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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2

       

       마인 모이셴(Mein Mäuschen). 

       나의 작은 새앙쥐.

       

       기모노를 입고 있고, 평범한 인상을 가진 20대 초중반의 동양계 여성.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그 여성을 바라보며, 구로베 교수는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설마, 저것이 구로베의 사별한 아내……?’ 

       

       그리고 슈바르츠발트 중좌는 위쪽의 구름사다리에서, 다시 한 번 장교 모자를 벗고 벗겨진 이마를 드러내며 꾸벅 상체를 숙이며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습니까?』

       『나의 모이셴을, 어, 어떻게……!』

       

       구로베 교수는 여전히 여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을 더듬거렸고, 슈바르츠발트 중좌는 그런 구로베 교수를 내려다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 노트에는 당신의 아내의 사진이 여러 장 있더군요. 그 사진을 토대로 만든, 그녀와 똑 닮은 인형입니다.』 

       『인형……?』 

       

       구로베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슈바르츠발트 중좌를 올려다보았다. 선글라스 고글 때문에 눈빛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떨리는 몸짓만 봐도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나에게도 느껴졌다.

       

       중좌는 웃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까도 자동인형은 보셨겠지만, 이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일본의 조악한 기술력으로 엉성하게 만든 섬유제 마네킹이 아니라, 도이츠에서 제조된 특수 합성 고무와 셀룰루오스 등을 이용해, 부드러운 피부는 물론 그 아래의 근육과 장기, 골격까지 인간의 그것과 흡사하게 만들어진 정교한 인형…… 이른바 젝스푸퍼(Sexpuppe), 즉 성교인형입니다. 자, 말도 하지요.』 

       

       여성은, 아니 인형은 턱관절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말했다.

       

       『단나상, 오카에리나사이. 단나상, 오카에리나사이.』 

       

       바람이 빠지는 듯한 인공적인 목소리로, ‘여보, 어서오세요’라는 일본어를 반복적으로 구사하는 인형. 구로베 교수는 그런 인형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슈바르츠발트 중좌는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이것이 저희가 자랑하는 보그힐트(Borghild) 계획입니다. 저희 도이츠의 므루고프스키 박사가 만들어낸 걸작이지요. 아직 시제품입니다만, 안정화되면 종류별로 대량생산하여 일선 병사들에게도 제공할—』 

       

       —푸확!

       

       인형이 폭발했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흐물거리는 피부와 장기, 덜렁거리는 근육 조각들이 철푸덕, 하고 사방에 떨어지는 모습은 꽤나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화염이나 불꽃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면, 인형의 내부에서 공기가 폭발한 건가? 

       

       이 쪽을 바라보면, 구로베 교수는 떨리는 손으로 마술봉을 들고 있었다. 인형을 폭발시킨 구로베 교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것은 나의 모이셴이 아니다.』

       『……레러 크로버. 재현에 미흡함이 있었습니까?』

       『그녀는, 나의 모이셴인 그녀는, 조선인인 그녀는 나와 대화할 때 일본어를 절대로 쓰지 않았어. 우리는 언제나 도이츠어로 대화했다. 언제나…….』 

       

       구로베가 젊었던 시절 독일 유학 중에 만난 김목선이라는 이름의 조선인 여성은, 긴 모꾸센이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해서, 구로베 교수는 독일식 애칭으로 ‘작은 생쥐’라는 뜻의 ‘모이셴(Mäuschen)’으로 불렀다고 했었다.

       

       그런데 저렇게 기모노를 입고, 일본어로 「단나상, 단나상」하며 아양을 떠는 모습은…… 구로베 교수로서는, 외형만 흉내낸 가짜라는 위화감을 곧바로 느꼈을 것이고,

       

       모욕감을 느꼈겠지.

       

       인형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져 내리는 와중에, 인형의 머리통이 우연찮게 구로베 근처로 떨어져 데구르르 굴러왔다.  

       

       『이것이 지금의 도이츠인가. 나의 유학하던 시대의 도이츠는……』

       

       구로베 교수는 인형의 머리통을 슬픈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비록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생활은 각박했지만,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극복해나가고 있던 긍지높고 아름다운 나라였지. 하지만 지금은……』 

       

       구로베 교수의 바로 옆에 서 있던 나는, 그가 선글라스 고글 안쪽으로 눈을 질끈 감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도이츠를 본다면, 그녀가 실망하겠군.』

       

       —화르륵!

       

       인형의 머리통이 불길에 휩싸였다. 안에서 콰창! 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영혼 에너지가 담겨있던 진공관이 터지는 소리였으리라.

       

       물론 그 안에 구로베의 아내의 영혼은 조금도 섞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구로베의 아내는 학교에서 죽었다고 했으니까. 

       

       『이런, 이런!』

       

       슈바르츠발트 중좌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군요! 하지만 그것은 시제품일 뿐이고, 게다가 고작 사진 몇 장으로 재현하려니 기술자들이 최선을 다해도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당신이 저희에게 오셔서 조언을 주신다면, 더 나아진 개선품을—』

       『용서할 수 없다.』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감히 저런 장난감으로 그녀를 욕보이고, 아무리 가짜라고는 하지만 나로 하여금 아내의 형상을 파괴하도록 한 것은…… 용서할 수 없으니,』

       

       구로베 교수는 마술봉을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슈테어벤(Sterben).』 

       『크아아악!』

       

       슈바르츠발트 중좌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곁에 서 있던 나치 병사들이 급히 옷가지를 덮어 끄려고 했지만 불길은 떨어지지 않았다. 

