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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지상으로 복귀한 뒤. 길드 건물을 뒤로하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하아….짐꾼이 왜 필요한지 알겠어요.”

       

       “그걸 알았다면 요나도 어엿한 모험가.”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리디아. 다만 내 쪽은 아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쓸 가죽 한 장을 제외하고 정산받은 금액은 2실버 73쿠퍼. 그런데 가죽 갑옷의 제작비가 3실버라고 한다.

       

       되려 27쿠퍼의 마이너스가 난 상황. 물론, 그만큼 좋은 갑옷이 만들어지긴 하겠지. 그렇지만….

       

       “몇 마리만 더 잡았으면 돈이 남았을 텐데.”

       

       설마설마 마이너스일 줄은 몰랐지.

       

       아쉬워서 미칠 것 같았다. 슬슬 요령이 붙기 시작해서 마나만 있으면 샤샥 잡을 자신이 있었거늘.

       

       마나 회복 속도를 고려하면 평소랑 같은 시간에 나온다 쳐도 3~4마리는 더 잡을 수 있었다.

       

       근데 그걸 순수하게 짐이 무거워져 옮기기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나온 것이다.

       

       “리디아 님…지금이라도 한 번 더 갔다 올까요?”

       

       “그냥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단단히 준비해서 와. 그게 더 효율적.”

       

       “끄으윽…그래도 뭔가 아쉬운데. 보세요!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어요!”

       

       기껏해야 점심시간을 조금 넘겼으려나.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나왔던 평소랑 비교하면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

       

       리디아가 하늘을 노려보는 나를 향해 히죽 웃어보였다.

       

       “그런 요나를 위한 마탑의 고오급 아티팩트가 있어. 아공간 배낭이라고 알아?”

       

       “들어는 봤죠. 엄청 비싸다면서요?”

       

       “응. 그래도 많이 집어넣을 수 있어.”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그거 무게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집어넣는 거야 공간을 확장시켜서 그렇다 쳐도, 무게는 그대로일 텐데.”

       

       “저렴한 건 무게는 그대로. 비싼 건 공간 확장에 무게 경감 마법까지 인챈트 되어있어. 내가 가진 배낭도 그런 종류.”

       

       “…이 타이밍에 그 말을 꺼냈다는 건 빌려주시겠다는 뜻이겠죠? 이번에는 또 뭐가 목적이신가요?!”

       

       “아니. 그냥 자랑한 건데?”

       

       “…….”

       

       황망한 시선으로 올려다보자, 짓궂게 키득이는 리디아.

       

       한 방 먹었으니 그대로 되돌려주겠다는 건가. 정말 그런 의도였다면 제대로 성공했다. 실제로 조금 긁혔으니까!

       

       기분 좋아 보이는 리디아의 모습에 괜시리 바닥의 돌멩이를 툭툭 차며 말했다.

       

       “…뭐, 됐어요. 어쨌든 오늘 얻은 게 많다는 점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벌어오기는커녕 27쿠퍼의 지출이 있었지만, 겨우 그만한 지출로 아이언 울프의 갑옷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개이득이다.

       

       기성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내 체구에 맞지 않는 것들뿐이라 주문 제작이 필수니까.

       

       거기에 길 찾기 스킬을 미궁에서 직접 써보며 사용법을 익혔고, 미약한 불꽃을 조작하며 스킬을 어디까지 응용할 수 있는지 얼추 감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어찌됐건 마법으로 아이언 울프를 사냥하고 다녔더니, 미궁에서 복귀하는 것과 동시에 마나통이 확 성장했다.

       

       늘어난 절대량만 보면 그렇게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본래의 마나량이 너무 보잘것없어서 엄청 늘어난 것처럼 느껴지더라.

       

       내가 미궁을 다니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함도 있지만…지금은 그보다 강해지는 게 더 중요하다.

       

       어차피 고위 모험가가 되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다는 것도 있고, 이브의 흑화 사건이 언제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오늘은 기뻐하면 모를까 아쉬워할 날이 아니….

       

       “…아니지만 그래도 마이너스는 좀 화나네. 근처 뒷골목에서 가볍게 한탕 뛰어볼까.”

       

       “위험한 짓 금지.”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정색하며 고개를 젓는 리디아. 

       

       그녀는 내가 다른 길로 새는 것을 아예 막겠다는 듯, 손을 꼭 붙잡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바로 엘리 선배한테 가자.”

       

       “으음…딱 한 바퀴만 돌고 오면 안 될까요? 저번처럼 천하통일 이런 거 없이 조용히 지갑만 슬쩍 할 테니까요.”

       

       “소매치기는 범죄야.”

       

       “양아치들 상대로도요?”

       

       “경범죄자 상대로도 범죄는 범죄야. 예외는 중범죄자부터.”

       

       “칫.”

       

       놀랍게도 판 대륙에서 중범죄자는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이게 뭐, 나쁜 놈이니 죽어도 싸다! 같은 이유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부족한 인권 의식과, 미궁도시에서 살아남은 중범죄자는 무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적자생존의 법칙 때문에 생긴 예외 조항이지.

       

       한차례 혀를 차고는 붙잡히지 않은 쪽의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리디아 님.”

       

       “…뭔데?”

       

       순순히 멈춰서긴 했으나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향해 주머니에서 꺼낸 척 엄지를 치켜올린 제스처를 취했다.

       

       “오늘 가죽 벗기는 거 도와주셨잖아요? 이건 그 수고비에요!”

       

       “…….”

       

       미묘한 표정으로 내 엄지를 바라보는 리디아. 그래도 싫지만은 않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피식 웃었다.

