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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0

       *** ***

         

       여일예가 도망쳤다.

         

       나는 마지막에 본 여일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얼굴에 떠오른 것은 분명 당황스러움이었다.

         

       “으음…”

         

       그리고 나 역시 당황스러웠다.

         

       혁기린이 내 마음을 읽고는 상처받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거늘.

         

       정작 진법을 깨트린 쪽은 여일예였으니까.

         

       나는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여일예를 찾아 나섰다.

         

       진법 속의 잔디받을 계속 걷고 있자니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웅크린 뒷모습이 유달리 작아 보였다.

         

       나는 그런 여일예의 옆에 앉았다.

         

       여일예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우울한 눈으로 잔디밭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죄송합니다.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사과할 일은 아니오.”

         

       여일예가 진법을 끊고 도망쳤을 때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내 속내를 보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당장 오늘만 해도 혁기린에게 내 속내를 보인다는 생각에 개꿈까지 꾸지 않았던가.

         

       다만 늘 어른스럽고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왔던 여일예이기에 도망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놀랐을 뿐이었다.

         

       늘 강한 면모만 보였기에 어쩌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강한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것일까.

         

       나는 유독 작아 보이는 여일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동시에 안쓰럽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혈교와 연관이 없었다면, 혈교와 싸우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여일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테니까.

         

       어깨를 감싸는 내 손에 흠칫 놀란 여일예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여일예는 어색한 몸짓으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은공.”

         

       “말씀하시오.”

         

       “은공은 참으로 나쁜 사람입니다.”

         

       말만 듣자면 나를 비난하는 내용이었으나 그런 말을 내뱉은 여일예의 어조는 나긋하기 그지 없었다.

         

       “연인이 된 지도 시간이 제법 지났거늘 눈길 한번 제대로 주시지 않으시다가 이렇게 마음이 약해진 순간에 따스하게 대해주시다니요.”

         

       그런가.

         

       나는 여일예의 힐난 아닌 힐난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후후.”

         

       여일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작게 웃고는 편히 내 몸에 기대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평상시의 여일예와는 다른 모습.

         

       늘 어른스럽게 웃으며 한 발자국 뒤에 물러나 여유로운 미소를 짓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말을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응석을 부리고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일예를 보면서 지금 보이고 있는 이 모습 역시 여일예의 본 모습임을 깨달았다.

         

       표현하지 않았을 뿐 여일예는 내심 연인인 나와 이런 시간을 보내고 이렇게 응석도 부리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나 타인에게 기대고 싶은 욕망 정도는 있을 테니까.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여일예이니 평소에 쌓여 있던 부분도 있었겠지.

         

       나와 여일예는 한동안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저….”

         

       “말씀하시게.”

         

       “…가가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여일예 쪽을 돌아보았다. 이미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일예의 귀가 새빨개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벼, 별로 대단한 의미는 아닙니다..! 독고 이설 소저는 연인도 아닌데 벌써 은공을 가가라고 불렀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점이 그렇게 마음속에 남아 있었을까.

         

       “물론이오.”

         

       “….가, 가.”

         

       “음? 잘 들리지 않소만.”

         

       여일예가 나를 째려보았다. 눈빛은 제법 매서웠지만 그리 얼굴이 붉어서야.

         

       “…가가!”

         

       “왜 부르시오? 여 매.”

         

       “으으으!!”

         

       여일예가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했는지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말없이 그런 여일예의 어깨를 붙잡아 주었다.

         

       늘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여일예가 갑자기 왜 이런 응석받이가 되었을까.

         

       이건 여일예 나름대로의 노력이었다.

         

       마음의 빗장을 열지 못하고 도망친 여일예.

         

       그런 여일예는 마음을 열기 위해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하여 자신의 욕망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치밀어오르는 부끄러움을 어떻게든 다스리려 노력하는 여일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욕망치고는 참 소박하네.

