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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1

   상급신.

   불의 신, 인페르노.

     

   몸 전신이 화염으로 이루어진 괴물의 등장에 크라슈는 얼어붙었다.

   공기가 이토록 뜨거운데 몸이 옴짝달싹도 안 한다.

     

   본능이 말하고 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죽는다.

     

   마이오스는 이미 바닥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는 전투라는 가정 자체를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저, 머리를 조아리며 상급 신이 목숨을 부지해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하급 신들을 손짓 한 번으로 찢어 죽이던 마이오스다.

   그런 그가 이토록 머리를 조아리는 것만 봐도 상급 신과 중급 신 사이에 있는 까마득한 격차가 느껴진다.

     

   ‘상급 신부터는 신 자체의 이명이 붙는다고 했지.’

     

   중급 신은 본인의 고유 이름으로 불릴 뿐이지만.

   상급 신의 경우 인페르노와 같이 불의 신이라는 이명이 붙는다.

     

   하나의 개념에서 확립된 신.

   그것만으로 신이 부릴 수 있는 권한과 힘은 삼라만상 세계의 흐름 자체에 이바지한다.

     

   그러니 상급 신과 싸우는 것은 곧.

   삼라만상의 권한 중 하나와 맞서는 것과 같다.

     

   ‘중급 신과 상급 신 사이의 격차.’

     

   그것이 얼마나 까마득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건, 노력 같은 걸로 메꿀 수 있는 격차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중급 신 중에는 상급 신이 되는 자들이 때때로 나온다.

     

   그 확률이 비록 한없이 0에 가까운 확률이라 할지라도.

   상급 신은 분명하게 등장하며 규칙은 존재한다.

     

   인간은 흔히들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을 무한하게 증명해 내는 것이 인간이다.

     

   ‘물론 그걸 증명하는 건.’

     

   어디까지나 여기서 살아 돌아가고 나서다.

     

   크라슈는 인페르노를 조용히 직시했다.

   전신이 타오르는 불로 이루어진 인페르노.

     

   불길로 움직이는 그의 표정은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나는 벨로킨에게서 이그니스를 훔쳐 왔다.’

     

   벨로킨 발하임.

   발하임 가문의 셋째이자 본래 이그니스를 가진 이.

     

   크라슈는 벨로킨을 무너뜨리고, 그의 스킬을 빼앗은 뒤.

   벨로킨을 직접 처단했다.

     

   이는 인페르노의 계약자를 제 손으로 죽였다는 소리기도 했다.

     

   이에 관해 인페르노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크라슈도 섣부르게 짐작할 수 없었다.

     

   [ 흐음, 기대랑은 다르군. 무척이나 호전적이기에 적의라도 보여줄 줄 알았는데. ]

     

   그 순간 인페르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주위가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무척이나 호전적이다.

   저 말은 인페르노는 지금까지 크라슈의 행보를 보아왔음을 가리키기도 했다.

     

   대화에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본디 사람은 개미에게 적의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그 또한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평생 침묵할 수는 없는 노릇.

     

   “……지금 수준에서 상급 신을 상대로 적의를 드러낼 생각은 딱히 없습니다.”

     

   크라슈가 입을 열자, 인페르노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곧 입꼬리를 서서히 올리기 시작했다.

     

   [ 지금 수준이라? ]

     

   여러 많은 의미를 내포한 말.

   그러나 이는 인페르노의 성격을 어느 정도 추측해 내놓은 말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페르노는 흥미로운 눈으로 크라슈를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계약자가 아님에도 이그니스를 이토록 오래 빌려 사용하였습니다. 인페르노 님에게는 빚을 진 셈인데 제가 왜 적의를 드러내겠습니까.”

     

   적의고 자시고, 드러낼 생각도 안 든다.

   인페르노가 나타난 시점에서 이그니스는 이미 제대로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사실상 크라슈는 전력의 절반을 잃은 셈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인페르노와 싸우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만 했다.

