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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1

       그녀의 단호한 거절에 당황하기를 잠시.

         

       금세 감정을 추스른 백우진이 이유를 물었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입가에 미소를 지워낸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만년빙정은 원래부터 금지(禁地)로 정해져 있어요. 만년빙정이 자아내는 한기가 워낙 거세서 어지간한 빙공의 고수라도 버티기 힘들 수준이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녀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물론 그 이유만이었다면 고민이라도 해보았을 거예요. 백 대협 정도의 실력자라면 만년빙정의 한기 또한 어렵지 않게 막아내실 테니까.”

         

       백우진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만년빙정 근처로 다가갈 수 없는 다른 이유가 더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맞아요.”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무겁고, 어두워졌다.

         

       “이곳까지 오시면서 들어 보셨을 거예요. 북해빙궁에 재앙이 도래했다는 사실을.”

         

       들어보았다.

         

       “해마다 추워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맞아요. 북해는 해마다 더 큰 추위가 몰려오고 있어요. 그리고 그 원인은….”

         

       그녀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바로 만년빙정에게 있답니다.”

         

       이를 들은 백우진과 금여울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만년빙정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보군요.”

       “네.”

         

       대략 팔 년 전부터 북해 인근의 날씨가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날씨란 하루마다 다르고, 변덕스러울 때는 시시각각 다른 법.

         

       하물며 해마다 더 추운 해가 있고, 덜 추운 해가 있으니 올해는 그저 추운 해로구나, 여겼을 뿐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날씨가 풀리기는커녕 시간을 거듭할수록 추워지면서 깨지게 되었다.

         

       말했듯 추운 해가 있으면 그나마 따뜻한 해도 있어야 마땅한 법인데, 어째 해마다 예년의 추위를 가소롭다는 듯 비웃으며 더 매서워지는 게 아닌가.

         

       그러한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하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사 년 전.

         

       “전대 궁주님이신 저희 어머니께선 점점 추워지는 원인을 찾기 위해 본궁의 무인을 풀어 주변을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하셨죠.”

         

       추위에 떠는 주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추워졌다간 집 안에서 얼어 죽는 이들이 나올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

         

       하여 전대 궁주인 그녀의 어머니는 북해빙궁의 모든 무인을 밖으로 돌려 날씨가 악화되는 원인을 찾고자 하였으나.

         

       “한동안 찾지 못하셨죠.”

         

       북해 전역을 샅샅이 뒤졌음에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로 인해 추위에 떠는 주민들의 수는 늘어나고,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북해빙궁의 재산이 야금야금 갉아 먹히기 시작하던 그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추위의 원인을 찾고자 새벽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하시던 어머니의 머릿속에 한 장소가 떠오르셨다고 해요.”

         

       북해 전역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아직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딱 한 군데 남아 있었다.

         

       “바로 만년빙정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죠.”

         

       북해빙궁에서 삼백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커다란 동굴이 하나 있다.

         

       인근의 추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한기가 웅크리고 있는 기다란 동굴.

         

       구불구불한 동굴을 따라 들어간 끝에는 쏟아지는 물의 형태 그대로 얼어버린 폭포와 가만히 들여다보면 제 얼굴이 비칠 정도로 꽁꽁 언 호수가 나타난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 그대로 멈춰버린 세상.

         

       그 중앙에는 거센 한기를 콧바람처럼 연신 뿜어대는 새하얀 구슬이 떠 있으니.

         

       바로 그것이 북해빙궁의 보물 또는 신물이라 불리는 만년빙정이다.

         

       “어머니께선 곧장 만년빙정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셨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셨어요.”

         

       얼어붙은 호수와 폭포 중앙에 홀로 떠 있는 만년빙정을 본 전대 궁주는 기함했다.

         

       서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새하얀 만년빙정의 귀퉁이에 검은 기운이 물들어 있었던 것.

         

       동시에 만년빙정은 평소처럼 부드러운 한기가 아닌, 노도와도 같은 기세의 한기를 사방으로 마구 뿌려대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날씨가 악화한 원인이었죠.”

         

       고작 구슬 하나가 뿜어내는 한기가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일.

