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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카아아아아!!

     

    날개를 잃고 추락한 사룡이 추하게 버둥거렸다.

     

    거대한 덩치 때문에 모래먼지가 떠올라 폭풍이 인다.

     

    마스크를 쓴 덕분에 입안이 흙범벅으로 될 일은 없었다.

     

    와, 아무리 그래도 한 방에 빌헬름의 날개를 잘라버릴 줄이야.

     

    아셀라의 이동마법 범위가 사룡의 몸체보다 작아서 일부만 옮겨졌는데, 그래서 절단 현상이 일어나 버렸다.

     

    내가 저걸 맞는다고 상상하니 소름이 올라온다.

     

    “하아, 후우.”

     

    아셀라가 가쁘게 호흡을 몰아쉬었다. 생각보다 마나 사용량이 큰 모양이다.

     

    비약을 통해 억지로 채운 마나였으니 무리도 갈 테고.

     

    어쩌겠어. 다른 황궁 마법사들은 황제를 지키러 같이 꽁무니를 뺐으니 여기서 싸울 마법사는 아셀라뿐이다.

     

    ‘그렇다고 다른 배드엔딩의 발생 확률을 내버려둘 수도 없으니까.’

     

    그녀가 사룡을 토벌하는 게 최선이다.

     

    “이격째를….”

     

    아셀라가 지팡이를 겨누려는 순간, 사룡이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었다.

     

    귀가 찢어지는 굉음에 아셀라가 얼굴을 찡그리며 자세를 무너트렸다.

     

    “어이쿠.”

     

    그녀의 어깨를 잡아 부축한다.

     

    사룡이 패기를 부려온다.

    나라도 갑자기 적진 한복판에 불려오면 잔뜩 화가 나긴 하겠다.

     

    아무리 그래도 중간계는 어마어마하게 멀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리콜했다고는 생각이 안 든다.

     

    아셀라가 불러낸 해츨링도 미리 포획해서 텐트에 준비해놨던 놈이다.

     

    ‘원래 이 지역에 살고 있었나?’

     

    산맥 어딘가에 둥지가 있었을지도.

     

    오늘 사건을 계기로 세상의 눈에 띄어 마왕군에 스카우트되거나 그런 전개였을까.

     

    ‘사룡을 이 자리에서 토벌하면.’

     

    배드엔딩 리스트를 살핀다.

     

     

    [No. 019 : 사룡의 저주 44%]

    빌헬름에게 패배하는 엔딩도 삭제되겠지.

    일석이조다.

     

    “황녀님, 정신 집중하세요.”

     

    “응.”

     

    아셀라가 다시 마법진을 구성한다.

    리콜을 공격마법처럼 쓸 수 있다고 확인했으니 이어서 처박을 셈이다.

     

    “이번에 끝내겠어.”

     

    지팡이로 사룡의 머리를 정확하게 노리는 아셀라.

     

    이번엔 머리통만 이동시켜 숨통을 끊어낼 생각이다.

     

    “리콜.”

     

    시전이 완료되는 순간.

     

    ―쿠르릉!

     

    사룡도 빠르게 발을 굴렀다.

     

    커다란 덩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뛰어올라 우리를 향해 돌진해온다.

     

    “윽!”

     

    ―화아악!

     

    아셀라의 마법은 적중하긴 했다.

     

    하지만 머리통을 노리지 못하고 옆구리를 가볍게 스쳤을 뿐.

     

    놈의 복부가 일부 뜯겨나가는 정도의 피해밖에 주지 못했다.

     

    ―카아아아!!

     

    사룡은 더더욱 분노에 들어차 포효하며 돌진을 멈추지 않는다.

     

    날개가 없으니 정말 거대한 도마뱀이 되어버렸다. 날카로운 발톱이 지면을 뭉텅이로 파헤치고 커다란 입을 쩍 벌린다.

     

    “이런.”

     

    이대로는 잡아먹히게 생겼다. 이놈은 속도도 민첩한 편이라 상대하기 꽤 난감했었지.

     

    빠르게 반응해 가운 안쪽에서 근력 강화 주사를 꺼내 가슴팍에 수직으로 세운다.

     

    톡, 끝부분의 버튼을 눌러 주사한다.

     

    사룡이 우리를 덮치기 직전, 나는 아셀라를 껴안고 점프해 놈의 이빨을 피해냈다.

     

    ―콰아아앙!!

     

    사룡이 뛰어든 지면에 금이 가며 붕괴한다.

     

    “라스?!”

     

    “다친 곳은 없으신지요?”

     

    “으, 응….”

     

    사룡이 멈출 기색 없이 즉시 홱,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검은 기운이 놈의 입에서 피어오른다.

     

    “브레스를 쏠 생각이야. 맞으면 저주로 불타오르게 돼.”

