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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2

       하루 동안 따뜻한 방에서 푹 쉬며 그간 쌓인 여독을 말끔히 씻어낸 백우진은 곧장 북해빙궁에서 내어준 최고급 방한복을 차려입고 나갈 채비를 끝마쳤다.

         

       만년빙정을 가까이서 확인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이를 위한 도움으로 용설란은 음기가 가득 쌓인 영물의 내단을 요구했다.

         

       “영물이라.”

         

       영물.

         

       보통 동물이나 식물이 수명의 한계를 뛰어넘고 수백 년을 살아 영험한 기운을 품게 된 존재를 일컫는다.

         

       그리고 그 영험한 기운은 무인에게 큰 도움이 되어 존재 자체로 기연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막막했다.

         

       ‘영물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말 그대로 영물은 걸어 다니는 기연 그 자체.

         

       기연이라는 것이 어디 땅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만큼 쉬운 존재던가?

         

       아니다.

         

       평생을 찾아 헤매도 연이 닿지 않으면 마주할 수 없기에 기연이라 부르는 것.

         

       다짜고짜 영물의 내단을 찾아오라기에 처음에는 자신을 놀리려는 것인 줄 알았다.

         

       처음부터 보여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자신을 가지고 놀려고 한 것은 아닐까.

         

       ‘다행히 아니었지.’

         

       빠른 눈치로 제 분위기를 파악한 그녀가 금세 말을 이어 붙였더랬다.

         

       북해 설산의 한 동굴에 영물이 살고 있노라고.

         

       다만 그 존재가 하도 흉험하여 토벌은 꿈조차 꾸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좀처럼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고수가 이리도 많은데 토벌이 어렵다고?’

         

       그의 기척에만 느껴지는 화경 고수만 무려 열 명.

         

       심지어 눈앞의 궁주, 용설란 또한 화경에 다다라 있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영물이라면 손쉽게 토벌할 수 있는 수준일 텐데.

         

       이러한 의문은 영물의 이름을 듣는 순간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백린사왕(白鱗蛇王).”

         

       눈처럼 새하얀 비늘로 몸을 뒤덮은 뱀들의 왕.

         

       무림 역사상 모습을 드러낸 횟수가 세 차례도 되지 않는 영물 중의 영물.

         

       혹자는 백린사왕을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 물밑에서 수행 중인 이무기와 동급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

         

       “…확실히 화경 정도론 어렵겠지.”

         

       등장 자체가 적었던 만큼 백린사왕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적다.

         

       그나마 몇 가지 유용한 정보를 꼽아보자면, 새하얀 비늘이 어지간한 검강조차도 막아낼 정도로 단단하다는 것과 녀석이 뿜어내는 독에 당하면 온몸이 얼어붙어 죽는다는 것 정도일까.

         

       사실상 화경 수준이 아니라, 현경은 되어야 토벌 의지를 보일 수 있는 영물.

         

       그토록 어려운 만큼 돌아오는 기댓값 또한 뛰어나다는 사실.

         

       “확실히 백린사왕의 내단이라면 그 오염인지 뭔지도 빠르게 정화할 수 있겠어.”

         

       극한의 땅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백린사왕의 내단 또한 그에 걸맞은 극음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고 전해진다.

         

       극음의 기운으로 만년빙정을 좀먹는 오염을 정화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으리라.

         

       “준비는…, 끝났나.”

         

       지난 저녁부터 준비는 해두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당선영에게서 온갖 해독제는 물론, 입에 물고만 있으면 독이 중화된다는 피독주까지 빌렸다.

         

       이를 건네주는 당선영은 본인이 직접 가고 싶은 듯했으나, 구태여 따라붙지는 않았다.

         

       그녀도 아는 것이다.

         

       백린사왕쯤 되는 영물을 처치하기 위한 여정에 섣불리 끼었다간 백우진에게 도리어 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는 극한의 조건에서의 수련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내주었다.

         

       백우진의 눈에 혹한의 땅 위에 서 있는 북해빙궁은 그야말로 최적의 수련 장소였다.

         

       ‘환경 자체가 시련이니까.’

         

       살갗을 에는 듯한 추위를 막아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체내의 내공을 순환시켜야 한다.

         

       말인즉, 밖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내공이 쭉쭉 닳아 없어진다는 뜻.

         

       그런 상황에서 격렬한 수련을 동반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체온을 빼앗긴 몸의 체력은 물론이요, 내공마저도 빠르게 소실되니 이를 견디는 것만으로 그들의 체력과 내공은 한층 더 든든해지리라.

         

       “좋아.”

         

       허리춤에 검과 호리병을 두르는 것으로 채비를 마친 그가 침소를 나섰다.

         

       나가자마자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

         

       막상 길을 떠나려니 무언가 허전했다.

         

       “…오랜만에 혼자라서 그런가.”

         

       대체 얼마 만의 혼자 떠나는 길인지.

         

       하나 쓸쓸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줄줄이 매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만큼 위험천만한 곳이기에.

         

       그의 누이, 혈수마녀라면 도리어 큰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조원들과 함께 남겨두기로 했다.

         

       아직 북해빙궁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탓이었다.

         

       혹여 그들이 숨겨둔 이빨을 드러낸다고 해도 혈수마녀가 있다면 걱정할 만한 일은 생기지 않을 테지.

         

       여러모로 만반의 준비를 해둔 백우진은 선계의 술을 입에 가득 머금은 뒤.

