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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아이고, 죄송합니다. 근데 진짜 엄청 크시네요.”

    “후후, 재밌는 분이시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여인이 가볍게 포권했다. 

   

    예상외의 대답에 당황한 서준도 일단 따라 포권했다.

   

    “아…, 예.”

    “소협께서 말씀하셔놓고는 당황하시면 어떡해요.”

    “엄…. 그러게요.”

   

    머리를 긁적이자 살풋 웃은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후후, 아무튼. 아는 얼굴이 보여서 무심코 말을 걸어버렸네요. 소협께서도 비무 대회에 참가하신 거죠?”

    “어, 네. 그렇죠.”

   

    슬쩍 뒤로 빠진 서준이 춘봉이를 앞에 내밀었다.

   

    이론상 무적의 방패다.

   

    사람의 마음을 가진 이상 우리 금춘봉을 앞에 두고 삿된 생각을 품을 수는 없는 법.

   

    대가로 춘봉이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야하지만 나쁘지 않은 거래라 할 수 있었다.

   

    “어머, 전부터 꼭 인사하고 싶었는데. 안녕하세요?”

    “아, 예.”

   

    춘봉이가 얼떨결에 인사를 받았다.

   

    서준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금춘봉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는 걸 아는 사람이야. 아마 나쁜 사람은 아닐 듯?”

    “제발 지랄 좀 하지 마.”

   

    날카롭게 대답한 춘봉이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포권했다.

   

    “저희가 조금 바빠서 말이죠.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이런, 바쁜 분들을 붙잡고 있었네요.”

   

    작은 웃음 소리를 흘린 여인이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보면 인사해 주기예요?”

    “옙.”

   

    대답을 박고 도망친 서준이 여인과 충분히 멀어지자 이마를 쓸었다.

   

    “휴, 잘 참았다 이서준.”

    “뭘 참아. 아앙? 왜. 저 큼직한 젖탱이 한 번 주물러보고 싶던?”

    “아니 금춘봉! 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말 돌리지 말고!”

   

    째릿, 눈초리가 날카롭다.

   

    머리를 긁적인 서준이 헤헤 웃었다.

   

    “나는 아담한 가슴이 좋아요.”

    “그…. 아이고 씨발 머리야.”

   

    이마를 탁 친 춘봉이 혀를 찼다.

   

    “됐으니까 다음부터 그런 미친짓은 하지 마. 예의 없게 뭐 하는 거야.”

    “미안 미안. 진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그냥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세상에. 무슨 케로베로스도 아니고.

   

    아마 그 여인에게 별호가 있다면 삼두마녀三頭魔女 정도 되지 않을까?

   

    “으엑….”

   

    학을 뗀 서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춘봉이 그런 서준을 이상하다는 듯한 눈으로 쳐다봤다.

   

    “너 진짜 언제 여자한테 크게 데인 적 있냐?”

    “궤에엥?”

    “이상한 놈일세. 보통 남자들은 가슴 크면 좋아한다던데.”

    “어허. 나는 우리 춘봉이만 있으면 돼.”

   

    서준이 춘봉을 번쩍 안아들어 목마 태웠다.

   

    툭툭-, 서준의 머리를 두드리는 춘봉의 손길에서 어쩐지 만족스러움이 느껴졌다.

   

    “알면 됐다. 출발하도록, 이서준.”

    “예이.”

   

   

    *

   

   

    떠나가는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던 여인이 코로 숨을 내쉬었다.

   

    “흐응-, 누구지?”

   

    동세대의 무인 중 그녀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저 둘. 

   

    그녀의 눈으로도 쉽사리 꿰뚫을 수 없는 것이, 분명 구파 혹은 세가의 인물일 텐데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특히 남자 쪽.

   

    귀여운 여자 아이는 어느 정도 이룬 경지에 대해 감이 왔지만, 사내 쪽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끝없는 무저갱, 혹은 아무것도 없는 자연을 들여다보듯이.

   

    “뭐, 곧 만나겠지.”

   

    쿡쿡 웃음을 흘린 여인이 몸을 돌렸다.

   

   

    *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예선을 통과한 인원은 총 128명이었다.

   

    아마 본선 역시 토너먼트 식으로 진행할 테니, 총 일곱 번의 승리를 얻어내야 우승을 차지하는 셈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이니까…, 우승한다 치면 일주일 동안 주구장창 비무만 해야 되는 건가?”

    “그렇지.”

   

    춘봉이 차를 홀짝이며 몸을 좌우로 갸우뚱갸우뚱 기울였다.

