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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2

    <432 – 시험의 맹점>

     

    호너 후라이드치킨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시험을 이어나갈 정도의 체력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덜덜 떨리는 팔 근육은 물론이고 창을 놓치지 않으려다가 피멍이 든 손바닥은 치유가 시급했다.

    그는 품에 보관하고 있던 힐링포션을 꺼내들었다.

     

    “크윽. 이 귀한 녀석을 이런 자리에서 쓰게 될 줄이야…”

     

    제국 3대공신가문의 일원 정도 되는 높은 위치의 사람은 포인트의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값비싼 힐링포션을 들여와 여분의 목숨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어떤 부상도 치료하는 의료동이 있기에 어지간한 일에는 사용할 일이 없을 포션이지만 의료동에 갈 수 없는 제약이 달린 지금은 아무리 많은 포인트라도 부르는 대로 내야 할 물건이었다.

     

    “불쌍한 녀석.”

    “상대를 잘 골랐어야지.”

     

    2학년들이 혀를 찼다.

    그러나 타이밍이 이상했다.

    얻어터진 직후에는 아무 말도 없더니 왜 포션을 꺼낸 뒤에 저러는 걸까?

     

    “어, 어째서 회복효과가 없지?!”

    “그야 여러분이 성장하는 동안 저 역시 성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임전무퇴>

    [선신 임마누엘은 당신이 물러서지 않는 한, 적에게도 다음 기회를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적에게서 도주하지 않는 싸움에서 적은 신성과 무관한 수단으로 회복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신심 깊은 신앙의 생활을 통해 선신 임마누엘에게 하사받은 새로운 권능, 재생무효!

     

    “임마누엘의 충실한 사제가 되고자 맹세한다면 선신께서는 재능 넘치는 동량에게 은혜를 베풀 것입니다. 신앙에 귀의하거든 당신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신께 귀의한 자가 귀족으로서의 생활을 누릴 수는 없겠죠.”

    “임마누엘께서 고귀한 삶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의롭지 못한 삶에 징벌을 내릴 따름이죠.”

     

    그렇다면 귀족으로서의 삶은 불가능했다.

    물장구를 치지 않는 오리가 물 위에 떠오를 수 없듯이 모략을 구사할 줄 모르는 귀족은 제 자리에 남아있을 수 없다.

    압도적인 힘이 있다면 귀찮은 재주를 부릴 필요도 없지만 호너 후라이드치킨은 그 정도의 강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귀족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짧은 순간임에도 그는 편법을 깨달았다.

     

    “성녀 유피님.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신의 힘은 신의 힘으로 걷어낸다.

    <참수의 골고다>를 모시는 성녀 유피.

    그녀의 도움이라면 능히 회복저주를 절단할 수 있다.

    백색의 성기사 루도 한방 먹었다는 얼굴로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생각해?”

     

    유피가 이슈타르를 돌아보았다.

    용사의 반응은 매정했다.

     

    “제국3대공신가문은 2황녀를 선택했어.”

     

    2황녀 매스각키가 암흑마나에 심취한 것은 이제 와서는 부정할 의미도 없는 명백한 진실.

    용사는 황녀와 손을 잡은 학생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되었네요.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크윽… 제, 제게 빚을 씌울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이래 보여도 제국신창에게 창술을 전수받은 몸. 아카데미에서 성장하여 가문에 돌아가거든 제 입지는 지금까지 이상이 될 겁니다.”

    “그게 이슈타르와 무슨 상관이죠? 어차피 제국의 안전한 제도에서 지낼 당신과 변방의 대사건에 도전할 이슈타르는 마주칠 일도 없을 텐데.”

     

    으득.

    호너가 이를 갈며 조건을 제시했다.

     

    “가문의 직속정예조직인 비창대를 아카데미 졸업 후 5년간 무상으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비창대!”

    “지젤은 비창대도 알아요?”

     

    오크노디가 용케 안다며 기특하게 여겼다.

    그런 오크노디의 태도에 황당해하면서도 지젤은 다른 학생들의 의구심어린 모습을 보고는 대신 설명했다.

     

    “개개인이 초일류 창수들로 모인 신창의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사병조직입니다. 정규기사단 못지않은 전투력을 지녔으며 해마다 괴수토벌에도 나서서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게 뭐 얼마나 쓸모 있는 거냐? 괴수는 바위산에서 나도 심심하면 하나씩 잡았던 건데.”

     

    손오천의 심드렁한 표정에 지젤은 자신의 설명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들에게는 더욱 직관적인 비교대상이 필요했다.

     

    “비창대 창수 5명이 1학년 상급반 1명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쪽의 창수들은 더 이상의 성장은 힘들겠지만 그 정도만 해도 상당한 전력입니다.”