         

       최소 수백에서 천 년 가까이 쌓인 한기가 응축되어 만들어진 비보.

         

       또는 수행신주로 의심되는 물건이다.

         

       ‘그런 거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목행신주가 어떤 힘을 자아낼 수 있는지 묘목의 말을 통해, 또 아직 낯설기 그지없는 설수연의 작은 손짓을 통해 직접 경험한 바 있지 않나.

         

       백우진은 물었다.

         

       “만년빙주를 탁하게 물들인 검은 기운의 정체는 알아냈습니까?”

         

       그의 물음에 용설란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애석하게도 알아내지 못했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검은 기운이야말로 만년빙정을, 나아가 북해를 괴롭히는 정체임을 깨닫고 곧장 그것을 없앨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온갖 수를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해째.

         

       검은 기운의 정체를 파악하지는 못하였으나, 그것을 물리칠 방법은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 방법이란.

         

       “순수한 음기로 만년빙정을 오염시킨 탁한 기운을 몰아내는 것.”

         

       한기(寒氣)는 다른 말로 음기(陰氣)라고도 부른다.

         

       말인즉, 만년빙정은 극한의 기운임과 동시에 극음의 기운이라는 것.

         

       북해빙궁에서 여성이 득세하는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였다.

         

       남성은 양기를, 여성은 음기를 더 많이 품고 태어나기에.

         

       물론 북해빙궁에서 태어난 남성들은 다른 지역의 남성들과 달리 음기를 더욱 짙게 품고 태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여인도 마찬가지.

         

       북해빙궁의 여인들은 다른 지역 여인들보다 더 많은 음기를 품고 태어나기에.

         

       백우진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마을의 처녀들을 데리고 간 이유가…?”

       “맞아요. 그녀들의 음기를 이용해 만년빙정을 정화하기 위해서예요.”

         

       그녀의 대답에 백우진은 얼굴을 굳힌 채 한층 낮아진 어조로 되물었다.

         

       “혹시…, 제물로 바치거나 한 것은….”

         

       좋지 않은 분위기를 느낀 용설란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며 다급히 외쳤다.

         

       “그, 그럴 리가요!”

         

       억울함 가득한 표정을 보니 아닌 모양.

         

       “단지 처녀들에게 음기를 나누어 받아 만년빙정을 정화하는 데에 도움을 받고 있을 뿐, 정당한 대가 제공은 물론이고 얼마나 극진히 보살피고 있는데요.”

         

       다급히 쏟아내는 말들에 약간의 물기가 느껴진다.

         

       이에 미안함을 느낀 백우진이 고개 숙여 사과를 전했다.

         

       “죄송합니다. 살면서 워낙 안 좋은 꼴을 많이 보고 자란 터라….”

       “…괜찮아요. 오해하실 수도 있었을 것 같네요.”

         

       진중한 태도와 말투에 마음이 한층 누그러진 용설란은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원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마을 처녀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정화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외부의 요인을 들이는 것은 힘들 것 같아요.”

       “으음…, 그렇군요.”

         

       난감했다.

         

       차라리 전자의 이유라면 떼쓰기라도 해보았을 텐데, 후자는 그러기도 힘들지 않나.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제 존재가 만년빙정에 다가갔을 때 어떤 돌발적인 변수가 생길지 그녀로선 노심초사할 수밖에.

         

       그가 눈에 띄게 아쉬워하고 있을 때.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녀의 한마디가 백우진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백 대협께서 만년빙정 정화에 필요한 일들을 도와주신다면 어떠실까요?”

         

       정화에 필요한 일이라.

         

       그녀의 말은 요컨대 외부인에서 관계자가 되라는 말이었다.

         

       정화 작업을 돕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년빙정과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 생길 테니.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썩 훌륭한 방법이다.

         

       어차피 그는 이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기도 하지 않나.

         

       만년빙정 정화에 큰 도움을 준다면 그만큼 북해빙궁의 신뢰 또한 얻게 될 터.

         

       그러니 이러한 제안은 덥석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데.

         

       ‘뭔가 좀 말리는 것 같단 말이야.’

