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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우리는 최대한 빨리 세계수를 향해 나아갔다.

     

    어젯밤, 아스칼 셀레브리엔이 받은 편지 한통이 원인이었다.

     

    우두머리들이 세계수에 점차 근접해간다는 소식.

     

     

    그리 시간이 많지 않아보였다.

     

     

    어쩌면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우두머리의 종류만 확인하고 전투를 치러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더욱 높아지는 위험에 형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엘프 장로는 우리에게 귀족과의 연줄까지 만들어주겠다며 목소리를 높여 설득했다.

     

     

    나는 형의 머리를 들여다볼 수 없기에 그가 정확히 무슨 계획을 짜고 있는지는 알수가 없었지만, 아담 형은 아스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보다 빠른 이동을 명령했다.

     

     

    워낙에 갑작스러운 의뢰였던만큼 온 홍염단이 출진하지는 않았다.

     

    이미 파견을 나가 의뢰를 완수중인 부대도 있었고, 이미 다른 의뢰를 해결하기로 약속하여 스탁핀에 남아야했던 대원들도 있었다.

     

    형의 말로는 블랙우드 때보다는 덜 껄끄러운 상황이라 했으니 괜찮길 바래야했다.

     

     

    하지만 또 동시에, 블랙우드 때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맴돈다.

     

    조금은 진중한 분위기가 흐른다.

     

    전날 잔치를 열지 않은것도 한몫했을 것이고, 곧장 싸워야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빠르게 이동하는 만큼, 대원들이 서로 대화할 여유가 없는 것이 가장 컸겠지만.

     

     

    대원들은 가볍게 달리며 우리들을 따랐다. 평소 우리가 겪었던 훈련에 비하면 가벼운 운동이었다. 어쩌면 이를 통해 몸을 먼저 풀어두는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외려 네르가 더 힘들어할 정도였다.

     

    아직 기마실력이 그렇게까지 뛰어나지 않은 그녀에게는 불편한 여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앗.”

     

    간혹 네르는 옆에서 신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안장에 엉덩이 혹은 허벅지를 부딪혀가며 아파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

     

    “괘, 괜찮아.”

     

    하지만 네르는 불평 한 번하지 않았다.

     

    홍염단의 방해가 되고 싶지는 않은 듯 했다.

     

     

    그에 따라 나도 그녀가 불편해할 배려는 접어두며 앞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여행했으면 아름다웠을 풍경이었다.

     

    하늘은 맑고, 푸른 초원이 이어진다.

     

    여기저기 꽃도 아름답게 피어있었으며, 멀리서는 야생동물과 새들이 보였다.

     

     

    네르가 말에 올라타있는걸 집중하느라 이 풍경을 보지 못하는게 아쉬울 정도였다.

     

     

    문득 나는 지형을 확인하며 아담 형에게 말했다.

     

    “형, 대열을 왼편으로 돌려야 해. 갈디어 가문 영지로 너무 깊이 들어가고 있어.”

     

    “아니야. 괜찮아. 그대로 가.”

     

    하지만 형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렇게 연이 닿지 않은 가문의 영지로 너무 깊이 들어오면 좋을게 없는데 말이다.

     

     

    결국 우리는 평민 인족으로 구성된 용병단이었고, 우리의 존재는 누구에게나 위협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잘못했다가는 그들과 원치 않는 싸움까지도 감수해야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셀레브리엔의 영지를 빠르게 찾아가야한다는 건 분명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선적인 방향만 택한채 움직일줄은 몰랐다.

     

    단 한번도 이래왔던 적이 없었으니 나는 아담 형의 선택이 굉장히 의외라 생각하는 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달리고 있자니 멀리서 먼지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또 다른 군대가 우리의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쯤은 예상이 되었다.

     

    이내 갈디어 가문의 깃발을 휘두르는 병사들이 보였고, 우리도 그에 따라 속도를 늦추었다.

     

     

    병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상대한다면 우리가 우습게 찍어누를 정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명분은 저쪽에 있다.

     

    어느 누가 선을 넘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했다.

     

     

    “멈춰서라!”

     

    가장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한 기사가 우리에게 소리친다.

     

    “여기는 갈디어의 영지다! 누구 마음대로 남의 영지에서 이런 군대를 이끌고 지나느냐!”

     

    그들이 거리를 좁힘에 따라, 종족이 점차 보인다.

     

     

    기사는 아마도 키 작은 인족이거나, 하프 드워프였다. 몸이 다부지고 수염이 긴게 하프 드워프일 가능성이 보다 높았다.