    “오. 쫌 치네.”

     

    그만한 스펙의 부하들이라면 가치가 높다.

    하지만 이슈타르의 기준은 더욱 가혹했다.

     

    “받아들이지. 생사를 불문하고 쓸 수 있다면.”

    “…그리하십시오.”

     

    호너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자 유피가 영혼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을 마친 그는 간신히 자유의 몸이 되었다.

     

    “…두 번째로 약한 선배님은 어느 분이십니까?”

    “누굴 것 같아?”

    “맞춰봐.”

    “물어본다고 알려줄 리가 있겠냐?”

     

    2학년들의 놀림에 호너가 씩씩거렸다.

    지젤을 돌아본다고 그가 대답해줄 이유도 없었다.

    망신만 잔뜩 당하는 모습을 보다못한 다른 제국3대공신가문의 일원인 체다 포테이토피자가 선배 한 명을 가리켰다.

     

    “앞줄에 팔짱을 끼고 앉은 강한 척 하는 선배가 세 번째로 약한 선배님입니다. 호너, 당신이라도 조건여하에 따라서는 좋은 승부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아닛, 어떻게 알았지?!”

     

    선배가 낭패라는 표정을 짓기 무섭게 호너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투창대결을 합시다. 바닥에 그은 이 선 밖에서 창을 던져서 벽에 더 깊이 창을 박아 넣은 사람이 이기는 관통력 투창대결입니다.”

     

    창을 쥐고 무기를 맞대기는 부담스럽지만 일격에 창을 깊이 넣는 대결이라면 질 리가 없다는 호너의 영악한 계산이 담긴 대결이었다.

    보기와 달리 근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던 선배는 패배했고 호너는 2200포인트의 절반인 1100포인트를 얻었다.

     

    “그럼 저 체다 포테이토피자는 두 번째로 약한 선배에게 도전하겠습니다.”

    “포인트야 많으니 대충 끝내야겠군. 나 레프 철판숯불갈비도 같은 대상에게 연이어 도전하겠다.”

     

    같은 반액이어도 1000포인트의 절반과 1100포인트의 절반은 다르다.

    100포인트만 해도 교내식당 정식(5p)을 20번은 먹을 수 있는 금액!

    체다와 레프의 도전은 학생들을 번민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약자를 간파하여 도전할 것인가.

    알려진 약자에게 한 차례라도 빨리 도전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호너처럼 패배할 위험을 무릅쓰고 강자에게 도전할 것인가.

     

    “오크노디는 역시 거물을 노릴 거야?”

    “당연하지!”

    “먼저 나서지 않아도 되겠어?”

    “만델라 선배에게 도전할 용기가 있다면 오히려 응원하고 싶은걸?”

     

    한 순번이라도 빨리 도전하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오크노디는 조금도 조급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드릴머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휘파람을 불며 노는 긴장감 없는 여학생.

    그녀가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사람인 2학년 학년수석 만델라 카스테라라는 사실을 알고도 유급의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할 사람은 없었다.

     

    “오크노디. 생사투로 먼저 상대를 죽이는 쪽이 이긴다는 대결은 어때?”

    “괜찮게 들리네! 선배들은 1학년을 해치면 중징계를 받으니까 정석대로는 이길 수 없는 대결인걸.”

     

    그 말에 자신감을 얻은 즈앙은 학년사천왕 바로 밑급으로 강한 선배를 지목했다.

     

    “선배. 먼저 상대를 죽이는 쪽이 이기는 대결이야.”

    “내가 만만해보였구나?”

     

    2학년 선배는 어이가 없다며 픽 웃었다.

     

    “머리는 잘 썼어. 2학년은 1학년을 죽이면 징계를 받지. 네가 진심으로 살수를 펼쳐도 이쪽은 그럴 수 없다는 차이는 커. 그런데 하나 실수를 했어.”

    “말 많은 상대를 고른 거?”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상태로 도망 다니면 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여기서 못 나가. 즉, 네 실수는 시간제한을 두지 않은 거야.”

     

    그 말과 동시에 선배의 모습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형체가 사라졌어?!”

    “저 선배, 어디로 사라진 거야?”

    “평범한 물마법이 아니군요. 전조현상 없이 육신을 액체로 바꾸는 퍼포먼스는 정령술에 가깝습니다.”

     

    지젤은 어렵게 선배를 찾아다니는 대신, 오크노디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확인했다.

    홈룸강의실에 덤으로 딸린 연무장을 오크노디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찰팍찰팍…

    미세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타나는 젖는 흔적.

    잠깐 사이에 그만한 거리를 이동하고도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선배의 재주는 놀라웠다.

