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3

       안 좋은 소식이 있다.

         

       아니, 안 좋기보다는 번거로운 소식이다.

         

       “한 달 뒤가 중간고사인데 너는 공부 안 해?”

       “지금 공부하고 있잖아.”

         

       플레어 공부.

         

       “아니…. 시험공부도 해야 할거 아냐….”

         

       4월 초엽에 접어들었는데도 난 여전히 플레어에 온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다.

         

       [마법연구에 미친 걸 보니 역시 그 교수에 그 노예…….]

         

       넌 좀 조용히 해.

         

       플레어를 두 달 내로 완성하겠다며 다짐해놓고 다음 달까지 못 끝내면 그건 그것대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긴다. 내가 만들어놓은 데드라인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아무리 못해도 중간고사 전에는 논문 한 편을 더 투고하리라.

         

       그래서 자괴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여러모로 채비를 해 놓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플레어의 위력을 시험해 볼 표적이었다.

         

       얼마 전, 동아리 부원 신분으로 박물관에 견학을 간 나는 박물관 관장을 따로 만나 재앙급 마수의 외피를 빌려달라고 사정했었다.

         

       “가르강튀아의 전면장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어디다 쓰려고 그러니?”

       “저희가 동아리에서 새 관통마법을 연구하고 있는데요, 거기에 비교가 될 만한 표적을 구하고 싶어서요.”

         

       아카데미 박물관은 말만 박물관이지, 실제로 전시하는 물품은 전체의 4할에 지나지 않는다.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마수 사체의 대부분은 연구용으로 출고된다.

         

       내가 학술 동아리에 입부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학술 동아리 소속으로 있으면 박물관에서 뭘 빌릴 때 대여료가 미미하거나 아예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 워낙 큰 녀석이어서 장갑 재고는 쌓여있었거든. 원하면 가져가렴.

       ─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다. 설마 공짜였을 줄이야.

         

       재앙급 마수, 가르강튀아의 철갑은 두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였다. 두께도 만만찮았다. 웬만한 콘크리트 외벽 크기였다. 이걸 잘라서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캐리어를 사용해서 옮겨야만 했다.

         

       내가 가르강튀아의 전면장갑을 들고 돌아왔을 때, 부실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던 프레이가 몸을 일으켰다. 꼬맹이는 입에 마력초를 문 채로 도도도 뛰어왔었다. 한동안 연성만 해대느라 반쯤 죽어있던 프레이의 눈동자가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우, 우와! 이거 가르강튀아 장갑이잖아?!”

       “이것만 보고 어떻게 알았어?”

       “책에서 봤어!”

         

       프레이가 장갑을 더듬거리며 정체불명의 탄성을 내질렀다.

         

       얘는 이럴 때 보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평소에는 그저 목소리 큰 어린애에 불과한데, 마수나 지계마도에 대해 물어보면 웬만해선 다 대답을 했으니까.

         

       “가르강튀아의 장갑은 엄청 두껍고 딱딱해. 그래서 전략급 마도사 수십 명이 모여서 엿새 동안 최상급 마도를 다 때려박고 나서야 겨우 뚫을 수 있었다고 들었어!”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로테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대화를 이어갔다.

         

       “이 정도인 마수가 겨우 재앙급으로 분류된다니…. 절멸급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그러니까 플레어를 개발하려는 거야. 하는 데까진 해 봐야지.”

         

       겸사겸사 내 도감도 좀 채우고.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돼! 자, 이리 와서 봐봐! 네가 주문한 걸 방금 완성해 두었으니까!”

         

       프레이가 몸을 비키자 그 앞쪽에 웬 철제 도넛이 놓여있었다.

         

       변환 철심에다가 전기 전도율이 높은 철사를 둥글게 감아놓은 모습이다. 다만 그 직경은 1m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내가 초기에 기획했던 것보다는 훨씬 작은 수준이었다.

         

       이 철제 도넛의 정체는 토카막(Tokamak)이라 불리는 원환면의 장치로, 자기장 코일을 사용하여 플라스마를 가두는 역할을 한다. 프레이에게 설계도를 주고 만들어달라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얻어낸 것이었다.

         

       그러면 뜬금없이 왜 토카막을 만들었느냐.

         

       [태양, 제4의 상태, 그리고 다섯 번째 길이 이곳에 있나니.]

