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3

       

       

       빌런 넷이 순식간에 명을 달리했던 방을 뒤로한 채로 복도로 나섰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일까?

       

       넓은 복도 전체를 뒤덮다시피 한 빌런들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이야, 다들 환영해주시는 건가요?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이야. 역시 다들 외모를 볼 줄 안다니까.”

       

       “방심하지 마라! 상대는 그 아라크네다! 대열을 갖춰!”

       

       

       하, 진짜.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네.

       

       싸우기 전에 대화 좀 해보려고 했더니.

       

       ···뭐, 좋아. 나도 시간이 여유로운 건 아니니까.

       

       원하는 대로 진지하게 해줘야겠지.

       

       

       “좋아요. 다들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는 건 보기 좋은데, 한 가지만.”

       

       “···뭐지? 항복이라면 소용없다. 네년은 몸 성히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으, 역시 잡히면 사지 멀쩡하기는 힘들었겠네.

       

       계속 잠입한다고 멍청하게 굴었다가는 손에서 불나오는 메카-아르테가 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겠지.

       

       입고 있는 옷에 레오타드까지 사용해서 말 그대로 태어났을 적 그대로의 육체가 된다고 한들 저들을 모두 처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겁을 줘야겠지.

       

       싸움은 기세. 나와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600명 중에서 500명이 의욕을 상실한다면, 100명만 상대하면 되니까.

       

       

       “제가 좀 바빠서, 여러분들 모두와 함께 놀기는 힘들거든요.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싶으신 분들만 길 중앙으로 모여주시면 좋겠네요.”

       

       “···헛소리! 다들, 전투 준비! 저년을 사로잡아라! 아니, 죽여도 상관없다! 죽인 놈에게는 포상금을 주마!”

       

       

       으음, 역시 이 정도 협박으로는 겁을 먹지 않는 건가.

       

       그래, 뭐. 좋아.

       

       이걸로 겁을 먹지 않는다면, 직접 보여줄 뿐.

       

       

       “···후회해도 몰라요. 마지막 경고야. 살고 싶으면 당장 옆으로 뛰어.”

       

       “공격해!”

       

       

       내 말을 무시한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의 공격에 마력을 담은 원거리 공격들이 수없이 날아들었다.

       

       하아, 그래. 뭐.

       

       내가 말하는 건 듣지도 않겠다 이거지?

       

       스타킹의 일부분을 사용해 실을 엮어 방어막을 만들었다.

       

       하지만 역시 싸움은 인원수로 한다고 하던가. 수십명의 공격을 얻어맞은 방어막은 금방 찢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완전 멍청한 놈들은 아닌가 보네.

       

       이곳은 생각보다 좁은 길목.

       

       수백 명의 빌런이 한꺼번에 온다 한들 결국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수는 한정적이다.

       

       그걸 경계해서 원거리 공격을 지시한건가.

       

       그러면 이쪽도 움직일 수밖에 없잖아?

       

       일부러 사용하지 않고 남겨둔 반장갑의 실을 풀어 근육질 남성의 팔에 냅다 꽂았다.

       

       

       “끄, 끄악···?!”

       

       “실···?! 버, 버텨라! 너를 방패로 삼을 셈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

       

       

       으음, 정답.

       

       역시 신체 강화 계열 능력자였구나. 생긴 게 딱 그럴 것 같더라.

       

       아니었으면 다른 사람을 찾았어야 했는데, 딱 좋네.

       

       마력을 순환시키며 실을 휘어잡았다. 그리고 허리를 젖히며 힘을 주어 끌어오려는 듯 실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내가 그를 제압한 후 방패로 삼을 거라고 생각한 녀석들이,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아예 바닥에 다리를 꽂아 넣은 채 거구의 빌런이 내게 끌려오지 않게 버티고, 그 옆에 여러 명의 빌런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

       

       아니, 왜 빌런이 협력 같은 걸 하는데. 거참 알 수가 없네.

       

       머리 위의 실로 이루어진 망은 깨지기 일보 직전.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네.

       

       ···그런데, 저 녀석들.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단 말이야.

       

       내가 언제 사람을 방패로 삼을 거라고 말한 적 있던가?

       

       머리 위의 망이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최대한 마력을 때려 박아 억지로 유지하던 팽팽한 줄다리기를 순식간에 끊어버렸다.

