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3

       “소피에! 소피에! 진짜 네 말이 맞나 봐!”

       

       굉장히 수상쩍은 모습에 학생들이 서둘러 소피에를 찾았다.

       

       그러나 힌드라스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방금까지 같이 있었는데?

       

       그때 힌드라스타는 이미 현장을 벗어나 강의동 쪽으로 도망치는 중.

       

       아까 동문으로 디안과 나이틀리가 들어오는 순간 몸을 돌려 냅다 뛰기 시작한 것이다.

       

       괜히 인간들하고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서 불필요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지.

       

       물론 디안이라는 저놈은 아주 멍청한 놈이 아니라 불미스러운 소문이 돌면 곧바로 나부터 의심하고 들 것이다.

       

       아마 조금만 인간들을 추궁하면 가장 처음 아카데미 동문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발언한 게 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겠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분명 아이들에게 ‘디안과 나이틀리가 단 둘이서 아카데미 동문으로 나가는 것을 봤다’라고만 말했어.

       

       ‘서로 굉장히 가까이 붙어 있었는데 너무 멀어서 허리를 끌어 안았다거나 뭐 그런 것인지는 모른다. 제대로 보지 못했다’라고도 했고.

       

       거기다 대고 둘이 평소에 수상했다느니 디안이 나이틀리의 치마를 들춰 엉덩이를 주물렀다느니 하는 건 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와전된 것일뿐.

       

       명명백백하게 나는 오직 사실만을 얘기한 거라고. 물론 그게 시끌벅적 왜곡되는 것을 의도하기는 했지만서도.

       

       돌아가는 판을 면밀히 분석해 보니 저놈이 나를 죽이거나 황성에 넘기지 않고 여기 아카데미에 잡아두는 건 내가 여기 학생으로 있는 게 아카데미와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

       

       그말은즉 설령 심증이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예전처럼 나를 족치지는 못한다는 거지.

       

       그리고 있잖아. 진짜 까놓고 말해서 나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전학생이잖아. 전투수석교수라는 높으신 분께서 학생 한 명만 데리고 아카데미 외부로 나가는 것을 우연히 보면 당연히 궁금해서 여기저기 물어볼 수 있는 거 아니야?

       

       예를 들자면 성적우수생만 따로 체계적으로 관리를 한다든지 뭐?

       

       나도 명색이 1회 특기생인데 그런 좋은 게 있으면 참여할 수도 있는 거고. 학업성취도와 의욕이 높아서 그래서 궁금했던 거야. 그것뿐이라고.

       

       문제 있어? 없지? 그럼 나 간다?

       

       라고 말하면 디안이 넘어가 주겠지?

       

       강의동 옆 상점가에 다다른 힌드라스타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힐끔 돌아봤다.

       

       씨발, 좆나 쫄리네 이거….

       

       분탕도마뱀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의외로 힌드라스타의 분탕경력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본래 살던 저기 머나먼 산골짜기 둥지 근처 마물들을 괴롭히다가 마왕의 제의로 참전해 전장을 휘젓던 게 전부.

       

       둥지에서는 본인이 왕이었으니 이렇다 할 제약이 없었고 전쟁터야 애초에 그 자체로 거대한 분탕의 장이니까.

       

       지금처럼 평온한 일상에서의 분탕은 힌드라스타도 처음이었고 그 수위와 선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조차 사실 잘 모른다.

       

       뭐,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배고프니 뭐라도 좀 먹자.

       

       상점가의 디저트 카페에 들어간 힌드라스타가 진열대를 찬찬히 살피다 생크림 케이크를 발견했다.

       

       저번에 디안의 방에 갔더니 그놈이 이걸 맛있게 먹었지?

       

       “여기! 이거 하나 줘!”

       

       힌드라스타가 진열대의 생크림 케이크를 가리키며 다짜고짜 반말했다.

       

       예전 레블랑 용병대 시절의 습관이 그대로 튀어나온 것. 아니, 처음부터 힌드라스타는 존댓말이라는 것을 할 생각이 없다.

