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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일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아르가 드래곤인 걸 들켰어?’

       

       아주 짧은, 일찰나一刹那의 순간 동안 머릿속에서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아직 아니야. 침착해.’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대처해야 한다.

       절대 당황한 티 내지 말고, 당당하게. 

       

       “하하. 드래곤이라뇨. 저희 애는 와이번입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웃으며 상대방의 반응을 살폈다. 

       

       ‘제발.’

       

       정말 다행히도, 눈앞의 여자는 내 말에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후후, 농담이에요. 용족들끼리는 새끼 때 모습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요.”

       “역시 농담이셨군요. 맞아요, 안 그래도 가끔 드레이크 아니냐는 말을 좀 듣습니다. 하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아까 로비에서 달걀 먹을 때부터 보고 있었거든요. 귀여워서 말을 걸어 보고 싶었는데, 이미 주변에 사람이 좀 많은 것 같아서…. 쉬시는 데에 방해가 됐다면 죄송해요.”

       “아뇨, 괜찮습니다.”

       

       나는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 

       

       긴장을 조금 풀고 나서 다시 보니, 눈앞에 있는 여자는 처음 들어왔을 때의 인상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맨 처음엔 완전 분위기에 압도돼서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 이렇게 생글거리며 웃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내 또래 같기도 했다. 

       

       “이름이 아르…라고 하시는 것 같던데, 혹시 저도 아르 손 한 번만 잡아 봐도 될까요?”

       “아아, 네. 아르만 괜찮다면….”

       “쀼우…!”

       

       드래곤이라는 말에 당황해서 눈이 땡그래진 채 내게 꼭 붙어 있던 아르도, 이제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앞발을 쭉 내밀었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아르의 손을 꼬옥 쥐었다.

       

       “…….”

       

       약 삼 초 정도의 침묵이 흐른 뒤.

       

       “정말 손이 부드럽고 말랑하네요. 감사합니다. 힐링이 됐어요.”

       

       그녀는 아르의 손을 놓으며 아르와 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럼 가까이서 보고 얘기도 나눠 봤으니 저는 가 볼게요. 푹 쉬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방에서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나를 바라보고는 “그럼, 또 봐요.”라는 말을 미소와 함께 남기고 사라졌다.

       

       그게 이따가 또 로비에서 볼 수 있으면 보자는 뜻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중요한 건 지금 상황을 무사히 넘겼다는 것.

       

       “휴우….”

       “쀼우….”

       

       나와 아르는 동시에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십 년 감수했네.”

       “뀨우.”

       

       십 년 감수해 봐야 티도 안 날 아르도 그 기분만큼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오래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지쳐 버린 우리는 잠시 동안 사우나의 나무 벽에 등을 기댄 채 휴식을 취했다.

       

       “…좋다.”

       “뀨….”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나무 향이 은은하게 코를 파고들었고, 적당히 따뜻한 온기가 몸을 편안하게 데워 주었다.

       

       그렇게 긴장이 쭉 풀리고, 나와 아르 둘 다 조금 출출해졌을 때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야, 우리 딸기 빙수 먹으러 갈까?”

       “쀼우!”

       

       역시 이럴 땐 달달한 걸 먹고 당을 충전해 줘야 하는 법.

       

       아르를 데리고 나온 나는 로비 건너편의 가게에서 딸기 빙수를 시킨 뒤, 기다리는 동안 옆 가게의 크레이프를 두 개 시켜 아르와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쀼…쀼웃!”

       

       얇게 구운 빵 반죽 안에 든 생크림과, 그 안에 쏙쏙 박힌 과일 조각을 입에 넣은 아르의 눈이 커졌다. 

       

       “맛있어?”

       “쀼우우!”

       

       아르는 아까 있었던, 불미스러울 뻔한 일을 전부 잊은 듯 행복한 얼굴로 크레이프를 베어 먹었다.

       

       “그럼 나도….”

       

       이번에는 내가 생크림에 초코 시럽이 뿌려진 크레이프를 베어 물자, 달콤한 맛이 순식간에 입 안 가득 퍼져 나갔다. 

       

       ‘이야…. 이거 생크림이 진짜 맛있네.’

       

       평소 느끼한 걸 잘 못 먹어서 생크림 케이크도 웬만하면 잘 먹지 않는 편이고, 그래서 이번에도 조금 그 느끼함을 덜기 위해 초코가 들어간 걸 시킨 것이었는데….

       

       이 크레이프에 든 생크림은 그리 과하게 달지 않으면서,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 자연스럽게 단맛을 퍼뜨려 주었다. 

       

       ‘내가 지금껏 먹었던 생크림은 생크림이 아니었구나.’

       

       게다가 초코 시럽이 겉에만 뿌려져 있는 게 아니라 생크림 사이 사이에 알맞게 주입되어 있어, 한 입에 초코가 다 사라지고 맨 생크림과 빵 반죽만 먹게 되는 대참사가 일어나는 걸 원천적으로 봉쇄해 주고 있었다.

       

       감탄하며 한 입을 더 먹은 나는 아르에게 말했다.

       

       “아르야, 우리 한 입씩 바꿔서 먹어 볼까?”

       “쀼우!”

       “그럼 나 먼저 한 입!”

       “쀼, 쀼웃…!”

       

       내가 한 입에 아르의 크레이프를 통째로 집어삼킬 기세로 입을 쫘악 벌리자 아르의 손이 달달 떨렸다. 

       

       “푸흣, 장난이야. 장난.”

