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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2

        

         

       용병들은 빠르게 주물을 쓸어 담았다.

         

       수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주물은 금방 자취를 감췄고, 용병들은 주물이 다 들어간 자루를 미리 받았던 끈으로 꽁꽁 싸맸다.

         

       끈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투박한데다가 촌스러운 붉은색 염료로 물들어져 있는 것이 일반적으로 판매하는 끈은 아닌 듯 보였다. 게다가 끈에서는 꼬릿꼬릿한 냄새가 잔뜩 올라오고 있었는데, 썩은 고기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했고, 썩은 핏물에서 숙성된 과일에서 나는 냄새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용병들은 그런 냄새에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코를 쫑긋쫑긋 움직이며 냄새를 맡기 위해 노력하기까지 했다.

         

       “냄새가 흐…. 나지 않는다면 말하도록 하라….”

         

       냄새가 그들의 취향에 맞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이 이렇게나 냄새에 집중하는 이유는, 냄새가 그들의 생명줄이었기 때문이었다.

         

       코를 찌를듯한 썩은 내는 자루가 ‘임시 봉인’된 상태라고 알려주는 신호.

       저 냄새가 사라지는 순간 주물이 품고 있는 주술적 효과나 저주가 밖으로 빠져나와 용병들을 해하게 되리라.

         

       게다가 이 끈은 자루를 질기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효과 또한 있어서, 주물의 날카로운 부분에 자루가 찢어져 주물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게 하는 효과 또한 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자루를 등에 짊어진다고 해도 갑자기 툭 튀어나온 날카로운 주물에 찔려서 상처를 입거나, 저주에 시름시름 앓지 않아도 되었다.

         

       “이상 없습니다. 가시죠.”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괴인이 만든 ‘끈’의 효과는 지속되고 있었고, 용병들은 주물에서 아직 안전했다.

         

       아직은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노릇.

         

       용병들은 끈의 효과가 다 떨어지기 전에 빨리 임무를 마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러한 용병들의 기색을 읽은 괴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고, 앞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들어올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말이다.

         

       보안 장치에 문제가 생긴 것을 깨닫고 추가 인원을 투입하기 전에 어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듯,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이한 것이 있었다.

         

       그렇게 빠르게 재촉하다가도,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기만 하면 거미 다리를 움직여 그 사람을 질질 끌고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바쁘게 걸어가던 사람이 길가에 떨어진 돈을 보고 멈춰서서 줍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용병들은 이러한 괴인의 행동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도리어 괴인이 끌고 가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리고 괴인이 투명한 강화유리문이 설치된 방 안에 그들을 한데 모아놓았을 때.

         

       “흐흐. 이거 혹시…그거 맞습니까?”

         

       그들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팀장은 실실 웃으면서 괴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배낭에서 끈을 꺼냈다.

       흑색 화약을 절여서 만든 흑색 도화선이었다.

         

       그는 도화선 뭉치를 괴인의 거미 다리 한쪽에 걸어주었고, 괴인은 마침 필요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것을 가져가더니 말려있는 끈을 풀었다. 그리곤 손가락 하나를 펼쳐서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꿈틀꿈틀 움직였다.

         

       스르르.

         

       무릇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닮는 법이라.

         

       바닥에 놓인 끈은 괴인의 손가락 움직임에 맞춰서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도화선의 탈을 쓰고 있는 뱀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움직인 도화선은 한데 뭉쳐있는 사람의 몸에 휘감기기 시작했고, 스스로 단단하게 매듭까지 지으며 사람들을 꽁꽁 묶었다.

         

       팀장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며 괴인을 바라보았다.

         

       “이야.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신데요? 이 정도 솜씨를 가진 주술사를 우리가 모를 리가 없는데…. 좀 비밀스럽게 활동하셨나 봅니다?”

         

       괴인은 팀장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말라는 듯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을 뿐이다.

         

       팀장은 자신을 바라보는 괴인의 모습에 미안하다는 듯 손을 펼쳤다.

       그리곤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다른 질문을 던졌다.

         

       “또 뭐가 필요합니까?”

         

       괴인은 팀장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부비트랩…설치, 할 줄 아나…?”

         

       간단한 질문.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뜻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팀장은 괴인의 질문에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죠.”

         

       “그럼…설치해주게.”

         

       “목적은요?”

         

       “저들에게 신경이 쏠리고, 시간이 끌리도록.”

         

       “위력은요?”

         

       “인질은 죽지 않게. 구출자, 는 죽지만 않게.”

         

       “좋군요.”

         

       팀장은 웃으며 다른 용병들에게 손짓했다.