         

       “흐끅…, 가볼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북해빙궁을 나섰다.

         

         

       * * *

         

         

       설산의 중턱.

         

       눈 덮인 땅 아래로 향하는 동굴의 끝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비늘로 온몸을 뒤덮은 뱀.

         

       이를 따라 한 시인이 일컫기를, 백린사왕(白鱗蛇王).

         

       하얀 비늘을 가진, 가히 뱀들의 왕이라 칭할 만한 자태를 뽐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평소의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주변에 가득 찬 냉기를 먹는 데에 사용한다.

         

       냉기를 머금으면 머금을수록 몸집은 커지고, 비늘은 더욱 단단해지며, 색은 새하얀 빛을 띠게 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점점 더 차가워지는 한기를 가득 머금고서 기분 좋게 몸을 튼 채로 낮잠에 빠지려던 그때.

         

       사박 사박

         

       멀지 않은 곳에서 눈 덮인 땅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물의 것이 아닌, 인간의 발걸음.

         

       조금 신경이 쓰였으나, 그것도 잠시.

         

       인간을 잡아먹는 취미 따위는 없다.

         

       더군다나 어지간해선 인간이 제 앞에 오는 일 따위는 없을 테니,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조만간 알아서 산을 떠날….

         

       “어, 찾았다.”

         

       스르르릅.

         

       …줄 알았던 인간이 단숨에 동굴 안쪽까지 뛰어와 제게 닿았다.

         

       수백 년을 살면서 커진 것은 몸뚱어리만이 아니었다.

         

       조금씩이지만 지혜와 지식 또한 쌓였다.

         

       그중에는 인간의 언어 또한 포함되어있다.

         

       그렇기에 알아들었다.

         

       저 인간이 이 산에 온 까닭은 다름 아닌 자신을 찾기 위해서임을.

         

       스르릅…!

         

       가끔 있는 일이었다.

         

       인간들 사이에 불리기를 자신은 영물.

         

       제 몸속에 자리한 내단이 무인이라는 것들에게 그리도 큰 도움이 된다지.

         

       백린사왕의 성격은 매우 온순하다.

         

       인간을 잡아먹지도 않을뿐더러 무의미한 살생에 어떤 쾌감도 느끼지 못한다.

         

       좋아하는 것은 그저 이곳에 똬리를 튼 채로 냉기를 흡수하는 것뿐.

         

       그러나.

         

       키아아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건드리지 않을 때의 이야기.

         

       제 목숨이나 다름없는 내단을 노리고 찾아온 인간에게는 해당 사항 없는 것이었으니.

         

       쿠쿠쿠쿠!

         

       둥글게 말고 있던 거대한 몸을 움직이자, 동굴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우수수 쏟아진다.

         

       작은 움직임만으로 자아내는 거대한 위압감.

         

       이는 그의 마지막 자비였다.

         

       이대로 격의 차이를 깨닫고 부리나케 도망친다면 구태여 쫓아가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러나.

         

       “이야…, 너 좀 오래 살았나 보다? 크기며 비늘이며 아주 그냥 크으…!”

         

       아무래도 수백 년 사생(蛇生)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친놈을 마주한 듯하다.

         

         

       * * *

         

         

       무림의 역사에 기록된 백린사왕은 몹시도 나쁜 뱀으로 나온다.

         

       어떤 고수는 민가를 습격한 녀석으로부터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칼을 뽑아 처단했다고 하고.

         

       또 다른 고수는 눈 덮인 산길을 지나는데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나타난 녀석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다가 마침내 승리했다고도 전해진다.

         

       마침내 설산 중턱의 동굴에 똬리를 틀고 있는 백린사왕을 마주한 순간.

         

       ‘다 뻥이었잖아.’

         

       그들의 무용담이 전부 거짓임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인간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음에도 놈은 인상을 찡그릴 뿐, 섣불리 공격을 가해오지 않는다.

         

       말인즉, 무턱대고 생명을 해치는 성미는 아니라는 뜻.

         

       아마 그들의 무용담은 제 탐욕을 감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단을 얻기 위해 녀석을 죽였다고 써두면 멋이 안 살지 않겠나.

         

       그러니 제 무용담이 될 수 있도록 적당히 이야기를 꾸미기 위해 백린사왕을 천하에 둘도 없는 악한 영물로 둔갑시킨 것일 테지.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백우진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가만히 있는 영물을 해치고 내단을 빼앗으려니 양심이 쿡쿡 찔린다.

         

       만년빙정의 정화는 북해의 모든 주민을 살리기 위한 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의 목숨을 위해 죽어달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눈앞의 영물은 어지간한 인간보다 더 지적인 생명체기에.

         

       “으음, 이를 어쩐다.”

         

       그에게서 좋지 않은 낌새를 느낀 백린사왕이 말아둔 몸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요동치기 시작하는 동굴.

         

       천장에서 떨어진 돌 부스러기들이 생각에 잠긴 백우진의 머리를 두들긴다.

         

       그러는 와중에도 미동 없이 고민을 이어가던 그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하나의 생각.

         

       “그래, 그러면 되겠구나!”

         

       묘수를 떠올린 백우진이 히죽 웃으며 혀를 날름거리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백린사왕을 향해 말했다.

         

       “야, 내단 조금만 꺼내 주라.”

         

       전부는 아니고 한 반 정도만.

         

       이를 들은 백린사왕이 분노 어린 포효를 터뜨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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