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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0

       

       

       자신을 에른스트 로베르트 슈바르츠발트(Ernst Robert Schwarzwald) 중좌라고 밝힌 나치 장교는 자기소개를 끝마치고는 빙긋 웃었고,  구로베 교수는 그런 중좌를 경계하며 물었다. 

       

       『나를 어떻게 알지.』

       

       나이도 비슷해 보였기에 혹시나 뭐 독일유학시절 동창이라거나 그런 사이일까 싶었지만, 구로베 교수는 슈바르츠발트 중좌라는 사람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구로베 교수의 질문에, 중좌는 대답 대신 품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들었다. 

       

        ‘뭐지? 저 노트는……’

       

       평범한 필기용 노트같은데. 중좌는 그 노트를 들고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저는 레러 크로버의 연구노트를 보고 감명받았습니다. 특히 프뉴마·젤레·네르프·플라이쉬에 대한—』 

       

       중좌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노트를 뒤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 물론 노트에는 일본어로 영(靈)·혼(魂)·백(魄)·육(肉)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만. 아무튼 영혼과 육체에 대한 수준높은 고찰이 아주 인상깊더군요. 저희 아넨에르베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 것도 아닌데 독자연구로 여기까지 알아내다니! 게다가 일부 영역에선 저희도 미처 알아내지 못한 것까지—』 

       『내 연구노트가 그곳에 있었군. 교수들이 넘겼나.』 

       

       구로베 교수는 명백히 분노한 듯한 말투로 중좌의 말을 끊었다. 그나저나 구로베 교수의 연구노트라. 그 노트는 무엇이고, 교수들이 넘겼냐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 그때 일인가.’

       

       불량배 다까시마 요시오가 괴물로 폭주했을 때. 불량배 요시오는 구로베 교수의 연구실에서 각종 혈청과 함께 연구노트를 훔쳤다고 했었다.

       

       그것이 교내 대동아공영회 교수진에게 넘어갔다가, 히가시노리 박사에게 넘겨지고, 결국에는 저 나치 장교의 손에 쥐어지게 된 건가? 정황상 그런 듯 했다. 

       

       슈바르츠발트 중좌는 연구 노트를 아주 귀중한 물건이라도 된다는 듯 쓰다듬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도 소중한 물건이라고 짐작합니다만, 레러 크로버, 이 노트는 이제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나오는 용건은 무엇이지. 공격은 어째서 멈춘 것이고. 우리를 인질로 잡을 셈인가?』

       『공격? 인질? 제가 당신을? 당신같이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을?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중좌는 노트를 손에 들고 흔들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이 노트를 읽었을 때부터, 언젠가 당신을 공식적으로 초대할 준비를 해두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급작스럽게 올 줄은 미처 몰랐기에 병사들이 실례를 범했습니다만, 양해를.』

       

       중좌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한 번 장교모를 벗으며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했다. 구로베 교수는 그 모습을 말없이 쳐다보다가 물었다.

       

       『나를 초대할 셈이었다고? 무슨 이유에서지?』

       『간단합니다. 저희에게 오십시오. 저희 아넨에르베의 일원이 되십시오!』

       『……!』

       

       이 말에는 구로베 교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놀랐다. 이곳에 잠입한 우리들을 죽이지 않는 이유가, 구로베 교수라는 유능한 인물을 회유하기 위해서였다고? 중좌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레러 크로버! 당신은 이 노트를 되돌려받기 위해 이곳에 침투한 것이겠지요? 당신의 믿을 수 있는 제자들과 함께 말입니다.』

       

       ‘……어라.’

       

       중좌는 뭔가 오해하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그저 여길 때려부수러 온 건데. 하지만 중좌가 이렇게 오해해주는 쪽이 오히려 우리로서는 나은 방향이었기에, 구로베 교수 역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침묵을 긍정으로 판단한 슈바르츠발트 중좌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노트는 당신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대동아공영회에는 일절 알리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몇 분 전, 히가시노리 박사로부터 아무 일 없냐는 무전을 받았지만, 아무런 일도 없다고 응답했지요.』 

       

       그래서 경보 알람이 울리지 않았던 거구나. 이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여길 잠입했다가 발각되었다는 것이, 히가시노리 박사에게는 물론 대동아공영회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중좌는 이어서, 이제서야 구로베 교수를 제외한 우리들을 발견했다는 듯이 우리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너희들, 레러 크로버의 제자들인가? 그렇다면 너희들도 환영이다. 레러 크로버의 제자라면 모두 우수하리라고 믿는다. 훌륭한 유겐트 청년단원이 되겠지!』 

       

       ……아니, 구로베 교수를 회유하더니만, 우리더러는 유겐트가 되라고? 히틀러에게 충성하는 소년병이 되란 말이야? 그런 어처구니가 없는 중좌의 말에, 이유하가 나에게 작게 물어왔다. 

       

       “유겐트?가 무엇이오?” 

