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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3

       방송국 카메라는 내 생각보다 꽤 작았다.

        

       하긴, 영화를 촬영할 것도 아니고 들고 다니기도 해야 할 테니 당연히 큰 카메라를 쓸 수는 없겠지.

        

       물론 우리가 쓰는 미러리스보다야 크긴 하지만.

        

       “그러니까, 다섯 분은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함께 살아오셨다는 뜻이네요?”

        

       “네. 여기 이사 오기 전에는 훨씬 좁은 집이었습니다.”

        

       “혹시 불편하지는 않으셨나요?”

        

       나는 네 아이를 돌아보았다.

        

       다들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물론 불편한 점이 있긴 했을 것이다. 그렇게 좁은 곳에서 개인적인 공간도 없이 사는데 어떻게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그 이상으로 이 세상에 나 혼자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마음 편했다.

        

       나머지 아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까지 불편했던 적은 없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작가라고 했으면서 카메라도 이 사람이 들고 있네.

        

       카메라 든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어쩌면 사람 한 명 덜 쓰고 돈을 좀 아끼려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거실에 장식이 꽤 많은데, 할로윈과 크리스마스 장식을 동시에 해두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희가 할로윈을 깜빡하고 챙기지 않아서요. 장식하는 김에 그냥 다 같이 해버린 거예요.”

        

       클레어가 조금 엉뚱한 말을 했지만, 방송국 사람들은 그저 웃었을 뿐이다.

        

       이 자리에서 첫인상이 나쁜 사람은 없다.

        

       따지자면 표정에 변화가 별로 없는 내 첫인상이 가장 나쁘지 않을까.

        

       아무튼, 그렇기에 클레어의 그 말도 그냥 어느 미소녀의 조금 엉뚱한 대답이 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이건…….”

        

       “각자 취미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편입니다.”

        

       거실 TV 앞에 놓인 물건들을 카메라로 찍자, 앨리스와 샤를로트는 정말로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이 캐릭터들은 저도 알아요. 어렸을 때부터 자주 봤거든요.”

        

       일단 왼쪽부터 카메라가 영상을 찍어갔다. 그쪽에는 대부분 샤를로트가 사다 모은 공주 피규어가 있었다.

        

       확실히 이쪽은 오타쿠가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도 크게 문제 될 건 없겠지. 특별히 노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피규어니까.

        

       영화 매니아라면 사다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네, 저도 이 회사 영화들을 좋아해서…….”

        

       샤를로트도 그럭저럭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끝에 다다라, 나와 앨리스가 사다 놓은 피규어들은…….

        

       그래도 앞의 두 개는 좀 괜찮았다. 둘 다 평범하게 교복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교복에 비해서 치마가 좀 짧긴 했지만 이런 식의 캐릭터치고는 그래도 옷을 차려입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 옆에, 클레어 피규어는…… 바니걸 차림이었으니까.

        

       “이건…….”

        

       작가도, 카메라 감독도 잠깐 말을 잃었다.

        

       여기서 앨리스가 샀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나도 피규어 하나 정도의 지분은 있는데.

        

       “이 캐릭터들이 저희를 닮아서, 서로 장난한다고 샀던 게 이렇게 모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적당한 변명을 생각해냈다.

        

       “아, 확실히 이렇게 보니까 닮으셨네요!”

        

       작가의 표정도 밝아졌다.

        

       휴.

        

       “처음엔 제가 앨리스 모습의 피규어를 사고, 그다음엔 앨리스가 제 모습의 피규어를 사고…… 그렇게 서로 놀리다 보니 어느새 저 클레어 피규어까지 사게 되어서요.”

        

       “짓궂은 관계시네요. 그래도 보기 좋아요.”

        

       작가가 웃으며 말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피규어 이름과 여러분 이름이 같다는 뜻인가요?”

        

       “아, 네. 성과 이름 모두 같습니다.”

        

       “어…….”

        

       작가가 조금 당황했다.

        

       “게임 속 캐릭터들과 저희의 이름이 겹칩니다.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똑같이.”

        

       작가는 조금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게 농담이 아니라면, 오히려 그 사실이 방송에 나오기 더 좋은 소재인 것 같은데요? 혹시 이름을 중간에 바꾸신 건 아니죠?”

        

       “네. 저희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이름이었습니다.”

        

       나는 한 살부터 시작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외국에서 귀화한 분은 아닌 한국인이면서 외국인의 이름을 가졌고, 그 외국인의 이름이 게임 속 캐릭터와 같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 게임보다 저희가 먼저 태어났죠.”

        

       “…….”

        

       어때 말이 안 되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한국에 귀화한 외국인 두 사람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이 자기네가 살던 나라 식 이름일 수도 있는 거고.

        

       팬그리폰을 제외한 다른 이름들은 해외에서 종종 있는 이름들이니 겹칠 수 있다.

        

       외모가 게임 캐릭터와 닮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전부 겹친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게임 제작사와는 접촉하신 적이 없고요?”

        

       “네. 인터넷 방송은 올해 들어서야 시작했습니다.”