         

       여일예마저 귀여워 보일 정도로 귀여운 욕망이었다.

         

       한참을 발버둥치던 여일예의 움직임이 멎었다.

         

       또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아까와는 달리 숨 막힌다기보다는 느슨한 휴식과 같은 침묵이었다.

         

       “두렵습니다.”

         

       무엇이 두려운가.

         

       그렇게 물어볼 수 있었지만 나는 입을 여는 대신 여일예의 말을 기다렸다.

         

       “대사형에게 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렇소?”

         

       “예. 두렵습니다.”

         

       여일예는 정말로 응석이라도 부리는 듯이 내 몸에 기대어왔다. 완전히 나에게 기댄 상황에 퍽 안심이 되었는지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지은 여일예는 고해성사라도 하듯이 나에게 속내를 토해냈다.

         

       “산장이 불타오르고 그저 세상이 미웠습니다. 무고한 부모님과 산장의 식속들이 살해당했다면 세상 역시 불타올라야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런 비뚤어진 독기와 살심을 품었습니다.”

         

       “점창파의 선사님들. 그리고 선량한 사형제들이 저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저는 그들을 향해 가시를 세웠습니다. 가시에 찔린 선사님들과 사형제들은 난감해 하며 물러섰지요.”

         

       “오직, 대사형만이 가시에 찔리면서도 제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여일예는 그때를 회상하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대사형에게는 못할 짓을 많이 했습니다. 독설을 퍼붓기도 하고 증오를 드러내기도 실망감도 숱하게 안겨 드렸지요. 그때마다 대사형은 아픈 표정을 지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고 저를 계도해 주셨지요.”

         

       “그렇게 대사형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받았는데 저는…”

         

       여일예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참으로 못나지 않았습니까? 받은 것을 따지면 대사형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해줘도 모자랄 판이건만 저란 자는…”

         

       나는 말없이 여일예의 손을 잡아주었다.

         

       “배은망덕한 속내를 전해받을 대사형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생각이 떠오른 순간 저도 모르게 내공의 운영을 중단했더군요. 은공에게는 은혜를 갚는다는 핑계로 이리 붙어 있었으면서…대사형에게는…”

         

       여일예는 그 이후로도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주로 점창파에서 여일예가 사고를 치면 혁기린이 수습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철없었는지.

         

       그리고 그때의 혁기린이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여일예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나는 점차 여일예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일예에게 혁기린은 사형제이면서도 동시에 언니이자 동생이었고 여일예의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 자리잡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속내를 보이는 것이 두렵다.

         

       속내를 보여 실망시키는 것이 무섭다.

         

       “저는…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혁기린과 여일예가 쌓아온 인연의 무게.

         

       그 무게가 바로 여일에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 ***

         

       훈련 도중 도망친 여일예를 데리고 돌아온 호천안.

         

       여일예는 일단 사과부터 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

         

       일행들은 딱히 여일예를 탓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숨기고 싶은 사실 한두 개 쯤은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여일예 소저. 괜찮습니까?”

         

       “…예. 괜찮습니다.”

         

       여일예를 걱정하며 곁을 맴도는 혁기린과 그런 혁기린을 불편해하는 여일예. 그런 여일예의 모습에 어리둥절해하던 혁기린은 여일예가 자신을 불편해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거리를 벌렸다.

         

       여일예와 혁기린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서문연은 한 발자국 떨어진 채 두 사람의 대치 아닌 대치를 바라보았다.

         

       ‘여일예 소저가 속내를 들키고 싶어하지 않았던 대상은 호천안이 아니라 황소월 소저였나.’

         

       예상외의 일이었지만 결국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썩 유쾌한 표정은 아니로군?”

         

       서문연은 옆에서 들려온 당소열의 고개를 들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 상황이야말로 그대가 바라던 것 아니었나? 그런데 영 표정이 별로인 것 같아서.”

         

       바라던 상황이라.

