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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0

    <430 – 시험상대2>

     

    아카데미는 2학기 중간고사 시험상대들의 등장으로 떠들썩해졌다.

     

    “들었어? 트로이 왕국이라는 남부의 소국에서 기사학부 학생들의 시험상대로 구세대 기사들의 자제들로 이루어진 견습기사단을 보냈대.”

    “좋겠다. 거긴 잘생긴 남자들 많겠지? 우린 <무도회에 입문하자> 시험상대로 엄청 깐깐한 귀족부인들이 잔뜩 초빙 당했는데…”

    “오 뭐냐. 옷 잘 입고 허리는 개미처럼 쫙 빠진 귀족여자가 잔뜩 나온다니, 그거 천국 아니냐?”

     

    지나가던 손오천이 원숭이 아니랄까 봐 여자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다.

    하급반 학생들이 바짝 얼어서 눈치만 보고 있자 이사벨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옆에서 손오천의 귀를 잡아당겼다.

     

    “불쌍한 애들은 왜 괴롭히고 그래?”

    “아야야. 거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냐?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호감표시 좀 할 수도 있지.”

    “넌 무도회를 몰라도 너무 몰라. 여자들의 정치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아? 마음에 드는 남자를 노리는 경쟁자가 있거든 춤으로 결투도 벌여.”

    “하. 이 몸이 수인이라고 너무 무시하는군. 춤으로 어떻게 결투를 벌이냐. 칼이라도 들게?”

    “제 멋대로 날뛰는 댄싱슈즈를 신고 누가 더 오래 망신을 뻗치지 않고 버텨내는지 승부를 겨루지. 결투참가자가 감당할 수 없는 움직임이나 속도로 날뛰는 신발을 견디려면 얼마나 많은 춤을 배우고 유연성을 높여야겠어?”

     

    손오천의 입이 떡 벌어졌다.

     

    “미친 거 아니냐? 그딴 저주받은 아이템을 자기 의지로 신고 버티기 대결을 하다니. 정말 상남자스럽군!”

    “상여자스럽다고 해야지. 유망한 남자 꼬시려고 다리를 180도로 찢는 동작도 연습하고 발이 부르터지도록 구속화나 강철신발을 신고 연습하는데.”

    “연습은 또 왜 그딴 고문도구를 신고하냐?”

    “댄싱슈즈들의 성미가 고약해서 신은 사람이 오래 버티면 무게를 늘리거나 발을 조이거든.”

    “너희들 용케 그딴 강의를 듣고 있구나?”

     

    하급반 여학생들이 멋쩍어하며 웃었다.

     

    “알아주니 고맙긴 하네요.”

    “솔직히 춤이나 추면서 꿀 빨려고 들어간 강의인데 이렇게 개빡셀 줄은 저희도 몰랐어요.”

    “안데르센 대공자님이 춤 잘 추는 여자가 취향이라고 할 때 혹하질 말았어야 했는데…”

    “…”

     

    그 지뢰남은 자기강의랑 추종자들만 나락으로 데려가는 게 아니라 호감을 가진 사람들도 모조리 나락으로 처박는 건가?

    앞으로 안데르센이랑은 인사도 하지 말아야겠다며 손오천이 남 몰래 다짐했다.

     

    “어머. 그래도 마냥 나쁜 점만 있지는 않답니다? 이 강의, 제대로 들으면 민첩경험점이 무려 10점이나 오르거든요!”

     

    등장과 동시에 하급반 여학생들을 주눅 들게 만든 당사자는 춤추는 봉황이 새겨진 부채를 펼치며 입가를 가린 백작영애 아카디아였다.

     

    “그건 아카디아 님이니까 가능한 거잖아요.”

    “고난이도 도전동작과 댄싱챌린지는 저희 같은 평범한 학생은 못 한다고요…”

    “후후후! 그럼 이 강의에서 1등은 제가 되겠군요. 모쪼록 2위를 목표로 열심히 정진하시길!”

     

    고개를 축 늘어뜨리며 패잔병처럼 떠나는 하급반여학생들의 뒷모습에 손오천이 머리를 긁적였다.

