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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죄송합니다아!”

         

       우아앙.

         

       파스텔은 펑펑 울었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악마를 속이고 검은 젤리를 냠냠 한 결과, 왕창 혼났다. 거진 한 시간 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처음엔 악마의 잔소리를 의기양양하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파스텔은 시간이 갈수록 쭈그러들더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침내 눈물까지 쏟았다.

         

       우아앙.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히고 펑펑 쏟아졌다.

         

       “죄송해요오! 다시는 악마님 안 놀릴게요!”

         

       우는 모습에 악마가 움찔했다. 급격히 마음이 약해진 듯 시선을 정처 없이 돌리다가 점잖게 말해왔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위험한 걸 자꾸 입에 넣는 게 문제인 거다.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거냐? 존재의 격은 생명의 본질과 연관된 거라 무턱대고 섭취하면 정신에 나쁜 영향을 줘.』

       “잘못했어요오!”

         

       파스텔은 양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우아앙.

         

       더 마음이 약해진 악마가 한숨을 쉬었다.

         

       『걱정하는 사람의 마음도 생각해 봐라. 먹지 말라고 했는데 남이 걱정하는 마음을 이용해 쓰러지는 연기를 하곤 낼름 입에 넣으면 내 기분이 어떻겠어.』

       “잘못했습니다아! 못된 아이 파스텔……!”

         

       우아앙.

         

       파스텔은 너무 울다가 딸꾹질을 했다.

         

       딸꾹딸꾹.

         

       악마가 움찔하더니 잔소리를 관뒀다.

         

       『알았다니 됐다.』

         

       뽀송뽀송한 수건이 눈물을 닦으라는 듯이 건네졌다.

         

       파스텔은 수건을 받아 눈물은 안 닦고 코를 흥 풀었다. 빨랫거리를 추가 생산해 내고 새 수건을 받아 이번엔 제대로 눈물을 닦았다.

         

       훌쩍훌쩍.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

       “네…….”

         

       고개를 끄덕인 파스텔은 세안을 하고 왔다.

         

       악마가 침대를 정리해 놓고 있었다. 침대 이불을 치워 눕기 좋은 상태였다.

         

       『먹은 건 별수 없으니 명상부터 해야겠군. 누워봐라. 넌 어차피 도중에 잘 테니 누워서 명상을 시도하는 게 낫겠어.』

         

       끄덕끄덕.

         

       파스텔은 침대에 곱게 누웠다. 붉은 눈동자가 내려봤다.

         

       『이미 해봤으니 더 쉬울 거다. 근육의 긴장을 풀고 편한 상태를 유지해. 생각을 끊고 신체의 소리에 정신을 기울여라. 무의식에 침잠하는 거다.』

       “악마님.”

       『왜 그러지?』

       “이불 덮어주세요.”

         

       파스텔은 구석에 치운 이불을 달라는 듯이 바라봤다.

         

       『자는 게 아니야. 명상이다.』

         

       잉.

         

       어차피 결과는 같은데.

         

       머뭇거리다 굳이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방금 혼났으니까.

         

       『자, 눈부터 감아라.』

         

       곱게 눈을 감고 신체에 힘을 풀었다. 생각을 끊고 무의식의 자연스러움에 집중했다.

         

       명상, 명상, 명사앙.

         

       쿨쿨.

         

       파스텔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헛!

         

       자면 안 되는데!

         

       놀라며 눈을 뜨자 내면세계의 우주였다.

         

       불길한 검은 태양이 시야를 채웠다. 행성이 되지 못한 암석들이 태양 주위를 맴돌았다.

         

       파스텔은 무중력 속에서 동동 떠다녔다. 분홍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퍼졌다.

         

       양팔을 들었다.

         

       와아, 명상 천재!

         

       침대에 누워서 생각만 해도 내면세계에 당도하는 슈퍼 울트라 명상 천재!

         

       뿌듯.

         

       파스텔은 손날을 눈 위에 댔다. 진지한 얼굴로 내면세계의 우주를 살펴봤다.

         

       검은 태양을 맴도는 암석 파편들이 지난번보다 많았다. 적멧돼지와 강도떼를 죽이고 냠냠한 존재의 격이 내면세계에 반영된 결과다.