   

    이게 춘봉멍인가?

   

    불멍 때리듯 멍하니 보고만 있어도 시간이 훅훅 지나간다.

   

    “본선은 또 다음주라며. 그냥 바로 하면 안 되나?”

    “화산파에서도 준비할 시간은 있어야지. 서두르다 망치는 것보다 조금 기다리는 게 낫잖아?”

    “그건…, 그렇지.”

   

    흠.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이거 무슨 차였지?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아무튼 꽤 비싼 차다.

   

    호록-

   

    한 모금 마셔보니 그냥 차 맛이었다.

   

    ‘커피 마려운데, 혹시 안 파나?’

   

    물론 팔 리가 없었다.

   

    그 첫날 봤던 화산파의 친절한 무인이 피자를 알고 있는 걸 보면 있을 법도 한데. 

   

    의외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치고 서구의 문물은 그다지 들어와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뭐 딱히 알 바는 아니었다.

   

    – 자네 그거 들었나?

   

    춘봉멍을 때리던 서준은 심심함을 달랠 겸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비무 대회에 박력패도 담제일이 나왔다는군.”

    “뭐? 박력패도? 그게 누구요?”

    “아니, 이렇게 귀가 어두워서야!”

   

    아는 얘기가 나오자 서준이 몸을 조금 더 그쪽으로 기울였다.

   

    “담제일이 홀로 사파 무리에 맞서 아녀자들을 구해냈다는 소문도 못 들어봤는가?”

    “아, 아아. 그건 들어봤소.”

    “그 담제일이 이번 비무 대회에 나왔단 말일세.”

    “오호. 그거 흥미롭군.”

   

    그 아재가 홀로 사파 무리에 맞섰다고?

   

    서준은 이전에 만났던 사흑련의 무인들을 떠올렸다.

   

    ‘개발릴 거 같은데.’

   

    우두머리로 보이던 그 사내. 아마 그와 담제일이 맞붙으면 십여 초식 안에 담제일의 목이 떨어질 터였다. 

   

    “근데 그 담제일이 예선에서 떨어졌네.”

    “어허! 거 사파 무리니 어쩌니 하는 건 다 헛소문이었나 보구만!”

    “그건 또 모르는 일일세. 듣자하니 상대는 모든 상대를 단 한 초식으로 끝냈다는 모양이니.”

    “헛소문 아니겠소?”

    “내 친우의 친우가 그 비무를 직접 봤다는 모양이네.”

    “그게 참말이오?”

   

    거기까지 들은 서준이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어이, 금 씨. 들었나?”

    “멀?”

   

    우물우물, 그새 뭘 또 시킨 춘봉이가 입 안 한가득 음식을 씹고 있었다.

   

    이 햄스터 같은 자식.

   

    저 볼따구니를 마구 꼬집어줄까 하다 그만둔 서준이 몸을 축 늘어뜨렸다.

   

    “아냐. 그런 게 있어.”

    “아 뭔데!”

    “에베베.”

    

    안 알려줄 거다.

   

    

    *

   

   

    일주일 동안 정말 원없이 놀았다.

   

    그렇게 놀고 춘봉이가 자는 동안 밤을 새워 수련했지만 피곤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아주 만반의 컨디션이라 할 수 있는 상태.

   

    “아주 좋아용.”

   

    콧노래를 부르며 마지막으로 검 상태를 점검했다.

   

    “흠.”

   

    낫 배드.

   

    산 지 꽤 된 검이긴 한데, 일류에 오른 이후로는 딱히 검이 상할 일이 없었다.

   

    검으로 벤다기 보다는 검에서 나온 검기로 베는 느낌이라.

   

    검기상인劍氣傷人. 검기만으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경지라 할 수 있겠다.

    

    “야! 늦겠다! 빨리 가자!”

    

    죽립과 면사로 얼굴을 완벽히 감춘 춘봉이 발을 동동 구른다.

   

    “오야, 가자.”

   

    서준이 몸을 일으켰다.

   

    새로 사 빳빳한 무복의 감촉이 만족스럽다.

   

    기분도 낼 겸 춘봉이와 세트로 맞춘 죽립도 검은색 칠이 되어 있어 괜히 무림 고수가 된 기분이었다.

   

    “MUGONG 고수 이서준, 출격!”

   

    드디어 본선이다.

   

   

    *

   

   

    비무 대회의 본선이 치러지는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것은 화산파 이 새끼들 돈이 존나 많다는 것이었다.

   

    “오오, 쩐다.”

