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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43 – 오늘은 정전사고가 나는 날이에요>

     

    <훈련시설>

    <3번 대련장>

     

    대련장에는 돌핀팬츠를 입은 A그룹 견습여기사들과 팬티스타킹으로 피부를 덮은 B그룹 견습여기사들이 잔뜩 모였다.

    암묵적으로 서로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경계해오던 두 그룹 사이에서 벌어지는 첫 대결.

     

    “오크노디가 저흴 부르지 말라고 했다고요?”

    “그래. 분명 그렇게 말했어.”

    “쥐방울 녀석…”

     

    손오천이 사납게 대련장을 노려보았다.

     

    “제국귀족을 두들겨 패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건가?”

    “…반대 아니야? 상대는 마나연공법과 마나연단법을 익힌 제국귀족이잖아. 그것도 무투가에게 격투과외까지 받아 무투영애로 명성을 떨치는 롯토라고.”

     

    어이없어하는 이사벨과 달리, 지젤은 손오천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사벨씨는 모르겠군요. 오크노디양은 저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합니다. 상급시험관을 상대로 검술대결을 해서 플레티넘 티켓을 땄으니까요.”

    “플레티넘 티켓?”

    “소지자는 상급반 입학시험에서 한 번 탈락해도 다음 관문에 자동으로 진출할 수 있는 티켓입니다. 그것도 더블넘버 티켓이었죠.”

    “입학은 이미 끝났는데 그게 중요해? 넘버 같은 건 입학시험에서 거론된 적도 없었는데.”

     

    지젤은 상급시험관 미하엘에게서 트리플 넘버의 플래티넘 티켓을 받았다.

    그런 그이기에 넘버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교관들에게 꾸준히 정보를 캐낸 끝에 답을 얻었다.

     

    “플래티넘 티켓은 1번부터 9999번까지 총 9999장이 있습니다.”

    “입학생이 이천 명인데 9999장이나? 희소성 너무 없지 않아?”

    “그리고 한 번 발급된 티켓은 해당 넘버의 입학생이 사망하기 전까지 재발급 되지 않죠. 이 티켓은 재능의 보증수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아시겠습니까? 플래티넘 티켓 더블넘버의 의미를. 오크노디는 역대 입학생 중에 두 자릿수에 달하는 순위에 해당하는 재능을 인정받은 겁니다.”

     

    심지어 미하엘이 지닌 티켓은 15번과 143번.

    두 자릿수에서도 한 자릿수에 가까운 역대 15위에 달하는 재능을 인정받았다.

    롯토가 지닌 무투영애라는 평판 따위, 플래티넘 티켓이라는 빛나는 보증수표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서 손오천씨가 말한 제국영애를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알게 될 겁니다.”

     

    지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이사벨도 깨달음을 얻은 무인처럼 숨은 뜻을 헤아렸다.

     

    “두려웠구나. 아이답지 않은 강함을 보고 우리가 더는 곁에 머무르지 않을까봐.”

    “귀족가의 암살병기로 자란 아이에게 아이인 자신을 두려워하는 어른의 모습은 그리 생소한 경험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실전경험’도 있을지 모르죠.”

     

    아이답지 않은 강함 탓에 미움 받는 것이 두렵다.

    동료들이 대련을 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느 쪽도 마음 아픈 일이다.

    오크노디의 끔찍했을 과거도.

    어른을 믿지 못하는 경험담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를 사고방식도.

     

    “…저기, 지젤. 혹시 귀족가에서 우리가 오크노디의 곁에 있는 걸 방관하는 이유도.”

    “그 뒤로는 생각으로만 해주십시오. 함부로 입 밖에 꺼내도 좋을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카데미에도 어디에 눈이 심어져있을지 모릅니다.”

     

    오크노디를 둘러싼 어둠은 상상 이상으로 깊었다.

    이사벨은 두려움보다 분노를 먼저 느꼈다.

     

    자신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믿지 마라.

    약한 사람들은 금방 죽는다.

    조금만 힘을 드러내도 그녀를 두려워한다.

    아이답지 않은 모습에 괴리감을 느낀다.

    그리고 마음을 배신한다.

     

    경험을 통해 관계성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고.

    오크노디의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귀족가의 어둠이 두려웠다.

    배후의 흑막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겼다.

     

    ‘우리를 얕본 거야.’

     

    이런 아이답지 않은 아이여도 동료로 여기고 함께 할 수 있겠냐고.

    언제까지 이 아이의 곁에서 떠나지 않고 상처주지 않을 수 있겠냐고.