       다른 용병들은 팀장의 손짓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배낭과 품속에서 화약과 도화선, 도폭선, 점화기, 투박한 전자장비 등을 꺼냈다. 그리곤 고용주의 요청에 딱 맞게 인질의 주변에 ‘이건 폭탄입니다.’라고 광고하듯 노골적으로 장치를 깔아놓았고, 도화선과 도폭선을 팽팽하게 만들어 문 근처에 깔아놓았다.

       그리고 문 위쪽이나 문 근처의 사각지대에 폭탄을 빼곡하게 깔아놓았고, 폭발이 특정 방향으로 퍼질 수 있도록 꼼꼼하게 각도까지 조절해놓았다.

         

       그렇게 부비트랩을 깔아놓은 뒤 용병들과 괴인은 방에서 빠져나왔다.

         

       “——!”

         

       부비트랩은 그들이 모두 빠져나온 후에 완성되었다.

         

       괴인은 투명한 강화유리 앞에서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그러자 아까 인질들의 몸을 휘감을 때와 마찬가지로 도화선과 도폭선이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문에 묶이며 팽팽하게 당겨졌다.

       강화유리문을 조금이라도 당기면 장치가 작동하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낚싯줄 역시 벌레처럼 꿈틀대며 곳곳에 묶이기 시작했다. 문에 묶여있는 선을 무사히 제거한 이들이 안심하고 들어왔다가 ‘죽지는 않을 정도의’ 안전한 폭발을 얻어맞도록 말이다.

         

       그렇게 트랩이 설치되자 용병들과 괴인은 만족스럽다는 듯 그것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곤 미리 정해놓기라도 한 듯 동시에 몸을 돌리곤 걸음을 재촉했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괴인과 용병들은 갑작스레 덮친 파도처럼 사라졌다.

         

       한여름 밤의 꿈속의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본래 이곳에 오지도 않았다는 듯 말이다.

         

       남은 것은 텅 비어버린 창고.

       망가진 감시 장비.

         

       그리고, 폭발물에 감겨있는 인질들.

         

         

         

        * * *

         

         

         

       같은 시각.

       오사카 스이타시.

         

       오사카에 있는 일본 만국박람회 기념공원(日本万国博覧会記念公園)에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흑인.

       백인.

       히스패닉.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구성의 외국인들은 점차 해가 지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원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여기서 소풍이라도 즐기겠다는 듯 돗자리 하나를 펼치고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은 영락없는 ‘좀 특이한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본다면 그들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첫째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 언어가 아닌 국제적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어, 에스페란토(Esperanto)라는 것.

         

       굳이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영어를 놔두고 에스페란토어를 쓴다?

       이해하기 힘든 일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에스페란토어가 그리 대중적으로 퍼지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반쯤 세계 공용어 취급받는 영어도 아니고, 언어를 익히는데 취미가 있거나 특정 목적으로 에스페란토어를 익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장면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둘째.

       돗자리 위의 음식이 줄어들고 있지 않다.

         

       돗자리 위에는 근처 가게에서 사 온 것으로 추정되는 꼬치나 튀김, 그리고 거기에 곁들여 먹을 맥주가 잔뜩 깔려 있었다.

       얼핏 보기에 돗자리 위에 앉아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무언가를 먹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마다 맥주를 병째로 마시는 듯 뚜껑을 따놓고 있었으나 단지 그뿐.

       맥주를 입에 가져다 대지도 않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돗자리 위에 놓여있는 음식들은 이미 먹기라도 한 것처럼 반절이 없어진 상태였으나, 딱 거기까지.

       외국인 관광객들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셋째.

       외국인 관광객들이 있는 위치가 이상했다.

         

       보통 이런 곳에서 돗자리를 깔고 노는 것이라면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 일반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일반적인 감성과는 먼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로등의 불빛이 미치지 않는 어두컴컴한 풀밭에 돗자리를 깐 것이다.

       심지어는 조금만 걸어가면 아름다운 풍경과 구조물을 감상할 수 있는 데다가, 평평한 나무 바닥까지 깔린 장미 정원이 있음에도 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관광객들의 눈을 피해서 술판을 벌이는 미성년자 불량배들도 아니고, 왜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물론 식사가 금지된 지역에서 이러는 것이라면야 그럴 수 있기는 했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본 만국박람회 기념공원(日本万国博覧会記念公園)를 관리하는 오사카부(大阪府)에서 한국의 한강처럼 특정 구역에서 식사가 가능하도록 풀어주었기에 장미 정원의 정해진 구역에서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곳에 있었다.

       사람들 눈을 피해서, 어두컴컴한 곳에서, 조명 하나 없이.

       술도 음식도 입에 대지 않은 채, 에스페란토어로 시답잖은 이야기만을 하며 이곳에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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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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