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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0

   숲의 이상? 허접 주신이 내어 준 퀘스트를 확인한 나는 몸을 기울이며 다리를 꼬았다.

   

   짐작 가는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당장에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도 많아서 머리가 복잡했다.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에서 숲은 여러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다.

   

   당장 내가 얼빠여우를 만난 장소만 해도 숲이지 않았나.

   

   숲의 주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존재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은 수많은 사건과 퀘스트의 중심지고 그렇기 때문에 숲이라는 단서만을 가지고 무언가를 추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허접 주신도 그를 알기에 얼빠여우에게 질문을 던지라 이야기한 것일 테지.

   

   문제는 지금 내 눈 앞에 기죽어 있는 얼빠여우한테 굳이 말을 걸고 싶지가 않단 점이지만.

   

   생각해봐. 내가 이 변태한테 무언가를 물어보는 순간 신이 나서 꼬리를 흔들 거 아냐.

   

   어쩌면 자길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이상한 걸 요청할지도 모르고.

   

   …그래도 어쩌겠냐. 퀘스트 내용을 따르긴 해야 해야지.

   

   “얼빠여우. 여태 뭘 하다 온 거야? 내가 없는 공기를 견디질 못하는 변태가 어지간한 일 때문에 늦은 건 아닐 것 같은데.”

   “…으음. 그것이.”

   

   얼빠여우가 말을 아끼는 모습에 자연스레 눈썹이 내려갔다.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 녀석이 말을 줄인다고?

   

   그럼 둘 중 하나야. 도저히 나한테 말해줄 수 없을 만큼 역겨운 무언가거나. 아니면 진짜 중요한 무언가거나.

   

   평소의 얼빠여우를 생각해보면 전자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긴 한데. 허접 주신이 퀘스트를 내어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 또 후자일 것 같고.

   

   으음. 결국 확인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건가.

   

   “흐응♡ 주인의 말에 반항하다니 별로 간절하지 않나봐?♡ 멍멍아?♡”

   “어. 어어어.”

   “지성을 포기한 짐승인 줄 알았더니 짐승 노릇조차 제대로 못하는 거야?♡ 진짜 허접이네♡ 이딴 거한테 낭비한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야♡ 차라리 변태 사도를 옆에 데리고 있는 편이 낫겠어♡”

   “그 놈의 이름이 왜 나오는 것이냐!”

   

   버럭 소리를 내질렀던 얼빠여우는 차디 찬 내 눈빛을 마주하고는 꼬리를 말았다.

   

   “이젠 대들기까지 하는구나?♡ 숲에 사는 짐승도 복종의 뜻은 알 텐데 말야♡ 짐승만도 못한 쓰레길 주인이라고 부르는 심정은 어떨까나♡”

   “…”

   “사과해♡ 네 밑에 있는 불쌍한 애들한테 사과해♡ 이딴 변태라서 미안하다 사죄하면서 혀 깨물고 죽어버려♡”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던 얼빠여우는 어깨를 떨다가 바닥에 주저앉고서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얼빠여우한테도 도발이 먹히긴 하는 건가?

   

   제대로만 하면 이 빌어먹을 변태도 가지고 놀 수가.

   

   “정말 감사합니다아아…”

   

   교태가 잔뜩 섞인 목소리를 들은 순간 절로 얼굴이 굳었지만 얼빠여우는 내 싸늘한 시선 아래에서 헉헉대고 있을 뿐이었다.

   

   진짜 이딴 거랑 계속 대화를 해야 하나. 진지하게 내쫓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뒤늦게 정신을 차린 얼빠여우가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다잡았다.

   

   “그으. 오해하지 말거라. 본녀가 말을 고른 이유는 어디까지나 너무 별 볼일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니.”

   “…별 볼일 없다고?”

   “그래. 예술 교단의 장신구를 모으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왔다 말하기엔 너무 위엄이 부족하지 않으냐.”

   

   예술 교단의 물건에 대해 들은 순간부터 지금 나온 종류를 모두 다 모으기 위해 돌아다녔으며 심지어 예술 교단의 본진에 가서 변태사도를 닦달하기까지 했다는 얼빠여우의 설명에 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뭐라고 해야 하지?