    이름도 얼굴도 생김새도 모르는 흑막을 향한 분노가 치밀었다.

     

    ‘은혜를 갚기 위해 함께 하는 주제에 마음을 등지다니, 그딴 짓을 저지를 리가 없잖아.’

     

    이사벨은 생각했다.

    사람을 우습게보지 말라고.

    에소니아 모험단의 모험가는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족속이라고.

    그리고 지금, 그녀는 마음먹었다.

    오크노디를 향한 은혜갚기에 이은 또 다른 목표를.

     

    ‘언젠가 오크노디를 조종하는 당신들과 마주하는 날이 온다면, 그 얼굴에 주먹을 날려주겠어.’

     

    다짐 속에 관중석의 소란이 가라앉았다.

    오크노디와 롯토.

    두 상급반 입학생들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 *

     

     

    심판을 맡은 교관이 마나보드를 조작하며 말했다.

     

    “세이프티 가드가 작동하면 대결은 즉시 중지. 판정승으로 승자를 정한다.”

    “네에.”

    “운이 좋네. 뼈가 부러지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도 충분히 괴로울 정도로는 괴롭혀줄 거야.”

     

    롯토가 맞은편에 서서 가학적인 감정을 담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대결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바로 달려들 거라 생각했던 롯토는 한 수 봐주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정말 어설프네요.’

     

    눈을 보니 알겠다.

    여유가 있어서 보인 태도가 아니다.

    관중의 시선을 의식한 탓이다.

    어린아이와 불명예스러운 대결에 나섰으니, 이 정도 양보는 하지 않으면 체면이 살지 않는다는 거겠지.

    지면 개망신이지만 이겨도 욕을 먹으니, 조금이라도 체면을 살려보겠다는 태도다.

     

     

    “롯토 씨. 그거 알아요?”

    “뭐니? 막상 싸우려니 무서워? 봐달라고 애원이라도 하려고?”

    “기숙사 입주 6일차에는 훈련동에서 정전사고가 있거든요. 정전이 일어나면 세이프티가드는 작동이 중지되어요.”

     

    롯토가 미간을 찌푸렸다.

     

    “얕은 수를 부리네. A그룹은 그런 말장난에 위축되어서 꼬마 하나한테 수석을 내어줬어?”

     

    믿기 어렵겠지.

    일어나지도 않은 사고를 예언하다니.

    몰랐다면 나 같아도 안 믿겠다.

    그래도 찝찝하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세이프티가드 덕분에 가벼운 부상만 입고 끝난다.

    안전보장이 사라질 수 있다는 말에 명예나 체면을 따질 여유가 사라진 탓일까.

    롯토가 스텝을 밟으며 달려들었다.

     

    츠팟-!

     

    몸은 가볍고 날래다.

    발차기는 무게가 실렸고 위력적이다.

    과외를 받은 보람은 있는지 롯토의 실력은 뛰어났다.

     

    그렇지만 이쪽의 무기는 ‘검’이다.

    맨몸의 간격보다는 검의 간격이 더 길다.

    공격의 주도권, 유리함은 내게 있다.

     

    카앙!

     

    검과 다리가 부딪혀서 난다고는 믿을 수 없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관중석에는 롯토의 강함에 놀라 술렁거렸지만 정작 롯토는 표정이 좋지 못했다.

     

    “생각보다 아프죠?”

    “너… 그 힘은 설마.”

     

    그래. 이제 눈치 챘니?

     

    “이름대로 오크와 혼혈……?”

    “마나연단법 익혔거든요!!”

     

    앗. 잠깐 열이 오른 사이에 롯토의 다리가 매섭게 얼굴 옆을 스쳤다.

    발솜씨는 몰라도 도발 솜씨는 장난이 아니네.

     

    “그럴 것 같긴 했어. 힘이 센 것 치고는 헤스티아, 그 용병처럼 우락부락하질 않았으니까.”

     

    롯토가 탐색하듯이 물었다.

     

    “마나연공법도 익혔어?”

    “어떨까요?”

     

    마나의 힘으로 근육을 압축해서 아름다운 체형을 유지하면서도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마나연단법과 마나수집속도를 대폭 향상시키는 마나연공법.

     

    이는 귀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실전경험을 치르는 귀족들과 몇몇 상급용병들.

    비전무공을 전승하는 무가의 후예들.

    일인전승의 비전을 이어받는 숨은 실력자들까지.

     

    세상에는 다양한 마나연단법과 마나연공법이 있다.

    그리고 아카데미는 연단법과 연공법을 모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플레이어인 나는 수천 번을 아카데미에 다닌 몸.

