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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다음날, 은막의 단장은 환상 시연장을 다시 찾았다.

       그는 어제와 같이 천막 내부를 돌아다니며 마법사들의 작품을 살폈다.

         

       그의 지적을 받고 그대로인 사람도 있었고 개선된 사람도 있었다.

         

       아르노는 전자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고, 후자에겐 약간의 조언을 더 해주었다.

         

       개막식까지 앞으로 남은 기간은 며칠.

         

       조언을 받고 고쳐나가는 사람이 싹수가 괜찮아 보인다면 그에게 초대장을 줄 생각이었다.

         

       이윽고 그의 발길이 멈춘 곳은 어제 그가 독설을 내뱉었던 소녀의 테이블 앞이었다.

       오늘은 그곳이 비어 있었다.

         

       ‘너무 심했나.’

         

       그녀는 이곳에 있는 마법사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그런데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더 심하게 말을 퍼붓고 말았다.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은 대단했지만 그만큼 한계가 명확했다.

       그녀의 재능이 안타까웠다.

       환상 마법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길을 간다면 좋을 텐데.

         

       비록 얼굴을 가리고 있긴 했지만, 사정을 전해 들어서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지인들의 딸이었다.

       좀 더 부드럽게 조언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녀가 가면까지 써서 이곳에 선 의미가 없어졌다.

       오히려 더 가혹하게 채찍질하는 게 그녀의 각오에 대한 예의였다.

         

       자신에게 재능이 없는 길을 걷고 싶다면 그 정도는 극복해야 했다.

       그러지 못한다면 그냥 떠나는 게 나았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고, 다음날이 왔다.

       그녀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녀는 그대로 도망쳐버린 것일까.

       아니면 이를 갈며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일까.

         

       양쪽 다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어느 쪽이든 아르노는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마지막 날이 왔다.

         

       고를 사람은 진즉에 다 골랐다.

       나머진 수준 미달의 마법사들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매일 같이 이곳에 왔다.

       혹시나 올 사람을 기다리며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지 않았다.

         

       정말 포기한 것일까.

         

       아쉽기도 하고 안심되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떠나려는데, 천막의 입구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과 피부.

       인형같이 예쁘장한 이목구비.

       무감정해 보일 정도로 냉담한 표정에 차가운 눈빛.

         

       빈자리의 주인이었다.

         

       아르노는 그가 한때 연모했던 사람과 그가 한때 질투했던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그때, 그 부적격자군. 무슨 일이지?”

         

       아르노는 짐짓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그녀의 용건은 대략 짐작이 갔다.

         

       오늘은 선발의 마지막 날.

       가면으로 가렸던 얼굴을 드러냈다는 건 의도가 명백했다.

       재능의 한계를 통감하고, 부모님의 이름을 대고 받아들여달라고 부탁하겠다는 거겠지.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의외의 말이었다.

         

       “환상을 시연하려고 왔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지만, 자신의 앞에 당당히 선 그녀의 태도에서 아르노는 그녀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그 짧은 시간에 신비를 터득했다는 건가?

       혹시, 자신의 독설이 충격요법이라도 된 것일까?

       그 때문에 신비에 접속하게 된 것일까?

         

       “한번 해 봐라.”

         

       그러나 그가 가진 기대감은 그녀의 손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을 본 순간 급속도로 사그라들었다.

         

       그가 환상 마법의 길을 걸어온 세월만 무려 40년이다.

         

       그는 척 보기만 해도 그녀가 발하려는 마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빛과 연산력을 이용해 며칠 전과 같은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녀는 신비를 깨닫지 못했다.

         

       틀린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 거기에 매달리다니.

       한심했다.

       실망스러웠다.

       한 번 바닥에 떨어진 천재가 어떻게 다시 일어설지 궁금했는데.

         

       어느새 둘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직도 이 천막에 남아 있는 환상 마법사들은 사실상 탈락이 확정된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실력이 모자라는 건 인정하지 못하고 고집과 앙심만 잔뜩 남은 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마야를 보는 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저번에 걔 아니야?”

