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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주연 ‘배성학’ 역을 맡았던 배우, 민서호의 하차는 빨랐다.

       아직 이슈가 터지지 않은 시점에서, 과연 하차까지 시킬까 싶었지만, 조도율을 비롯한 제작진은 다른 배우를 구하는 방향으로 잡은 모양이다.

       

       “얽힌 사람 수가 너무 많아 보입니다.”

       “이거 한 사람만 급발진 박아도…….”

       

       아마 내가 없는 곳에서 갑론을박이 오고 갔을 것이다.

       극의 시작이 한 달 조금 더 남은 시간.

       

       결정하려면 무조건 지금 뿐이었다.

       

       ‘일반적으로 연극의 준비 기간은 한 달 반에서 세 달 사이.’

       

       즉, 6주에서 12주를 기본으로 잡는다.

       그 이상 준비하는 건 너무 길고, 그 이하는 너무 짧다.

       

       그렇다보니 아직 연습이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배우를 하차시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새롭게 극에 들어올 배우가 있다는 전제하에.

       

       “……심청석입니다.”

       

       그리고, 조도율은 이 ‘배성학’ 역에 딱 알맞은 배우를 한 명 금방 구해왔다.

       심청석.

       

       종로에서 이미 몇 개나 되는 극의 주연을 맡은 남자.

       

       “이야, 청석 씨가 나오는 거예요?”

       “로맨스 연기는 처음 아닌가? 진짜 기대되네요.”

       

       배우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처음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스태프들이 새된 비명을 질렀고.

       서연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살며시 기울였다.

       

       ‘확실히 잘생긴 외모네.’

       

       다만 이 ‘눈을 감고’와 잘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기존 ‘배성학’ 역의 민서호는 흔히 말하는 상쾌한 미남이었다.

       솔직히 말해, 다섯 다리나 걸칠 인상은 아니다.

       외모만 보면 순진무구한 청년 그 자체.

       

       ‘그러니 소드마스터 표 씨도 미처 몰랐던 거지.’

       

       알았다 해도 뭔가 착각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동경은 이해에서 가장 먼 감정이라고…….

       

       “그럼 오늘 배우들끼리 간단히 인사를 나누도록 하고. 연습은 내일부터인 거 알죠?”

       

       그런 말을 꺼낸 건, 무대 감독인 이형학이었다.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오늘 모인 배우들에게 손짓했다.

       

       그 숫자는 열다섯.

       주연 급 인물이 셋에, 멀티 배우가 둘이니 숫자가 상당한 것이다.

       

       ‘이 아이가…….’

       ‘그 예전 태숨달에 나왔던 아이 맞지?’

       

       그리고 모인 배우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건 바로 서연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10년 전, 돌연 모습을 감췄던 아역.

       설마 그녀가 이런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부담스러운 건, 같은 홍정희 역을 맡은 두 여배우들이었다.

       오디션 영상도 이미 봤으니, 자칫하면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거기다 저거 맞아?’

       

       홍정희를 연기하기엔 너무, 지나치게 예쁘지 않나?

       둘도 배우로서 나름 외모에 자신이 있었지만, 서연은 그 궤를 달리하는 느낌이다.

       거기다 존재감.

       

       종로에서 여러 배우를 만났을 때에도 그다지 느껴본 적 없는 존재감이 선명히 느껴졌다.

       어린 나이에 청소년 연기자상을 수상한 아이.

       탑 배우의 자질을 지녔다는 건, 절대 허언이 아니다.

       

       ‘왜 이런 아이가 여기에?’

       

       부담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의문이 드는 점이었다.

       서연은 왜, 하필 이 연극에 오디션을 보러 온 것일까.

       

       아무리, 오랜만의 복귀라지만 원한다면 더 좋은 곳도 많았을 텐데?

       그런 의문 속에 시선이 서연에게 몰려들었고.

       

       “크흠.”

       

       누군가가 작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안녕하세요, 오디션은 잘 봤습니다. 배성학 역의 박희준입니다. 홍정희 역,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서연에게 인사를 건넨 건, 배성학 역 중 한 명, 박희준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연장자이기도 했고, 종로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잔뼈가 굵은 배우.

