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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1

        

       벌레를 흉내 낸 존재는 움직인다.

       거미처럼 뻗은 다리를 성큼성큼 움직이며 거침없이 움직이고, 어슴푸레하게 물든 세상 속에 같이 물들어 색채 일부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움직인다.

       그 모습은 풍경이 일그러지며 움직이는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기도 하였고, 벌레가 사람 크기가 되어서 활보하는 것 같은 악몽 속 풍경 같기도 했다.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을 보라.

       관광객의 모습을 한 저들을.

         

       어둠 속에 전의를 숨기고, 살의를 숨긴 채 접근하는 저들의 모습을 누가 용병이라고 볼 수 있을까.

         

       개와 늑대가 구분되지 않는 시간.

       새파랗게 물들고,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시간.

       개가 혀를 내밀고 웃는 것과 늑대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흉악한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 시간.

         

       그 시간에 저들은 움직인다.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자연스럽게, 무해한 사람인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움직이고 움직여서….

         

       습격을 시작한다.

         

       “–삐—이이-”

         

       습격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괴인(怪人)이었다.

         

       카멜레온처럼 어둠 속에 자신의 진체를 숨긴 채 자연스럽게 건물 근처에 도달한 괴인은 천천히 입을 열어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는…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삐—-”

         

       고주파 음을 사람의 목을 쥐어짜서 낸다면 이런 소리일까?

         

       괴인의 목에서는 기계음과 흡사한 것이 흘러나왔다.

       묘한 규칙성을 가진 음악같이 느껴지면서도, 고장이 난 기계가 아무렇지 않게 내는 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는 모기의 소리처럼 사람의 신경을 묘하게 거슬리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삐이—-”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기괴했다.

         

       그냥 멀쩡한 사람이 흉내 내도 기괴하게 느껴졌을 소리를, 바퀴벌레를 연상케 하는 모습을 한 이가 쥐어짜서 소리를 내고 있지 않은가.

         

       기계음.

       고주파 음.

       설명할 말은 많다.

         

       하지만 저 괴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바퀴벌레의 갑각을 뜯어서 갑옷으로 두른 것 같은 저 기괴한 껍데기를 보고 있자면.

       몸 곳곳에 튀어나와 있는 거미 다리같이 생긴 것들을 보고 있자면….

         

       저 괴인은 정말로 벌레가 아닐까 하는…. 그런 의문을 품게 만든다.

         

       저 괴인은 정말 벌레가 사람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닐까?

       전설 속에 나오는 벌레 괴물이 아닐까?

       어디 실험실에서 탈출한 괴물이 아닐까?

         

       그런 불길하고도 터무니없는 상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그만큼 괴인의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들마저 꺼림칙함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용병들은 프로였다.

       돈 받고 깡패짓이나 하는 양아치들과는 다른, 진짜 프로.

       돈을 받는다면 그 어떠한 짓도 하는 프로 말이다.

         

       사람을 죽이고.

       사람과 싸운다.

         

       돈을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

         

       그들은, 프로였다.

         

       프로였기에 괴인이 주는 꺼림칙함도 참아낼 수 있었고, 사람 같지 않은 괴인의 편에 서서 사람과 싸우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게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

         

       저 괴인의 편에 서서 싸우는 것이 ‘의뢰’였으니까.

         

       “—!”

         

       파직.

         

       그렇기에 그들은 신호를 보자마자 움직였다.

         

       ‘감시 카메라에 아주 잠깐 스파크가 생겼다.’

         

       ‘감시 장비 회로를 태워버리겠다더니, 진짜였군.’

         

       ‘가자.’

         

       그들은 길을 잃은 여행객처럼 움직였고, 자연스럽게 정문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경비들이 경계하지 않으면서도 무기의 사정거리가 닿는 절묘한 위치에 도달했을 때.

         

       투-웅!

         

       팀장이 습격의 시작을 알렸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팀장이었다.

       팀장은 관광객인 것처럼 연기하며 목에 건 카메라를 들어 올렸고, 사진을 찍는 척하면서 장치를 발동시켜 바늘을 쏘았다.

         

       전도체로 만들어진 바늘은 투박한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갈랐고, 마치 작살이라도 되는 것처럼 경비의 몸에 꽂혔다.

         

       파지지직!

         

       그렇게 꽂힌 바늘은 연결된 선에서 어마어마한 전류를 받아 경비원들의 몸에 전류를 흘렸고, 일반적인 테이저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류에 경비원들은 비명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눈을 까뒤집으며 바닥에서 경련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팀장의 뒤를 이어 다른 이들도 움직였다.

         

       그들은 팀장과 마찬가지로 위장해놓은 테이저건을 쏘았고, 경비원들의 몸에 바늘 한두 개씩 꽂고 전기를 흘려주었다.

       당연하게도 무방비 상태로 불법 개조된 테이저건을 맞은 경비원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서 경련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용병들은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 품 안에서 다른 장비를 꺼냈다.

         

       문방구나 철물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루건(Glue gun) 형태의 장비였다.

         

       픽!

         

       하찮아 보이는 외형의 장비.

       그리고 외형만 하찮은 게 아니라는 듯, 방아쇠를 당겼을 때 나는 소리도 하찮기 짝이 없었다.

       문방구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바람총에서 날법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결과마저 하찮지는 않았다.

         

       “끅.”

         

       “끄윽….”