       

       마력을 사용해 억지로 끌어올린 근력이 순식간에 여고생 수준의 허약한 근력으로 떨어지고, 당연하게도 줄다리기의 균형이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뭐, 뭣?!”

       

       

       자, 여기서 문제.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는데, 한사람이 갑자기 힘을 탁 풀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답은, 힘을 주고 있는 사람 쪽으로 끌려갑니다!

       

       힘을 조금 준 것도 아니고 이 정도의 힘이니까 속도는 훨씬 빠르죠!

       

       이래서 신체 강화 능력자를 찾고 있었는데, 역시 나야. 운이 좋다니까.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공격들보다도 빠르게 날아들어 빌런이 모여있는 장소로 날아들었다.

       

       

       “짜잔!”

       

       “이런 미친···?!”

       

       “안녕하세요, 그리고 안녕히 가세요.”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감사의 의미를 담아 근육질의 남성과 그를 고정하기 위해 애쓰던 빌런들의 몸과 머리를 분리해주었다.

       

       어리바리한 빌런들이 정신을 차리고 공격하려는 찰나, 교복이 순식간에 전부 풀리며 해방되며 실이 미쳐 날뛰었다.

       

       ···그래, 그거. 내가 봉인하기로 했던 그 기술.

       

       쓰기는 싫었는데, 어쩔 수 없지.

       

       최대한 겁을 주는 게 목적이니까.

       

       

       “퉷··아, 젠장. 입에 들어갔잖아.”

       

       “히, 히이익···.”

       

       

       잠깐 실들이 화려하게 날뛰고 난 이후.

       

       매끈매끈하던 바닥이 거짓말처럼 피로 질척해지기 시작했다.

       

       ···우와, 사람 엄청 많네.

       

       그냥 600명이라길래 많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까 더 많다.

       

       그렇게 썰어댔는데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지휘관으로 보이던 인형이었던 것의 베레모를 툭툭 털어 머리 위에 얹었다.

       

       으엑, 피가 질척거려서 기분 나빠···. 하지만 이거라도 있어야 알몸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나···.

       

       

       “안타깝네요. 싸우기 싫으면 꺼지라니까, 말을 안 들어.”

       

       “괴, 괴물···!”

       

       “괴물은 너무 정감 없는데. 아라크네라는 멋진 이름이 있잖아요?”

       

       

       내가 붙인 것도 아니고 작가님이 붙인 거긴 하지만.

       

       작가님, 작명 센스는 꽤 있다니까.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아라크네.

       

       

       “자, 그래서. ···싸울 거야, 꺼질 거야? 빨리 결정해.”

       

       

       쫄아라, 쫄아라, 쫄아라, 쫄아라···!

       

       쓰고 싶지 않았던 기술마저 사용했던 덕분일까, 아니면 가슴 속으로 계속 빌었던 덕분일까?

       

       다행히도 잔뜩 겁먹은 빌런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다들 큐브 스테이크의 제작과정에 지대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자기들도 그렇게 될까 봐 당황한 모양이지.

       

       하하. 허세 작전, 대성공!

       

       ···뭐, 보내준다고 살려줄 생각은 없지만.

       

       이미 출구는 다 막아놨다고, 멍청이들.

       

       간부들 다 죽은 뒤에야 지금 싸웠어야 했다고 후회해도 늦을 거다.

       

       

       

       ***

       

       

       

       “아하하···. 깜짝 놀랐네요. 갑작스럽게 기습이라니.”

       

       “사, 살려줘···, 스피라. 나, 몸이 안 움직여···!”

       

       

       좆됐다.

       

       하반신이 뱀이 되어버린 위버멘쉬 간부, 십이지의 사.

       

       스피라는 패배를 직감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기습이 깨져버렸다.

       

       그것도 성대하게.

       

       

       “어, 어째서···? 어째서 실패했지? 아니, 어떻게···?!”

       

       “네?”

       

       “오비스를, 어떻게 죽인 거야···!”

       

       “아아, 이거요?”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동료가 축 늘어진 채로 ‘이거’라고 지칭 당하는 느낌이란.

       

       경험해보지 않은 놈들은 모르겠지.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오비스의 털은 참격같은 건 순식간에 흡수할 텐데···!”