         

       어딘가 느낌이 이상하다.

         

       마치 원래부터 자신을 작업에 끌어들이기 위해 지금까지 밑작업을 해온 듯한 느낌이랄지.

         

       그러나 이것밖에 답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제가 뭘 도우면 되겠습니까.”

         

       백우진은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 * *

         

         

       백우진과 금여울.

         

       두 사람과의 대화를 마친 뒤 침소로 돌아온 용설란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제 몸에 치렁치렁 매달려 있는 장신구들을 모조리 빼는 것이었다.

         

       “아아, 불편해.”

         

       몸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만 거칠게 움직여도 장신구들이 요란하게 움직여대는 탓에 걸음 하나하나 신경 써서 걸어야만 한다.

         

       그렇게 불편하면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거야말로 모르는 소리.

         

       상대에게서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어내기 위해선 불편함 따윈 감수해야 하는 법.

         

       “…그렇지?”

         

       그녀가 묘한 미소를 그리며 허공에다 대고 이야기하자, 한 여인이 그녀의 침소로 들어섰다.

         

       “예, 그렇죠.”

         

       평범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잊어버리고 말 것만 같은, 특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인상.

         

       공손한 말투와 함께 용설란의 몸에 달린 장신구를 손수 떼어주는 여인.

         

       그녀는 용설란의 전속 시녀임과 동시에 유일한 이해자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궁주 자리에 올라 이리저리 휘둘리던 그녀를 이해해준 유일한 사람.

         

       “네 말대로 백우진을 끌어들였어.”

         

       백우진의 존재를 미리 파악하고서 그를 끌어들이고자 제안한 것도 바로 그 여인이었다.

         

       물론 그것은 조언에 불과했을 뿐.

         

       “내 화려한 언변에 홀라당 넘어가는 거 너도 봤어야 하는데.”

         

       그를 끌어들이기로 결심하고, 이를 해낸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몫.

         

       그렇기에 더욱 뿌듯해했고, 여인은 그런 그녀를 더욱 칭찬해주었다.

         

       “안 봐도 잘하셨으리라 믿어요. 궁주님은 아직 겪어보지 않았을 뿐, 못하는 게 없으시니까.”

       “호호호! 당연하지.”

         

       의기양양하게 웃는 용설란을 향해 여인이 넌지시 물었다.

         

       “그렇다면 백우진 대협께는 그 일을 부탁하실 생각이신 거죠?”

       “맞아. 직접 만나보니까 알겠더라구. 소문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더라.”

       “아…, 정말 대단하신 분인가 봐요.”

       “응, 대단했지.”

         

       꿈을 꾸듯, 몽롱한 표정으로 조금 전의 장면을 떠올리는 용설란.

         

       여러모로 대단했다.

         

       어린 나이에 화경에 올라서며 빙궁의 모두를 놀라게 한 천재인 자신조차 가늠할 수 없는 까마득한 경지는 말할 것도 없고.

         

       ‘외모도 명불허전이었지…?’

         

       평생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은 외모와 더불어 짙은 목소리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그야말로 신이 작정하고 만든 듯한 사내.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낀 용설란이 입을 열었다.

         

       “백금 상단의 금 상단주와는 무슨 관계일까?”

       “글쎄요…, 어쩌면 네 번째 아내일지도 모르죠.”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네.”

         

       찾았다.

         

       그의 유일한 단점.

         

       부인이 너무 많다.

         

       심지어 그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

         

       사천당가, 제갈세가, 흑산도가.

         

       하나 같이 무림에서 북해빙궁과 견줄 만한 세력들 아닌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용설란.

         

       “아쉽지만…, 포기해야겠네.”

         

       잠깐 떠올랐던 분홍빛 나래를 말끔하게 접어버린 그녀가 싸늘한 말투로 읊조렸다.

         

       “그냥 이용하고 버리는 수밖에.”

         

       멋진 사내와의 달콤한 신혼.

         

       분명 꿈꾸고, 바라왔던 일이기는 하나 지금의 그녀에게는 사치나 다름없는 일이기에.

         

       그녀는 저항 없이 파고드는 백우진을 마음속에서 밀어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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