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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타들어가는 로브가 연기로 화함과 동시에 드러난 익숙한 얼굴.

        ‘산태우기’ 이자젤은 눈앞에 서 있는 남자의 정체를 깨닫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클락은 그녀가 과거 마탑에서 쫓겨나 흑마법사로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기.

        페자크 지방의 어느 산맥에서 마주쳤던 모험가 파티의 일원이었다.

       

        당시에는 이들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저 악명이 자자하던 자신을 쫓기 위해 모험가나 제국의 경비대가 나섰다 생각했을 뿐.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익힌 마법은 아니었지만, 터전을 빼앗긴 촌락의 주민들이 돈을 모아 조합에 의뢰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잡힐거란 걱정 따위 전혀 하지 않았다.

       

        접근도 힘든 불 속에서 나를 어떻게 찾을 건데?

       

        뗄거리가 가득한 숲은 이자젤에게 폭약이 가득 찬 광산 내부나 다를 바 없었다.

        접근도 불가능하고 어지간히 추적에 능한 모험가들도 잿더미만 남은 땅만 보고 흔적을 쫓기를 포기했다.

        그래서 여느때 처럼 적당히 놀다주다 보면 타죽거나 목숨을 건지더라도 질려서 산맥을 떠날 거라 생각했다.

       

        평생을 걸쳐 밝혀온 화마가 순식간에 어둠에 잡아먹히고, 동시에 심장을 향해 한 자루의 창이 날아오기 전까지는.

       

        ‘욱, 토할 것 같애……!’

       

        그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산산조각으로 바스라졌던 흉곽의 환통이 되살아났다.

        온 몸에 덕지덕지 두르고 있던 아티펙트와 각종 포션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경비대에 인계되기도 전에 죽었을 것이다.

        언제 산불에 집어삼켜져도 이상하지 않은 그녀의 마법.

        만일을 대비해 구명용으로 상비해 두었던 물건들 덕에 목숨을 건졌다.

       

        나중에 들은 바로 세 명은 용을 잡기 위해 모인 사냥꾼들이었다.

        성주의 명령 하에 대륙의 유명한 산맥들을 모조리 뒤지고 다니던 파티.

        훗날 위대한 세 모험가라 불리게 된 이들의 손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은 감옥 안에서도 자랑거리였다.

        일 년 뒤, 탈옥에 성공한 그녀가 검은별에 스카웃 제의를 받은 배경에도 나름 지대한 영향을 끼쳤었는데…….

       

        ‘분명 용의 산맥에서 죽었다면서! 씨이팔, 이래서 ‘여단’ 새끼들 말은 믿는 게 아니었는데……!’

       

        다시는 마주치지 않기 위해 정보 조직에 거액의 돈을 지불해 가며 주기적으로 동향을 체크했었다.

        마룡의 토벌에 성공한 이후 셋 모두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마지막 전갈이 벌써 5년도 전이었다.

       

        죽음밖에 남지 않은 협곡의 비탈에서 그의 인식표가 발견되었던 날, 은신처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얼마나 환호했던가!

        모험가 조합에서 공식적으로 배포한 실종자 포스터를 불태우는 퍼포먼스까지 했던 자신에게 지금이라도 과거로 돌아가 뺨을 갈기고 싶었다.

       

        “그간 잘 지냈어?”

        “아, 네에…… 저, 지금은 일 중이니까 시, 실례가 안 된다면 끝나고 따로 찾아뵈어도 될까요?”

        “우연이네? 나도 일하는 중이야.”

        “아하~ 그러시구나! 그러면 서로 방해 안 되게 멀찍이 떨어져서…….”

        “지금 니들이 방해하고 있잖아.”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아-!

       

        창대를 쥔 손등의 핏줄이 꿈틀거리자 이자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개입한 상황이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음이 분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때마침 미궁의 출구 쪽에서 다수의 인원이 빠져나왔다.

       

        글레시아와 미티어 학파의 마법사들, 검은별, 그리고 기사단의 일원들이 한 자리에 모두 모인 것이었다.

       

        “헉, 허억……!”

        “빠져 나왔다, 드디어!!”

        “멍청아 소리 죽여……!”

        “아이린. 낙오된 인원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도록. 오웬 너는 다음 층으로 가는 길을 확인해라. 마리엘 님께서 가까이 계실 거다.”