       

       나는 아르의 동공지진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 뒤, 적당히 작게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오, 이것도 맛있네. 아르야, 너도 이거 먹어 봐.”

       “쀼웃!”

       “두 입 먹어도 되니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먹고.”

       “쀼우, 쀼!”

       “네가 이게 더 맛있다고 하면 바꿔 줄게.”

       

       크레이프를 둘 다 먹어 본 아르는 둘 중 어떤 게 더 맛있는지 판단하기 힘든 듯, 자신의 크레이프를 쥔 채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진 것처럼 허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결국 나는 아르에게 내 초코 시럽 크레이프까지 반쯤 넘겨준 뒤 나머지를 먹었다. 

       

       “딸기 빙수 나왔습니다!”

       

       곧 나와 아르는 생크림으로 가득 찼던 입을 얼음으로 정화하기 위해 열심히 딸기 빙수를 퍼 먹었다.

       

       “아, 진짜 맛있게 잘 먹었다.”

       “뀨우우….”

       “이 온천 안에 있는 가게는 다 맛있네.”

       

       빙수도 시장에서 파는 빙수보다 훨씬 얼음 입자가 곱게 갈려 있었고, 들어가는 재료들도 신선하고 시럽이나 연유도 꽤 고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월튼 씨야.’

       

       우릴 들여보내 줄 때도 새로 입점할 업체 후보들을 직접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더니, 정말 꼼꼼하게 품질을 검증하고 입점을 시키는 모양이었다. 

       

       “배 부르다. 그치?”

       “쀼우!”

       

       따끈한 물에 몸도 담갔고, 저온 사우나에서 휴식도 취했고.

       맛있는 간식을 먹고 배도 적당히 불렀으니, 이제 남은 코스는….

       

       “아르야, 우리 마사지 받으러 갈까?”

       “쀼우?”

       “엄청 씨워어언한 거 있어. 물이랑은 좀 다른 시원함이지만.”

       

       이런 대규모 온천이라면 없을 수가 없는 서비스. 

       

       물론 가격이 좀 비싼 편이긴 하지만, 우리는 오늘 모든 음식과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후후…. 내가 아까 위치까지 다 봐 놨지.’

       

       빙의 전, 한국에서 혼자 살면서 몸이 너무 뻐근하고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인터넷에 스포츠 마사지를 검색해서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진짜 천국이었지.’

       

       물론 마사지사가 누르는 데마다 아파서 비명을 지르긴 했지만, 받고 난 뒤에는 정말 새로 태어난 것처럼 시원했었다. 

       

       ‘그 뒤로 스포츠 마사지 말고도 그렇게까지 안 아프고 시원한 마사지 종류가 많다는 걸 알게 됐지만…. 가격이 부담돼서 다시 가진 못했었지.’

       

       혼자 월세 자취를 하는 이십 대 청년에게 마사지를 주기적으로 받으러 가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검증된 업체만 들어오는 온천에서 마사지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절대 못 참지.’

       

       나는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좋다니까 받아 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아르를 데리고 마사지 코너로 갔다. 

       

       “안녕하세요. 지금 한 시간 반 코스 바로 가능한가요?”

       

       경험 상 한 시간은 짧았고, 두 시간은 너무 길 것 같으니 한 시간 반으로. 

       

       “네, 가능하십니다. 한 시간 반, 전신 코스로 해 드릴까요? 하이크렌디쉬, 파이 마사지, 니렐린드 마사지, 기타 원하시는 마사지 있으실까요?”

       “으음…. 그냥 부드럽게 받기 좋은 걸로 해 주세요.”

       “니렐린드 마사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1인실로 안내하려는 직원을 불러세웠다. 

       

       “아, 참. 저만 하는 게 아니고, 얘도 같이 해 주세요.”

       “사역마…이신 건가요?”

       “네. 안 되나요…?”

       

       직원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 듯 머리를 긁적였으나, 이내 말랑해 보이는 아르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닙니다. 일단 2인실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안내 받은 2인실 침대에 각각 누웠다.

       

       “쀼우….”

       

       나와 다른 침대에 떨어져 있는 게 조금 불안한 듯, 아르가 쀼우 소리를 냈다. 

       

       “나 여기 계속 있을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르야. 편안히 누워 있으면 마사지사님이 시원하게 마사지해 주실 거야.”

       “쀼우…!”

       

       아르는 호기심 반 걱정 반 정도 되는 얼굴로 앞발을 꼬옥 쥔 채 천장을 보고 얌전히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사역마를 마사지할 사람을 배정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린 듯, 잠시 후에 마사지사 두 명이 들어왔다. 

       

       “와….”

       “어머.”

       

       침대에 얌전히 누운 쪼그만 아르를 직접 본 마사지사 둘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고는 둘이 잠시 물러나 소근거렸다. 

       

       “실장이 후회 안 할 거라더니 진짜였어.”

       “내가 사역마 쪽 하면 안 돼?”

       “나도 사역마 만져 보고 싶은데….”

       “너무 귀여워….”

       “솔직히 이 정도면 돈 내고 마사지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우리 그럼 정확히 반반씩 교대로 하자. 어때?”

       “좋아. 누가 먼저 할래?”

       

       둘은 가위바위보 같은 걸 하더니, 곧 우리 침대 쪽으로 와서 헛기침을 했다. 

       

       “크흠.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손님. 기다리신 만큼 저희가 서비스로 좀 더 시간을 추가해 드릴 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네. 잘 부탁드릴게요.”

       

       …우리를 위한 서비스 맞지, 저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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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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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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