   

   이제 와서 위엄을 챙기려고 그랬다는 거?

   

   숲의 주인이란 작자가 장신구에 홀려서 숲을 내버렸다는 거?

   

   심지어 그걸 찾으러 돌아다니다 제작자를 겁박하기까지 했다는 거?

   

   하아아. 어쩐지 예술 교단의 장신구를 더럽게 많이 가지고 있더라니.

   

   간신히 정신을 붙잡은 나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있는 음침한 숲에는 아무 일 없는 거야?”

   “숲? 숲이 갑자기 왜 나오느냐?”

   “말대답 하지 마. 짐승.”

   “그 눈 참 좋… 크흠. 본녀가 지키는 숲에 무슨 일이 있겠느냐. 그 곳에 본녀의 본신이 있는데 말이다.”

   

   아무 일이 없다고? 그럼 왜 허접 주신이 이런 퀘스트를 내어준 거지? 허접 주신이 무능한 변태이긴해도 이런 일로 장난을 치진 않을 텐데?

   

   “아. 그래. 다른 숲에는 문제가 생겼다고 듣긴 했다. 자그마한 숲을 지키던 아이 둘이 사악한 술법에 희생당했다던가.”

   “…그거 계속 지껄여봐.”

   “본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북부의 늑대가 제멋대로 찾아와서 전해주고 간 이야기이니.”

   

   자신이 아는 것은 방학 기간 동안 메비다와 더모굴을 지키던 아이들이 희생당했다는 것 뿐이라는 이야기에 난 입술을 곱씹었다.

   

   그 쪽 영역이라면 흑마법사들이 있는 곳이잖아.

   

   토벌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일정 확률로 귀찮은 이벤트를 일으키는 놈들.

   

   거기에 있는 녀석들이 숲의 주인 둘을 처리했다면.

   

   이건 큰 일이 맞아.

   

   – 띠링!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숲을 집어삼키려는 것들]

   [악신의 교단과 결탁한 흑마법사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를 막아내십시오!][보상 : ???][실패시 : GAME OVER]

   

   오랜만에 보는 끝을 알리는 문구에 길게 숨을 내뱉은 나는 창을 내리고 진중한 눈으로 얼빠여우를 바라봤다.

   

   내 표정이 달라진 것을 보고 무언가 눈치 챈 듯 얼빠여우의 얼굴에도 진지함이 깃들었다.

   

   “북부의 늑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생각했다만 아닌가 보군.”

   

   이는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까지 내가 해 온 일들을 알고 왜 그런 일들을 했는지 아는 할아버지는 한탄이 섞인 목소리로 자그마하게 중얼거렸다.

   

   <계시가 내려진 게로구나.>

   ‘괜찮아요. 할아버지.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 거에요.’

   

   흑마법사와 관계된 이벤트가 등장했을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은 3학년 때다.

   

   이 때 발생하는 이벤트는 흑마법사들이 모든 걸 걸고 준비하는 것이기에 그만큼 까다롭지.

   

   2학년 때의 이벤트도 귀찮은 건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3학년 때 일이 벌어지는 것보다야 낫다.

   

   지금처럼 무언가 사건이 생기고 나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알게 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냥 교회에 맡기는 것이 어떠냐. 흑마법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아무리 부패한 교회라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럼 오래 걸리잖아요.’

   

   흑마법사들의 음험함은 쉬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다.

   

   양지의 햇빛을 피하며 어둠 속에 숨어든 이들은 그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자취를 가리는 데에 능하니까.

   

   교회의 사람들이 몰려간다한들 빠르게 일이 처리되진 않을 거다. 어쩌면 괜한 기회를 주는 게 될 수도 있지.

   

   그렇지만 내가 직접 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썩은물인 나라면 흑마법사의 음험함을 가뿐히 분쇄할 수 있다.

   

   그들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들의 음험함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뭣보다.

   

   숲의 주인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단 말야.

   

   내가 움직이지 않아서 그들이 죽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면. 나 당분간 잠 제대로 못 잘 것 같다고.