        “알겠습니다.”

        “잠깐 대장, 저놈들은 다 뭐야?”

       

        연기가 걷히기 시작하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누구 하나라도 검을 뽑거나 마력을 끌어올리면 곧바로 난장판이 될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상황을 파악하는 은익의 단장, 기회를 노리며 눈짓을 주고 받는 두 문하생 대표.

        그리고 11층의 층고를 찬찬히 뜯어보는 클락까지.

       

        “생각보다 빠르군.”

        “의뢰자가 치안대를 언제까지 붙잡아둘지 모르니 이쪽도 빠른 편이 좋지. 그럼 슬슬 시작할까.”

        “목격자는 남겨두지 마라. 아니면 정신오염 걸어놓든가.”

        “여기 해주학파 출신은 없겠지?”

        “뭐지 산태우기, 저놈들이 협상이라도 걸어왔나?”

        “로브는 또 어디갔어?”

       

        뺏겼다.

        클락이 불쾌한 기색으로 손을 내밀자마자 부리나케 벗어서 던져줬다.

        그런 줄도 모르고 흑마법사들은 낄낄대며 마법에 실패해 자기 것까지 태워 먹었냐는 둥 농담이나 해댔다.

       

        작전 실패는 두말할 것도 없고 이자젤은 자신의 운명이 이 순간의 선택에 달렸음을 직감했다.

       

        대륙 최악의 범죄자들과 함께 말도 갑옷도 없는 기사단과 하층에서 빌빌거리는 문하생들을 상대하거나.

        아니면 지팡이를 거꾸로 겨누고 동료, 아니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전(前) 동료들을 배신하거나.

       

        이번 의뢰의 출처는 치안대의 간부였지만 그 뒤에는 마탑의 유수한 학파 중 하나, 더 나아가서는 황족까지 연결되어 있다.

        만약 후자를 선택하면 제국 땅에서 편히 발 붙이고 사는 것 따윈 평생 불가능 하겠지.

       

        “혹시 너무 더워서 벗어던진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로브를 안 입은 모습은 처음 보는데.”

        “오, 얼굴은 마법 때문에 안 보인다 쳐도 몸은 제법…….”

        “쯧, 내 취향은 아니야. 금발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니 이상한 취향은 갤러리에나 있겠지.”

        “꾸, 꿀벌이 뭐 어때서! ”

       

        근데 씨팔 어차피 수배 중인데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의리도 도덕도 없는 범죄자 새끼들 등에 칼 꽂는 게 용살자랑 싸우는 것보단 나았다.

        걱정은 커녕 대체로 해주학파 출신들 답게 노출 좀 생겼다고 그새 음심을 드러내는 꼴이 같잖았다.

        보나마나 처음 마법을 배울 때도 자기들 학파만큼이나 인기도 없고 친구도 없는 마탑 생활이었겠지.

       

        “어때 산태우기? 생각 있으면 이따가 뒤풀이라도…….”

        “지이랄하네. 니들한테 대줄 바엔 저깄는 미친 괴물 밑에 깔려서 따먹히는 게 백배 나.”

        “뭐?”

        “하다 못해 좀 쳐 씻고 다니기라도 해라! 지금껏 유난떤다 할까 봐 꾹 참았는데, 인식 저해 써도 입냄새는 안 없어진다고!!”

        “너 뭐하는 거야!? 으아아악!!”

       

        결정을 내린 이자젤의 장갑에서 마력을 담은 불길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은익 기사단 전원이 검을 뽑으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

       

        “젠장, 이건 흑마법이잖아?”

        “옆에 있는 놈들도 한패인가?”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순 없다!”

        “위로 올라가는 길을 확보해!”

        “돌격! 홀크로프트를 위하여!”

       

        채채챙!

       

        마법사와 흑마법사, 그리고 기사의 기묘한 삼파전이 시작되었다.

        허나 검은별은 자신들의 목표인 은익 기사단만을 노리고 공격했기에 사실상 2대 1에 가까웠다.

        힘의 균형이 맞춰질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동료의 배신으로 일한 불의의 일격.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검은별이 예상하지 못한 나의 존재였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동료들이 하나씩 나가 떨어진다.

        필중과 필관의 묘리가 담긴 창 앞에서는 어떤 방어마법도 소용 없었다.

