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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1

       이상한 일이지.

        

       보통 이세계에 떨어진 캐릭터들은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하는데, 나는 정반대였으니까.

        

       어쩌면, 내가 이세계에 있던 기간이 그렇게 짧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쪽으로 돌아오긴 했어도 내 가족들에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만약 여신이 나를 ‘원래의 나’로 만들어 돌려보냈다면, 내가 과연 ‘잘 돌아왔다’라고 생각했을까?

        

       답은 당연하게도, ‘모르겠다’였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미래를 나는 모른다. 아무리 시간을 몇 번이고 돌리면서 여러 결과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

        

       다만,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 애쓸 뿐.

        

       이 세계에서 회사원으로 살던 나도, 그저 나에게는 지나간 날일 뿐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글쎄, 아무래도 여기가 별세계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 지구에 있었다. 심지어 다른 나라로 벗어난 것도 아니고, 그냥 한국어가 통하는 다른 지역에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모르는 곳에 왔다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이쪽 세상에 처음 왔을 때처럼.

        

       아니면 숨이 조금 찼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고.

        

       “언니, 운동 조금 해야겠다.”

        

       “……언제나 하고 있습니다만.”

        

       “아니, 그냥 내 뒤 쫓아다니는 거 말고. 나처럼 제대로 헬스장 같은데 끊으면 되잖아?”

        

       “자신을 스스로 고문하는 취향은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 솔직히 옆에서 자꾸 말 걸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제주도에는 오름이라는 특이한 지형이 있다.

        

       예전에 교과서에 나오는 것으로 외운 기억밖에 없어 그게 정확히 뭔지는 잊고 있었는데, 다시 와서 보니 ‘기생화산’이라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마그마가 펄펄 끓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게 활화산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가 올라가는 오름은 그 가장 윗부분이 땅처럼 생겼다.

        

       보통 ‘오름’이라고 올라와 있는 사진들을 보면 별로 가파르지는 않은, 느긋한 경사로 형태의 산책길이 나온다. 나는 그래서 이 오름이라는 곳이 그냥 설렁설렁 걸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오름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눈 앞에 펼쳐진 건 올라가는 등산로만 200미터가 넘는 말 그대로 ‘등산로’였다.

        

       블로그 후기에서 겨울엔 아이젠 챙겨가라는 말을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추운 날씨에 옷을 두껍게 입고 양손에 등산지팡이를 든 채 위로 한 걸음씩 겨우겨우 올라가고 있는데, 정작 내 옆에서 걷는 클레어는 지칠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 그런데 이런 것도 좋다. 이 나라는 산이 많잖아. 등산 같은 거 자주 가는 건 어때?”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공기 맑은 날 높은 곳에 오르니 좋긴 해.”

        

       “너무 자주만 아니라면 종종 기분 전환으로 좋을 것 같네요.”

        

       어어.

        

       얘네들이 왜 이러나.

        

       이러다가 같은 집 쓰는 애들이 모여서 산악회라도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당장 우리 뒤에서 겨우 쫓아오는 미아만 해도 ‘헥헥’소리 낼 힘도 없어서 ‘흐에, 흐에’하면서 올라오고 있다고.

        

       솔직히 그건 좀 귀엽긴 했지만 말이다.

        

       “갈 거면, 여러분끼리, 가십시오. 저는 안 따라갈 겁니다.”

        

       “……그, 언니. 여기 산으로 치면 그렇게 높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 등산로도 아니고 거의 계단이라고.”

        

       계단을 이렇게 올라가는 것도 고문인 건 마찬가지다.

        

       “응, 그래도 언니가 이런 곳을 추천해줘서 다행이야. 올라가면 경치가 어떨지 벌써 기대돼.”

        

       아니, 나도 이런 곳인 줄 몰랐으면 추천 안 했을 거라니까.

        

       그냥 제주도 하면 오름이라길래서 고른 거였는데!

        

       그보다 누가 뒤에서 미아 좀 챙겨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

        

       경치가, 좋긴 하네.

        

       결국 거의 다 올라왔을 때는 나한테 거는 말에도 대답을 거의 하지 않고, 딴생각이나 하면서 겨우겨우 몸을 움직여 올라왔다.

        

       그래도 발이 미끄러지지 않은 것이 어디인가.

        

       올라오기 직전만 해도 제주도까지 와 굳이 등산을 선택한 나를 원망하고 있었는데.

        

       “하아…….”

        

       확실히, 주변 모습이 멋지긴 했다.

        

       “어때, 언니, 잘 올라왔지?”

        

       클레어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사실 오름 올라가는 게 사실상 등산이라는 것을 몰랐던 나는, 이 입구에 오자마자 바로 포기하려고 했었다. 그저 운동 좋아하는 세 사람이 나와 미아를 열심히 설득했을 뿐.

        

       그래서, 뭐, 좋다. 좋긴 했는데…….

        

       “미아, 괜찮습니까?”

        

       “다시는 등산 같은 거, 안 할 거예요.”

        

       음.

        

       그래도 다른 애들이 산악회 만들려고 할 때마다 미아 핑계 댈 수는 있을 것 같다.

        

       아래에서 미아랑 같이 기다리는 걸 택해야지.