         

       글루건 모양의 장비에서 쏘아진 바늘은 경비원들이 입고 있는 두꺼운 옷을 단숨에 뚫고 그들의 살 깊숙한 곳에 박혔고, 바늘의 안에 있던 약물을 그들의 몸에 주입했다.

       관처럼 텅 비어있던 바늘의 안에 있던 극소량의 약물은 그들의 몸에 주입되었고, 그들의 호흡을 방해하고 의식을 잃게 했다. 거기에 더해 술을 진탕 마셨을 때처럼 뇌의 활동을 방해하고 손상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극소량이기에 큰 효과를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것처럼 며칠간의 기억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효과는 있으리라.

         

       그렇게 용병들은 확실하게 경비원을 제압한 후 앞으로 나아갔다.

         

       “흐. 훌륭하군….”

         

       기괴한 목소리를 내는 괴인의 지시를 받아서 말이다.

         

         

         

        * * *

         

         

       괴인이 움직인다.

         

       “—!”

         

       입에서 고주파 음을 내고, 기계음을 내면서 움직인다.

       기계에 말을 거는 것처럼 기계장치가 보일 때마다 소리를 쥐어짜고, 그때마다 기계는 응답이라도 하듯 스파크를 튀기며 회로를 태워버린다. 그것은 기계가 설득당하고 스스로 기절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처럼도 보였고, 그것도 아니라면 괴인이 기계에게 협박해서 그들이 스스로 의식을 잃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파직.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일고.

       스파크가 터질 때마다 카메라가 터진다.

         

       붉은빛을 내면서 작동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던 감시 카메라는 그 빛을 잃고 장식물처럼 멈춰서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며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던 잠금장치는 새까만 연기를 피워올리며 탄내를 풀풀 풍긴다.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다.

         

       기계를 무력화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전적인 방식의 자물쇠 역시 너무나 쉽게 무력화를 시켰다.

         

       “흐….”

         

       열쇠를 넣고 돌려야 열리는 형태의 자물쇠?

       그 역시 괴인의 앞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괴인은 가소롭다는 듯 자물쇠를 보고 비웃음을 흘리더니, 거미 다리 하나를 움직여 자물쇠의 구멍에 그대로 쑤셔 박았다.

       그러자 거미 다리는 마치 자신이 액체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주장하기라도 하듯 스르륵 녹아 구멍을 가득 메웠고, 자물쇠에 걸맞은 열쇠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철컥.

         

       그렇게 변형된 열쇠는 너무나도 쉽게 자물쇠를 열어버렸다.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져서 절단이 쉽지 않았을 자물쇠조차 이렇게 손쉽게 통과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괴인과 용병들은 나아갔다.

         

       감시 장비를 무력화시키며.

       보안 장치를 전부 무력화 시키며.

         

       그렇게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 정지. 코너 너머에 4명. ]

         

       [ 무장은? ]

         

       [ 포승줄, 삼단봉, 테이저건, 리볼버. ]

         

       [ 오케이. ]

         

       괴인이 나설 필요조차 없었다.

         

       용병들은 최적의 방법을 사용하며 사람들을 제압했다.

         

       파직!

         

       경비들에게 그러했듯이 테이저건을 쏘기도 했으며.

         

       푸욱!

         

       기척을 죽이고 숨어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약물이 담긴 주사기를 목에 꽂아버리기도 했다.

         

       ‘쉽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 이 건물에는 그들이 애먹을만한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평시가 아니기에 평소처럼 삼엄한 경비를 유지하지도 않고, 전시가 아니기에 전략 물자를 보호한답시고 정예를 파견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이들은 어중이떠중이들.

         

       그냥 의무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진 채 건물에서 근무하는 회사원이나 다름없는 이들.

         

       그런 이들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용병들의 기습을 대처하기는 무리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용병들과 괴인은 너무나 손쉽게 경비를 뚫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훌-륭하구나.”

         

       건물이 품고 있는 장소.

       지하에 있는 온갖 최신식 설비로 관리되고 있는 창고.

         

       주물들이 보관된 그곳에 도착한 것이다.

         

       괴인은 크지 않은 창고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크기가 크지는 아니하나…. 오히려 그것이 호재로다….”

         

       창고는 빈말로라도 크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작지는 않았으나, 크다고 하기에는 참으로 애매한 크기였다.

       게다가 창고 안에 용도를 알 수 없어 보이는 기계 장치들이 곳곳에 있어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가뜩이나 자리가 없어 보이는 창고를 더 좁아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마저도 기껍다는 듯 웃었다.

         

       ‘창고가 여기만 있는 것이 아니니…. 실망할 것도 없지….’

         

       대한민국의 주물이 이것밖에 없다면 정말로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용병들이 습격한 곳은 주물이 보관된 곳 중 하나일 뿐.

         

       대한민국의 주물은 전국 곳곳에 있는 연구소와 창고에 분산되어 있었다.

         

       그 점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주물의 양은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할 수 있으리라.

         

       “챙기게-”

         

       괴인은 기괴한 목소리로 용병들에게 명령했다.

         

       저 주물들을 챙기라고.

       자신이 준 장비를 끼고, 자신이 준 자루와 배낭에 저 주물들을 쑤셔 넣으라고.

         

       “흐흐, 알겠습니다.”

         

       용병들은 기꺼이 괴인의 명령에 따라주었다.

       기쁘다는 듯 웃었고, 재미있는 오락이라도 하듯 주물을 손으로 집어 자루 안에 미친 듯이 집어넣었다.

         

       그 모습은 마치 은행을 터는 강도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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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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