     

    “거 뭐냐. 그쪽은 원래 좀 착한 편 아니었나? 성격이 좀 바뀐 것처럼 보이는데.”

    “후후후. 최근 새로운 취미가 생겼거든요. 공작가문의 명예도 실추되었으니 이제 가문 빨로 득을 보던 제 실체가 드러날 거라고 뒤에서 험담을 일삼던 소인배들을 실력으로 꺾어주고 찍 소리도 못 하게 만드는 취미.”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손오천은 순순히 수긍했다.

    높이 떠오른 새가 더 오래 추락하듯이 아카디아에 대한 험담은 제법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걸 꿋꿋이 견뎌내고 이제는 그녀와 같은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다른 학생들의 기가 죽도록 만든 아카디아의 저력은 내심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손오천 씨의 시험상대는 어떤 사람들이 왔나요?”

    “이 분위기에서라면 역시 제일 악질인 녀석들로 손꼽아야겠지? <원숭이도 알 수 있는 상덕치인> 강의에서 제국의 관료들을 초빙했다고 한다.”

    “어머. 제법 학식이 느껴지는 강의네요?”

     

    이사벨이 배신감마저 느끼는 얼굴로 손오천을 올려다보았다.

     

    “상덕치인은 또 뭐야. 너 그런 강의도 들어?”

    “실은 무슨 필살기 가르쳐주는 줄 알고 들었다. 필살기는 옘병 글줄만 읊어대는데 미치는 줄 알았지.”

    “그럼 그걸 왜 들었어?”

    “강의를 너무 적게 신청해서 이거 안 들으면 포인트로 학점을 사든지 1년을 꿇어야 된다더라.”

    “…원숭이수인 낚기에 최적화된 강의명에 당했네.”

     

    그래서 저게 도대체 뭔 강의인가.

    넋 나간 이사벨에게 손오천이 대신 설명했다.

     

    “상덕치인이란 거 뭐시냐. 괴력난신의 반대되는 말이라더군.”

    “구체적으로는 뭘 하는 건데?”

    “괴력난신에 속하는 특별한 마나운용술과 마법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일상의 노력과 덕성으로 법과 제도, 인간의 힘을 발휘해 위기를 헤쳐 나가는 행정학부의 방식을 배운다더만.”

    “네가 강의를 단단히 잘못 고른 건 알겠네. 그 정도면 낙제위기 아니야?”

     

    손오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듣고 놀라지나 마라. 현재까지 내 성적은 강의실 내에서 1등이다.”

    “말도 안 돼!”

     

    이사벨이 격하게 반발했다.

     

    “지젤은 원래부터 지능이 높아 보이는 사람이니까 이해할 수 있어. 오크노디도 재단의 조기교육을 생각하면 불편해도 수긍은 가. 그래도 넌 아니지.”

    “앙? 사람을 무슨 깡통 취급하는 거냐. 행정학부 교양강의의 에이스를 무시하지 말라고.”

     

    아카디아가 조신하게 부채 너머로 소리 죽여 웃었다.

     

    “행정학부라고 너무 편견에 사로잡혔나보네요. 그쪽 강의도 만만찮게 막장이랍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득점을 받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요?”

    “백작영애님은 짐작 가는 구석이 있습니까?”

    “가령 왕실에서 흉년에 대비해 올해는 곡식을 두 배를 더 거두겠다고 발표했다고 칩시다. 괴력난신에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곡식을 더 거둘까요?”

     

    이사벨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비료를 개발하거나 개간법을 바꾸어서…?”

    “훗. 머리 나쁜 소리를 하는군.”

     

    손오천이 바로 비웃으며 끼어들었다.

     

    “평소에 부단히 단련한 근력의 힘으로 두 배 더 많은 곡식을 갈취한다. 들키면 귀찮아지니까 도적으로 위장해서 이왕이면 적대영지의 곡식을.”

    “하아? 그러면 굳이 행정학부에서 가르침을 베풀어줄 이유도 없잖아.”

    “정답인데요?”

     

    아카디아의 선언에 이사벨은 넋이 나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무슨 짓을 저지르든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행정학부에 전해지는 오랜 격언이죠.”

