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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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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어쩌다 보니까…”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
    ​
    ​
    나는 씩씩거리는 마검을 달래며 피가 흘러나오는 팔뚝을 꾹꾹 눌렀다. 그러자 피가 더욱 힘차게 뿜어져 나왔다.
    ​
    ​
    마검이 잠시 말을 멈추고 잔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차오른 물을 입을 대고 마시는 것처럼 피를 빨아먹었다. 
    ​
    ​
    [ …앞으로는 반드시 하루에 한 번 이상! 피를 줘야 한다. ]
    ​
    ​
    배를 얼추 채워주자 마검이 원래의 말투를 되찾았다. 나는 대충 알겠다고 대답을 한 후 말했다.
    ​
    ​
    “얼마 있으면 경기에 나가게 된다니까 많이 먹어둬.”
    [ 흥, 필요할 때만 찾지. ]
    “피 더 먹기 싫어?”
    ​
    ​
    슬쩍 마검을 손목에서 떼자 마검이 억지로 젖병을 뺏긴 아기처럼 몸을 떨어댔다.
    ​
    ​
    [ 아..! 싫은 거 아니다! 이봐 계약자! 상처가 아물잖아! ]
    ​
    ​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자 마검이 마구 진동했다. 상처에 다시 가져다 대자 마검이 조용히 피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
    ​
   칭얼거리는 아기에게 공갈 젖꼭지를 물려준 것 같아서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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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쿵쿵.
    ​
    ​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지금 문을 두드릴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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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 아이리스 금방 나갈게.”
    ​
    ​
    그리 말한 후 마검에게 말했다.
    ​
    ​
    “나중에 또 먹여줄 테니까 들어가 있어.”
    [ …으으읏… ]
    ​
    ​
    마검은 허겁지겁 피를 빨아먹으며 우는 소리를 내다가, 내가 독촉하자 빛덩이가 되어 손등으로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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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쿵쿵쿵!
    ​
    ​
    묵직한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반사적으로 “어어! 그래 금방 나가!”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혼자 남은 덕분인지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
    ​
    아물기 직전까지 흘러내린 피가 세면대를 적셨기에 차가운 물로 핏물을 씻어냈다. 마지막으로 비누로 손을 씻었다. 상처가 났던 손목까지 문질러 씻은 후 문을 열고 나갔다.
    ​
    ​
    아이리스가 주먹을 말아쥔 손을 든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문이 열려 놀란 듯했다. 
    ​
    ​
    “미안, 화장실 쓰고 싶어서 온 거지? 어서 들어가.”
    ​
    ​
    슬쩍 화장실을 나와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아이리스도 나를 따라 옆으로 한발짝 이동했다. 다시 옆으로 이동하자 똑같이 따라왔다. 
    ​
    ​
    화장실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아이리스의 모습에 멈칫하자, 아이리스가 나에게 다가와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
    ​
    “…안 나.”
    “응?”
    “피 냄..새.”
    ​
    ​
    그 말에 순간 몸이 흠칫 떨렸다.
    ​
    ​
    ‘문이 닫혀있었는데도 그 냄새를 맡다니…아이리스는 코가 좋구나.’
    ​
    ​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앞으로는 더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
    ​
    “에이, 피 냄새 날 일이 뭐가 있어? 그냥 화장실 다녀온 건데.”
    ​
    ​
    아이리스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납득했다. 나는 비누로 손을 씻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아이리스와 함께 거실로 향했다. 
    ​
    ​
    ***
    ​
    ​
    며칠 후, 미리 고지받았던 경기 날이 되었다. 매일 같이 피를 머금은 마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상태가 좋았다.
    ​
    ​
    [ 크흐흐흐, 내 위대한 힘 앞에 모두 경배하게 될 것이다! ]
    ​
    ​
    마검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자 검이 웅웅 울리며 불길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주변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
    찰싹.
    ​
    ​
    [ 아얏! ]
    “씁, 이상한 거 뿜어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
    ​
    ​
    괜히 사고 치는 마검의 검신을 때려주자 검붉은 기운이 검에 빨려 들어갔다.
    ​
    ​
    [ 아무리 그래도 이 몸을 때리다니! ]
