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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신탁. 신이 내리는 신성한 예지.

       

        미래를 정확하게 들어맞추는 <성녀>의 강력함은 신성력 뿐이 아니다.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는 저 하늘의 ‘신’이 내리는 예언 또한 그녀가 랭커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중 하나란 뜻이다.

       

        그리하여 지금.

       

        신성교단의 심처, 고위 사제를 비롯한 극소수의 인원에게 개방된 기도실에 한 여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정녕… 사실입니까.”

       

        여인은 덜덜 떨리는 턱을 들어 암석으로 조각된 신상을 바라보았다.

       

        예언이 도착했다. 세상이 위험에 빠지거나, 인류를 위기에서 구해낼 영웅의 죽음을 예견하는 그 고귀한 책무가 그녀에게 다시 내려온 것이다.

       

        “믿기지…… 않습니다.”

       

        여인, <성녀> 안젤리카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신은 말했다.

       

        ‘세상을 구원할 자에게 위험이 찾아올 것이다.’

       

        안젤리카는 혼란스러웠다. 세상을 구원할 자? 잘은 모르겠으나, 주어진 단어로 대상을 추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정보였다.

       

        신은 다시 한번 말했다.

       

        ‘승천전’의 8강 참여자 중… 누군가 머지않아 죽음에 빠질 위험을 안게 될 것이라고.

       

        “구원자…… 메시아라. 믿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안젤리카의 얘기는 아니다. <원소술사>의 환영에 속아 스스로 기권했으니까. 그덕에 ‘노잼’이라는 별명이 한동안 그녀를 괴롭혔으나, 그따위 별명에 일희일비하는 그녀가 아니었다.

       

        문제는.

       

        “8강 참여자라면, 분명 <현상거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윽.

       

        무릎꿇어 앉아있던 안젤리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8강이라는 단어 그대로, 여덟의 진출자가 존재한다. 그중에서 ‘랭커’는 <원소술사>와 <비를 내리는>.

       

        “세상을 구원할 자라 함은… 분명 그 둘, 혹은 임혜성이 포함된 셋일 것입니다.”

       

        제자리에 서서 턱을 괸 채로.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안젤리카는 기도실 구석으로 향했다.

       

        나무 재질의 낡은 의자가 있는 곳이다. 거기에 앉은 안젤리카는 품 속에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딱히 주머니가 존재하지 않는 사제복이다. 자연히 핸드폰에는 그녀의 체온이 듬뿍 묻어있었다.

       

        “흐으음.”

       

        최근 장만한 사과폰을 꺼내든 안젤리카는 다시금 8강 대진을 확인했다.

       

        그녀가 주요하게 여기는 세 사람은 모두 각자 다른 적을 상대한다. 임혜성을 제외하면 모두가 A급, 혹은 S급으로 이루어진 대단한 실력자들.

       

        “일단은 그와 만나는 편이 좋겠습니다.”

       

        의자에 앉은 채로 핸드폰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안젤리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확실한 사실은 ‘신’께서 그녀에게 의지를 보이셨다는 것이다.

       

        그말인즉슨, 신께서 누군가가 다치는 걸 걱정한다는 뜻이었다.

       

        * * *

       

        한 남자가 거리를 걷고있다.

       

        “이번 8강 대진 봤어?”

        “당연하지. 랭커가 둘이나 떨어져서 놀랐는데, 더 재미있는 놈이 나왔잖아.”

        “<현상거절> 말이지? 이번엔 어떤 경기를 보여줄까 기대된다니까.”

       

        지나가던 두 어린 학생의 대화를 들은 남자가 얼굴을 찡그렸다.

       

        세상은 더럽다.

       

        이 빌어먹을 세상이, 그에게 이렇게 차디차고 잔혹한 현실을 가하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것만 있으면……!’

       

        남자가 아주 독특한 정보를 입수한 것이 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정보를 넌지시 건넨 의문의 존재는 남자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약을 투여하면, 미약한 부작용과 함께 ‘능력’이 증폭된다.’