        

       여신이 과연 이 구멍을 어떻게 메꿀까?

        

       아무리 우연으로 밝혀진다 해도, 그리고 우연이라고 방송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을 거다.

        

       여신은 우리를 이쪽으로 보내고 저쪽으로 보내고 할 수는 있지만, 정작 사람들의 생각을 마음대로 바꾸지는 못한다.

        

       내가 복권에 당첨된 것을 보면 이쪽 세상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국제적으로 퍼지는 이야기도 한 번 막아보시라지.

        

       “혹시 방송 편집 과정에서 해당 게임사에 연락을 해봐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저작권 같은 것에는 걸릴 이유가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어서, 게임이나 만화에서 따온 이름을 자기 자식에게 붙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게다가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 세계에서는 이미 성인인 우리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되어있는 이름이다.

        

       게임보다 먼저라고.

        

       “아, 그리고.”

        

       “언니?”

        

       나는 내 옆에 서 있던 클레어의 팔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얘 머리카락은 염색이 아니라 자연 색입니다.”

        

       파란색.

        

       “네?”

        

       작가의 눈이 깜빡였다.

        

       한꺼번에 너무 이상한 정보를 많이 받아서 제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작가와 카메라맨이 서로 쳐다보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일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

        

       방송국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서, 우리는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나름대로 이야기가 잘 굴러간 것에 대한 소소한 축하 파티였다.

        

       기왕 하는 거 기분 좀 내자면서, 아예 거실에 신문지를 잔뜩 깔아두고 가운데 휴대용 가스버너를 굽고 있었다.

        

       “이번 일이 잘되면 우리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건가?”

        

       앨리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시간은 꽤 많이 남아있습니다. 방송국 사람들도 저희 말이 진짜라는 것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말이 안 되는 부분을 몇 번이나 보게 되겠죠.”

        

       샤를로트는 웃으며 말했다.

        

       “그게 핵심이고.”

        

       클레어가 확인했다.

        

       “잘하면,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에 가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게임 시리즈를 만들었다는 나라인가…… 너는 가본 적 있어?”

        

       앨리스는 젓가락으로 앞접시의 고기를 한 점 집어 먹으며 말했다.

        

       “가본 적은 있지만, 그때는 제대로 놀아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갔는데 한 명이 돈이 없었거든요.”

        

       “음…….”

        

       아쉽게도 내 말에 공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상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어디 여행 가서 돈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그랜드투어러라는 말이 있다. 귀족들이 자기 자식들 견문 넓혀준다고 여러 나라 여행 보내는 것에서 나왔다는 단어다. 지금은 자동차에 쓰이는 단어고, 그 단어의 어원에 걸맞게 비싼 차에 붙는다.

        

       팬그리폰 가나 벨부르 가를 제외하더라도, 그레이스 가와 크로우필드 가 모두 나름대로 역사 깊은 가문이었다.

        

       어딘가 멀리 가더라도 충분한 돈을 받을 것이다.

        

       심지어 미아도 제도에 있을 때 돈이 부족한 적이 없었다.

        

       “뭐, 가고 싶은 곳 못 갔다는 소리입니다.”

        

       “이번에는 갈 수 있을까?”

        

       “일단 회사와 연결되어야 알겠죠?”

        

       클레어의 질문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다만.

        

       “뭐, 만약 일 때문에 갈 일이 없어도, 우리 모두 함께 가볼 수도 있겠습니다. 기껏 다른 세계까지 왔는데 한 나라 안에만 있다가 가는 것도 아쉽죠.”

        

       국내 여행만 다녀도 시간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외여행 가지 않을 이유도 없다.

        

       기왕 온 김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일단은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오늘 방문한 것으로 촬영이 끝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밖에서 노는 것도 찍고 싶다고 했었다.

        

       그럼 그것도 보여줘야겠지.

        

       “밖에서 찍을 때는 뭘 하고 노는 게 좋을지 생각해봅시다.”

        

       “연말이니까 어디 축제라도 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지방 축제까지 촬영진을 데리고 가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해맑게 말하는 클레어의 말에 딴지를 걸면서, 나는 집게로 고기를 몇 점 집어 미아 앞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행복한 표정으로 쌈을 싸 입에 넣는 미아를 보며, 나는 다른 세상에 가서도 최대한 이런 생활을 영위할 방법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별빛내기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쓰는 글의 끝을 아쉬워하는 분들을 볼때면 여러 감정이 듭니다. 그동안 저의 글을 읽어주신 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도 들고, 더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모든 글에는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리 일상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글에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재가 다 떨어지면 더 쓸 수 없게 되니까요. 그래도 지금까지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이렇게 제 글이 끝나가는 걸 안타까워해주시는 것에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직 외전은 더 남아있지만, 앞으로 그렇게까지 오래 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캐릭터를 더 투입시키는 건 처음부터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끄트머리 쯤에서 소소하게 변주를 넣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처음 쓸때부터 생각해 둔 부분이고요. 어쩌면 이 외전이 완결나고도 후일담 몇 화정도는 더 나오겠네요.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께서 기대해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정진하고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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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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