   

    무슨 콜로세움이라도 보는 것 같다.

   

    중앙에 넓은 연무장이 여럿 있고, 그 주변으로 좌석들이 빽빽히 놓여 있다.

   

    모든 관객들이 앉을 좌석을 만드는 건 무리가 있었는지 그 뒤로도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무튼 굉장한 건 굉장한 거다.

   

    칠십팔이라 적혀있는 패를 보여주고 내부로 들어온 서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푸른 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를 안내했다.

   

    “여기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넵.”

   

    옆에 앉은 춘봉이와 노가리를 십 분쯤 깠을까?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무장 위로 누군가 올라왔다.

   

    “모두 반갑습니다. 저는 화산의 이대제자 운작이라 합니다.”

   

    내공이 깃든 목소리가 멀리까지 뚜렷하게 퍼져나간다.

   

    서준은 낯익은 얼굴에 춘봉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저번에 그 사람이다. 너 혼낸 사람.”

    “넌 두 번 혼났잖아.”

    “난 싸움 말린 거였잖아!”

    “뭐래.”

   

    춘봉이가 비웃었다. 곧바로 볼따구 꼬집기 형으로 복수했다.

   

    “우선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실 종인 장로님이십니다.”

   

    대충 개막식 같은 느낌이었다.

   

    서준은 화산파의 장로라는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주변을 유유히 흐르는 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의도한 바는 아니고, 그의 존재감에 이끌린 기가 스스로 주변을 맴도는 듯 보였다.

   

    ‘저게 초절정인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솜털이 오소소 일어난다.

   

    서준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핥던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

   

    왜 저렇게 보는 거지? 뭐 아니꼬운가?

   

    슬쩍 미간을 찌푸리자 장로가 시선을 돌렸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데 옆에서 춘봉이 그를 쿡쿡 찔렀다.

   

    “뭐 하냐?”

    “눈싸움?”

    “누구랑?”

    “저기 장로.”

   

    춘봉이가 입을 쩍 벌렸다.

   

    “…미친 새끼 아니야? 그나마 화산파 도사쯤 되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지, 성질 더러운 놈한테 그러면 칼 맞는다?”

    “앗, 그건 좀.”

   

    서준이 낄낄 웃었다.

   

    그러는 중에도 말을 잇던 운작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러면 부족하나마 제가 이번 대회의 서두를 열겠습니다.”

   

    스릉-

   

    검을 뽑는 자그마한 소리.

   

    그 별것 아닌 마찰음에 순간 비무장 전체가 고요해졌다.

   

    그 가운데 운작이 신중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느긋하게 허공을 누비던 검의 속도가 점차 빨라진다.

   

    스스슷-

   

    그가 휘두르는 검에 부서져 흩어지는 햇살이 마치 꽃잎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문득 진한 꽃향기를 맡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과연 저것이….”

    “이게 화산인가….”

   

    그들이 향기를 맡을 때 서준은 내공의 흐름을 보았다.

   

    운작의 내부에서 들불처럼 거칠게 흐르던 내공이, 그 흐름에 못 이겨 한 떨기 한 떨기 꽃잎처럼 흩날린다.  

   

    “와아…!”

    “저거 설마!”

   

    붉은 꽃잎이 바람에 살랑이며 퍼져나간다. 

   

    떨어져 나간 내공의 조각들을 검끝이 이끌고, 이내 검은 낭창이며 휘갈기듯 무수한 꽃봉오리를 그려낸다. 

   

    화악-!

   

    그리 매화가 피었다. 

   

    검끝에서 그려진 꽃봉오리들이 허공을 수놓아 마침내 옅은 적색의 꽃송이로 만개하니, 사람들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탄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

   

    화려하게 피었던 꽃송이들이 다시금 꽃잎으로 흩어져 끝을 맞이한다. 

   

    한낱 검법에 하나의 삶과, 또 매화의 생애를 담아냈다. 

   

    서준은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묵묵히 운작을 지켜보았다.

   

    화려하게 흩어지는 검. 흩날리는 꽃잎. 피어난 매화.

   

    저곳에 서있는 건 하나의 검수가 아닌, 한 그루의 매화나무였다.

   

    ‘이게 화산인가.’

   

    놀라웠다. 검으로 저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나라면 조금 더 화려하게 피워낼 수 있을 텐데.

   

    저 놀랍도록 정교한 검술은 따라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 하여 매화를 피울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춘봉아.”

    “어.”

    “혹시 저거 따라하면 화산파가 대가리 깨러 쫓아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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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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