       

       “이거 참, 선배 님이라 불러야 하나요? 서연 씨 데뷔 년도를 생각하면…….”

       “편하게 부르셔도 괜찮아요.”

       “아, 그래도 괜찮아요?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무리 오래 배우 연기를 했어도, 이 중 서연보다 배우 데뷔 시기가 빠른 이는 없다.

       비록 드라마판과 연극판은 다르다지만 계속 한 곳에서 머무를 거란 법은 없지 않은가?

       미래가 창창한 배우에겐 미리 눈도장을 찍어두는 게 좋다.

       

       “청석 씨도 인사하죠? 같은 파트에 호흡을 맞출 사이인데.”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하는 박희준의 말에 심청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은 그런 그를 보며, 우습게도 ‘조금 젊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잘 부탁합니다.”

       

       그게 끝이었다.

       말수도 없고, 딱딱한 인상.

       그것이 서연이 본 심청석의 첫 인상이었다.

       

       ***

       

       기본적으로 연습은 하루에 세 시간. 

       당연히 오후 수업의 일부를 뺄 수밖에 없었으나.

       

       “선생님께 허락 받았어.”

       

       내가 손가락을 브이-하며 말하자, 이지연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내가 말할 때는 그렇게 질질 끌었으면서.”

       “오히려 좋아하시던데?”

       “나 진짜 억울하네. 진짜 히트작 하나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이지연은 그런 말을 하며 궁시렁거렸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이지연은 이 연화 고등학교의 자랑이었다.

       

       연예인의 존재는 이런 사립 고등학교에서 홍보에 엄청난 도움이 되기에, 최근 케이블 드라마에 출연 중인 이지연은 그런 의미에서 학교 최중요 인물 중 하나였다.

       

       ‘사실 내가 금방 허락 받은 것도 이지연 덕이지만.’

       

       이지연의 활약으로 홍보가 크게 된 턱에, 학교 측에서도 내 연예계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분명 의기양양해질 게 분명했으니까.

       

       “참.”

       

       그때 이지연이 뭔가 떠올랐는지, 스마트폰을 꺼냈다.

       

       “왜?”

       “이거, 너 아냐?”

       

       무슨 말인가 싶어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자.

       

       -우와, 우와? 방금 봤어요? 저 아저씨 거의 날아가는데?

       

       (시끄러운 소음)

       

       -아~, 여고생이라 그렇다? 그 1전차 3여고생 그런 거?

       

       아마 유튜브 스트리머로 보이는 인물의 영상이었다.

       영상은 길지 않았다.

       대략 1분 내외. 

       문제는 거기에 나온 두 인물이 문제였다.

       

       화질이 좋지 않아,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긴 흑발의 여고생.

       그리고 그 여고생의 손에 잡혀 반 쯤 질질 끌려가는 여성이 보였다.

       

       -클럽 가드가 무섭게 다가가서 놀랐나 보다 싶었는데요. 이게 사람이 날아가네?

       -아, 이쪽 봤다, 이쪽. 저도 좀 튀겠습니다.

       

       유튜브의 댓글을 보면 말이 많았다.

       조작이라는 말도 있고.

       이런 걸 굳이 왜 조작 하냐는 말도 많았다.

       애초에 이런 걸 조작하면 클럽 쪽에서 클레임이 들어올 게 분명했으니까.

       

       -현직 헬스트레이너입니다. 체구로 볼 때 체중 50kg 내외의 여고생으로 보이는데, 불가능합니다. 체급 차가 말도 안 되요.

        ㄴ그 정도는 현직 트레이너가 아니라도 다 암;;

        ㄴ나 여고생인데 저 정도는 요즘 기본임

        ㄴ 되->돼

       

       이후 여러 의견이 오갔고.

       대체로는 말도 안 된다, 라는 게 가장 추천을 많이 받았다.

       유튜버는 유튜버대로 억울하다며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믿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거 너지?”

       “…….”

       “시선 피하지마, 주서연. 전에 말했던 그거잖아.”

       

       이지연은 이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잘 숨어서 찍었다더니 무슨. 연극보다 유튜브로 복귀를 빨리하셨네. 이 사람 구독자 수 50만은 넘어서, 꽤 인지도도 있는 편인 거 알지?”

