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3

       

       성녀의 동상.

       

       대륙전쟁을 끝내기 위해 몸을 바쳤던 성녀의 희생을 기리는 동상이었다.

       

       제국에 세워진 교단에 위치한 이곳은 많은 사람이 찾는 성지 이기도 했다.

       

       그 밑으로 사제들이 줄을 지어 지나갔다.

       

       “혼자서 신탁을 받는다니…허허..참..”

       

       “누구보다 신탁에 대해 잘 아실 클라인님께서…”

       

       요즘 고위 사제들의 뜨거운 가십거리였다.

       

       “교황성하께서 청해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 신탁인데 말입니다.”

       

       “준비과정들은 또 얼마나 고됩니까.”

       

       이들은 ‘신탁이란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라는 주제로 한참을 떠들어 대었다.

       

       그중에는 신탁을 받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경험담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멀지 않은 거리에 클라인이 홀로 걷고 있었다.

       

       자기들이 했던 고생을 자랑스레 늘어놓는 모습에 클라인은 그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웃기지도 않는군.”

       

       사제들의 고생이 언제부터 저렇게 칭송받을 일이었는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몸을 희생하는 것이 사제이거늘.

       

       고위 사제라는 자들의 행태에 클라인은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쩌다 교단에 저런 놈들이 득실거리게 되었단 말인가…’

       

       클라인의 입장으로서는 통탄을 금치 못 할 일이었다.

       

       사제들의 대화 주제가 또 다시 바뀌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한 클라인을 비아냥 거리는 내용으로.

       

       “허허…”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벌건 대낮에 저렇게 큰 목소리라니.

       

       거기다 그 내용이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게 민망할 따름이었다.

       

       자신과 똑같이 민망한 얼굴로 인사를 올리는 견습사제들을 본 클라인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굳이 귀로 듣지 않아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스의 말이 진짜였던가…”

       

       한스에게서 허무맹랑한 연락이 도착했었다.

       

       스승님께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테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게 크리스가 받은 신탁이라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호통을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클라인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신탁이라는 것이 저렇게 가벼운 내용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그러나 거짓말 처럼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교단에 돌아와 크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심심치 않게 비웃음이 담긴 말들이 들려왔으며, 비웃음이 아니더라도 좋은 내용은 들어 보기가 힘들었다.

       

       클라인 역시 이해하는바였다.

       

       그조차도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똑같은 반응이었을 테니까.

       

       스윽 –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클라인이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예, 스승님.

       

       한스의 목소리를 들은 클라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황궁에 있다고 들었다. 크리스와 떨어졌더군.”

       

       – 그것이…

       

       한스의 궁색한 변명이 이어졌다.

       

       – 정신을 차려보니 황궁이었습니다.

       

       “….”

       

       – 파라몬님께서 증인이 필요하시다며 저를…

       

       굳어 있던 클라인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의 친우가 한 일이라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스가 파라몬이 하는 일을 막을 수도 없었을 것이니 혼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필요하다고 하는 건 뭐든 도와주거라.”

       

       – 예. 스승님.

       

       “레이스가 된 영혼은 진전이…”

       

       말을 하던 클라인이 고개를 돌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도 뚝 끊어졌다.

       

       “훔쳐 듣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다.”

       

       “클라인님께선 여러모로 걱정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허…”

       

       마주선 사제를 보는 클라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베르테.

       

       몰락한 왕국 출신의 귀족.

       

       신을 위한 삶을 살겠다며 귀족의 성을 버린 자.

       

       하지만 어느 사제보다 이익에 눈이 밝은 자.

       

       “여전히 쓸데없는 짓을 하고 다니더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고생을 마다 할 수는 없지요.”

       

       베르테가 온화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누가 보아도 겸손한 사제의 모범이 되는 태도였다.

       

       하지만 클라인은 베르테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생 같은 소리 하지 말라. 네놈의 재산을 반만 풀어도 고생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니.”

       

       베르테가 그 말을 웃어 넘기며 넌지시 말했다.

       

       “혹시나 해 말씀드리지만, 클라인님께서 내신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클라인이 낸 의견은 단 하나였다.

       

       네크로맨서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것.

       

       성기사와 사제들을 파견해 제국을 도우라는 의견이었다.

       

       한시가 급한 일이었음에도 저들의 반대에 부딪혀 진행되지 못한 일이기도 했다.

       

       “대륙전쟁 때 겨우 걷기 시작했던 네놈들이 무얼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느냐.”

       

       클라인이 베르테를 스쳐 지나가며 낮게 읊조렸다.

       

       “항상 내가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하라.”

       

       그의 친우들은 은퇴하여 편안한 삶을 보내는데 혼자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순간, 클라인의 머릿속으로 음성이 스쳐 지나갔다.

       

       – 가만히 있어야 할 성벽이 자꾸 돌아다니니 문제가 생기지…

       

       크리스가 신탁이라며 내어놓은 말이었다.

       

       그 말처럼 살면 평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교단에 훌륭한 성직자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클라인이 성녀의 동상을 향해 인사를 올리고는 몸을 돌렸다.

       

       “5실버라… 베르테 놈의 욕심과는 너무도 다르군.”

       

       한스의 말에 의하면 분명히 사건의 중심에 크리스가 있다고 했다.

