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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시상식이 끝난 뒤.

       

       시상식장에서 결투를 벌이려고 해서 잠시 쫓겨났던 두 사람을 다시 불렀다. 우수상에 입선한 두 사람이 갑자기 서로 싸우려고 든 이유가 궁금해서다.

       

       

       “대체 왜 시상식장에서 싸우고 그러십니까?”

       

       “아, 헤로도토스 작가님! 들어보십쇼! 저 친구가 글쎄, 명명백백한 승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네야말로 억지를 부리는 것 아닌가!”

       

       “남자면 남자답게 인정하게!”

       “자네야말로 지성인답게 좀 굴게나!”

       

       “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나 부리는 게 지성인다운 태도인가?”

       “사실을 제멋대로 왜곡해서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는 낫지!”

       

       “이 자식이 그래도! 결투다!”

       “누가 도망갈줄 알고? 결투다!”

       

       

       이게 뭘까.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언쟁하던 두 사람은 또다시 서로에게 결투를 신청하며 달라붙기 시작했다.

       

       결국 나와 출판사 직원이 달라붙어서 말려야만했다.

       

       두 사람이 겨우 진정하고, 이번에는 싸우지 않도록 한 명을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들었다.

       

       

       “진정하세요. 그러니까, 대체 무슨 문제가 있길래 그렇게 원수처럼 그러십니까?”

       “승부를 했습니다.”

       

       “승부요?”

       “네! 이번 공모전에서 누가 더 높은 성적을 내느냐하는 승부입니다. 그래서 저희 둘 다 우수상을 받았고요.”

       

       “그러면 무승부 아닌가요?”

       “신성한 결투에 어떻게 무승부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가려내실 것이니(Novit enim Dominus qui sunt eius)─, 결투의 결과는 천주께서 주관하시는 것이고, 시상식에서 저의 이름이 먼저 불렸다는 것이야말로 천주께서 저를 선택하셨다는 명명백백한 증거이지요.”

       

       “예?”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아니, 어쩌면 이게 이 세계 사람들의 평균적인 인식일지도 모르겠지만, 음.

       

       신이 실존하는 세계에서의 관념이라는 건 역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음,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한스입니다.”

       

       “예. 한스 씨의 의견은, 시상식에서 한스 씨의 이름이 먼저 불렸으니 이 승부는 자신의 승리라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평가하고 공모전을 주최한 저희 입장에서는, 시상식에서 이름을 호명한 순서는 그 작품의 성적과는 딱히 관련이 없어서요. 정확히는, 같은 순위, 그러니까 우수상 수상자들끼리는요. 그러니 그건 조금 억지가 아닌가….”

       “결투에 무승부는 없습니다.”

       

       “흐음….”

       “저와 그 친구는 꽤 자주 결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무승부로 끝내었던 적은 없고요.”

       

       “네?”

       

       

       한스의 입장은 완고했다.

       

       들어보니 지금까지 이런 결투나 승부를 벌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것 같다. 그때마다 어떻게든 승자를 정했기 때문에 무승부로 끝난 적은 없었고 말이다.

       

       단지 이번에는 ‘공모전’이라는 방식으로 겨룬 탓에 의견이 갈린 것이고.

       

       

       “흐음…. 그렇다면 승부를 조금 더 길게 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승부를 말입니까?”

       

       “네. 무승부─ 그러니까 공모전에서 두분 다 우수상을 받은 것이 문제이니, 결국 두 사람 다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겨루면 되는 것이겠죠.”

       “흐음….”

       

       “한스님의 말처럼, 한스님의 승리라면 이번에도 천주께서 가려내지 않으시겠습니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헤로도토스님께서 자리를 마련해주신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어쩌면 잘 된 것일지도 몰랐다.

       

       승부의 수단이 ‘문학’인 이상,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새로운 ‘문학’을 볼 수 있는 나였기 때문이다. 재능있는 작가들이 글로 빼어남을 겨룬다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득뿐이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한분도 부르도록 하죠.”