    “이번 경기 끝나면 당분간 검 쓸 일이 없는데….흐음…”
    [ 새,생각해보니 내 실수가 맞군. ]
    ​
    ​
    순식간에 마검의 목소리가 얌전해졌다. 그런 마검의 태도에 의문이 들었다.
    ​
    ​
    ‘그렇게 맛있나?’
    ​
    ​
    마검이 피를 원하는 거라면 이렇게까지 저 자세로 나올 필요는 없었다. 소환되었을 때 어딘가로 날아가 피를 취하면 될 일이었다.
    ​
    ​
    물론 계약으로 연결되어 있어 결국은 나에게 돌아오긴 하겠지만, 다른 방법으로 피를 얻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
    ​
    그 말은 곧, 마검이 이렇게까지 쭈굴거리며 말을 듣는 건 내 피가 그 정도로 맛있다는 뜻이 된다.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중얼거리는 마검의 모습도 그런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
    ​
    ‘딱히 별 맛 없던데.’
    ​
    ​
    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진짜 맛있는 거 같아서 한 방울 핥아먹어 봤었지만 그냥 평범한 피 맛이었다. 
    ​
    ​
    ‘나중에 피로 장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
    뱀파이어들에게 피를 파는 상상을 하다가 잡혀서 가축화된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미인 뱀파이어에게 가축화되는 상상까지 하다가 철컹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
    ​
    우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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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밖에서 진행자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소리치는 것과 기대감에 가득 찬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사람들이 참 기운차구나.’ 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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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르르륵, 철컹.
    ​
    ​
    건너편에서 문이 열리고 걸어 나온 건 녹색 피부를 가진 오크였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무려 다섯마리의 오크가 거대한 대검, 활, 지팡이, 방패를 들고 걸어 나왔다.
    ​
    ​
    검을 든 오크는 두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톱처럼 생긴 칼을 들고 있었다. 오크는 3살~5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마물이었기에 곧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
    멀리서 활이 쏘아져 날아오고, 방패를 든 오크가 선두에 서서 다가왔다. 지팡이를 든 주술사는 “케헥,케히힉”하고 웃으며 지팡이 끝에 검은 마법 구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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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상대가 겨우 오크 다섯? 준비 운동도 안 되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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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검이 흥이 깨졌다는 듯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쿵쿵거리며 달려오는 오크들을 보며 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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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윽 -.
    ​
    ​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검을 휘둘렀다. 딱히 큰 힘을 주고 휘두른 것도 아니다. 허공에 선을 긋는 것처럼 가볍게 휘둘렀다. 
    ​
    ​
    철퍽.
    ​
    ​
    내가 그은 선을 따라 오크의 몸이 갈라졌다. 달려오던 오크들은 하체만 앞으로 달려오다가 바닥을 구르고, 상체는 뒤로 고꾸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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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은 죽음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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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분도 걸리지 않은 싸움, 순간 투기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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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와아아아악!”
   “끼야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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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도적, 그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싸움에 관중은 열광했다. 벌써 끝난 건가 싶어 돌아가려는 순간.
    ​
    ​