       “몰라.”

       

       그런 이지연의 말에 억울해졌다.

       설마 그 상황에서 누가 찍고 있을 줄 어떻게 알겠나.

       

       ‘골목에 잘 숨어 있었는데.’

       

       분명 딱히 시선도 느끼지 못했건만 재수 없게도 유튜버에게 찍힐 줄이야.

       그래도 영상을 보면 눈치챈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큰 소란이 있었다면 민서호도 알았을 테니까.

       

       “흐으음.”

       

       이지연은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마치 얘가 대체 안 보는 곳에서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니나, 하는 눈빛이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이 여자, 이후로 만난 적은 없지?”

       “응.”

       “그럼 됐어. 괜히 위험한 사람과 얽혀서 좋을 것 없으니까 조심해.”

       

       말하는 것만 들으면 엄마가 따로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불안해졌다.

       엄마라고 하니, 문득 진짜로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엄마도 보는 거 아니야?’

       

       서연의 어머니, 수아는 유튜버를 즐겨보는 편이었다.

       그러니 화제가 된다면 볼지도 몰랐다.

       

       만약 본다면, 한 두 시간 잔소리로는 끝나지 않겠지.

       상상 만으로 몸이 떨렸다.

       

       “주서연.”

       “응?”

       “전에, 네가 말했던 약속 말인데.”

       

       전에 말했던 약속?

       무슨 말인가 싶어 곰곰이 생각하자, 겨우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우리 집 오는 거?”

       “그래. 너 연극 시작하면 또 한동안 어려울 것 같은데, 이번 주 괜찮아?”

       “응.”

       

       연습은 오늘부터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 주는 괜찮을 거다.

       마침 부모님도 그날 동생과 함께 쇼핑을 다녀온다고 했으니까.

       

       ‘그날…… 잘 해봐야지.’

       

       나는 힐끗 이지연을 보았다.

       일이 잘 풀린 건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래도, 취미로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으니까.

       

       ***

       

       “자,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니, 다들 힘냅시다.”

       

       연극의 연습은 그래도 오후 수업이 마무리되는 시간 부터였다.

       그러니 조금 급히 달려가면 얼추 맞출 수 있었기에 연습에는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공연에 들어가면 수업을 일부 빼야 되겠지만, 그건 그때의 일.

       

       ‘주서연.’

       

       주로 연극의 연기 지도는 조연출이 담당한다.

       조연출 김청운은 뒤늦게 온 여고생, 서연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괜찮을까? 연기 실력은 분명 확실한 것 같은데.’

       

       조금 불안한 감이 있었다.

       오디션은 훌륭했다.

       그 자리에 그도 있었으니, 서연이 ‘홍정희 역’에 합격한 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것과 인성은 별개니까.’

       

       재능 있는 아역.

       거기에 아직도 십 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불안 요소가 있었다.

       사춘기가 지났다지만, 아직 감정적인 부분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우선 먼저 배성학 쪽 연기를 좀 보고, 후에 청석 씨와 서연 씨의 호흡을 좀 맞춰보겠습니다. 괜찮죠?”

       “네.”

       

       짤막한 대답들이 들려왔다.

       심청석, 주서연.

       

       둘 다 표정 변화가 드물고 감정 표현이 옅었다.

       

       ‘아이고, 골이야.’

       

       이번 파트의 연기자들은 유독 무뚝뚝한 이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정말 괜찮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정작 서연은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어,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

       

       거기다 지금 서연은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심청석이라면…….’

       

       서연은 몸을 풀고 있는 심청석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디서 본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역시 서연이 아는 인물이 맞았다.

       

       ‘분명……, 후에 OTT 드라마에서 화제가 되었던 인물.’

       

       뛰어난 연기 실력.

       거기다 잘생긴 얼굴. 일약 스타에 올랐던 인물이다.

       하지만 서연이 그를 기억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해당 드라마를 촬영 중, 마지막 화 직전에 사망했던 비운의 배우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직 퇴고가 덜 되어, 실시간 퇴고 중입니다…
    오늘도 늦을 뻔했네용…

    그리고 이전 공지를 재활용해서 서연의 컨셉 AI 일러스트를 올려두었습니닷

    다음화 보기


           


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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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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