         

       이 정도 양이면 태양계 가족 중 수성 친구를 만들고도 남겠어. 저 불길한 검은 태양에게 어서 가족을 만들어줘야지.

         

       파스텔은 내면세계의 질서와 조화를 위해 양손을 움직였다.

         

       암석 파편들이 손짓을 따라 이동했다. 서로 충돌하고 뭉치며 암석 행성을 만들어 냈다. 행성이 태양을 지근거리에서 맴돌았다.

         

       파스텔은 암석 행성을 가리켰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

         

       바로바로.

         

       수성 친구!

         

       태양계의 첫 번째 식구가 완성된 거야!

         

       허억.

         

       파스텔, 감동.

         

       수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돌았다.

         

       내면세계에 변화가 찾아왔다.

         

       태양계를 만들 듯 가상의 수성 궤도가 둥글게 그려져 갔다. 시작점과 끝점이 닿자 궤도가 완성됐다.

         

       아직은 미약할지 모르나 태양과 수성이 갖춰진 작은 태양계의 모습이었다.

         

       질서와 조화가 찾아왔다.

         

       파스텔은 정신이 찌릿찌릿 울렸다. 자연의 이치가 정신을 일깨웠다. 뚜렷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허억.

         

       깨달음이!

         

       깨달음이……!

         

       입을 벌리고 경악하다가 멈칫했다.

         

       파스텔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분홍 머리를 이리저리 눌렀다.

         

       깨달음이 왔나?

         

       모르겠어.

         

       몸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그래도 뭔가 감각이 달라진 거 같기도 한데.

         

       양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완전 집중한 표정을 지었다.

         

       초능력 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 집중한 표정을 짓고 손바닥을 열심히 뻗었다.

         

       초능력 빔빔~!

         

       딱히 변화는 없었다.

         

       잉.

         

       뭔가뭔가 알 것도 같으면서도 모를 거 같은 이 느낌. 마치 헷갈리는 시험 문제를 보고 무슨 답으로 찍어야 하나 고심하는 듯한 우등생의 감각.

         

       다르게 말하자면…….

         

       전혀 모르겠어!

         

       헤헤.

         

       파스텔은 민망해하며 혼자 웃다가 내면세계를 다시 둘러봤다. 아직 암석 파편이 남아 있었다.

         

       악마님의 말대로라면 이번 섭취한 존재의 격은 강도떼보단 적멧돼지의 비중이 더 크다고 했으니 적멧돼지 통구이 친구는 훌륭한 존재의 격을 지녔던 모양이다.

         

       어차피 암석 파편도 남은 거 수성 친구만으론 긴가민가하니 금성 친구도 만들어 볼까?

         

       좋았어!

         

       양손을 뻗었다. 암석 파편들을 의지로 조종해 수성보다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궤도에 모았다.

         

       초융합~!

         

       파편이 충돌하고 뭉치며 암석 행성을 만들었다. 새 행성이 수성 궤도를 감싸며 더 큰 궤도를 만들어 갔다.

         

       우와아!

         

       금성이야!

         

       진짜 태양계라면 수성보다 커야 할 금성이 어째 여기선 수성보다 작았지만 하여튼 금성이었다.

         

       안녕, 금성 친구!

         

       파스텔은 열심히 손 인사했다.

         

       금성이 호응하듯 태양을 맴돌며 궤도를 그렸다.

         

       우와앗.

         

       뭔가뭔가 새로운 깨달음이!

         

       진짜 제대로 된 깨달음이……!

         

       문득 금성에서 심상치 않은 파사삭 소리가 났다. 겉면에 점점 균열이 갔다.

         

       허억?

         

       서, 설마.

         

       파스텔은 손을 덜덜 떨었다.

         

       너, 왕년의 수성 친구처럼 중력 부족으로 죽는 건 아니지?

         

       우려대로 금성이 와그작 부서져 암석 파편으로 돌아갔다.

         

       아아앗!

         

       금성 친구우!

         

       태양계 가족이 또 죽었어!

         

       으아아!

         

       정신이 내면세계에서 튕겨 나갔다.

         

       파스텔은 경악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흐어억.”