     

    그 뒤를 따르는 늑인족과, 리자드맨 병사들.

     

    다양한 종족이 섞인 군대였다.

     

    사실 저게 보편적이다.

     

     

    우리처럼 인족으로만 꾸려진 집단이 보다 특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담 형은 대화하기 위해 상체를 세우고 숨을 들이켰지만, 그보다 빨리 상대가 우리를 알아차렸다.

     

     

    “…가만. 인족으로 구성된 용병단…?”

     

     

    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우리가 점차 유명해지고는 있었어도 이 하프 드워프 기사까지 우리를 알아차릴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내 그 드워프를 뒤따르던 늑인족이 큰 소리로 놀랐다.

     

    “앗!”

     

    그의 눈은 네르를 향해있었다.

     

    이내 그는 빠른 속도로 하프 드워프에게 붙고는,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중간 중간 그 늑인족 병사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흰꼬리….블랙우…”

     

    네르도 그 말을 들었는지, 제 흰 꼬리를 등 뒤로 숨겼다.

     

    여러번 느꼈지만 네르는 자신의 꼬리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 했다.

     

     

    이내 기사는 우리를 위아래로 살피다, 목을 한번 풀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홍염단…이십니까?”

     

    나는 그 태도 변화에 작은 헛웃음이 나왔다.

     

    다른 단원들을 통해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은 들었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그 느낌이 또 다르다.

     

    기사가 우리에게 말을 높이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네르를 바라보았다.

     

    네르도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한다.

     

     

    이게 블랙우드라는 명문가를 등에 업은 힘일까.

     

    그 어떤 가문도 블랙우드 앞에서는 한 수 접어둬야하니 말이다.

     

     

    아담 형은 동요하지 않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로 이곳에 들어온건지 이유를 알려주시겠습니까.”

     

    “셀레브리엔 영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촉박해 이런 과격한 방식을 택한것이니 너그럽게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프 드워프 기사는 잠시 고민을 하다, 네르를 한번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담 형과 기사는 짧은 목례 이후, 거리를 다시 벌렸다.

     

    “출발!”

     

    형이 명령하자, 홍염단은 다시 움직였다.

     

     

    나는 우리의 뒤편으로 멀어져가는 갈디어의 병사들을 살폈다.

     

    그리고는 형을 보며 묻는다.

     

    “…다 예상했던 거야?”

     

    형도 피식 웃었다.

     

     

    “아니?”

     

    그 대답에 어이가 없어 내가 되묻는다.

     

    “아니, 예상하지 않았으면 뭔 생각으로-”

     

    “-셀레브리엔의 이름을 대려고 했어.”

     

    그가 말했다.

     

     

    그러더니 형도 내 옆에 있던 네르를 바라보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어떠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순식간에 무형의 힘을 얻은 듯한 느낌이었다.

     

     

     

    .

    .

    .

    .

     

     

    이후로도 우리는 여러번 다른 가문의 병사들을 마주했다.

     

    하지만 우리가 전부 인족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흰꼬리의 늑인족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아차리면, 다들 하나같이 누그러진 태도로 우리를 대했다.

     

    여전히 경계는 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어차피 무력으로도 우리가 이기고, 등에 업은 이름도 우리가 높으니 다들 함부로 우리를 막아서지 않았다.

     

    특히나 셀레브리엔 가문을 도우러가고 있다고 덧붙인다면, 그들도 우리에게 안녕을 기원해줄 정도였다.

     

    그럼에도 껄끄러워 하는 병사들도 몇 마주했는데, 그때는 엘프 장로까지 나서서 우리를 보증해주었다.

     

     

    그에 따라 우리는 며칠은 걸릴 거리를 한번에 뛰어넘었다.

     

    내일이면 세계수가 보일 위치까지 달려왔다.

     

     

    하루종일 달음박질을 한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적절한 거리에서 우리는 야영지를 차렸다.

     

    그만큼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

     

    “후.”

     

    솔직히 말해 놀라웠다.

     

    .

    .

    .

    .

     

     

    잠시 아담 형과 대화를 하고, 우리는 정찰대를 내보냈다.

     

    어두운 밤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달은 높고 밝게 떠 있었고…우두머리의 존재도 다시금 확인해야만 했다.

     

    멀리서 어디쯤에 그 우두머리들이 돌아다니는지 대략적으로 알아만 오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지형과 우두머리 종류에 따라 보다 세세히 작전을 짤 수 있으니.

     

     

     

    “그래. 이쯤이면 됐다. 가서 쉬어, 베르그.”