       “인간 메모리 디스크? 풋.”

       “오늘도 망신당하려고 왔나 보네.”

         

       사람들의 질시 어린 시선과 비웃음을 한눈에 받았지만, 그녀는 긴장하지 않았다.

       아르노의 싸늘한 시선이 폐부를 찔렀지만,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사람들 너머에서 그녀를 바라봐주는 하나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가 격려의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할 수 있다고.

         

       마야는 심호흡을 하고 며칠간 연습했던 것을 떠올렸다.

         

         

       ***

         

         

       마야의 기본 능력은 다면체를 형성하는 마법이었다.

       점을 찍고 선으로 이어 면을 만들어 도형을 구성했다.

       TT1에서는 그저 퍼즐을 풀거나, 다리나 벽 역할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그녀의 능력은 점점 발전했다.

         

       TT2에서 도면 기능이 추가되었다.

       다면체의 설계도를 미리 입력해뒀다가, 필요한 순간에 도형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원래는 비전투 상황에서만 활용되던 그녀의 능력이 전투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도면이 추가되고 나서, 폴리곤 아트라 불리는 놀이가 성행했다.

       수백, 수천이 넘는 다면체로 게임 안에서 정교한 폴리곤 모델을 만들고 노는 것이다.

       역대 보스들의 머리통을 캠프에 전시해둔 동영상 같은 것이 실시간 베스트에 올랐다.

         

       TT3에서는 아예 한술 더 떠서 다면체에 운동과 질량이 추가되었다.

         

       덕분에 폴리곤 아트는 폴리곤 공학으로 진화했다.

       수백 개의 부품 폴리곤을 조합하여 기상천외한 물건이 만들어졌다.

       공성 무기, 자동차, 심지어 움직이는 거대 전투 로봇도 있었다.

         

       물론 이는 게임 플레이 자체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정예 괴물의 꼬리치기 한 방이면 다면체 조립 따위 도미노처럼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종종 기발한 방식으로 플레이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느려터진 조력자 캐릭터를 도시 반대편까지 호위하는 퀘스트 같은 데서, 조력자를 투석기에 실어서 날려버리는 식으로 시간을 단축하는 플레이 같은 게 나와 큰 웃음을 주었다.

         

       나는 그런 방면에서도 TTT 유튜버 중 최고였다.

       애초에 내가 크게 유명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시스템의 한계까지 뚫고 들어가는 발상력으로 온갖 특집 영상들을 찍었다.

         

       위에서 언급한 보스들의 머리 전시와 투석기 플레이도 둘 다 내가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폴리곤 공학은 내 전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가르쳤다.

       과연 천재는 천재였다.

       그녀는 내가 수년 동안 쌓아온 수학 지식과 제작 기술을 며칠 만에 모두 흡수했다.

         

         

       ***

         

         

       그가 제시한 새로운 큐브.

       그것은 8개의 점과 12개의 선과 6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환상이었다.

       오직 겉의 표면만 구현된 환상.

       그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그 큐브는 조롱하고 있었다.

       환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본질을 마음속에 그려야 한다는 마법사들의 주장을 우스운 농담으로 만들어버렸다.

         

       마야는 그들의 방식에 속박당했었다.

       그들의 주장에 속아 억지로 본질을 흉내 냈다.

       알갱이 하나하나 쌓아 형태를 빚었었다.

       그것이 자신의 환상 마법이었다.

         

       아르노는 그것을 기만이라고 했다. 눈속임이라고.

         

       그의 말이 맞았다.

         

       그런데 원더스타인이 제시한 새 큐브는 어떤가.

       그건 더 기만적이었다.

       아예 본질의 존재 자체를 무시해버렸다.

       그딴 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철저하게 겉껍질만, 외형만을 구축했다.

         

       기존 환상 마법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파격적인 발상.

       그의 방식은 천재적이었다.

         

       “색은 어떻게 하죠?”