         

       플레어에 대한 힌트가 플라스마였으니까. ‘제4의 상태’는 물질의 네 번째 상태인 플라스마를 뜻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지금 만든 토카막 장치는 테스트용이다. 막대한 양의 플라스마를 가두거나 핵융합 과정에 본격적으로 써먹으려면 이 크기로는 부족하다. 더 큰 실험 장비와 토카막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플레어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시제품에 불과하다.

         

       “이걸 어떻게든 했네.”

       “거 봐, 내가 뭐랬어! 설계도랑 재료만 있으면 뭐든 연성해낼 수 있다니까!”

         

       애초에 판타지 세계에서 토카막을 연성해낸 것만으로도 오버 테크놀로지였다.

         

       그래. 프레이의 연성실력이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지만 이것까진 어떻게든 참작할 수 있다고 치자.

         

       그걸 제외하더라도 말이 안 됐다. 비록 내가 이쪽 분야에서 구르다 온 사람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토카막의 세세한 설계도나 기타 필요한 장비를 모두 꿰뚫고 있었을 정도로 모든 것에 통달해 있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토카막이나 한 번 만들어볼까?’라고 생각한 순간, 머릿속에서 관련된 설계도가 딱 떠오르는 거 아니겠는가.

         

       진짜 뭐지?

         

       마치 슈퍼컴퓨터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금안족 보정을 받아서 그런가?

         

       금안족은 연산력과 암기력이 뛰어난 종족이었으니, 내 지식과 시너지를 낸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날 불쌍히 여긴 여신이 특별히 메리트를 준 것이거나.

         

       이 점에 대해선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가르강튀아의 전면장갑 있고, 토카막도 완성했고.”

         

       세 번째로 준비할 재료들은 의외로 쉽게 구했다. 나는 바구니에 든 렌즈와 집속기 몇 개, 얇은 박막 몇 개를 포함한 물건들을 꺼냈다.

         

       “이게 다 뭐야?”

       “지계마도 연구실에서 빌려왔어. 플레어를 집속하고 편광시키는데 필요할 거야.”

         

       광학 기기였다.

         

       예를 들어, 특정한 마력파장만 걸러내는 ‘패브리-페로 간섭계’라든지, 마력파를 한 방향으로만 진동하며 진행하게 만드는 ‘편광기’라든지.

         

       헤를라인 선생님 밑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기에 쉽게 빌릴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학기 초 지계마도 연구실에 알박기를 한 게 신의 한 수였다.

         

       “이건 실험해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내 추측대로라면 플레어는 화계마도에만 속하는 마법이 아닐지도 몰라.”

       “뭐? 그럼 지계나 공계일 수도 있단 말이야?”

       “두 속성이 섞였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여태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속성의 원소마도거나.”

         

       거기까진 억측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플레어를 표적에 명중시키려면 이런 광학 장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얘기야.”

         

       플레어를 구축하는데 쓰인 스크롤. 그 스크롤의 마법진을 고심히 관찰하다보면 마소 핵융합을 만들어낼 것 같은 매커니즘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이론은 맞을 터였다. 그런데 이름과 실체가 다르기라도 한 건지, 플레어가 담긴 스크롤에서 불꽃 같은 게 튀어나올 거라는 확신이 안 들었다.

         

       [설마 그걸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몰라. 해 봐야 알겠지.”

         

       우리 셋은 사전에 얘기한대로 실험 장치를 준비했다. 다 되기까지는 반나절이 더 걸렸다.

         

       **

         

       그리고 개같이 멸망했다.

         

       “야, 이거 출력이 왜 이러냐?”

         

       프레이가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찼다. 나와 로테는 그에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마력초를 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희뿌연 스모그가 공중으로 올라갔다. 멘탈도 같이 승천할 것 같았다.

         

       “플레어 하나 발동시키는데 도대체 마력초 몇 개비를 소비한 거야….”

       “난 이걸로 여덟 개째.”

         

       나는 벽면에 기댔다. 이 위치에선 속이 파인 가르강튀아의 전면장갑이 한눈에 들어온다.

         

       플레어가 명중한 철갑의 한가운데는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주변 공기가 일렁이다 못해 심한 수준의 왜곡을 만들어냈다. 보호 장치를 해 두지 않았더라면 부실 전체가 위험해졌을 것이다.