     

    “형도.”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아담 형의 임시 천막을 떠났다.

     

    여기저기서 불이 피어오르고 음식 냄새가 풍겨온다.

     

    하루 종일 뛰느라 이 휴식이 달콤했는지, 용병단에는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도 피어났다.

     

    일전에 걱정했던 무거운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밥 맛있겠다 진짜.”

     

    “야, 많이 만들어!”

     

     

    내일 전투를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과거 블랙우드 때보다는 어렵지 않을거라는 언질을 들었기에 이런걸지도 몰랐다.

     

     

    사실, 공포가 내려앉아있는것보다 이게 더 낫다.

     

    어차피 경험해야하는 일을 먼저 두려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까.

     

     

     

    “야, 봤냐 근데. 다들 보내주는거.”

     

    “기사들 표정이, 큭큭. 다들 우물쭈물대고.”

     

     

    하지만 용병단의 밝은 분위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작용한 듯 했다.

     

    듣자마자 그들의 자부심이 무엇인지 알수가 있었다.

     

    항상 인족이라 무시받던 이들이 한순간 여러 가문들을 무시하며 달렸으니 후련할법도 했다.

     

     

    나는 그 사실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아담 형의 선택은 언제나 옳은걸지도.

     

     

    이내 난 네르를 찾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보이는 단원들을 한명씩 붙잡고 네르의 행방을 묻는다.

     

     

    “내 아내 봤어?”

     

    “아, 부단장님. 네르님이요? 아니요,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부단장님의 천막에서 쉬고 있는게 아닐까요?”

     

    “내 천막은 어디있지?”

     

    “저쪽, 저거입니다.”

     

    단원은 손가락으로 저 멀리있는 천막 하나를 가리킨다.

     

    “그래, 고마워.”

     

    “네. 쉬십쇼.”

     

    나는 그의 말을 따라 나의 천막으로 향했다.

     

     

     

    ****

     

     

     

    네르는 한숨을 쉬며 천막 내부에 있는 침상에 앉아있었다.

     

    하루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고단했다.

     

     

    이동하는 것이야 말에 올라탔으니 불평할 수 없었고, 풍경도 아름다웠으니 그 부분은 괜찮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름 모를 수 많은 늑인족들도 만났다.

     

     

    그리고 하나같이, 그녀의 꼬리를 보며 존재를 파악했다.

     

     

    언제나 그녀의 역린이었던 꼬리다.

     

    날때부터 다르게 태어났다.

     

    블랙우드를 상징하는 윤기나는 검은색과 회색이 섞인 꼬리는커녕, 그런 어두운 색은 조금도 포함되지 않은 하얀색.

     

    굳이 블랙우드 가문이 아니더라도 이상한 색.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네르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낙인이었다.

     

     

    네르는 예상보다 자신이 훨씬 더 유명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모두가 제 흰꼬리를 보며 중얼거렸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째서인지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더 움츠러들었다.

     

     

    만약 형제들의 사랑을 받았다면 덜 했을까?

     

    이런 꼬리도 괜찮다며 보듬어줬다면 그 특이한 색에 자부심을 느꼈을까?

     

    이 꼬리로 인해 괴롭힘을 받았던 네르였기에, 그녀는 이보다 제 꼬리가 싫을수가 없었다.

     

    자신의 꼬리를 칭찬해준 유일한 상대는 할머니 뿐이었고, 어쩌면 그조차도 자신에게 건네던 위로의 말일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하루가 고단했다.

     

    잠시 잊고 있던 콤플렉스가 다시 한번 자신을 삼키는것만 같아서.

     

    어떻게 바꿀 수도 없는 이 신체적인 결함은 언제나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때, 누군가가 천막 밖에서 목을 푸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안으로 베르그가 들어온다.

     

     

    “베르그?”

     

    “여기 있었구나.”

     

    “…응.”

     

     

    네르는 베르그의 존재에 빠르게 제 우울한 마음을 숨겼다.

     

    이렇게 있어봤자 나아질 것 하나 없으니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척 자연스럽게 베르그에게 물었다.

     

    “이제 쉬면 되는거야?”

     

    “…밥 먹으면.”

     

    하지만 베르그의 반응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그는 자신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걸음걸이도 조심스러워져 천천히 다가온다.

     

     

    “왜?”

     

    그 변화에 네르가 묻자,

     

    “무슨 일 있어?”

     

    하고 베르그도 곧장 답했다.

     

     

    “…….”

     

    네르는 어떻게 제 속마음을 이리도 쉽게 들켰는지 의아했다.

