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30

       “호텔은 오랜만이네.”

        

       앨리스가 창밖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대로, 우리는 다 같이 여행을 떠났다.

        

       서울 근교가 아닌, 꽤 멀리 떨어진 곳의 바다가 보이는 곳.

        

       한국에서 서울만큼 큰 도시는 서울 말고는 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관광 도시가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바다, 정말 예쁘다.”

        

       클레어는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번 여행지를 어디로 정할지 고민하던 차에 나온 이야기가 ‘비행기 타보고 싶다’라는 이야기였다.

        

       아제르나에도 비행기가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여객용으로는 ‘비행기’가 아니라 ‘비행선’이 대세였다.

        

       고정익을 달고 엔진의 힘으로 힘차게 앞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는 아직 그렇게 크게 만들 기술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비행기에 비행선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태워 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아이들은 꽤 신기했던 모양이다.

        

       해외에 나가는 것은 여권이니 뭐니 해서 조금 번거로운 점이 많아, 우리는 그냥 바로 떠날 수 있는 국내 여행지를 골랐다.

        

       제주도였다.

        

       겨울 특유의 깨끗한 날씨 덕분에 푸른 바다가 저 멀리까지 아주 잘 보였다.

        

       이 주변이 특히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제주도 전체의 바다가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호텔로 오는 길에 본 바다도 굉장히 맑아 보였다. 적어도 내가 본 바다 중에서는 속이 가장 깨끗이 들여다보이는 바다였다.

        

       거리에 있는 야자수도, 이곳이 외국은 아니더라도 어딘가 이국적인 느낌이 들게 했다.

        

       집 주변으로 있는 낮은 담장이나, 길에 보이는 과수원—아마 귤나무가 아닐까—도 정겨웠다.

        

       “비행기 타는 건 꽤 신기했지만, 아무래도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샤를로트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가 탄 좌석은 그렇죠. 정말 비싼 좌석을 고르면 훨씬 더 넓게 탈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우리가 아제르나에서 가지고 있던 지위를 생각하면, 그런 좌석은 불편한 게 당연하긴 합니다.”

        

       “그건 그렇네요. 저희가 타본 비행선도 따지자면 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한 비행선이었으니까요.”

        

       나의 말에 샤를로트가 쓰게 웃으며 동의했다.

        

       “그런데 조금 아쉽다. 바다에 들어가기에는 추운 날씨잖아.”

        

       클레어가 풀이 팍 죽은 채 말했다.

        

       그야 한겨울이니까.

        

       “그런데, 그러면 수영복은 왜 챙긴 거지?”

        

       “실비아 말로는 ‘만약을 위해서’라고 하던데요?”

        

       샤를로트가 내 쪽을 슬쩍 보며 말했다.

        

       이쪽에서 우리는 수영장에 간 적이 없다. 바다에 가본 적은 있으나 수영을 즐길만한 온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수영복도 없어서, 여행 오기 전에 수영복을 먼저 사러 갔던 것이다.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곤란합니다만, 이곳 수영장은 겨울엔 따뜻한 물을 이용합니다. 이 날씨에도 수영하는 게 가능하죠.”

        

       “정말!?”

        

       클레어가 격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객실도 일부러 가까운 곳을 예약했습니다.”

        

       물론 나는 그렇다고 수영복을 입고 바로 수영장으로 갈 생각은 없다. 아무리 그래도 호텔 객실에서 수영복 입고 돌아다니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인터넷 후기에서는 그렇게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가자, 가자!”

        

       클레어가 바로 내 팔을 잡아끌었다. 진짜 애 같네.

        

       “하, 하지만, 온수가 나와도 날씨 때문에 조금 춥지 않을까요?”

        

       미아가 조금 소심하게, 하지만 해볼 법한 걱정을 말했다.

        

       “저도 조금 걱정이긴 합니다만, 그건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일단 수영복을 챙겨서 나가도록 할까요?”