    “이대로 끝나면 아쉽겠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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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촤르륵,촤르르륵,촤르르륵! 쿠웅! 쿵! 쿠우웅!
    ​
    ​
    마물의 크기별로 존재하는 철창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동시에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온갖 마물들이 쏟아져나왔다.
    ​
    ​
    못해도 수십 마리는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덩치를 가진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자 관중들의 함성이 투기장의 땅을 울릴 정도로 높아졌다.
    ​
    ​
    “과연 새롭게 등장한 스타는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
    ​
    키에에엑! 꾸에엑!
    ​
    ​
    튀어나온 마물들은 서로서로 공격하거나 잡아먹기도 했지만, 시선은 모두 나를 향했다. 
    ​
    ​
    [ 하찮은 벌레들이 우글우글 할 뿐, 제대로 싸워볼 만한 놈은 없군. 쯧.. ]
    ​
    ​
    그다지 강한 마물은 아닌지 마검이 혀를 찼다.
    ​
    ​
    [ 하지만 -…이렇게 수가 많으면 한 번에 처리하긴 힘들겠군. ]
    ​
    ​
    마물들 사이에는 내 키만 한 마물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허공을 베어내도 키가 작은 마물은 베어내기 힘들 터였다.
    ​
    ​
    물론 여러 번 검을 휘두르면 해결될 문제지만, 마검은 그러고 싶지 않은 듯했다. 
    ​
    ​
    [ 흐흐흐, 어쩔 수 없군. 이번에는 위대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하도록 하지. ]
    “위대한 기술?”
    [ 그래. ]
    ​
    ​
    마검이 히죽거리며 검신의 길이를 늘였다.
    ​
    ​
    [ 자세를 낮추고 검을 비스듬하게 들어라. ]
    “이렇게?”
    ​
    ​
    마검이 알려준 대로 얼추 자세를 잡자 마검이 검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
    ​
    [ 자, 어서 검을 휘둘러라! ]
    ​
    ​
    마치 힘을 가득 모으기라도 한 것처럼 검붉은 빛으로 넘실거리는 검을 거칠게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그러자 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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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블러드 웨이브!’ ]
    ​
    ​
    뭐지? 보통 주문은 휘두르는 사람이 외치는 거 아닌가?
    ​
    ​
    그런 뻘한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검에 맺혀있던 검붉은 기운이 앞으로 쏘아졌다. 달려오는 마물을 베어낼 거라고 생각했던 기운은 바닥에 스며들었다.
    ​
    ​
    평범한 흙바닥이 순식간에 피로 물든 바다의 모습처럼 물들었다. 피바다에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더니 달려오는 모든 마물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
    ​
    치이익,촤아아악 -.
    ​
    ​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듯한 소리와 마물의 몸이 조각조각 나는 소리가 뒤섞여 끔찍한 소음을 만들었다. 더 이상 살아 숨 쉬지 않는 것들이 순식간에 붉은 파도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
    “오, 이거 거기에 나오는 거 아닌가? 그…”
    ​
    ​
    특정 작품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으쓱으쓱하던 마검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
    ​
    [ 이건 내가 개발해낸 기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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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치 저작권을 침해받은 창작자처럼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이 세계에선 마검이 저작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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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말고 다른 기술은 더 없어?”
   [ 후후훗, 당연히 있지. 이 몸은 무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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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시작된 로드 드래곤도 겨우 봉인한 어쩌고 레파토리를 한 귀로 흘리며 진행자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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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지 진행자는 한껏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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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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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다 보니까…”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