     

    꼬리도 깔고 앉아 기분을 파악하기도 힘들었을 거다.

     

    “아, 아니야.”

     

    그러니 네르가 답했다.

     

    자신의 꼬리에 대한 아픔을 굳이 베르그에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외려 더 비참해질 뿐이니까.

     

    베르그도 자신의 꼬리색이 형편없다는 걸 알텐데, 굳이 그와 이 대화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가 모르는 척 연기해주는게 보다 편했다.

     

     

    하지만 베르그는 순식간에 자신의 옆자리를 꿰찼다.

     

    “…왜. 뭔데.”

     

    다시 묻는 베르그.

     

    가까이 붙은 베르그 덕에 네르의 두 눈이 방황한다.

     

    “그…아니라니깐…?”

     

    “아니긴. 말해봐.”

     

    “…”

     

    네르는 잠시 침묵했다.

     

     

    이어서, 네르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그의 관심에 어째서인지 울컥했다.

     

    별것도 아닌걸로 울컥하는 자신이 바보같다.

     

     

    여태 모든 아픔은 스스로 해결해왔기 때문일까?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주는게 이런 느낌일줄은 몰랐다.

     

    묻는 것 하나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네르는 이것만큼은 숨기고 싶었다.

     

    베르그가 간혹 억지로 자신의 팔목을 이끌어 당기듯, 지금도 그런 느낌이다.

     

    억지로 속마음을 들춰내는 것 같다.

     

     

    네르는 다시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목도 한순간 콱 막힌다.

     

    네르는 왜 갑자기 눈물이 나올것만 같은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정말 별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밤에 달을 보며 토로하고 잠들면 잊혀질 아픔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한참을 있다, 다시 자연스레 입이 열렸을때에는 네르 자신도 모르게 그 아픔을 흘리고 있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그냥…사소한 거야.”

     

    없다고하지는 못했다.

     

    베르그는 그 말꼬리를 물고 놓지 않았다.

     

    “사소한거 뭐?”

     

    “…”

     

    네르는 고개를 숙였다. 베르그고 그에 따라 고개를 숙이며 눈을 맞추려 했다.

     

     

    그가 순간적으로 장난을 건네온다.

     

    “뭐, 침상이 좁아서?”

     

    네르는 울컥했던 마음이 쏙 들어가며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너무도 바보같은 그 말에 어쩔수가 없었다.

     

    “아니면 배고파서?”

     

    “…”

     

    “말 타느라 허벅지 아파?”

     

     

    네르는 결국 킥킥 웃었다.

     

    흘러나올것만 같던 눈물이 눈꼬리에 걸려 멎는다.

     

     

    “…뭐냐고 그러니까.”

     

    분위기를 환기한 베르그가 다시 묻자, 네르가 말했다.

     

    “…꼬…리.”

     

    “뭐?”

     

    “…오랜만에 내 꼬리가 얼마나 싫은지 새삼 느껴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며 표정을 굳힐거라 생각했던것과 달리, 아직도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베르그.

     

    “…?”

     

    마치 침상이 좁아서 이러는 거라면 더 이해했겠다는 표정이었다.

     

    베르그가 순간적으로 그녀의 꼬리를 바라보았고, 네르는 본능적으로 제 꼬리를 말았다.

     

     

    “…꼬리가 왜.”

     

    “알면서. 색이 형편없잖아. 다 이 꼬리를 보고 내가 네르 블랙우드라는 것도 알아차리고.”

     

    “…”

     

    “이걸로 얼마나 많이 차별 당하고 손가락질 받았는지 생각하면…근데 이해는 돼. 내가 봐도 징그러운걸.”

     

    “징그럽다고?”

     

    “오늘 너도 봤잖아. 다른 늑인족이 이 꼬리 자꾸 살피는거.”

     

    “…”

     

    “너도 진짜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냥, 그래서. 문득 싫어져서.”

     

     

    하지만 베르그는 피식 웃었다.

     

    네르는 그의 반응에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

     

    베르그는 잠시 생각하다 묻는다.

     

    “넌 그럼 꼬리가 없는 나도 징그러워?”

     

    “…아니? 하지만 넌 인족이잖아.”

     

    “그러니까. 난 인족이라 네 꼬리가 어떻든 아무런 생각도 없어.”

     

     

    굉장히 가벼운 투로 베르그가 말해왔다.

     

    외려 진중하게 말하지 않으니 더 신뢰가 가는 느낌이었다.

     

    “흰색이라 징그럽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안해봤어. 네가 너무 앞서 생각하는 거 아니야?”