         

       [사하 이온화 방정식에 따르면 유의미한 수준의 플라스마가 관측되긴 했습니다.]

         

       플라스마. 그래, 플라스마를 만들긴 했다. 아주 잠깐은.

         

       그 만들어진 플라스마를 토카막에 곧바로 가두기에는 기술력과 장비가 부족했다. 고온 고압을 유지하는 것에도 여러모로 부족했다. 실험은 반쯤 실패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야 그렇겠지. 기획기간이 불과 며칠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플레어의 정체를 알았어.”

       “내가 봤어! 막 빔 같은 게 슈숙, 하고 지나가던데?!”

       “금안족은 그걸 레이저라고 불러.”

         

       레이저.

         

       플레어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고첨두출력의 펄스 형태를 지니는 레이저였다.

         

       레이저인데 마법 이름이 왜 플레어야.

         

       원래 목적은 플레어가 어떤 마법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첫술에 배부르길 바란다면 그건 도둑놈 심보다. 한 번 만에 실험에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고 있지도 않았다.

         

       “플레어가 지나가는 선을 봤다고 했지?”

       “응.”

       “그래서 파괴력이 약했던 거야. 총 에너지가 같다고 가정했을 때 출력되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야 관통력이라던가 그런 게 높아지거든.”

         

       플레어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면 그만큼 긴 시간 동안 연속해서 방출되었다는 뜻이다. 나와 로테가 스크롤을 발동시키기 위해 주입한 마력량은 일정했으니까.

         

       그 마력에 든 마소가 에너지로 바뀌었을 테고, 그중 대부분은 광학 기기를 지나면서 손실되었겠지. 스크롤이 망가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투입한 마력량에 비해 세기가 약한 게 문제였다.

         

       쉽게 말해 효율이 별로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유의미한 결과 아닐까? 전부는 아니지만 가르강튀아의 장갑이 절반가량 손상됐잖아.”

       “그렇지. 한 번만 더 쏘면 관통시키는 데에는 문제없을 거야. 그렇지만 웬만해선 한 번에 뚫리는 게 좋아. 움직이는 마수를 상대로 같은 곳에 연속해서 두 발을 명중시키는 건 쉽지 않으니까.”

         

       몸에 마력을 억지로 돌게 했더니 전신이 뻐근했다. 금안족은 태생적으로 다른 종족보다 마력 부하가 쉽게 오는 체질이었다.

         

       한동안 숨을 고르며 시간을 보냈다. 부실의 열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창문을 닫고 펜을 잡았다. 주저앉은 채로 쉬고 있던 로테도 실험 장비를 한쪽으로 밀어서 정리했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정신없이 연구만 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것이다. 오늘 실험 기록만 정리하고 기숙사로 돌아가 쉬어야겠다.

         

       “…너희 뭐 해.”

       “으아악!”

         

       난데없는 남자의 음성에 나는 그만 앞으로 튀어나가고 말았다. 운이 없게도 바로 앞에 책상이 있었고, 그 책상다리에 새끼발가락을 찧어서 한 바퀴를 굴렀다. 물을 마시고 있던 프레이는 내 그 모습을 보고는 사레에 들렸다.

         

       “아, 씨, 아으….”

         

       뭐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놀란 건 로테나 프레이도 마찬가지였다.

         

       내 바로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버멜이었으니까.

         

       “어떻게 문도 안 열고 들어왔어…?”

       “순간이동으로.”

         

       순간이동? 그거 최상급 공계마도 아닌가?‘

         

       “아무튼 뭐 하냐고 물어봤는데.”

       “쓰읍……. 부원들이랑 같이 실험하고 있었어.”

       “무슨 실험?”

       “난데없이 그건 왜 물어봐?”

        “나도 일단은 여기 부원이니까. 궁금해서.”

         

       이걸 뭐라 답해야 하지. 그냥 새 화계마도를 연구하고 있었다고 말하면 되려나?

         

       그래도 버멜은 빙의자였으니까 내가 어떤 마법을 얘기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나는 일전의 상황 설명을 모두 생략하고 딱 한 마디만을 내뱉었다.

         

       “그, 플레어라고 알아?”

       “…….”

         

       잠시간의 정적.

         

       그리고 방금 알게 된 사실.

         

       이 빙의자는 표정 관리를 더럽게 못한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