       

       .

       .

       .

       

       “한스 씨랑….”

       “요한입니다.”

       

       “네. 요한 씨. 사정은 한스 씨에게 들었습니다. 공모전의 결과를 통해 승부를 겨루기로 하셨다지요?”

       “그렇다면 그러한 승부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한 들으셨겠군요.”

       

       “배경 말입니까?”

       “네. 저는 헤로도토스 작가님의 ‘셜록 홈즈’가 추리소설로 더 뛰어나다고 이야기했고, 한스 저 친구는 호메로스 작가님의 ‘브라운 신부’가 셜록 홈즈보다 낫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은지 겨루고자 승부를 한 것이죠.”

       

       “이 자식이?! 그걸 말하면 헤로도토스 작가님께서 당연히 네놈한테 점수를 더 주시지 않겠나! 비겁하게!”

       “허, 내가 뭐 없는 사실이라도 이야기했나? 이런 배경에 대한 설명도 없이 자기 입맛에 맞는 말만 하는 자네의 행동이 더 비겁한 짓이지!”

       

       

       두 사람은 질리지도 않고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저대로 두면 또 싸울 것 같아서 서둘러 말렸다.

       

       

       “자자, 진정들하세요. 저도 호메로스 작가님의 ‘브라운 신부’가 굉장히 빼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스 씨께서 이 사실을 저에게 말하시지 않은 것도,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그리하셨을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장본인인 저도 공정성을 보장하기가 어려워졌으니….”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는 척을 한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호메로스 작가님께도 함께 작품의 평가를 부탁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호메로스 작가님께 말입니까?”

       

       “네. 그분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조금 있어서요.”

       “좋습니다! 그분이라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작품을 평가해주시겠지요!”

       

       “한스 자네, 지금 그 말은 헤로도토스 작가님께서는 작품을 공정하게 평가하지 않으셨을 거라는 뜻인가?”

       “이 자식이?! 지금 그런 뜻이 아니지 않나! 헤로도토스 작가님! 저 독사의 자식같은 녀석의 말은 듣지 마십쇼!”

       

       “네네. 괜찮으니까 제발 진정하세요….”

       

       

       어차피 호메로스든 헤로도토스든 둘 다 나다.

       

       그러니 저 둘은 애초부터 싸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 브라운 신부든 셜록 홈즈든 둘 다 명작이고 말이다.

       

       물론 그 사실을 두 사람에게 말해줄 생각은 없다.

       

       이 오해와 다툼이 두 사람이 집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라면 오히려 권유해야할 일이다. 두 사람은 자주 결투를 벌이는 것 같으니, 아예 주기적으로 서로의 문예를 겨루도록 한다면 양질의 작품을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셜록 홈즈 X 아르센 뤼팽에서는 두분 다 추리소설을 써주셨으니… 이번에는 두 작품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조금 색다른 소설을 써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좋습니다! 어떤 소설이든 제가 이 친구에게 질 일은 없을 테니까요!”

       “하! 누가 할 소리를! 저야말로 어떤 소설이든 완벽하게 써보이겠습니다!”

       

       “의욕이 있으셔서 좋네요. 두분이 겨룰 소설의 주제는─, ‘모험’으로 하겠습니다.”

       

       

       아르센 뤼팽은 추리소설이자 ‘모험’ 소설이다. 셜록 홈즈 역시 ‘셜록 홈즈의 모험’ 시리즈로 인기를 끈 바 있었다.

       

       사실, 모험이라는 주제 자체는 영웅의 여정을 다루는 ‘기사문학’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니 그리 새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좋습니다! 제가 한스 이 친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작가라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요한 이 자식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 승부의 당사자는 저와 호메로스 작가님이기도 하니, 저희 둘도 함께 ‘모험 소설’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예?”

       

       “저와 호메로스 작가님의 소설은 두분이서 평가해주시면 되겠네요.”