       “독일판 보이스카웃 같은 거야.”

       “보이스카웃은 또 무엇이오?”

       

       아니, 여기서부터 설명해줘야 하나.

       

       “어…… 청소년 단체? 애들 모아놓고 자립심과 생존 능력을 키우는 그런 건데. 야영도 하고, 탐험도 하고.”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소만.”

       “유겐트는 거기에 더해서 군사훈련도 받는 거야.”

       

       내 설명을 들은 이유하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이들을 데려다가 병정놀음이라니, 참으로 할 짓도 없나 보오.” 

       

       그러게. 애들 데려다가 뭐 하는 짓이래. 

       

       아무튼, 슈바르츠발트 중좌는 구로베 교수를 회유함과 동시에 우리에게는 유겐트가 되라고 권유해 왔다. 

       

       ‘……구로베가 우리 편이라 다행이지. 함께 오길 잘 했어.’

       

       상황이 이상하게 꼬이긴 했지만 일단은 다행이었다. 아까는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의외로 아무런 탈 없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사보타주를 해내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것은 아쉽지만, 우선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만 생각하자. 저 슈바르츠발트 중좌라는 양반의 비위를 좀 맞춰주면 일이 좀 더 쉽게 풀리겠지. 

       

       ‘흠…….’

       

       이건 어떨까. 나는 손을 들며 질문했다. 

       

       『중좌! 질문이 있습니다!』

       『음? 무엇인가.』

       『유겐트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희같은 동양인도 유겐트가 될 수 있습니까?』 

       『좋은 질문이군! 열등인종으로서 우리 게르만인과 어울릴 수 있는지 걱정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나는 ‘이 뻐킹 레이시스트야’라는 뒷말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고, 중좌는 선글라스 고글 너머로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자네는 피부색도 밝고 신체 비율도 균형잡혀있군. 야파나(Japaner) 치고는 키도 크고 말이야.』

       『그게, 실은 조선인입니다.』 

       『아하! 역시 그랬군! 아지안 인종은 대부분 열등하지만, 코레아나(Koreaner)는 그중에서는 유전적으로 우수한 편이지.』  

       

       ……이걸 칭찬으로 들어야 하나? 

       

       『감사합니다.』

       『그래. 지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한 「키테이 손」의 경우만 봐도, 지배민족인 야파나의 그것보다 우수한…… 이런, 이렇게 말하면 일본인들이 듣기 싫어하겠군. 일본인은 게르만인과 생물학적으로 별개의 인종이기는 해도, 아리아인과의 동맹이 될 자격을 갖추었는데 말이야.』 

       

       자신의 이마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한 중좌는 다시 우리들을 둘러보며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런저런 말은 했지만, 모두 각성자인데다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생도들로 보이는군. 인종은 걱정하지 말고, 내가 줄을 대어 줄테니 언제든지 도이츠로 와서 유겐트 단원이 되도록 하게. 마침, 나의 딸 요한나도 일본에 관심이 아주 많으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허락이라든지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서, 오늘은 우선 집으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물론! 하지만, 레러 크로버와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만 잠시 기다리도록.』

       

       ‘좋아.’

       

       의외로 잘 풀릴 것 같았다. 구로베 교수와는 별개로,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유겐트가 되고 싶다는 거짓말로 여기서 빠져나갈 구석이 생긴 것이다. 

       

       흡족스럽게 나와 내 동료들을 바라보던 중좌는 문득 물었다. 

       

       『그런데, 도이츠어는 할 줄 아나? 그것이 유겐트의 최소 조건이야. 도이츠에서 아지아 언어따위는 통하지 않으니까.』 

       

       아니, 뭐라고. 독일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니 너무 허들 높잖아. 단어들부터가 양심없이 길어서 도무지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나는 손을 들고 중좌에게 물었다. 

       

       『저기, 제가 영어는 꽤 할줄 아는데, 영어는 안 통할까요?』

       『영어? 엥글리쉬? 어째서 도이츠어가 아닌 영어를 배웠지?』

       『그게 아무래도 영어는 노래나 문학같은 걸로 접할 일도 많고, 일단 세계공용어다 보니까……』 

       할트 디 프레써! 그 입 다물어어어어어어———엇!』

       

       중좌는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 듯이 부들거리며 미친놈처럼 외쳤다!

       

       『영어로 쓰인 수천 수만의 문학작품보다, 잘못 쓰여진 움라우트 하나가 더욱 위대하다! 우리 신성한 게르만족의 언어야말로, 오이로파와 아메리카를 제패하고 서구 세계의 공용어가 될 것이다아아아아아—앗!』

       

       중좌의 미친 듯한 부르짖음이 끝나자 사방은 모두가 입도 뻥긋하지 않는 정적에 휩싸였고, 웅웅거리며 기계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작게 들려왔다. 

       

       ‘……미친 놈인가. 이런 걸로 긁힌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무리가 애매해서 한편 더 올라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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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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