       

       “응. 나쁘지 않네.”

       

       그렇게 서로 히히 웃으며 걷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어느새 우리는 요정과 은화에 도착했다.

       

       …영업 종료 팻말을 걸어둔 상태였지만.

       

       아직 낮이라 손님이 얼마 없을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문을 닫지는 않을 텐데.

       

       혹시나 싶어 일단 문을 열어보았으나, 철컥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다.

       

       쿵쿵!

       

       “엘리? 엘리 없어요?”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이름을 불러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잠깐 어디 나간 걸까요?”

       

       “그럴지도. 어차피 주 영업시간은 저녁이니까 볼일이 있으면 지금 다녀오는 게 맞지.”

       

       문을 열자마자 바로 엘리를 보지 못하는 건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아무리 나라도 스페어 키를 받진 못했으니 근처에서 잠시 시간 때우다 나중에 오는 수밖에.

       

       “마침 잘됐네요. 조금 늦었지만 점심이나 먹고 오면 딱 시간이 맞을 것 같…어?”

       

       뒤늦게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익숙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금세 경쾌한 금속음으로 이어진다.

       

       철컥.

       

       잠금을 해제하는 소리. 느릿하게 열리는 문 너머에서 엘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왔니.”

       

       어쩐지 평소보다 어두운 분위기. 바짝 굳은 표정의 엘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손님이 찾아왔거든. 나중에 다시 와줄래?”

       

       “어, 음 알겠어요. 저녁쯤에 다시 오면 될까요?”

       

       “고마워. 그럼 그때 보자.”

       

       그제야 엘리의 표정이 풀어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중요한 일인가 보네.

       

       리디아와 함께 물러나려던 순간이었다. 가게 안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괜찮습니다. 할 이야기는 전부 전했으니 이제 돌아갈 생각입니다.”

       

       “아잇! 같이 가요 선배님!”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피곤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와, 뭐가 그리 좋은지 생글생글 웃는 남자로 이루어진 이인조.

       

       둘 모두 성직자인지 사제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사제복이 조금 특이했다.

       

       본래 사랑의 여신을 모시는 사제들은 하얀 바탕에 금색과 분홍색의 문양이 들어간 펑퍼짐한 사제복을 입는다.

       

       하지만 눈앞의 둘이 입은 것은 다른 건 다 똑같은데 바탕이 되는 색이 하얀색이 아닌 검은색이었다.

       

       거기에 뭘 숨기고 다니는 건지, 펑퍼짐한 사제복이 덩치 이상으로 부풀어 있는 상태.

       

       처음에는 그 생소한 모습에 놀랐으나, 이내 저 복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밝은 곳이 아닌 어두운 곳에서 여신을 위하는 자들.

       

       이단심문관.

       

       하나하나가 고위 모험가에 준하는 실력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단심문관은 기본적인 출신과 신앙이 증명된 자만 임명받는 데다가, 결코 사사로운 목적으로 무기를 들지 않는다.

       

       그들이 적대하는 것은 오직 하나. 여신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들뿐이니까. 예를 들면 황혼을 삼키는 자 같은 녀석들 말이다.

       

       나처럼 선량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오히려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러운 것이 이단심문관이다. …인상은 조금 무섭지만.

       

       헌데, 이를 모를 리 없는 엘리와 리디아의 눈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어색하다 못해 살짝 서늘하기까지 한 분위기.

       

       이단심문관들 또한 이를 알아차린 걸까. 여자는 피곤한 기색이, 남자는 곤혹스러운 기색이 만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저희는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찾아왔을 뿐, 엘리 씨를 심문하러 온 게 아니에요. 그렇죠 엘리 씨?”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진 않지만 이런 상황 자체는 익숙해 보이는 사람의 반응이다.

       

       엘리와 리디아가 왜 갑자기 예민하게 구는지는 모르겠지만…이단심문관과 책 져서 좋을 일은 없겠지.

       

       여기서는 붙임성 좋은 내가 나설 차례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성호를 그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자들에게 여신의 미소가 있기를.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엘리랑 리디아 님이 저를 너무 좋아하셔서 외간 여자랑 대화하는 꼴을 못 보는 것뿐이니까요!”

       

       “으음.”

       

       “아이쿠. 사랑이 무거운 여자분들에게 걸리셨네요 성도님!”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반대로 후배로 보이는 남자 쪽은 방긋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 또한 최대한 선한 미소를 꾸며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요! 그 무거움이야말로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래도 그만큼 저를 아낀다는 반증처럼 느껴지잖아요? 심문관님도 남자니까 대충 아시죠?”

       

       “이해는 하지만…제 취향은 아니네요.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제가 달라붙는 쪽이 좋은 터라.”

       

       “세상에. 조오금 귀찮은 타입이셨군요?”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여기있는 선배한테요.”

       

       방실방실 비즈니스 미소로 대화를 주고받는 나와 녀석. 하지만 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나저나 성도님은 혹시 성직에 뜻을 두고 계신지요? 조금 전의 성호도 그렇고 인사 문구도 그렇고 정말 모범적이었습니다. 가능하면 저희 견습 사제들에게 보여줬으면 할 정도로요.”

       

       “큿!”

       “……!”

       

       별거 아닌 공치사에 어째서인지 진지하게 반응하는 엘리와 리디아.

       

       뭔데. 왜 저러는 건데.

       

       기껏 풀어둔 분위기가 다시 냉랭해졌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거 아시나요.

    사실 남역가챠의 연재주기는…주5일 이상 자유연재라는 것을…!

    내일은 일이 있어서 연재가 늦거나 휴재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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