        

       내 말에 클레어는 바로 가방으로 달려들었다.

        

       *

        

       수영장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역시 아무리 온수가 나온다고 해도 겨울은 겨울이란 말일까.

        

       온수 풀의 첫인상은 뭐랄까, 노천온천 같은 분위기였다. 일단 생긴 건 그냥 수영장이긴 했지만, 김이 폴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수영장보다는 온탕이 먼저 떠올랐다.

        

       “와, 정말 따뜻해! 기분 좋아!”

        

       그리고 그런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들어가 즐거운 표정을 짓는 클레어의 모습이, 어째 욕실 온탕에서 장난치는 조카 얼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히 수영복은 조금 대담한 것인데 말이지.

        

       클레어가 입은 수영복은 스포츠 속옷처럼 생긴 수영복이었다. 위쪽은 스포츠 브라, 아래쪽도 그에 맞는 세트 속옷 같은 느낌으로.

        

       하지만 그 짙은 파란색의 수영복의 재질은 누가 뭐래도 분명히 수영복 재질이었다.

        

       “언니도 빨리 들어와!”

        

       “알겠습니다.”

        

       나는 클레어의 말에 얼른 그 온탕……아니, 수영장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좀 나중에 들어가고, 바깥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볼까 했는데, 막상 이렇게 왔더니 도저히 밖에 있을 날씨가 아니었다.

        

       클레어의 말대로, 들어가니 확실히 엄청 따뜻하고 기분 좋았다.

        

       어째 수영장인데도 신나기보다는 기분이 노곤하게 풀어지는 것이 영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촥!

        

       “으풉꺅!?”

        

       하지만 그 노곤한 분위기를 즐기기도 전에, 클레어의 공격이 들어와 나는 순간 그런 괴상한 소리를 내버렸다.

        

       “……클레어.”

        

       “하하!”

        

       먼저 들어왔던 클레어보다 먼저 머리부터 물을 뒤집어쓴 나는, 곧장 클레어를 향해 돌진했다.

        

       물론 클레어의 신체 능력을 내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었지만.

        

       우리가 첨벙거리면서 노는 것을 보고, 나머지 세 사람도 한 사람씩 수영장 안으로 들어왔다.

        

       “와, 정말…….”

        

       “따뜻하긴 따뜻하네요.”

        

       앨리스와 샤를로트도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한마디씩 했다.

        

       “온탕 같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오며 미아가 우리가 애써 피하고 있던 말을 뱉었다.

        

       “꺅!”

        

       하지만 그 말은 곧 자기 얼굴로 쏟아진 공격을 받고 날아갔다.

        

       “온탕인지 수영장인지는, 우리가 노는 방식에 따라 달린 거 아니겠어? 신나게 놀면 거기가 수영장이지!”

        

       너도 결국엔 온탕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는 거구나.

        

       나는 그런 클레어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큭! 언니……!”

        

       그리고 클레어가 나에게 다시 물을 뿌리고, 그 물은 내 근처까지 왔던 앨리스와 샤를로트에게도 튀었다.

        

       결국, 거의 우리 독점이나 다름없는 수영장은 한동안 신분증만 성인인 10대 중순 소녀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

        

       “후우.”

        

       누구랄 것도 없이 숨을 길게 내쉬며, 우리는 수영장 벽에 나란히 기대섰다.

        

       나가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풀장 밖이 너무 추웠다.

        

       그런데 이러고 있으니 정말로 노천온천이라도 있는 느낌이다.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는 샤를로트라던가, 얼굴에 묻은 물을 쓸어내리는 앨리스를 보니 더 그런 감이 있었다.

        

       우리 중에서 원피스형 수영복을 구매한 사람은 미아뿐이었다. 뭐랄까, 솔직히 우리도 미아에게 비키니 같은 수영복을 추천하는 게 조금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아는 그 검은 수영복을 마법 소녀 옷 같은 디자인이라고 좋아하긴 했지만.