       

       『퇴터 지 알러(Töte sie alle)! 모두 죽여라……!』 

       

       불길에 휩싸인 슈바르츠발트 중좌는 쓰러지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고,

       

       „지 하벤 코만단텐 앙게그리펜! 알람! 알람!“  

       

       지휘관이 쓰러지는 모습을 본 나치 병사들은 당황하며 외쳤다. 그리고, 그제서야 경보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쓰애앵— 쓰애앵—

       

       귀에 거슬리는 알람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다 이스트 아인 마기아!“ 

       „악크퉁! 지 진트 에르바크트!“

       „디 바펜 렉트 안! 포이아!“

       

       —두두두두두두두!

       

       다시 우리를 향해 빗발치는 총격. 다행히 구로베 교수가 바로 방어 역장을 전개해서 막아내었기 때문에 총격에 맞지는 않았지만……

       

       ‘……이래서야 원점이네.’

       

       아까 슈바르츠발트 중좌가 나타나기 전에 나치 병사들의 총격을 받던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더 악화됐다. 이젠 알람까지 울리고 있었고, 나치 병사들은 계속 충원되어 더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방어 역장은 외부의 소리까지 차단함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격발음을 다 막아내지는 못해 마치 장맛비가 차 지붕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할 지경이었다. 나는 구로베 교수에게 물었다. 

       

       『아니, 왜 그러셨어요!』

       『미안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해합니다.』 

       

       이건 어쩔 수 없지. 구로베 교수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죽은 아내의 고인능욕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저 나치 장교는 구로베 교수가 정말 저런 것을 마음에 들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인간의 마음이 없는 거냐고. 

       

       ‘그나저나, 상황이 진짜 안 좋은데.’

       

       총탄을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우리 쪽에서 반격할 수단이 없었다. 우선 나랑 무라사끼, 홍옥례는 근접전 전문이었기에 멀리서 총을 쏴대는 나치 병사들을 공격할 수 없었고, 

       

       이유하나 송병오처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녀석들도 바깥쪽으로 공격을 투사할 수 없었다. 구로베 교수가 전개한 방어 역장은, 총탄도 막아내는 견고함을 위해 안팎을 모두 막는 역장이었으니까.

       

       칼은 애초에 닿지도 않고, 마력을 이용한 공격도 막히고, 총탄도 막힌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마땅한 반격 수단이 없는 지금…… 

       

       아니지. 아직 남은 존재가 하나 있었다. 나는 내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작은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아유! 워떡혀!”]

       

       내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까뜨린느-방숙자. 이 녀석이 다루는 령(靈) 에너지는 마력과는 무관한 에너지라서, 구로베 교수의 방어 역장을 뚫고 외부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근처에 프노이마-파티켈-자우거, 즉 령입자흡인기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강한 인력으로 령 에너지를 끌어당기는 기계였기 때문에, 방숙자가 인형의 몸 외부로 령 에너지를 발산하는 족족 흡수해버리고 말겠지.

       

       게다가 알람이 울려서 나치 병사들은 계속 충원되고 있었다. 심지어 기관총으로도 모자라서, 

       

       „판쩌파우스트, 포이아!“

       

       —콰아앙! 

       

       무슨 바주카포 같은 것까지 발사해가며 방어 역장을 때려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치 병사들은 저 앞쪽에 몰려있어 우리의 뒤쪽은 그런대로 비어있다는 것이었다. 마침 지하철 통로로 향하는 방향. 총탄을 막아내며 그 쪽으로 도망칠 수 있다면……

       

       『일단 뒤로 피합시다! 뒤쪽으로 도망치죠!』

       

       하지만, 구로베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움직이지 못한다.』

       『……아.』

       

       기관총탄과 대전차포탄을 막아낼 정도의 방어 역장은, 이동하면서 전개를 유지할 정도로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구로베 교수 정도라고 해도 이만한 역장을 구현하려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멈춰있어야 했던 것이다. 

       

       구로베 교수는, 반원형으로 전개되어 있는 방어 역장의 절반 뒤쪽을 해제하고는 말했다.  

       

       『내가 총탄을 막아내고 있을 테니, 먼저 가라.』

       『구로베 선생!』

       『……먼저 가라. 내가 이곳에 남겠다. 어차피 나는 나의 연구 노트와 아내의 사진을 회수해야 하고, 이 모든 것은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보그힐트 계획(Borghild project)은, 전쟁 당시 독일군이 성병 감염으로 인한 전투력 감소가 심해지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성교용 인형’을 보급시키려 했던 나치독일의 비밀 프로젝트였습니다.

    무려 히틀러가 하임리히 힘러에게 지시했다고 하고, 요아힘 므루곱스키(Joachim Mrugowsky)라는 나치 의학자가 총책임을 맡았다고 하네요.

    이 성교용 인형의 제작에 있어서는 여러 구체적인 조건이 붙었습니다. 합성 피부는 진짜 피부처럼 느껴져야 하고, 인형의 몸은 실제 몸처럼 가동 가능하며, 인형의 장기까지 절대적으로 사실적으로 느껴져야 한다는 조건이 말이죠.
    상기된 조건은 현대의 러브돌 제작에서도 구현하기 어려운 것일텐데…… 그런데도 체형별로 3가지 모델이 50여기나 시범적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네요.

    물론, 그다지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몇몇 인물들의 증언 이외에 별다른 증거는 남아있지 않고, 생산 공장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고 하거든요.

    그야말로 나치의 UFO나 월면기지처럼 믿거나 말거나인 이야기지만, 이후 바비인형에 영향을 주었다는 등 아직까지도 여러 음모론이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재미있지 않나요?

    금방 한편 더 올라갑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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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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