       “…예?”

       

       

       하지만, 내가 이 세계에 퍼트리려는 모험물은 조금 달랐다.

       

       ‘코난 사가’는 ‘히로익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성 상 ‘모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히로익 판타지의 핵심은 결국 ‘주인공’이지 ‘모험’은 아니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장대한 복수극이었으니 이 또한 ‘모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핵심은 ‘복수’이지 ‘모험’은 아니었다.

       

       기사문학이나 추리소설 또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기획 출판을 해보려고 합니다. 호메로스와 헤로도토스의 모험 소설 연작─,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나는 이 세계에 장르로서의 ‘모험물’을 퍼트릴 생각이었다.

       

       .

       .

       .

       

       모험물의 역사를 말하자면 ‘영웅의 여정’으로 대표되는 신화와 기사문학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장르로서의 모험물을 말하자면 역시 ‘로빈슨 크루소’로 대표되는 생존기와 ‘걸리버 여행기’로 대표되는 탐험기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공간과는 동떨어진 이색적인 세계. 곳곳에 숨겨져있는 비밀과 신비.

       

       이러한 모험물은 19세기 후반에 와서 그 꽃을 피웠으며, 여러 시대를 거치며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도련님. 말씀하신 세계지도를 가져왔습니다. 각 지역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상인들의 수기와 뱃사람들의 증언, 관련 자료들도 최대한 구해왔습니다.”

       “어어, 고마워.”

       

       

       그리고 이러한 모험물을 대표하는 작가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15소년 표류기’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쥘 베른이었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빌릴 생각이었다.

       

       

       “이거 다 살펴서 번역하려면 시간 꽤 걸리겠는데….”

       

       

       사실, 원전 자체는 이미 전부 번역해둔 상태였다.

       

       15소년 표류기, 80일간의 세계일주, 해저 2만리, 지구 속 여행, 지구에서 달까지…. 전부 번역해뒀다.

       

       문제가 있다면, 모험물의 경우 고증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생존기인 ’15소년 표류기’의 경우 어떻게든 되겠지만, 80일 간의 세계일주를 이 세계의 문화와 지리에 맞추어 로컬라이징 하는 것은 역시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애초에 이 세계는 ‘순간이동’이 가능하지 않나?”

       

       

       일단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보류해두자.

       

       그렇다면 남은 것은.

       

       

       “좋아. 탐험기는 ‘해저 2만리’로 간다.”

       

       

       해저 2만리.

       

       너로 정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쥘 베른은 모험소설 작가이자 SF소설 작가로,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15소년 표류기 등 여러 고전들을 집필했습니다.

    특히 SF분야에서는 SF의 아버지이자 하드SF의 방법론을 만든 선구자로 추앙받기도 합니다. 쥘 베른의 소설에서 나오는 여러 발명품과 쥘 베른이 예측한 미래의 사회상 등은 실제로 현실에서 이루어졌으며, 아예 쥘 베른의 작품 자체가 기술 발전의 추진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냉전기의 로켓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달까지─그리고 2부인 달나라 탐험과 그걸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며 우주여행의 꿈을 키웠고, 아폴로 14호는 쥘 베른이 예상한 달의 착륙지로부터 겨우 2km 떨어진 장소에 착륙했으며, 아폴로 11호의 궤도를 정확히 예측했고, 해저2만리의 잠수함 이름인 ‘노틸러스 호’는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의 이름이 되기도 하는 등… 관련 일화가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표절작가 작중에 등장했던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작가인 뒤마와도 안면이 있는데, 뒤마의 아들인 ‘뒤마 피스(뒤마 주니어)’와 친구 사이라서 뒤마가 운영하는 극장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쥘 베른은 굉장히 많은 명작을 집필한 다작 작가입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번역된 작가이기도 합니다.(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는 당연하게도 추리소설의 여왕이자 다작의 신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이시고, 세 번째는 셰익스피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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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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