     

    “…”

     

    네르는 눈을 깜빡이다, 반박하듯 그에게 말한다.

     

     

    “…거짓말.”

     

    “이걸로 왜 거짓말을 해.”

     

    “솔직하게 말해. 거짓으로 위로해주는 거라면 더 상처야.”

     

     

    네르는 그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유치하게 반대감정을 표현했다.

     

    곧장 그의 위로를 받아들이기에는 그 동안 받아온 상처가 너무 깊었다.

     

     

    “솔직하게?”

     

    베르그가 다시 묻는다.

     

    네르는 잠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솔직하게.”

     

     

    베르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하게는 흰색이라 더 예쁜 것 같은데.”

     

    “…………”

     

     

    네르는 자신의 오랜 고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드는 베르그를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자꾸만 반발심이 생기는데, 동시에 따스한 감정이 심장 부근에서 맥박친다.

     

     

    동요가 너무도 심해져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평생을 못났다 생각한걸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예쁘다는 말에 이렇게 흔들리는 스스로가 바보같기도 했다.

     

    겨우 그 말에 이토록 흔들린다.

     

     

    “……..네가 인족이라 그래.”

     

    네르는 끝내 그 말 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하지만 베르그는 굳이 그 사실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다고.”

     

    “…읏.”

     

    네르는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감춘다.

     

    모두가 싫다 여기는 이 색깔을, 베르그라면 예쁘다고 여겨주는 걸까.

     

     

    네르의 뜀박질하는 심장에 손끝이 따끔거렸다.

     

    “…진짜로 예쁘다고?”

     

    네르는 그 믿기 힘든 사실을 다시 묻는다.

     

    스스로도 왜 이렇게 물어본건지 알수가 없었다.

     

    확인받고 싶은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응. 난 좋은데.”

     

     

    네르는 문득, 누군가가 자신의 꼬리가 예쁘다고 말해준건 할머니 이후로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또 다시 울컥하는 마음이 치솟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감정을 끝내 참아내지 못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뭐야? 왜 울어.”

     

    베르그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놀라며 묻는다.

     

    네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랜 아픔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긍정당하니, 이렇게나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왜 울지?”

     

    네르는 훌쩍 거리며 눈물을 훔쳤다.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은 억지로 꾹 억눌렀다.

     

     

    .

    .

    .

    .

     

     

     

     

    이내 밤이 되어, 네르는 그 좁은 침상에 베르그와 함께했다.

     

    베르그는 윗옷을 벗으려다, 자신의 눈치를 보고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려 네르가 목소리를 높였다.

     

    “펴, 편한대로 해.”

     

    “…”

     

    “…곧 싸울거잖아. 휴식에 방해되고 싶지 않아.”

     

    네르는 스스로도 왜 이 말을 뱉었는지 알수 없었다.

     

    하루 종일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오늘은 정말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베르그는 그녀의 말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피식 웃으며 훌렁 윗옷을 벗어던진다.

     

    그리고는 침상에 털썩 누우며 말했다.

     

    “자자. 내일도 바쁠거야.”

     

    “응.”

     

    네르는 천천히 그의 옆에 자리했다.

     

    이번에도 공간이 좁아 붙어 잘 수 밖에 없는 거리다.

     

    네르는 이전에 그랬듯, 아주 좁은 틈만 남겨두고 불안하게 몸을 눕혔다.

     

     

    베르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고, 금방 잠에 든다.

     

    네르는 자는 척을 하다 눈을 떴다.

     

    “…”

     

     

    아직도 베르그가 말해주었던 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녀는 제 흰꼬리를 들어 바라보았다.

     

    이걸 예쁘다고 할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었다.

     

     

    또 다시 가슴이 뛰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족.

    어쨌거나 남편이 된 사람.

     

     

     

    베르그는 뒤척거리다 침상에서 떨어질 뻔한다.

     

    “어, 뭐야. 씁…”

     

    선잠에서 그가 깨어나자, 네르가 먼저 제안했다.

     

    “…조금 더 붙어자도 돼.”

     

    “….?”

     

    베르그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네르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침상 더 깊이 들어온다.

     

     

    옆으로 누워있던 네르는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베르그를 느꼈다.

     

    “…”

     

    네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로 불쾌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존재가 오히려 든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네르는 몸에 들어가있던 사소한 힘을 풀자, 몸 앞으로 방어적으로 뒀던 팔이 그의 맨 옆구리에 닿았다.

     

    “….”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팔을 그에게서 떼지 않았다.

     

    그냥 오늘은 그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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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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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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