         

       두리번거리자 우주가 아니라 여관방이었다. 새벽노을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새소리가 짹짹 울렸다.

         

       파스텔은 팔을 비비며 부르르 떨었다.

         

       수성 친구에 이어 금성 친구도 태어나자마자 죽다니.

         

       완전 악몽.

         

       물 한 잔이라도 마실 겸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

         

       의자에 앉은 악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도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고뇌에 빠진 얼굴이었다.

         

       “우와앗!”

         

       인기척을 못 느꼈던 파스텔은 화들짝 놀랐다.

         

       악마가 움찔했다.

         

       『왜 그러지? 악몽이라도 꾼 건가?』

       “잠자던 사람을 그렇게 보면 깜짝 놀라죠!”

       『흠? 평소에도 이랬지 않나. 이제 와서?』

       “어쨌든요! 지금 제 심장은 콩닥콩닥한 상태거든요! 제 심장에 사과하세요!”

       『미안하게 됐다.』

         

       완전 성의 없어.

         

       파스텔은 심장을 눌러 진정시키고 테이블의 물을 마셨다.

         

       꿀꺽꿀꺽.

         

       “푸후!”

         

       입가의 물기를 대충 소매로 훔쳤다.

         

       “악마님 말대로 내면세계에 질서와 조화를 만들어 봤는데 차이를 모르겠어요. 수성 친구가 태양계 가족으로 온전히 편입됐는데도 삐융한 깨달음을 주지 않더라니까요.”

         

       검지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

         

       “깨달음이 삐융삐융!”

       『……그게 정상이다.』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삐융삐융이요?!”

         

       허억.

         

       『아니, 깨달음이 없는 게 정상이란 얘기다. 넌 전투력이라면 모를까 경지 자체는 아직 준기사급이 아니야. 그리고 존재의 격을 직접 쌓지 않고 남의 걸 섭취하는 방식은 정상적이지 않아. 제대로 된 경지 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기괴하게 뒤틀린 성장이라면 모를까.』

         

       으에.

         

       “그럼 저 수성 친구가 생겼는데도 변화가 없는 거예요?”

         

       수성 친구, 설마 무능했던 거야?

         

       『그건 또 아니다.』

         

       악마가 심각하게 쳐다봤다. 그러다 의자에서 일어나 양손을 뻗었다.

         

       『실례하지.』

         

       손이 파스텔의 양 옆구리를 잡았다. 그리고 대뜸 들어 올렸다.

         

       발이 지면에서 부웅.

         

       오잉.

         

       파스텔, 날다!

         

       가뿐히 들어 올린 악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가볍군.』

         

       허억.

         

       파스텔, 가벼움.

         

       지면에 내려졌다.

         

       『한번 뛰어봐라.』

         

       잉.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가볍게 통통 튀었다. 그리고 눈이 동그랗게 됐다.

         

       “어?! 악마님! 악마님! 몸이 가벼워요!”

         

       중력이 가볍게 느껴졌다.

         

       『맞다. 뭔가 이상-』

       “얍! 얍!”

         

       파스텔은 허공에 돌려차기를 날렸다. 몸이 손쉽게 움직여 회전하고 발차기가 작렬했다.

         

       『정상적이지 않은 민첩성-』

       “우와!”

         

       몸이 완전 가벼웠다.

         

       파스텔은 발차기를 몇 번 날리다가 침대에 몸을 날렸다. 침대 위에서 방방 뛰었다.

         

       “우와! 우와!”

         

       방방 방방.

         

       깃털처럼 가벼운 파스텔……!

         

       악마가 떨떠름하게 봤다. 날뛰는 파스텔을 잡아채더니 침대에 곱게 앉혔다.

         

       『말을 하면 들어라.』

       “앗, 네.”

         

       얌전.

         

       『본래 존재의 격이 쌓일수록 자연이 순응하고 질서가 따르며 기이한 현상을 일으킬 수 있게 되지.』

       “저처럼요?”

         

       몸이 가볍게?

         

       『너와 결과는 비슷하지만 달라. 원래라면 이 과정은 엄밀히 말해 사람의 의지에 자연이 호응하는 현상이다. 마법이 자연의 힘을 빌려오는 것과 동일하지. 그렇기에 기사급 검사의 검격과 대마법사의 마법은 본질적으론 같은 현상인 것이다.』

         

       붉은 눈동자가 응시했다.