       

        지금까지 내게는 한 번 던진 무기를 자동으로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나 이젠 그런 약점조차 어느 정도 메꿔졌다.

        벽에 박힌 창 주위로 술식이 이어지더니, 내 손 위에 도로 안착했다.

       

        “잘했어, 살살아. 너도 나름 쓸모가 있구나?”

        — ㄴㅏ도 ㅈㅈㅣ를ㄹㅐ

        “내가 칼질은 못해서 그건 좀…… 대신 나중에 분탕 100명 처분할 권한을 줄게.”

        — …….

        “싫어? 내가 특별히 엄선해서 관리 중인 고닉 명단인데.”

       

        허나 이 방법도 영원하진 않았다.

        다른 마법사들처럼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 아닌 것을 확인한 그들이 곧장 타겟을 나로 변경했다.

        직접적인 마법 공격 뿐 아니라 살살이의 소환 마법도 방해를 받았기 시작했다.

        이전이라면 그것만으로 굉장히 무력해졌겠으나, 간섭기를 익힌 내게는 한 가지 무기가 더 있었다.

       

        “오, 선배님이시군요. 혹시 갤러리를 이용해 보셨나요?”

        “우린 그딴 건 쓰지 않는다. 죽어……!”

        “그런 것 치곤 접속 기록이 있으신데요. 안타깝게도, 당신이 왕으로 숭배했던 그조차 제 한 마디에 결국 몰락하게 되었답니다.”

        “이건…… 저주명!? 너 설마, 커억!”

       

        마탑을 나가서도 꿀벌 게시판에서 열렬히 활동하던 흑마법사 하나를 제압하자 이자젤이 저 멀리서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내가 던진 창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회수해온 것이었다.

       

        그것을 받은 나는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아이린을 공격하던 다른 흑마법사에게 던졌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는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며 말했다.

       

        “뭐해?”

        “하아, 하아…… 네?”

        “가서 다시 주워 와.”

        “씨, 씨이팔……!”

       

        이미 조직을 배신해 버린 그녀는 만약 이 전투에서 은익 기사단이 패배하게 되면 그대로 끝장이었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이 악물고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중간에 살살이의 마법이 성공하여 창이 회수되면 그조차 헛걸음이어서 급히 불길을 일으키며 전장 한복판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어쨌거나 그녀가 열심히 다리를 혹사시킨 덕분에 판세는 완전히 기울어 흑마법사들은 승기를 빼앗겼다.

        몇몇 이들이 죽은 이들의 시체를 버려두고 도망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진형이 와해되었다.

       

        이자젤은 마지막으로 던진 창을 겨우 회수하더니, 창대를 지팡이 삼아 걸어오다 내게 넘기자마자 주저앉아 버렸다.

        어느새 인식저해 마법도 풀려 화장이 번진 눈가에서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어, 엄마아아! 나 이제 더는 못 해……!”

        “나 같은 사람 두 번 안 만나려면 착하게 살았어야지. 그러게 멀쩡한 산은 왜 불태우고 다녀?”

        “그야…… 거기 산이 있으니까?”

        “…….”

       

        이번엔 천장으로 던져야겠군.

        전이 마법을 시전해 도망가는 마지막 한 녀석까지 처리하려던 나는 잠시 고민하다 창끝의 방향을 정 반대로 바꾸었다.

        아직 혼란이 정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저, 저도 이제 그만 가봐도 괜찮을까요? 더 늦으면 붙잡힐 것 같아서…….”

        “어디로 가게? 이미 쟤들 뒤통수 쳐 놓고서.”

        “하, 한적한 산에 들어가서 5년 정도 숨어 있으면 괜찮겠죠! 이래 봬도 화전민 출신이라 약초랑 열매도 잘 알거든요!”

        “안 됐지만 너한텐 아직 들을 얘기가 남았거든.”

        “나중에 편지할게요! 꼭!! 그러니까 제발……!”

       

        내 허락이 떨어지지 않자 이자젤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수배자인 그녀는 만약 잡혀서 추방당하게 되면 다른 무법자들과 달리 마탑 입구에서 제국의 경비대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형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들오들 떠는 허벅지.

       

        “만약 살고 싶으면 좋은 제안이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

       

        나는 그 사이에 위치노트를 하나 떨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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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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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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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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