     

    마법은 아니고, 악속성 마나를 마구잡이로 폭발시키는 공격이다.

    속도도 빠르고 대상 지정도 정확해서 피하기는 쉽지 않다.

     

    한 번은 더 뛸 수 있겠지, 생각하며 아셀라의 허리를 감싸 안은 순간이었다.

     

    “하아아압!!”

     

    ―챙!

     

    검은 기운을 머금던 사룡의 입에 투박한 바스타드 소드가 쑥 들어갔다.

     

    입을 다물어 이빨로 검을 막아내는 사룡.

     

    검의 주인인 기사가 붉은 적발을 휘날리며 공중을 난다.

     

    타냐였다.

     

    “선생님! 황녀 전하! 자리를 피하십시오!”

     

    타냐가 검기를 터트리며 사룡을 힘싸움에서 밀어낸다.

     

    인간에게 힘으로 밀릴 줄은 몰랐는지 사룡이 당황하며 잠시 움직임을 굳힌다.

     

    “황녀님, 기회입니다.”

     

    “응.”

     

    뜻이 통했다.

    우리 둘 다 도망칠 생각 따위는 없었다.

     

    나야 당연히 물러설 순 없고.

    아셀라는 적을 앞에 두고, 갚아주기 전까지 등을 보일 성격이 아니니까.

     

    “황녀님?!”

     

    삼격째 주문을 시전하는 아셀라를 보며 타냐가 당황한다.

     

    아셀라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악녀답게 사악한 웃음을 흘렸다.

     

    “상대가 드래곤이라니.”

     

    그녀의 마법진에서 금빛 마나가 폭발한다.

     

    “최고의 마법 시연 아니겠어.”

     

    ―파아앙!!

     

    아셀라의 리콜 마법이 시전된다.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며 회전하는 마법진.

     

    목표는 타냐가 정확하게 고정한 사룡의 머리다.

     

    사룡의 목에서 빛가루가 쏟아지고, 다음 순간.

     

    ―쿠우웅!

     

    우리 앞에 커다란 사룡의 머리통이 혀를 빼문 채 공중에서 떨어졌다.

     

    딸그랑, 타냐의 검날도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리를 잃은 사룡의 거대한 몸체도 곧 중심을 잃고 콰아앙!

     

    굉음을 내며 지면으로 쓰러졌다.

     

    “하아, 하아.”

     

    아셀라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연속으로 어려운 마법을 사용했으니 한계까지 지칠 만도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겼어.”

     

    “예. 황녀님이 이기셨어요.”

     

    아셀라는 바닥에 널부러진 사룡의 머리통을 보고는 힘없이 웃었다.

     

    끈적한 피가 흘러나오는 게 그렇게 재밌는 모습은 아닌데. 좀 그로테스크하고.

     

    뭐, 자기 마법이 얼마나 위대한지 확인했으니 즐겁겠지.

     

    “황녀 전하께서 사룡을 쓰러트리셨다!”

    “엄청난 마법이었어…!”

    “이게 월광궁의 저력인가!”

     

    멀리서 창만 던져대며 돌입을 준비하던 황실 기사들은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에 입을 떡 벌렸다.

     

    그들이 아셀라를 경외하며 바라본다.

     

    애초에 이 자리의 대부분은 리콜의 위험성도 잘 몰랐을 터다.

     

    아셀라가 천재적인 마법을 시연하고 외적의 습격까지 단신으로 막아낸 활약만 보였겠지.

     

    “아셀라 황녀님!”

    “감복했습니다!”

     

    기사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황제에게서 점수를 못 땄을지는 몰라도, 아셀라는 이 비무대회에서 수많은 황실 구성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셀라 역시 그들의 반응이 싫지 않은 듯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황녀님.”

     

    “응.”

     

    “황실은 싫으신가요?”

     

    내 질문에 아셀라는 엉뚱하게도 다시 질문으로 대답해왔다.

     

    “공자, 너는 황실 내의원에서 계속 있을 생각이니?”

     

    당연히 계속은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개인 의료업을 할 생각이었고, 내의원 주치의 직은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니까.

     

    “은퇴할 때까지는 있겠죠.”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

     

    아셀라는 상념에 빠지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를 온몸으로 받았다.

     

     

    ―――――――――――

     

     

    · 배드엔딩이 삭제되었습니다.

     

    No. 019 : 사룡의 저주    44% → 0%

     

    · 발생 확률이 변동되었습니다.

     

    No. 012 : 제국의 멸망    92% → 30%

    No. 005 : 마왕군 승리    73% → 58%

    No. 101 : 마력폭주        71% → 4%

     

    · ■■■ ■, ■■ ■■에서 2% → 11%

     

     

    ―――――――――――

     

     

    마왕군의 중역인 사룡을 미리 토벌하면서 상당히 많은 배드엔딩의 확률이 줄었다.