         

       서문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진법 하나 믿고 무모하게 혈교에 맞서느니 차라리 서로의 속내를 알아 사분오열되길 바란 것은 사실이었다.

         

       그 편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러나 막상 그런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흐으음…”

         

       서문연은 자신의 앞에서 의뭉을 떠는 당소열의 의도를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의도와 별개로 저 역시 진법사로서의 긍지가 있습니다. 제 의도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한들 진법에 삿된 일은 벌이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뭐…그렇다면야.”

         

       원하던 대답을 들은 당소열이 한 발자국 물러섰다.

         

       서문연은 문득 궁금해졌다.

         

       거문성의 기운을 타고 태어난 자.

         

       서문연이 펼친 진법을 단번에 꿰어 볼 수 있을 정도의 직관을 보유한 당소열. 그런 당소열의 눈에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보일까.

         

       “당신은 여일예 소저가 다시 진법 수련에 참여할 것이라고 여기시나요?”

         

       당소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깊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성의 없는 대답에 서문연은 궁금증이 치솟았다.

         

       “어째서죠?”

         

       “별 것 아닌 일이니까.”

         

       …별 것 아닌 일이라고?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하는 여일예 소저의 마음이 별 것 아니란 말입니까?”

         

       “아니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뒷머리를 벅벅 긁는 당소열의 모습에 서문연은 자신이 너무 과하게 반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감싸쥐었다.

         

       마음을 충분히 다스렸다고 생각했거늘 통심술에 관련된 일인지라 저도 모르게 민감하게 반응해버리고 말았다.

         

       “결국에는 극복해낼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지?”

         

       “어려운 일입니다.”

         

       “뭐 그리 생각한다면 지켜보면 될 일 아니겠나.”

         

       당소열이 턱을 들어 여일예와 혁기린을 가리켰다.

         

       “저 두 사람이 어떻게 화해하는지 말이야.”

         

       “…좋습니다.”

         

       서문연은 그리 대답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나.’

         

       호천안 일행을 갈라놓기 위해 진법을 전수해주기로 마음먹은 주제에 이 무슨 추한 심경의 변화란 말인가.

         

       제갈성찬과의 일은 모두 끝났다. 통심술은 전개했지만 목표로 했던 진법은 만들지도 못한 채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긴 채 헤어지고 말았으니까.

         

       호천안 일행이 통심술의 부작용을 극복하며 진법을 성취할지라도 이미 깨어진 인연은 돌아오지 않는다.

         

       미련.

         

       그야말로 미련이었다.

         

       그러나.

         

       미련임을 알면서도 서문연의 마음 한구석이 술렁거렸다.

         

       당소열의 말대로 여일예와 혁기린의 대립이 별거 아닌 일이고 어렵지 않게 헤쳐 나갈 수 있다면.

         

       사실 제갈성찬과 빚었던 갈등 역시 자신이 착각했을 뿐 별거 아닌 일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서문연은 고개를 흔들어 떠오르는 상념을 억눌렀다. 여일예와 혁기린이 화해하고 정말로 이들이 진법을 성취해낸다면…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을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지켜보자.

         

       저들이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서문연은.

         

       “너는 늘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을 부렸지! 오늘이야말로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마!”

         

       “좋습니다! 오늘이야말로 제대로 고하를 가려 보도록 하죠!”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진심으로 경을 피워올리며 검을 뽑아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문연은 자신의 옆에 서서 민망한 표정을 짓는 당소열을 노려보았다.

         

       “화해라고요?”

         

       “…본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법이야.”

         

       어설픈 변명을 입에 담는 당소열의 행태와 별개로 두 사람은 전심전력으로 기세를 피워내며 충돌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재주기가 엉망이 되어버렸네요.

    어제는 결국 무단으로 연중을 한 셈이 되었군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현 컨디션으로 보아서는 이런 식으로나마 연재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미리 고개숙여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회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꾸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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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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