   

   ‘괜찮아요. 할아버지. 잘 준비하고 갈 테니까.’

   

   나도 마냥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려는 것은 아니다.

   

   상대는 나를 모르고 나만 상대를 아는 상황인데 왜 굳이 그래야 하겠는가.

   

   당연히 최악의 경우까지 대비해가면서 움직일 거다.

   

   북부의 늑대가 직접 움직이고 있다 그랬으니 얼빠여우를 통해 그의 협력을 구할 것이고.

   

   변태 사도를 불러내어 전력을 보강할 거고.

   

   아드리를 데려가는 걸로 흑마법에 대한 대비까지 할 생각이니까.

   

   <…정말이냐?>

   ‘저도 제 목숨은 아깝거든요.’

   

   여태 내가 목숨을 걸어가면서 움직였던 건 예상치 못한 위기가 생겼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뿐이지 않나.

   

   난 딱히 내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세상을 위해 일 할 생각이 없다. 그건 페이비처럼 고결한 사람이 할 일이지 나 같은 소시민이 할 일이 아니니까.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하거라.>

   ‘말씀 안 하셔도 그렇게 할 거에요.’

   

   이렇게 한참을 설득하고 나서야 할아버지가 이번 일에 납득을 해줬다.

   

   정말. 주책이 심하다니까. 내가 여태까지 넘긴 위기가 몇 개인데 이딴 곳에서 무너질 리가 없잖아.

   

   근데 생각해보면 진짜 나쁘지 않은 상황이긴 하네.

   

   한 시 빨리 움직여야 하는 것이 흑마법사 관련 이벤트인데 방금 던전의 끝을 본 나는 언제건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얻어낸 셈이니까.

   

   지금 당장 기용할 수 있는 전력도 상당히 괜찮고 말야.

   

   외부로 빠져나가려면 4인 이상의 사람이 뭉쳐 있어야 한단 사실이 조금 걸리긴 하는데.

   

   아. 그러고 보면 그 쪽에 괜찮은 던전이 하나 있지.

   

   친구들한테 거기 공략하라고 이야기한 다음 난 따로 움직일까.

   

   이거 괜찮겠다. 이유야 적당히 만들어서 붙이면 그만이고. 정 안 되면 이번에 얻은 소원권을 사용하면 되잖아.

   

   진짜 최악의 경우엔 페이비의 도움을 구할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어.

   

   스스로가 떠올린 계획에 만족하고 고갤 주억거리던 나는 방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고갤 돌렸다.

   

   “루시 알른. 안에 있나?”

   

   아서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입가에 절로 웃음이 피어났다.

   

   드디어 던전 바깥으로 나왔구나! 자기들이 패배했다는 걸 깨닫고 시무룩해졌구나!

   

   흐흐흫! 그러게 왜 도발에 넘어오고 그래.

   

   못 이길 것 같으면 자존심이 짓뭉개지는 상황에서도 참아야지.

   

   응?

   

   피식 웃음을 흘린 나는 폴짝하고 칼의 등 뒤에서 내려와서 문을 열기 위해.

   

   “…저 아가씨.”

   

   움직이려다가 에린의 말을 듣고 멈췄다.

   

   “왜. 허접 에린.”

   “지금 이 상황을 친우분들에게 보여드려도 괜찮습니까?”

   

   응? 이 상황이라니?

   

   고갤 갸웃거리며 고갤 돌린 나는 에린이 말한 게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게 됐다.

   

   내가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생각을 않는 칼.

   

   방금 전 내가 폴짝 뛰는 모습을 보고 코피를 줄줄 흘리는 얼빠 여우.

   

   한 쪽에 마구잡이로 늘어서 있는 예술 교단의 장신구.

   

   “영애?”

   “영애님? 뭔가 하고 계신가요?”

   “…좀 기다려. 허접들. 찌질한 패배자들이 왜 참을성마저도 없는 거야?”

   

   진짜 큰일 날 뻔 했다.

   

   이건 친구들한테 보여주기엔 너무 심연의 풍경이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해를 살 뻔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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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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