     

    쉬익, 팍!

     

    그걸 오크노디를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 포착해내 암기를 날리는 즈앙의 재주는 더욱 놀라웠다.

     

    “어떻게 찾은 거야? 내 은신은 서치아이를 펼쳐도 안 보일 텐데.”

    “고위암살자일수록 표적도 평범한 대상이 아니야. 정령술을 익힌 상대에 대한 암살도 스승님한테 배워둔 경험이 있어. 가령 자신의 몸과 정령계의 물의 위치를 교환한 정령술사는 제 의식을 투영한 물이 기체가 되어도 조종할 수 있지.”

     

    그 말과 동시에 허공에서 불투명한 액체들이 요동치더니 빠르게 색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그럴 땐 독을 살포하면 돼. 정령술사는 빌려온 물이 오염되면 같은 양의 깨끗한 물을 정령계로 보낼 때까지 강제로 인간의 형상을 되찾게 되니까.”

     

    독에 헐떡이는 선배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단검을 들이미는 즈앙의 태도에 선배가 기겁하며 외쳤다.

     

    “항복!”

    “잘했어, 선배. 이건 해독제야.”

     

    무섭고도 편리한 방식으로 대결에서 승리한 즈앙이었지만 다른 학생들은 따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저건 즈앙만 가능한 짓이네. 우린 저만한 독을 다룰 능력이 없어.”

    “본체는 정령계에 숨어서 액체만 조종하고, 조종하는 액체를 모두 증발시키면 본체가 되돌아온다고 쳐도 그걸 다 기체로 흩어놓으면 어떻게 없애?”

     

    작정하고 버티면 하루가 지나도 잡을 수 없는 성가신 능력을 지닌 선배!

    멋 모르고 덤볐다간 저런 함정능력에 발목이 붙잡힐 수 있다는 사실에 모든 학생들이 두려움에 질려 안전하고 보수적인 선택만 했다.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다.

     

    퍽!

     

    “억!”

     

    제국진영에서 쫓겨나 오크노디 조직에 기어들어온 격투가 롯토.

    그녀가 2학년 최약체 선배의 주먹에 배를 맞고 꺽꺽 거리며 쓰러졌다.

     

    “저 사람 손오천한테 기권한 선배 아니었어?”

    “더럽게 운도 없지. 어떻게 럭키펀치에 맞냐.”

    “그래도 호흡이 흐트러질 정도로 지쳤으니까 이젠 이길 수 있겠네.”

     

    자신만만하게 도전했던 제국진영 학생 셋이 연달아 선배에게 맞고 쓰러졌다.

    일이 요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깨달은 학생들이 도전을 멈추었다.

     

    “저 선배 쓰러질 것처럼 구는데 전혀 쓰러지지를 않잖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동요하는 1학년들 사이에서 오크노디를 눈여겨보던 지젤이 그녀만 싱글벙글 웃으며 동요하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꼬마숙녀는 저 선배가 뜻밖의 저력을 보이며 버틸 수 있는 이유를 아십니까?”

    “물론이죠!”

    “이유가 뭡니까?”

    “안 말해요. 팁 줘도 욕만 먹는걸!”

    “그럼 저한테만 몰래 알려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럼 상관없죠!”

     

    오크노디가 지젤의 귀에 두 손을 모아서 속닥속닥 귓속말로 비밀을 밝혔다.

     

    “다른 2학년 선배들이 몰래 회복마법을 걸거나 버프를 걸어서 회복시키고 있어요!”

     

    지젤의 실눈이 크게 벌어졌다.

     

    “시험상대와의 대결은 1대1 대결이 아니었습니까?”

    “원칙상으로는 그렇죠. 근데 자기 팀이 지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으라고 정한 규칙은 없잖아요? 안 들키게 돕는 건 상관없죠!”

     

    특히나 서로 사이가 좋은 2학년들이라면 만델라 카스테라의 지휘 아래에 모두 일치단결해서 한통속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대결에서 통과했던 몇몇은 그런 버프나 은밀한 지원으로 얼버무릴 수 없는 일격기를 지닌 강자들.

    요컨대 후방지원을 단숨에 돌파할 수 있는 실력자가 아니라면 2학년 전체의 은밀한 지원을 뚫고 이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정보력 대결로 들어가는 건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눈치 채셨습니까?”

    “당연하죠. 이 대결은 무엇이든 도전자가 대결방법을 정할 수 있죠. 굳이 그게 몸으로 싸우는 방법이라고 정한 적은 없는걸요?”

     

    지젤처럼 정보력이 특기인 사람은 정보력 대결로 도전해도 된다.

    나머지 2학년들이 몰래 전달할 정보를 그 혼자서 이겨낼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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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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