     

    사룡에게 패배하는 엔딩은 삭제했고, 노멀엔딩과 굿엔딩의 확률도 확 늘어났다.

     

    제국의 멸망은 아직 삭제되지 않았지만.

     

    ‘겨우 한숨 돌렸네.’

     

    그래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만족스럽다.

     

    월광궁 기사단이 우리를 향해 급히 달려온다. 다들 서두르긴 했어도 타냐가 너무 빨랐던 모양이다.

     

    “그럼 이만 돌아가실까요. 격한 전투였으니 우선 휴식을 취하시고, 황녀님의 건강 상태는 제가 차분히 검사하겠습니다.”

     

    “응, 그러자.”

     

    아셀라는 힘이 다 빠졌는지 평소보다 고분고분했다.

     

    나쁘지 않네. 평소에도 마나를 잔뜩 쓰게 속여서 시켜볼까.

     

    “…저기, 공자.”

     

    “예.”

     

    아셀라가 불러서 그녀를 돌아본다.

     

    “내가 쉬는 동안 검사할 거야? 그럼 그동안 하고 싶은 얘기가….”

     

    그녀의 말은 내 귓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셀라의 몸을 휘감은 검은 기운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발생원은 잘려있는 사룡의 머리였다.

     

    ‘저주!’

     

    죽어서도 저주를 남겨놓은 사룡이었다. 나는 혀를 차며 곧장 아셀라에게 달려들었다.

     

    “공자?”

     

    “황녀님, 피하세요.”

     

    내 말에 아셀라도 빠르게 반응했다. 저주에 대항해 즉시 진을 그려 방어 마법을 펼치려 한다.

     

    “윽.”

     

    하지만 짧은 신음과 함께 아셀라의 진이 힘을 잃고 허공에서 흩어진다.

    마나가 바닥났다.

     

    나는 아셀라의 어깨를 감쌌다. 그녀의 몸을 밀치려는 순간.

     

    ―화아악!!

     

    검은 기운이 폭발하며 우리를 덮쳤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과했을 때처럼 격한 울렁거림이 속에서 올라왔다.

     

    눈앞이 새까매졌다.

     

     

     

    ***

     

     

     

    “윽.”

     

    아셀라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코 깊숙이서 흙과 풀 냄새가 났다.

    팔에 묻은 진흙에서 자그만 벌레가 몇 마리 기어다녀서 불쾌하다.

     

    “여긴.”

     

    주변을 둘러본다.

     

    완벽한 야생. 자연 한복판에 던져져 있었다.

     

    산지라고 생각됐다. 높은 나무의 무성한 잎에 가려 햇빛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려한 연무복은 진흙 범벅이 되어 엉망인 꼴이다.

     

    그나마 양손에 여전히 쥐어진 지팡이만이 겨우 멀쩡했다.

     

    “여긴 어디야.”

     

    사룡의 저주가 발동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무슨 저주인가.

     

    환각… 은 아니었다. 환상 계통의 저주는 술자가 죽으면 즉시 풀려야 할 터.

     

    “반사구나.”

     

    역전.

    사룡이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마법을 반사하는 저주를 사용했음이 틀림없었다.

     

    리콜이 아셀라에게 작용해, 사룡이 불려왔던 자리로 날려온 것이다.

     

    여기는 사룡의 둥지 근처라고 생각됐다.

     

    “잠깐.”

     

    기억을 더듬는다.

    혼자 날려온 게 아니었다.

     

    저주의 영향을 받을 때 그도 함께였다.

     

    “라스.”

     

    아셀라는 갑자기 덮쳐오는 불안에 주변을 필사적으로 두리번거렸다.

     

    주군이 걱정하게 하다니, 주치의 실격인 남자 같으니.

     

    아냐, 걱정 따위 안 해.

     

    그가 있어야 이 상정 외 사태에서 생존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찾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그가 무사히 경기장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과는 모순되지만, 아셀라는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길도 없는 산턱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 끝에.

     

    “라스!”

     

    아셀라는 나뭇잎 더미에 꼴사납게 엎어진 백발의 소년을 발견했다.

     

    “라스, 라스?”

     

    그의 어깨를 힘차게 흔들지만 반응은 없다.

     

    몸을 뒤집으니 영면에라도 든 듯,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셀라는 호흡을 진정시켰다.

     

    “살아는 있어.”

     

    들썩이는 가슴이 호흡 활동을 알려준다.

     

    아셀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후우.”

     

    마나도 바닥난 지금, 이런 외지에 가만히 있다간 조용히 목숨을 잃을 뿐이었다.

     

    아셀라는 한계까지 힘을 끌어내서 라스를 들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독자님들 덕에 우최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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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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