       

       “소피에 학생.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그때 누군가 힌드라스타의 무례한 태도를 지적했다.

       

       돌아보니 시커먼 피부에 루비 같은 붉은 눈동자의 다크엘프가 힌드라스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다크엘프답지 않은 순둥순둥한 얼굴의 아카데미 교장 키르린이었다.

       

       넌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참견이야, 라고 하려던 힌드라스타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아무리 힌드라스타가 드래곤이라고는 해도 지난 10년간 레블랑 용병대 생활을 하면서 인간사회 돌아가는 꼴은 제법 안다.

       

       저 검둥이귀쟁이년이 여기 아카데미 최고위자니 잘 보여서 나쁠 것은 없겠지.

       

       “안녕하세요, 교장선생님.”

       

       힌드라스타가 보는 이의 심장을 녹이는 세상 귀여운 미소와 함께 머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그래, 안녕. 소피에. 다른 사람한테는 항상 존대말을 해야지.”

       “알겠습니다, 교장선생님. 사장님! 저 이거 하나 주세요.”

       “너도 생크림 케이크를 먹는 거야?”

       

       힌드라스타가 다시 예의바르게 주문하자 키르린이 말했다.

       

       “안 그래도 나도 이거 먹으려고 했는데, 같이 먹지 않을래?”

       “돈은 교장선생님이 내주시는 거죠?”

       “어? 어어… 그래야지….”

       

       안 그래도 사주려고 했는데 막상 힌드라스타가 대놓고 물어보니 당황한 키르린의 두 귀가 파닥거렸다.

       

       “사장님. 한판 주세요.”

       

       키르린의 주문에 힌드라스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누가 와요?”

       “아니? 우리 둘만 먹을 건데?”

       “그런데 무슨 케이크를 그렇게 많이 시켜요?”

       “늘 이렇게 먹었는데…?”

       

       다크엘프가 원래 저렇게 많이 먹는 족속인가?

       

       하긴 어떤 종족은 많이 먹어도 선천적으로 살이 안 찌는 것들이 있지.

       

       어쨌든 공짜로 먹으니 아무래도 좋아.

       

       지금 힌드라스타는 갑작스럽게 디안에게 잡혀온 터라 돈을 그다지 챙겨오지 못해서.

       

       드래곤답게 아무도 모르는 비밀둥지를 만들어서 거기다 보관해 놨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외출해서 다 챙겨와야겠어.

       

       “아카데미 생활은 어때, 소피에 학생?”

       

       케이크를 먹으며 키르린이 물었다.

       

       “뭐 불편한 점이라거나 건의사항이라거나.”

       “글쎄요? 아직은 일주일도 안 돼서 잘 모르겠는데요?”

       “혹시나 그런 게 있으면 조교나 교수들한테 말하도록 해. 너희가 마음편히 공부할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니까.”

       “그럴게요.”

       “그리고 만약 네가 편입생이고 용병 출신이라고 또 누가 시비를 걸면 그때는 무작정 싸울 게 아니라….”

       “알아요, 알아. 말로 해결하거나 정 뭣하면 정식으로 결투하라는 거죠? 디안 교수한테 다 들었어요.”

       “디안이?”

       

       디안의 이름이 나오자 키르린의 귀가 쫑긋 섰다. 그 변화를 힌드라스타는 놓치지 않았다.

       

       “네. 디안 교수가 저를 따로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렇구나…. 디안이 내가 놓친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기고 있었구나….”

       

       키르린이 얼굴을 붉힌 채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호오, 저것 봐라…? 왜 갑자기 저런 반응을 보이지? 한번 찔러 볼까?

       

       “디안 교수님은 어떤 분이세요?”

       “좋은 사람….”

       

       키르린이 꿈을 꾸는 듯한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말했다.

       

       “디안이 오고 나서 모든 게 바뀌었어…. 이렇게 상점가가 들어서서 매일 점심마다 케이크를 먹을 수도 있고 야생마들을 잡아와서 예산도 아끼고… 특기생 선발도 모두 디안이 짠 계획을 바탕으로 진행한 거야….”

       “오호, 그래요?”