     

   [ 새로운 불꽃을 매번 보여준 것이 재밌어 기대했건만 아직은 시간이 일렀나. ]

     

   인페르노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 한 가지 묻지. ]

     

   인페르노는 크라슈에게 히죽하니 웃었다.

     

   [ 나보다 더 거센 불이 되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더 필요할 거 같나. ]

     

   크라슈는 인페르노가 이제야 왜 찾아왔는지 알아챘다.

   그는 자신보다 더 타오른 불꽃이 생겨나길 원하고 있었다.

     

   “……인페르노 님은 불의 신을 그만두시고 싶으신 겁니까?”

     

   크라슈의 질문을 듣고, 인페르노가 웃음을 뚝 멈췄다.

   그러고는 크라슈를 빤히 보더니 눈을 휘었다.

     

   [ 네가 보기에는 어떻지? ]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다니.

   신다운 태도다.

     

   하지만 질문의 저의는 알겠다.

     

   다른 건 몰라도 불의 신은 더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싶어 한다.

     

   [ 나는 타오르는 데 있어 한계점에 이르렀다. ]

     

   상위 신.

   삼라만상의 한 주축이 되어 완성된 존재에 이르렀음에도 인페르노는 더 거세게 타오르고 싶어 했다.

     

   상위 신이란 욕망의 집합체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상승심은 끝도 없이 높았다.

     

   [ 그러니 차라리 다른 방향성을 고민했지. ]

     

   인페르노의 눈에 크라슈가 닿았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잘 타오를 만한 성질을 지닌 녀석들만을 골라 스킬을 부여해 보기로. ]

     

   그 이야기를 듣고, 크라슈는 왜 그가 벨로킨을 선택했는지 눈치챘다.

     

   인페르노가 원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

   타오르는 것.

     

   그것은 물리적이 아니어도 된다.

   단순히 타오르는 것 자체가 인페르노에게 중요한 사항이었다.

     

   ‘벨로킨은 타올랐다면 타올랐지.’

     

   너무 순식간에 타올라 잿더미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 하지만 그럼에도 만족감을 주는 건 딱히 없었다. 애초에 큰 기대를 걸지 않은 것도 있긴 했지만. ]

     

   인간의 타오름은 신들에게 있어 한순간과도 같다.

   그러니 인페르노 입장에서는 그냥 적당한 녀석들이 보이면 스킬을 준다 한들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가는 인페르노의 입장에서 인간은 거기서 거기였을 테니.

   하다 보면 한 번쯤 거세게 타오를 만한 이에게 스킬이 가는 날이 있겠거니 했을 것이다.

     

   [ 그때, 네가 나타났지. ]

     

   그런데 웬걸.

   자신이 스킬을 부여한 녀석이 죽고, 갑자기 나타난 도둑 한 명이 냉큼 스킬을 훔쳐 갔다.

     

   뭐 하는 놈인가 싶어 지켜보니.

   이거, 생각 이상으로 물건이다.

     

   그도 그럴 게 크라슈가 이그니스를 얻자마자 가장 먼저 태운 것은 다름 아닌 세계 침식이었으니까.

   이는 인페르노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새로운 사건이었다.

     

   세계 침식을 태우며 크라슈는 빠른 속도로 강해져 갔다.

     

   그의 불꽃은 크라슈와 똑 닮아 있었다.

   끊임없이 거세게 타오르면서도 어떤 폭풍이 들이닥치든 꺼질 줄을 몰랐다.

     

   꺼질 줄을 모르는 불꽃은 끊임없이 불을 지펴 나갔다.

     

   그리고 끝내.

   중간계와 한참 떨어진 신계에서조차 보일 만큼.

   크라슈는 세상에서 가장 거센 불꽃이 되었다.

     

   황홀하리만치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인페르노는 넋을 잃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무언가 마음속이 뛰는 기분이 들었다.