나는 씩씩거리는 마검을 달래며 피가 흘러나오는 팔뚝을 꾹꾹 눌렀다. 그러자 피가 더욱 힘차게 뿜어져 나왔다.

마검이 잠시 말을 멈추고 잔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차오른 물을 입을 대고 마시는 것처럼 피를 빨아먹었다.

[ …앞으로는 반드시 하루에 한 번 이상! 피를 줘야 한다. ]

배를 얼추 채워주자 마검이 원래의 말투를 되찾았다. 나는 대충 알겠다고 대답을 한 후 말했다.

“얼마 있으면 경기에 나가게 된다니까 많이 먹어둬.”

[ 흥, 필요할 때만 찾지. ]

“피 더 먹기 싫어?”

슬쩍 마검을 손목에서 떼자 마검이 억지로 젖병을 뺏긴 아기처럼 몸을 떨어댔다.

[ 아..! 싫은 거 아니다! 이봐 계약자! 상처가 아물잖아! ]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자 마검이 마구 진동했다. 상처에 다시 가져다 대자 마검이 조용히 피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칭얼거리는 아기에게 공갈 젖꼭지를 물려준 것 같아서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쿵쿵.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지금 문을 두드릴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어어 -, 아이리스 금방 나갈게.”

그리 말한 후 마검에게 말했다.

“나중에 또 먹여줄 테니까 들어가 있어.”

[ …으으읏… ]

마검은 허겁지겁 피를 빨아먹으며 우는 소리를 내다가, 내가 독촉하자 빛덩이가 되어 손등으로 쏙 들어갔다.

쿵쿵쿵!

묵직한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반사적으로 “어어! 그래 금방 나가!”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혼자 남은 덕분인지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아물기 직전까지 흘러내린 피가 세면대를 적셨기에 차가운 물로 핏물을 씻어냈다. 마지막으로 비누로 손을 씻었다. 상처가 났던 손목까지 문질러 씻은 후 문을 열고 나갔다.

아이리스가 주먹을 말아쥔 손을 든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문이 열려 놀란 듯했다.

“미안, 화장실 쓰고 싶어서 온 거지? 어서 들어가.”

슬쩍 화장실을 나와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아이리스도 나를 따라 옆으로 한발짝 이동했다. 다시 옆으로 이동하자 똑같이 따라왔다.

화장실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아이리스의 모습에 멈칫하자, 아이리스가 나에게 다가와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안 나.”

“응?”

“피 냄..새.”

그 말에 순간 몸이 흠칫 떨렸다.

‘문이 닫혀있었는데도 그 냄새를 맡다니…아이리스는 코가 좋구나.’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앞으로는 더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에이, 피 냄새 날 일이 뭐가 있어? 그냥 화장실 다녀온 건데.”

아이리스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납득했다. 나는 비누로 손을 씻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아이리스와 함께 거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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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미리 고지받았던 경기 날이 되었다. 매일 같이 피를 머금은 마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상태가 좋았다.

[ 크흐흐흐, 내 위대한 힘 앞에 모두 경배하게 될 것이다! ]

마검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자 검이 웅웅 울리며 불길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주변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찰싹.

[ 아얏! ]

“씁, 이상한 거 뿜어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

괜히 사고 치는 마검의 검신을 때려주자 검붉은 기운이 검에 빨려 들어갔다.

[ 아무리 그래도 이 몸을 때리다니! ]

“이번 경기 끝나면 당분간 검 쓸 일이 없는데….흐음…”

[ 새,생각해보니 내 실수가 맞군. ]

순식간에 마검의 목소리가 얌전해졌다. 그런 마검의 태도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맛있나?’

마검이 피를 원하는 거라면 이렇게까지 저 자세로 나올 필요는 없었다. 소환되었을 때 어딘가로 날아가 피를 취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계약으로 연결되어 있어 결국은 나에게 돌아오긴 하겠지만, 다른 방법으로 피를 얻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말은 곧, 마검이 이렇게까지 쭈굴거리며 말을 듣는 건 내 피가 그 정도로 맛있다는 뜻이 된다.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중얼거리는 마검의 모습도 그런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딱히 별 맛 없던데.’

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진짜 맛있는 거 같아서 한 방울 핥아먹어 봤었지만 그냥 평범한 피 맛이었다.

‘나중에 피로 장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뱀파이어들에게 피를 파는 상상을 하다가 잡혀서 가축화된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미인 뱀파이어에게 가축화되는 상상까지 하다가 철컹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우오오오오!

밖에서 진행자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소리치는 것과 기대감에 가득 찬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사람들이 참 기운차구나.’ 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다.

촤르르륵, 철컹.

건너편에서 문이 열리고 걸어 나온 건 녹색 피부를 가진 오크였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무려 다섯마리의 오크가 거대한 대검, 활, 지팡이, 방패를 들고 걸어 나왔다.

검을 든 오크는 두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톱처럼 생긴 칼을 들고 있었다. 오크는 3살~5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마물이었기에 곧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멀리서 활이 쏘아져 날아오고, 방패를 든 오크가 선두에 서서 다가왔다. 지팡이를 든 주술사는 “케헥,케히힉”하고 웃으며 지팡이 끝에 검은 마법 구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상대가 겨우 오크 다섯? 준비 운동도 안 되겠군. ]

마검이 흥이 깨졌다는 듯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쿵쿵거리며 달려오는 오크들을 보며 검을 들었다.