         

       『하지만 네 상태는 달라. 자연 질서가 호응하는 게 아니라 네가 자연 질서를 무시하고 있어. 마치 사람을 벗어난 신체가 음식을 거부하고 마석만을 먹듯이 말이다.』

       “결과는 자연 질서의 변화로 같지만 중간 과정이 다르다고요?”

       『맞다. 매우 이상하군.』

         

       악마가 심각해졌다.

         

       『기괴한 비틀림이야. 이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멋대로 찾아온 침입자인 것처럼 세상 질서를 무시하는 행태지. 남의 격을 섭취하면서 존재가 뒤틀린 건가.』

         

       으에.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어.

         

       “결론은요?”

         

       악마가 테이블의 마석 나이프를 가리켰다.

         

       『다신 먹지 마라.』

         

       허억.

         

       검은 젤리 금지령.

         

       군것질 금지령……!

         

       분명 눈물 쏙 빼며 혼나놓고 이미 까먹은 파스텔은 충격받았다.

         

       으아아.

         

       『대답은?』

         

       악마가 미심쩍게 쳐다봤다.

         

       으앗.

         

       파스텔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네.”

         

       악마가 더 미심쩍게 쳐다봤다.

         

       우아아.

         

       덜덜 떨다가 후다닥 주제를 전환했다.

         

       “악마님! 악마님! 저 엄청난 생각! 엄청난 생각을 떠올렸어요!”

       『말해봐라.』

         

       테이블로 손을 뻗었다. 나이프가 날아와 잡혔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잘 보세요!”

         

       나이프를 발 근처에 띄우고 슬쩍 발을 올렸다.

         

       “깃털처럼 가벼운 파스텔……!”

         

       나이프에 몸의 무게 중심을 얹었다. 나이프가 으에엥~ 거리며 끙끙 밟히다가 어찌저찌 몸무게를 버텨냈다.

         

       파스텔은 나이프를 밟은 채 공중에 떴다. 눈이 동그랗게 됐다.

         

       허억.

         

       이게 진짜 되네?

         

       대충 실패하고 엎어져 분위기 전환을 시도할 계획이었던 파스텔은 자기가 놀라곤 슬쩍 악마의 눈치를 봤다.

         

       분위기 전환 성공?

         

       악마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호오. 몸만 가벼워진 게 아니고 나이프의 동력도 강해졌군. 네가 세상에 의지를 강요하는 힘이 강해졌다고 봐야 하나.』

         

       몸을 숙여 나이프를 건드리더니 감탄했다.

         

       『마석 연료는 소비량이 많겠다만 매우 유용해. 삼차원 기동이 가능하겠군.』

         

       파스텔은 순식간에 의기양양해졌다.

         

       “당장 연습하러 가죠!”

       『좋다.』

         

       오예, 안 혼났다.

         

       여관 공터로 이동했다. 새벽 공기가 선선하게 느껴졌다.

         

       파스텔은 공중의 나이프를 밟고 몸을 띄웠다.

         

       “그럭저럭 안정적이에요.”

       『응용해 봐라.』

         

       나이프를 박차고 높게 뛰었다. 몸이 솟구쳤다. 손짓으로 나이프를 움직였다. 몸이 추락하려 할 때쯤 날아온 나이프가 발에 밟혔다. 나이프가 무게에 밀려 눌리다 신체를 안정적이게 받쳐줬다.

         

       “좋아요! 해볼게요!”

         

       다시 나이프를 박찼다. 몸이 뜨고 추락하기 직전 나이프가 발밑으로 돌아왔다.

         

       도약음이 울렸다. 나이프가 무수한 궤적을 반복해서 그렸다. 연속된 지지대가 만들어지고 도약음이 연달아 났다.

         

       분홍 형상이 솟구쳤다.

         

       실루엣은 여관 건물을 지나치고 하늘에 당도했다.

         

       파스텔은 양팔을 벌렸다. 바람이 몸을 감쌌다. 새벽노을에 뒤덮인 마을이 내려 보였다.

         

       삼차원 기동.

         

       단번에 마스터.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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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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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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