪쳤다.

       상식적으로 사람의 몸이 날아가거나 찢겨지는 것이 물리법칙에 합당할 터.

         

       허나.

         

       와지직-!

         

       ……부서진 것은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아닌, 단단하기 그지없는 나무였음이다.

         

       “바, 반으로 쪼개졌어?”

       “…….”

       “꿈인가….”

         

       누구 하나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자신했음에도 믿기지 않았다.

       이게 현실인가 싶기도 했고, 마냥 믿지 못할 광경이다.

       그러한 믿지 못할 이적을 해낸 그는 상처 없는 손을 털어내며 그들을 돌아봤다.

         

       “힘을 쓴다는 건, 주먹질이란 건 이런 거다. 뭐, 아직은 나도 어설프지만.”

         

       “…하하.”

         

       실소가 절로 나오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선언.

         

       “…그 주먹질에는 따로 이름이 있습니까?”

         

       로엔의 담담한 물음.

       다만 평소와 달리 작은 기대와 떨림이 담겨 있었고, 이한은 언젠가 이 주먹으로 닿고 싶은 목표를 담아 이름을 내뱉었다.

         

       “백보신권(百步神拳)”

         

       아직은 백보는커녕 십보(十步) 반경의 물건만 타격할 수 있는, 한없이 부족한 주먹질의 이름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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