        

       혹시 보는 마법소녀물 중에 아동용이 아닌 것도 있는 걸까? 조금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 취미에 대해 지적하지는 않기로 했으니까.

        

       나머지 네 사람은 모두 위아래가 나뉘는 수영복이다.

        

       일단 클레어는 조금 전에 말했듯 스포츠 속옷이 떠오르는 종류의 수영복이었고,

        

       샤를로트는 위쪽을 래시가드에 아래쪽은 비키니 하의 같은 수영복.

        

       앨리스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대담한 하얀 비키니였다.

        

       나는 검은 비키니였고.

        

       비키니라.

        

       어린 시절에는 이런 수영복을 입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아니, 그러니까, 당연히 남자였을 때는 비키니를 입을 일은 없었지만.

        

       비키니의 문제가 아니라 웃옷을 벗고 남들에게 보인다는 것을 많이 부끄러워했었다. 지금처럼 몸매가 좋지 않았고, 그렇다고 운동하며 관리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수영장에 가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바다에 가더라도 굳이 수영복을 사다 입지는 않았었는데.

        

       ……나도 참 많이 바뀌었구나.

        

       특히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여러모로 달라진 것 같았다.

        

       “언니.”

        

       “네.”

        

       “뭔가 노인네 같은 표정이야.”

        

       “…….”

        

       나는 손바닥에 물을 한가득 담아서 클레어의 얼굴에 확 뿌렸다.

        

       “푸큭!?”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낸 클레어는 곧장 얼굴에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양손을 쫙 뻗어서—

        

       “어, 잠깐, 클레어!?”

        

       이번에는 물을 뿌리는 게 아니라 나에게 아예 어깨로 태클을 걸어버렸다.

        

       “푸꺆!?”

        

       결국, 나는 그렇게 괴상한 소리를 내며 따뜻한 온탕— 이 아니라, 수영장으로 꼬르륵 가라앉아버렸다.

        

       *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르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

        

       다시 몸을 씻고 머리를 말린 우리는 바닷가를 거닐어보기로 했다.

        

       제주도 아닌가. 예쁜 해변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우리 호텔 근처 또한 바다가 무척 예뻤다.

        

       처음에는 다섯 명이 우르르 몰려서 바닷가를 걷다가, 어느 순간 드문드문 떨어져서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었다.

        

       앨리스와 샤를로트는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미아는 그 앞에서 바닥에 나뭇가지로 뭔가 그리고 있었다.

        

       나는 클레어와 함께 서 있었다.

        

       “……클레어.”

        

       “응?”

        

       문득 이름을 부르자, 클레어는 바로 대답했다.

        

       사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부른 건 아니었다.

        

       그냥 옆에 서 있으니 한 번 말을 걸고 싶었을 뿐.

        

       그래서 나는 그냥, 생각나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즐겁게 지내고 있나요?”

        

       “그야 물론이지.”

        

       클레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 아닐까?”

        

       “그렇습니까.”

        

       클레어의 그 대답에,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만족감이 느껴지는 걸 느꼈다.

        

       “와, 이게 뭐야?”

        

       “미아, 혹시 그림에 재능이 있었나요?”

        

       “네? 아, 아뇨, 그게…… 헤헤.”

        

       갑자기 그런 대화 소리가 들려서, 우리는 그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미아가 모래 위에 그려둔 그림이 굉장한 모양이었다.

        

       “사진 찍으러 가자!”

        

       클레어가 그렇게 말해서,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Jenny Hoon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편을 완결내고도 한참동안 외전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그 외전을 따라오며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겠죠. 처음에는 몇 화만 쓰고 결말 없이 끝내려고 했는데, 읽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으니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써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시며 저를 작가라고 불러주시는 분들 덕분에, 저는 오늘도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제 소설을 읽어주실 수 있도록 매일같이 글을 올리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데 쓰신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언제나 정진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