    “행정학부는 각국의 귀한 혈통을 지닌 윗분들과 공부 잘하는 똘똘한 녀석들이 다니는 학부라고 하지 않았어…?”

    “맞는데요?”

    “영애님의 말씀에 세계 각국의 미래가 진지하게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웃음을 참느라 부채 너머로 아카디아의 어깨가 더욱 크게 들썩거렸다.

     

    “편견을 버리고 보아요. 어차피 대부분의 영지에서 행정을 맡은 실무자들은 그냥저냥 적당한 실력을 지녔죠. 전임자들을 뛰어넘는 신묘한 학식을 발휘해서 새로운 비료를 개발하거나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땅을 개척하긴 힘들 거랍니다.”

    “그렇기는 하겠죠…”

    “그에 비하면 남의 성과를 훔치거나 자기 영지의 농민들을 수탈하는 일은 훨씬 수월하고 현실적이죠. 하지만 마음만 급해서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면 부작용만 커질 뿐이고요.”

    “이웃영지와 영지전이 나든, 영지의 평판이 떡락하든 하겠죠.”

    “그러니 들키지 않는 기술, 저지르더라도 안전하게 저지르는 기술이 중요한 거랍니다. 덤으로 위에서는 어떤 비겁한 수가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강의를 들으며 터득할 수 있죠.”

     

    분명 쓰레기 같은 강의인데 아카디아 백작영애의 말을 들으니 왜 실용적으로 들리지…?

     

    “상덕치인, 거 좋은 말이지. 평소에 근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면 필살기를 쓰지 않고도 평타로 빼앗을 수 있으니 얼마나 보람찬 일이냐?”

    “교수님의 글줄을 잂는 수고스러움이 미안해지네… 넌 교수 욕하면 안 돼 진짜.”

     

    이사벨의 핀잔에도 손오천은 으하핫 호탕한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그런데 두 분, 디가 듣는 강의에 찾아올 시험상대에 대한 소문은 들으셨나요?”

     

    아카디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백작영애의 커넥션에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걸린 모양이었다.

    이사벨이 표정을 굳히며 되물었다.

     

    “지젤한테 물으면 알 수야 있겠지만 아직 묻지는 않았어요. 어디서 뭐가 오는데 그리 걱정이세요?”

     

    아카디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랑악단을 데려온다는 소문이 있더라구요.”

    “악단이 뭐가 문제인데요?”

    “연주를 듣는 사람들이 단체로 졸도하거나 혼란상태에 빠져 온갖 사건을 일으키고, 삼일밤낮을 잠을 못 자서 괴로워하기도 하는 상태이상을 마구 뿌려대는 악단이라 그렇죠.”

    “아, 그거 설마… 범죄자 출신 연주자들이 모여서 만든 <혈음악단>아니에요? 에소니아 모험단 시절에 얼핏 들은 기억이 나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던 이사벨이 흠칫 손을 움켜쥐었다.

     

    “전쟁터에서 지나가던 자기들 마차에 제국군 화살이 날아왔다는 이유로 소국의 군대에 광역광화버프를 걸고 돌격시켜서 3천 대 3만의 전쟁을 승리시킨?”

    “네. 그 혈음악단이 맞답니다.”

     

    무슨 시험상대로 그딴 악단을 불러.

    강의 듣던 1학년들을 교수한테 돌격시켜서 다 죽일 일이라도 있나.

    기가 막힌 심정이야 어쨌건 손오천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불쑥 물었다.

     

    “그래서 거 어느 강의를 말하는 거요?”

     

    아.

    오크노디, 얘가 듣는 강의가 한두 개가 아니었지.

     

    “제가 알아낸 바로는 <피크닉으로 힐링하기>라고 하네요.”

    “아니 싯팔.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안데르센 대공자가 듣는 강의였잖아.”

    “…”

     

    손오천의 다짐이 더욱 공고해졌다.

    앞으로 안데르센이 다가오는 모습만 보여도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야지.

    그런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날개달린 수인들까지 1학년 시험상대로 찾아온다는 소식은 조금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기엔 온갖 강의들의 시험상대로 초청된 이들 가운데 너무 빌런스러운 시험상대들이 많았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둠의 퍼리단(존재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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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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