       

       그들의 저주를 해소시킬 수 있는 것 또한 크리스가 유일하다고 했다.

       

       “그 놈만 데려오면…수월하게 진행 시킬 수 있을지도…”

       

        ***

       

       “정말로 이빨이 부러졌어.”

       

       “…안 보여주셔도 괜찮아요.”

       

       기억이 나는 아저씨였다.

       

       지난번에 바쁜 나를 붙잡고 신점을 봐달라고 했던 아저씨였다.

       

       “그러게 음식 조심하라니까.”

       

       나를 향해 입을 쩌억 벌려 부러진 어금니를 보여주는 것이 상당히 보기 거북했다.

       

       굳이 보여 주지는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이걸 다시 자라게 할 방법은 없나?”

       

       “…그건 저한테 오면 안 되죠.”

       

       내가 점봐주는 사람이지 이빨 고쳐주는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사람의 이빨은 한번 빠지면 끝이다.

       

       “점을 보면 이빨이 날 방법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런 거 없어요! 다음!”

       

       어딜 가나 이런 사람들이 있다.

       

       신점이 만능인 줄 아나···.

       

       나는 5쿠퍼를 돈통에 넣으려는 아저씨를 말렸다.

       

       “점도 안봤는데 복채를 왜 넣어요? 그냥 가세요.”

       

       실컷 어금니만 구경시키고는 복채를 내다니···.

       

       점다운 점을 봐줘야 복채를 받을 것이 아닌가.

       

       다음으로 앉은 사람은 아주머니였다.

       

       딱 봐도 왜 왔는지 알 것 같다.

       

       “아줌마, 혼자 살지?”

       

       “…그걸 어떻게?”

       

       “그래보여.”

       

       지독하게도 남자운이 없는 사람이다.

       

       딱 맞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평생을 혼자 살 팔자.

       

       심지어 인연을 만날 기미도 없어 보였다.

       

       “흐음…”

       

       부적이라도 써 줘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아주머니에게서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사실은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예? 그럴 리가 없는데?”

       

       “….조금 기분이 나쁘네요.”

       

       아닌 게 아니라 남자를 만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만난다는 말인가?

       

       아주머니의 주변에서는 인연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 그거네.”

       

       팔자가 아닌데 들러붙었다는 남자.

       

       짚이는 게 있었다.

       

       “아줌마, 돈 많지?”

       

       “그건 또 어떻게…?”

       

       주변에서도 신기한 눈초리들이 이어졌다.

       

       이건 점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낸 것이 아니었다.

       

       입고 있는 옷 부터가 번지르르한데 어떻게 모르겠는가.

       

       “그 사람, 돈 보고 붙은 거야.”

       

       “…내 돈을?”

       

       “그래. 그 남자 계속 만나면 크게 손해 보겠네.”

       

       이런 말을 해 주면 따지고 드는 사람이 있다.

       

       연인이 재산을 노리고 붙었다는데 화가 날 만도 하다.

       

       당장 돗자리를 뒤집어 엎어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니까.

       

       하지만 점이라는 것이 전후 사정을 설명해 주기는 어렵다.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재산을 노릴지는 더 두고 봐야 아는 일.

       

       “….”

       

       아주머니의 침묵이 이어졌다.

       

       곰곰이 생각을 하는 듯했다.

       

       주변에서도 혹시나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아주머니는 귀가 엄청 얇은 사람이니까.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 말과 동시에 감탄이 터져 나왔다.

       

       “허어….!”

       

       “이게 바로 그 용하다는 것이군.”

       

       “용하다 용해.”

       

       어찌 되었든 이 아주머니는 이게 끝이다.

       

       딱히 더 점사가 나오지를 않는다.

       

       “다음!”

       

       “잠깐!…평생 혼자 살아야 하나요?”

       

       “흐음…”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니 제법 간절해 보였다.

       

       팔자를 고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방법이 있기는 한데…”

       

       “뭐든 말해 보세요.”

       

       안 좋은 팔자에 잘 드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이 있다.

       

       딱히 점사가 안 나올 때는 이 방법이 최선이기도 하다.

       

       “사람들 좀 도우면서 살아. 착한 일 하면 복 받으니까.”

       

       덕을 쌓으면 복을 받는다.

       

       당연한 이치다.

       

       이건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떠나가는 아주머니를 보던 나는 다음으로 앉을 사람을 보자마자 욕을 내뱉었다.

       

       “이거 순 도둑놈 새끼네.”

       

       “…예?”

       

       관상 부터가 그랬다.

       

       음흉하며 조용하다.

       

       희미하게 스치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미행하며 조용히 따라다니는 모습.

       

       그리고 무언가를 조용히 가져가는 모습.

       

       영락없이 도둑놈의 모습이었다.

       

       “누가 란돌프경에게 이 사람 신고 좀 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둑놈이 나에게 붙으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아주 다급하게.

       

       “저..저는 백작님의 직속 정보원입니다…!”

       

       “…?”

       

       “범죄자가 아니니 신고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둑 비슷한 직업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쩐지 낮에 올렸는데 댓글이 없더라니….

    비공개회차로 올려버렸네요…ㅠㅠ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e check love fortune, career fortune, financial fortune, compatibility, physiognomy, and points of intere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