       

       

       양의 털을 가진 오비스는 공격력은 부족하지만, 특정 상황에서의 방어력은 엄청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타격은 그녀의 털을 뚫지 못하고, 참격은 털 몇 가닥을 끊다가 점차 힘을 잃어버려 그녀를 공격할 수 없었다.

       

       불에 타거나, 전기로 지져지는 게 아닌 이상 크게 다칠 일이 없을 거라 자부하던 그녀였는데, 어째서.

       

       

       “아, 어쩐지 털이 잘 안 잘리더라. 물리 무효 같은 건가?”

       

       “어떻게 한 거야···!”

       

       “아아, 별거 아니었어요. 한 번으로 안 되면 여러 번 하면 되잖아요? 갑자기 껴안아서 깜짝 놀랐다니까.”

       

       

       한두 가닥이라도 끊을 수 있으면, 똑같은 장소를 수백 번 베어버리면 충분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저 여자의 모습에 소름이 끼쳐왔다.

       

       그 짧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그렇게 베어댔다고···?

       

       덕분에 옷도 다 써버렸고. 아아, 젠장. 다행히 양털이라도 있으니 망정이지. 변태가 될 뻔했잖아.

       

       그 뒤 아르테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스피라가 이번에는 조종당하는 동료를 바라보았다.

       

       돼지 수인인 크리스. 그도 참격에는 어느 정도 내성이 있었고, 그 무게를 십분 활용한 공격은 사람 한 명을 곤죽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런 녀석이, 자그마한 실 하나에 벌벌 떨고 있었다.

       

       

       “방법은 좋았어요? 타격에 내성이 있는 사람이 저를 껴안고, 강력한 충격으로 샌드백을 때리듯 공격. 안쪽에 있는 사람은 타격을 입고, 껴안은 사람은 멀쩡했겠죠.”

       

       “노, 놀리는 거야···?”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당신이 기습하려던 것도 좋았어요.”

       

       

       맞은 게 제가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요!

       

       온몸에 피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주제에 활짝 웃은 그녀가 크리스를 조종했다. 아니, 조종이 아니라 조롱하고 있는 걸지도.

       

       ···내 독이 온몸에 퍼지고 있는 상태의 그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기습이 실패했다고 눈치채자마자 다시 했던 두 번째 기습.

       

       그걸, 크리스를 방패로 삼아서 순식간에 빠져나와 버렸다.

       

       

       “그만, 그만···! 도, 독이 퍼진다고! 원하는 게 뭐냐! 정보냐?! 아니면 돈?! 원하는 것을 말해라! 뭐든지 주마!”

       

       “아, 정말 주시는 건가요?”

       

       “그래! 뭐든지 주마! 어서! 원하는 걸 말해!”

       

       “네 목숨.”

       

       “···커헉?!”

       

       

       귀 앞에 놓인 자그마한 실을 두려워하던 크리스의 최후였다.

       

       지방이 두꺼워서 저런 실에는 타격도 없을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었는데.

       

       순식간에 자그마한 실이 귀를 파고들어 가더니 이내 크리스가 눈과 코에서 피를 흘린 채로 쓰러졌다.

       

       그 실로 머리를 헤집은 걸까?

       

       끔찍한 상상에 얼굴이 절로 창백해졌다.

       

       

       “너희들의 돈이나 정보 같은 건 의미가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너희들의 죽음이니까.”

       

       

       순식간에.

       

       정말 순식간에, 기습을 가했던 간부 둘이 죽어버렸다.

       

       대인 경험도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자, 남은 건 당신 한 명인데. ···어떻게 할까.”

       

       

       머리가 새하얘졌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지?

       

       ···고민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뭘 해도 살아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살려주세요!”

       

       

       뱀 답게, 그녀는 땅에 기기로 했다.

       

       아니, 어쩌면 뱀이 아니었어도 다를 건 없었겠지.

       

       만약 그녀가 개 수인이었으면 배를 까뒤집었을 테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돼지고기를 죽이는 장면을 썼더니 고기가 먹고싶네요…

    오늘은 삼겹살이다

    ***

    AABABBA 님, 19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히다리! 미기! A, B!

    Shiro04 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만약 정말 넣어주신다면 TS물 주인공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피폐 말고 나데나데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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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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