    당연히 연공법과 연단법을 알고 있다.

    개중 자주 습득했던 기술은 요령만으로도 스스로 연구하며 익힐 수도 있지.

     

    신입생이 익히기엔 과분한 기술도 있다.

    그래서 귀족파파가 걸리면 좋다.

    아카데미에서 이걸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면 마나연공법의 출처를 파파한테 떠넘기면 되니까.

    파파가 물어보면?

    그땐 아카데미 핑계를 대면 그만이지.

    그래도 들키지 않는 쪽이 가장 좋다.

     

    지금까지는 집사의 눈을 의식해서 사용을 참아왔다.

    슬금슬금 남 몰래 잠깐씩만 쓰고 있지.

    직접 상대하는 롯토야 알아차렸지만 보는 사람들만 모르면 장땡 아닌가?

     

    “다리, 슬슬 저리지 않아요?”

    “아직 여유거든!”

    “잘됐네요.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 사이에 타이밍 좋게 정전사고가 겹쳐서 세이프티가드도 풀렸다가는… 뎅강. 잘려버리잖아요?”

     

    구체적인 묘사에 상상하기라도 한 걸까.

    롯토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카데미에서 널 가만 둘 것 같아?”

    “징계야 받겠죠. 근데 받아봤자 얼마나 받겠어요? 아카데미 정식규칙도 다 숙지 못한 예비입학생. 그것도 대결 중에 정전사고로 벌어진 ‘실수’인데.”

     

    롯토의 다리에 과도하게 힘이 실렸다.

    움직임이 딱딱해진 틈을 놓치지 않고 몰아붙이자 순식간에 롯토가 수세에 몰렸다.

     

    “너무 걱정 말아요. 정말로 잘리더라도 다시 붙일 수는 있잖아요? 아카데미는 치료시설의 설비도 우수하고 상주 치료사들의 수준도 높으니까.”

     

    트라우마야 남겠지만.

    중요한 순간에 다리를 뻗지 못하는 주저함은 무투가의 생명이 끝나는 것과 다름없지만.

    그것도 자업자득이지.

    애초에 마음씨를 곱게 썼으면 헤스티아에게 시비를 걸지도 않고, 헤스티아를 지키려고 나선 나와 대결을 할 일도 없었지.

     

    파앗!

     

    바로 그때, 기다리던 정전이 찾아왔다.

    어둠 속에서 롯토가 힉, 하고 내는 겁먹은 소리가 들렸다.

    건방진 패거리랑 몰려다니는 주제에 놀라는 소리 하나는 귀엽네.

    그런다고 봐줄 생각은 없다.

    그쪽도 아픈 꼴을 겪게 해주겠다는 말을 했잖아?

     

    스슷

     

    자른다.

    다리 한쪽은 날릴 작정으로 휘두른 검.

    어둠 속을 가르는 검이 예상치 못한 반발에 훅 튕겨나왔다.

     

    카앙!

     

    아니, 이걸 어떻게 막았지?

    실력을 감추기라도 했나?

    놀란 마음에 검로를 바꾸어 세 번을 더 휘둘러도 전부 가로막힌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검을 묵직한 무게가 실린 발이 쿵 하고 밀쳐냈다.

     

    파밧 팟

     

    허공에서 720도 몸을 회전하고도 다 해소하지 못한 충격 탓에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다리로 원을 그리듯이 자세를 낮춘 뒤에야 지면에 힘을 흘려냈다.

     

    저릿한 충격이 아직도 남아있는 두 팔.

    문득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런 자세, 이런 틈을 노리고 다음 일격이 날아들면.

    받아낼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달려드는 모습을 상상하며 긴장하는 그때, 실내에 조명마법이 다시 들어왔다.

     

    ‘어라?’

     

    상대를 본 나는 당황했다.

    어둠 속에서 몰아붙였던 실력자.

    상대는 롯토가 아니었다.

    대련장에 난입한 헤스티아였다.

     

    “여기까지만 해. 도와주려고 나선 아이가 큰 실수를 저지르게 둘 수는 없어.”

    “하아. 힘 빠지네요. 저 같으면 못 본 척 했을 텐데.”

     

    정말로 다리 한쪽을 잃을 뻔했음을 알아서 그런지, 롯토가 힘이 풀린 채로 주저앉았다.

     

    “시합중지! 정전사고로 인한 세이프티가드 미작동이 있었던 관계로 이번 대결은 중지하겠다!”

     

    교관의 외침에 대결은 흐지부지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삼겹목살님 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상대가 보기엔 정전사고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수상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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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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