       “전투학과는 정상이 되었고 황녀님께서는 처음으로 나를 칭찬하셨지….”

       

       황녀가 어쩌고 어째? 뭔소리야, 저건?

       

       “쫓겨날 거라는 걱정으로 매일 밤잠을 설쳤는데… 디안이 오고 나서부터는 이제 악몽도 안 꾸고 아침까지 푹 잘 수 있게 되었어….”

       

       키르린의 입가에 멍청한 미소가 내걸렸다.

       

       “정말 대단한 분이었네요.”

       “으응… 디안은 우리 아카데미의 구원자이자 내 삶의 구원자….”

       

       갑자기 입을 꾹 다문 키르린이 눈을 크게 뜨고 힌드라스타를 쳐다봤다.

       

       “방금 마지막으로 한 말은 그냥 못 들은 것으로 해.”

       “뭐라고 하셨는데요?”

       “못 들었으면 다행이고.”

       

       하지만 이미 힌드라스타는 모든 말을 명확히 들었고 저 검둥이귀쟁이년이 디안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까지도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혹시 디안 교수님하고 졸업1반장하고 뭐 일이 있나요?”

       “나이틀리? 왜? 내가 아는 건 없는데.”

       “그게 아니라… 두 사람, 상당히 가까운 것 같아서요. 안 그래도 아까 아카데미 동문으로 단 둘이서만 나갔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아카데미 동문?”

       

       잠시 생각하던 키르린이 말했다.

       

       “나이틀리는 수석이라 따로 심화수업을 하려는 거였을 거야. 종종 그런 일이 있거든.”

       “심화수업이요…. 네에….”

       

       힌드라스타가 말끝을 흐리자 키르린이 물었다.

       

       “왜 그래? 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아니… 아니에요.”

       “으응?”

       “아니에요! 케이크 잘 먹었습니다!”

       

       여지만 잔뜩 던진 채로 힌드라스타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도망치면서 뒤를 힐끔 보니 키르린이 두 귀를 양손으로 꽉 부여잡고 안절부절하는 것이 보였다.

       

       흐흐흐흐흫. 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흐흐흐흐흐흫.

       

       저년 저거 디안을 이성으로 좋아하고 있잖아?

       

       눈앞에 군침이 싹 도는 분탕감을 보자 자신의 분탕질 수위가 과하지는 않았나 걱정하던 것은 금방 잊어버린 힌드라스타였다.

       

       “저기.”

       “깜짝이야!”

       

       막 상점가를 벗어나는 힌드라스타에게 누군가 불쑥 다가와 말을 걸었다.

       

       보라색 사제복을 입은 의무소의 마야 사제였다.

       

       “뭐야, 넌?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어?”

       “하복부의 멍이 다 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왔습니다.”

       “엥? 진작 나았는데?”

       

       힌드라스타가 상의를 말아 올려 매끈한 배를 보여 주었다.

       

       “그렇군요. 무사회복하여 참으로 다행입니다.”

       

       힌드라스타의 배를 본체만체하며 마야가 손에 든 수첩을 펼쳤다.

       

       “그런데, 아까 교장님과 나누신 말씀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디안 교수와 나이틀리 학생에 관한 이야기인 듯합니다만.”

       “그거를 네가 왜 궁금해 하는 건데?”

       “방금 전 여기저기 찰과상을 입은 나이틀리 학생이 의무소를 방문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연유로 상처를 입었는지 알아야만 원활한 치료가 가능하기에.”

       “하앙, 그래? 그런 거라면 말해줘야지. 그러니까 말이야.”

       

       힌드라스타가 떠벌리는 내용을 마야는 모두 수첩에 받아 적었다.

       

       무심한 표정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 # # # #

       

       

       한편 키르린은 먹던 케이크도 내팽개쳐 놓고 아카데미 동문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아까 특기생 소피에가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며 점점 커지는 통에 느긋하게 케이크나 먹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둘이서 동문에 나가서 뭘 어쨌다는 건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응애나아기피아님 후원 감사합니다!!!!! 커피 맛있게 마실게요!
    다음화 보기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