         

       마야는 눈앞에 떠오른 큐브를 바라봤다.

       이대로는 아직 그저 빛나는 주사위일 뿐이었다.

         

       자작나무.

       12중 나이테.

       비대칭적 나뭇결.

       17개의 홈.

       4개의 파편.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원더스타인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야 양은 아빠한테 그림을 배웠죠? 원하는 색깔로 칠해봐요.”

         

       아.

       그것으로 마야는 각성했다.

         

       그녀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16세의 소녀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깊고 방대한 마력이었다.

       마력의 질이나 양, 그 사용성에 있어서 이미 아카데미의 교수 수준은 뛰어넘은 그녀였다.

         

       그녀에게 빈정대던 사람들이 움찔했다.

       그녀가 화가 나서 폭발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마야는 그런 잡스러운 반응들에 조금의 정신력도 낭비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그녀가 만들고자 하는 이미지를 그리는 데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수식을 계산했다.

         

       그녀의 마력이 만들어 낸 빛 알갱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녀가 계산한 구성대로 움직였다.

         

       점과 점이 이어지고,

       선과 선이 만나,

       면과 면이 형태를 이루었다.

         

       아직 구현화 하지는 않은 무색투명한 환상 속에서.

       마야는 붓을 들었다.

         

       아빠와 함께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캔버스 앞에 서서 보이는 그대로의 색을 채웠다.

         

       내가 사물의 본질을 모른다고?

       마음이 없다고?

       신비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못할 거라고?

         

       자신은 더는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속박당하지 않을 것이다.

         

       마야는 붓을 휘둘렀다.

       무색의 환상들 위로 색이 번져나갔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그녀의 색으로 채워졌다.

         

       이미지를 떠올리고, 계산하고, 마력을 풀고, 형태를 빚고, 색을 칠한다.

         

       그 모든 작업이 이루어진 시간은 다 합쳐 고작 몇 초.

       그녀의 몸 주변으로 뿜어져 나오던 환한 광채가 가라앉았다.

         

       마야는 눈을 떴다.

         

       멀리 보이는 푸른 수평선이 하얀 구름을 뱉어내는 어느 섬의 해안 절벽.

       구멍이 송송 뚫린 바위들 아래로 파도가 부서지며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뒤로 돌아본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노란빛의 바다였다.

       언덕에서부터 밀려 내려온 유채꽃의 물결이 그녀의 발목을 간질이며 바다로 밀려 내려갔다.

         

       바람에 떠오르는 꽃잎 한 장 한 장이 있을 리 없는 향기를 내뿜었다.

       꽃밭 사이를 오가는 벌과 나비가 소리 없는 날갯짓을 했다.

       느껴질 리 없는 바람의 간질임이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학기 말 과제였던 어느 섬의 유채꽃밭의 풍경.

       그녀는 그것을 완벽 그 이상으로 재현해냈다.

         

       그렇게 완상에 잠겨 있던 것은 잠시였다.

       잠시 머리가 멍해지며 주변에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 이게 가능한 건가, 저 나이에?”

       “풍경을 이런 레벨로 구현을 해?”

         

       사람들은 유채꽃밭 안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방금까지 그녀는 명상 공간에 있었던 모양이다.

       고작 마법 하나 발동하는 데에 그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하다니.

       그만큼 이번 마법에 그녀의 전심전력을 다 쏟아부었다.

       그 많던 마력도 다 바닥났다.

         

       그때, 누군가 절벽 위를 걸어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환상은 환상이었다.

       거기가 땅이 있는 위치인 것이다.

         

       마력이 바닥나 비틀거리는 그녀를 남자는 부축해주었다.

       평소였다면 다른 사람의 손길 따위 질색했을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그 손길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였다.

         

       지치기도 지쳤거니와 이 마법은 그의 도움 없이는 절대 해낼 수 없었던 것이니까.

         

       “수고했어요.”

         

       그의 한 마디에 마야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희미하다고 할 수 있는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1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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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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