        

       그래도, 뭐, 기왕 올라왔으니 아래를 내려다보면…….

        

       첫날에는 우리가 거의 호텔 근처에서만 놀아서 잘 체감되지 않았지만, 역시 완연한 겨울이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 이미 눈이 꽤 내렸던 듯, 여기서 내려다본 제주도의 모습은 그야말로 ‘겨울 풍경’ 그 자체였다.

        

       엄청나게 헥헥거리며 숨을 가다듬던 미아도 조금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그 하얀 모습에 감탄했다.

        

       “보라니까, 언니? 이 정도 높이에서 내려다봐도 이렇게 멋진데, 더 높은 곳에 올라가면 어떻겠어?”

        

       제주도에 와서 한라산 등산을 일정에 넣지 않은 것이 내가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말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역시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괜히 아이디어를 주면 정말 한라산도 오르자고 할 것 같으니까.

        

       찰칵.

        

       열심히 사진 찍는 클레어 앞에 슬쩍 섰더니, 클레어는 입가에 씩 미소를 지으며 눈 덮인 제주도를 배경으로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어느새 내 옆으로 앨리스와 샤를로트, 미아가 슬쩍 붙어서 다 같이 사진을 찍은 뒤,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래.

        

       언제 돌아가더라도, 결국 기억하기 위해서는 사진뿐이니까.

        

       집에 돌아가면 정말로 사진을 죄다 인쇄해야겠다.

        

       먼 미래에, 황제가 되고 왕이 되어서 찢어지더라도 그 추억만큼은 잊지 않도록.

        

       정치고 뭐고 다 상관없게 된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도 이 이 기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

        

       내가 해산물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회였다.

        

       그리고 그 회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건 광어였고.

        

       참 다행이지 않은가? 그 많은 해산물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해산물이 양식되는 어류라니.

        

       “……그런데 솔직히, 나는 아직도 회는 왜 먹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따로 포장 구매한 겁니다. 혹시라도 남기면 아까우니까.”

        

       클레어의 말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밖에서는 이것저것 먹고 들어왔다.

        

       정말 호화롭게도 해산물을 잔뜩 넣은 인스턴트 라면이라든지, 제주 흑돼지라든지.

        

       해물라면은 정말 맛있었지만, 솔직히 제주 흑돼지는 그냥 돼지고기랑 다른 게 뭔지 잘 모르겠다. 뭐, 그냥 더 맛있다니 그러려니 하고 먹었지만.

        

       기왕 이렇게 온 거, 특산물이라는 걸 먹지 않고 가면 너무 아쉽지 않겠는가.

        

       “그래도 육회는 맛있어.”

        

       앨리스는 나를 변호하듯 말했다.

        

       “처음 봤을 때는 깜짝 놀랐죠. 먹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뭐, 나도 처음 먹을 때는 찝찝했었는데…… 적어도 수십 년간 먹으면서 죽어본 적은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다.

        

       해외에서는 관리 잘못해 죽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지만, 굳이 그걸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아직 이틀이나 더 남았다는 게 신기하네.”

        

       클레어가 말했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도중에 문득 떠올리면 조금 안심이 돼.”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연차와 주말, 휴일을 합쳐 연휴로 만들고 나면, 처음 하루 이틀은 너무나 마음이 편안하다. 오늘이 지나도 내일이 있으니까~ 내일모레가 있으니까~ 하면서 느긋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날이 되면 내일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지.

        

       더 이상 쉬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해서 심장이 스스로 멈출 것만 같은 기분. 음,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 없지 않나?

        

       어차피 방송 켜고 켜지 않고의 차이인데.

        

       “말 나온 김에 수영장 한 번 더 갈래?”

        

       “……죄송합니다만, 저는 아까 오름 다녀온 이후로 팔다리가 너무 아파서요.”

        

       “저, 저도요.”

        

       5인 파티 중 최약체 둘이 칭얼거리자 클레어가 축 늘어졌다.

        

       “히잉…….”

        

       …….

        

       귀엽긴 하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이대로 놀았다가는 내일 아침쯤에는 시체로 발견될지 모른다. 물놀이도 근육 엄청 많이 쓰잖아.

        

       “이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조금 놀아주는 게 어때?”

        

       “사실은 당신도 나가서 놀고 싶을 뿐이 아닙니까?”

        

       앨리스의 말에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렇게 말하자, 앨리스는 혀를 살짝 내밀면서 눈을 피했다.

        

       “기왕 놀러 왔으니 즐겁게 놀며 추억을 하나라도 더 남기는 건 어떨까요?”

        

       “…….”

        

       하지만 샤를로트가 부드럽게 어르고 달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니, 마음이 조금은 움직였다.

        

       “그러면, 저는 밖에서 여러분을 보고만 있겠습니다.”

        

       “저, 저도요.”

        

       우리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나머지 세 명의 눈길에 결국 져서, 나와 미아는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잊고 있었다.

        

       바깥은 수영복만 입고 있기에는 지나치게 추운 날씨라는 것을.

        

       결국 추위를 피해 따뜻한 물이 가득한 수영장에 들어가고 만 우리는 저 에너지 넘치는 세 사람의 장난에 휘말려 한참을 놀고 녹초가 되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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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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