스윽 -.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검을 휘둘렀다. 딱히 큰 힘을 주고 휘두른 것도 아니다. 허공에 선을 긋는 것처럼 가볍게 휘둘렀다.

철퍽.

내가 그은 선을 따라 오크의 몸이 갈라졌다. 달려오던 오크들은 하체만 앞으로 달려오다가 바닥을 구르고, 상체는 뒤로 고꾸라져버렸다.

그들은 죽음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죽어버렸다.

1분도 걸리지 않은 싸움, 순간 투기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와아아아악!”

“끼야야아!”

압도적, 그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싸움에 관중은 열광했다. 벌써 끝난 건가 싶어 돌아가려는 순간.

“이대로 끝나면 아쉽겠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촤르륵,촤르르륵,촤르르륵! 쿠웅! 쿵! 쿠우웅!

마물의 크기별로 존재하는 철창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동시에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온갖 마물들이 쏟아져나왔다.

못해도 수십 마리는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덩치를 가진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자 관중들의 함성이 투기장의 땅을 울릴 정도로 높아졌다.

“과연 새롭게 등장한 스타는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키에에엑! 꾸에엑!

튀어나온 마물들은 서로서로 공격하거나 잡아먹기도 했지만, 시선은 모두 나를 향했다.

[ 하찮은 벌레들이 우글우글 할 뿐, 제대로 싸워볼 만한 놈은 없군. 쯧.. ]

그다지 강한 마물은 아닌지 마검이 혀를 찼다.

[ 하지만 -…이렇게 수가 많으면 한 번에 처리하긴 힘들겠군. ]

마물들 사이에는 내 키만 한 마물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허공을 베어내도 키가 작은 마물은 베어내기 힘들 터였다.

물론 여러 번 검을 휘두르면 해결될 문제지만, 마검은 그러고 싶지 않은 듯했다.

[ 흐흐흐, 어쩔 수 없군. 이번에는 위대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하도록 하지. ]

“위대한 기술?”

[ 그래. ]

마검이 히죽거리며 검신의 길이를 늘였다.

[ 자세를 낮추고 검을 비스듬하게 들어라. ]

“이렇게?”

마검이 알려준 대로 얼추 자세를 잡자 마검이 검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 자, 어서 검을 휘둘러라! ]

마치 힘을 가득 모으기라도 한 것처럼 검붉은 빛으로 넘실거리는 검을 거칠게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그러자 마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블러드 웨이브!’ ]

뭐지? 보통 주문은 휘두르는 사람이 외치는 거 아닌가?

그런 뻘한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검에 맺혀있던 검붉은 기운이 앞으로 쏘아졌다. 달려오는 마물을 베어낼 거라고 생각했던 기운은 바닥에 스며들었다.

평범한 흙바닥이 순식간에 피로 물든 바다의 모습처럼 물들었다. 피바다에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더니 달려오는 모든 마물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치이익,촤아아악 -.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듯한 소리와 마물의 몸이 조각조각 나는 소리가 뒤섞여 끔찍한 소음을 만들었다. 더 이상 살아 숨 쉬지 않는 것들이 순식간에 붉은 파도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오, 이거 거기에 나오는 거 아닌가? 그…”

특정 작품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으쓱으쓱하던 마검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 이건 내가 개발해낸 기술이다! ]

마치 저작권을 침해받은 창작자처럼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이 세계에선 마검이 저작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거 말고 다른 기술은 더 없어?”

[ 후후훗, 당연히 있지. 이 몸은 무려 -.. ]

또다시 시작된 로드 드래곤도 겨우 봉인한 어쩌고 레파토리를 한 귀로 흘리며 진행자 쪽을 바라보았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지 진행자는 한껏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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