       

        농담으로라도 믿기지 않을 허황된 얘기였다. 하지만, 그에게 처한 현실이 그 미약한 희망에 기대를 걸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랭커! 그 천진분간 못하는 놈들 때문에……!”

       

        남자는 ‘승천전’ 참여자였다. 거기다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냈으니, 올해의 A등급 히어로 중에선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놈에게 질 수는 없어!”

       

        잔뜩 붉어진 안광의 남자가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남자가 말하는 ‘놈’이란 최근 히어로 아카데미에 혜성처럼 등장한 돌풍이었다.

       

        <현상거절>. 그 빌어먹을 놈에게 패배한다면? 그의 가족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말로 남자의 가슴을 쑤셔댈 것이 뻔했다.

       

        ‘너 같은 놈이 내 아들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럽구나.’

        ‘당장 꺼져! 어디가서 우리 아이라는 말은 하지 말고!’

       

        그의 부모님은 현역 히어로다. 당당히 히어로 아카데미를 ‘랭커’로서 졸업하고, 인류의 수호와 지구 방어에 힘쓰는 그런 존재란 뜻이다.

       

        하지만…….

       

        남자는 경우가 달랐다. 그의 등급은 A. 이대로 아카데미를 졸업해도 부족할 것이 없는 힘을 가졌지만, 남자의 부모님은 생각이 아주 달랐다.

       

        “어이.”

       

        곧 마주할 상대를 향한 증오와, 부모님을 향한 분노를 삭히고 있을 때.

       

        약속장소에 도착한 남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가?”

       

        판타지 영화에서 나올법한 로브 비스무리한 차림새의 누군가가 거기에 서 있었다. 검은 후드를 깊게 내려써 나이를 알 수 없었다. 거기다 성별마저.

       

        ‘히어로 아카데미엔 별에별 능력자가 다 있으니까.’

       

        눈속임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 아니, 차라리 그러길 빌었다. 남자는 이 거래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이번 물건은 아주 특별해. 네가 급하게 조달하길 원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가져온 거라고. 알지? 일성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게 무슨 의미인지.”

        “흥! 어차피 돈 받고 거래하는 관계다. 위험은 당연히 무릅써야 하는 거다.”

       

        남자는 로브인에게 다가갔다.

       

        그런 남자의 반응에 어째서인지, 그의 앞에 선 미지의 존재가 씨익 웃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슥.

       

        로브인은 주머니 속에서 작은 박스를 꺼내 내밀었다.

       

        척 보기에도 명품 액세서리를 포장한 듯한, 고급스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작은 박스다.

       

        “물건이야. 기억해. 승천전 도중 이걸 사용한다는 건,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으니까.”

        “알고있다. 이미 돈은 네가 말한 히어로은행 계좌에 넣어두었다.”

       

        텁!

       

        뻔한 이야기를 해대는 로브인에게 남자는 신경질을 내며 박스를 빼앗듯 넘겨 받았다.

       

        그리고.

       

        달칵!

       

        상자를 꺼낸 남자의 입고리가 씨익 올라갔다.

       

        검붉은 색의 알약이 세 알. 듣기론 하나만 있어도 열 시간이 넘게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으니, 정말 운이 좋으면 승천전 최종 우승까지 바라볼 수도 있었다.

       

        물론… <원소술사> 같은 이들이 그의 상상과 같은 힘을 가졌어야 했지만.

       

        “이것만 있으면……!”

       

        남자가 희열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뒤틀린 인정욕구와 지독한 열등감.

       

        그것이 남자가 이 거래를 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씩.

       

        남자의 반응에 로브인의 입가가 크게 휘었다. 후드에 가려진 탓에 남자는 평생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 *

       

        “이게 웬 일이야? 네가 저녁을 다 사겠다고 먼저 연락하고.”