     

   [ 난 네가 더 타오를 수 있을 거라 보았다. ]

     

   비록, 5년이라는 기간 동안 크라슈의 불꽃은 완전히 사그라든 것처럼 보였지만.

   분명 그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고, 여전히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언젠가 맞이할 날을 기다린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크라슈는 또다시 완연한 하나의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 그리고 신계에 와서도 타오르고 있지. ]

     

   비록, 인페르노의 눈에 아직은 찰 지경은 아닐지언정.

   크라슈는 앞으로도 더 거센 불꽃이 될 것이다.

     

   [ 네가 가장 강한 불꽃이 된다면 나는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 ]

     

   인페르노의 말은 위협이 아니었다.

   그저, 포고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게 크라슈가 가장 강한 불꽃이 된다는 건 곧.

     

   “제가 인페르노 님을 역으로 삼킬 수 있는 것도 아닙니까?”

     

   이 말도 된다는 소리니까.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이오스가 기겁했다.

   상급 신 앞에서 저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크라슈가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인페르노는 그 말에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환한 웃음을 흘린 채 불길을 일렁였다.

     

   [ 어느 누가 삼키게 된다 한들. 하나의 불꽃은 서로를 장작 삼아 더 거세게 타오르겠지. ]

     

   어지간히 불에 미쳤군.

   하긴, 이 정도는 돼야 불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본래 상급 신들은 인간의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 많다고 들었으니까.

     

   그러니 크라슈는 여기서 도박 수를 던지기로 했다.

     

   “그렇다면 감히 제가 하나 간청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크라슈는 인페르노의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인간식 예의가 신에게 통용될지는 둘째치고.

   적어도 크라슈에게 뜻하는 바가 있음을 시인하는 데는 충분했다.

     

   “인페르노 님이 원하는 거센 불꽃이라면 얼마든지 될 자신이 있습니다.”

     

   크라슈는 평생을 자신을 불태우며 살아왔다.

   오히려 스스로를 불태우는 것 말고는 살아가는 방법을 모를 지경이다.

     

   인페르노의 눈이 번뜩였다.

   그로서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인페르노 님, 말마따나 더 오랜 기간이 걸리겠죠.”

     

   인페르노를 보고 알았다.

     

   중급 신들을 아무리 삼킨다 한들.

   상급 신과 싸우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언가 다른.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인페르노 님이 도와줄 수 있습니까?”

     

   크라슈가 던진 도박수.

   그건 바로 인페르노라는 기연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그니스의 원조인 인페르노다.

   그가 다루는 불꽃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크라슈의 인식은 훨씬 더 확장될 수 있다.

     

   놓칠 수 없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

   그러니 크라슈는 목숨을 걸고, 도박을 던졌다.

     

   상급 신의 변덕이 부디, 자기 목을 향해 칼날을 들이밀지 않기를 바란 채.

     

   크라슈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기다렸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이오스 또한 긴장했다.

     

   상급 신에게 직접 간청하는 게 얼마나 큰 리스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신계에서는 최근 너에 관한 이야기가 잔뜩이지. ]

     

   도둑 신의 아이.

   하계문을 타고 나타난 크라슈는 중급 신들을 벌써 스무 명이나 삼켰다.

     

   중급 신들은 하나같이 성단에 소속되어 있는 자들.

   그 성단 소속의 자존심을 단단히 긁어 놓았으니 여기저기서 크라슈를 노리고 있으리라.

     

   [ 내가 너를 데려갔다간 신들에게 몰매 맞기 딱 좋고. ]

     

   인페르노라도 같은 상급 신이 찾아오면 골치 아프다.

   리스크를 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인페르노는 그 모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고 있었다.

     

   [ 그건 새로운 불꽃을 시험하기에는 딱 좋은 타이밍이기도 하군. ]

     

   크라슈가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 따라와라. ]

     

   신의 변덕.

     

   [ 나는 지금보다 더 거세게 타오를 수 있는 불꽃을 보고 싶다. ]

     

   그 변덕이 크라슈의 삶에 새로운 지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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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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