        “그, 그냥 배가 고팠던 것 뿐이니까……!”

       

        묘하게 츤데레 기질이 있는 한유리의 목소리에 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승천전 8강이 어느덧 이틀 후로 다가온 오늘, 나는 이른 오후의 시간에 한 전화를 받게 되었다.

       

        발신인은 한유리였다. 그녀의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말에 이렇게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네 아버지. 역시 통 크더라. ‘일성’의 황태자라는 신문 기사가 피부로 와 닿더라.”

        “……!”

       

        그녀의 아버지인 한석구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닌가? 삽시간에 한유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입에 넣은 음식을 오물오물 씹던 한유리는 입 안에 든 것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계약……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음? 알고있었네?”

       

        아무래도 한석구가 딸인 한유리에게 말했던 모양이다. 제아무리 아카데미의 학생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의 정점, 학생회장이라고 해도 그런 정보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

       

        “좋은 결정이에요.”

        “음? 좋은 결정이라고?”

       

        처음 한유리는 실망할 줄 알았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그녀는 ‘일성’의 직계다. 한석구의 제안을 거절한 걸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아직 당신은 앞날이 창창하죠. 벌써부터 어딘가에 족쇄가 채워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긴 하지.”

       

        한유리의 정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업, 정부, 용병. 어떤 계열이던 지금 어느 단체와 계약을 맺고 그 소속에 들어가는 건 시기상조다.

       

        “그나저나. 요즘따라 연락도 없고, 얼굴 보기도 힘들다?”

        “조, 조금 바쁜 일이 있거든요.”

        “바쁜 일?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도울게. 무슨 일인데?”

        “그건…….”

       

        내 질문을 받은 한유리가 말 끝을 흐렸다.

       

        그렇게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그녀는 주변을 살피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이전에… 그러니까 당신과 제가 처음 만난 날. 기억하시나요?”

        “기억하지. 내가 살던 기숙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잖아.”

        “……그래요. ‘빌런’을 퇴치하기 위해서 찾아간 거였죠.”

       

        평소에도 조금은 진중한 성격의 한유리가 더 없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무언가 말하기 힘든 내막이 있는 건지, 그녀의 어두운 표정에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으음, 지금부터 말하는 건 극비사항이에요. 학생회장으로서 하는 말이 아닌, ‘일성’ 가문의 사람으로서 하는 거예요.”

        “……?”

       

        무게를 잔뜩 잡는 한유리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데?

       

        “그당시 이성을 잃은 빌런이 약에 취한 상태란 건 알고 계시나요?”

        “그런 것처럼 보이긴 하더라. 돌아간 눈으로 날붙이를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맞아요. 그리고 그 약물은…… 일성에서 제조한 물건이에요.”

        “……일성에서?”

       

        놀라운 현실에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원작에서도 등장하는 미니 에피소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이 히어로 아카데미에 반입되고, 그덕분에 정신의 통제를 잃은 히어로가 날뛰는 탓에 수많은 인명이 사상을 입는다.

       

       그런데 그게 풀리고 있다고? 벌써?

       

        “정확히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최근 학생회 업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요.”

        “그 약물 때문인 건가? 어떤 루트로 아카데미에 반입된 건지는 모르고?”

       

        끄덕끄덕.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한유리의 모습에 나는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제약회사가 신약을 제조하는 것?

       

        이상할 것도, 여론의 질타를 받을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신약에 하자가 있고, 폐기되어야할 물건이 멀쩡히 세상 밖을 돌아다니면 경우가 달라진다.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전개였다.

       

        “염치 없이 도와달라는 말을 하려고 꺼낸 말이 아니에요. 그저…… 조심하세요.”

        “조심… 하라고?”

        “네. 앞으로 당신이 마주칠 상대가 그 위험한 약물을 복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맞는 말이다.

       

        만약 그런 놈이 내 상대라면…….

       

        쥐어 팰 수밖에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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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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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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