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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3

        

       기다림의 시간.

       거미 떼가 기어가듯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고, 가로등의 불빛마저 닿지 않는 곳은 묘한 음산함이 감돈다. 짙은 구름에 달조차 비치지 아니하고, 나무 끝에 걸린 풍경은 색채가 흐릿하고 어두워지며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붉게 물들었던 풍경은 푸르게, 푸르게 물들었던 풍경은 붉게.

       그리고 마침내 새까맣게.

         

       그리하여 모든 것이 새까맣게 변해버리는 그 순간.

       그 존재는 모습을 드러냈다.

         

       바스락.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존재는 남자였다.

       호리호리한 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맞춤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

         

       그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붉은색 계통의 넥타이를 매고 있었으며, 포인트를 주기라도 하려는 듯 손목에는 시계를 끼고 있었다. 물론 비싼 시계는 아니었고,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플라스틱 시계였다.

         

       바스락.

         

       남자는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뭇잎 사이를 헤치며,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천천히 남자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양복의 새 옷 특유의 질감이 눈에 들어오고, 광이 날 때까지 닦은 구두가 보인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며 숫자를 드러내고 있는 싸구려 디지털시계의 숫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붉은색 계통 넥타이에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도 들어온다.

         

       그리고, 얼굴을 숨기기 위해 쓴 가면 역시 눈에 들어왔다.

         

       “허….”

         

       어지간한 것을 봐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담력이 센 용병들조차도 놀라게 만드는 기괴한 모습.

         

       남자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기괴한 가면이 있었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할까.

       저걸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지옥에서 고통받은 죄인들의 얼굴 가죽을 뜯어낸 뒤 조각조각 잘라낸 뒤, 대충 그러모은 후 이어 붙여서 만든 가면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연쇄살인마가 사람의 머리 가죽을 뜯은 뒤 쪼그라들게 만든 다음 이어 붙여서 가면을 만든다면 저런 모양이지 않을까?

         

       남자의 가면은 기괴했고, 끔찍했다.

         

       ‘가면 한번 끔찍하군.’

         

       악령의 얼굴을 뜯어다가 얼굴에 바른다면 저런 모습이리라.

         

       “반갑습니다, 여러분.”

         

       게다가 끔찍한 것은 가면뿐만이 아니었다.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남자가 입을 열었을 때 들린 것은 귀를 찢어버릴 듯한 소음.

       고문받는 이들의 비명을 그러모아 음계로 만든 다음, 그것을 기반으로 기계를 만들어서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게 만드는 듯한 끔찍한 소리였다.

         

       말과 비슷하지만, 소음에 가까운.

       듣는 것만으로 모골이 송연하게 만들고 닭살이 돋게 만드는 소리.

         

       “제가 누군지는 다들 아시겠지요.”

         

       “…물론이지요.”

         

       돗자리 위에 있는 남자들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정된 시간에 나타났으며, 미리 알려온 의상을 입고 있는 데다가, 고용주라는 것을 알리듯 표식까지 가지고 있는데 모를 리가 있겠는가.

         

       고용주.

       저 기괴한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는 그들의 고용주였다.

         

       “줄리엣 포인트로 갈 준비는 되셨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럼…가시죠.”

         

       고용주의 모습은 기괴했다.

       저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르는 기괴한 가면과 끔찍한 목소리도 그랬지만, 아예 몸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질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마치 마네킹을 옆에 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숨소리 대신에 묘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게다가 몸에서 따뜻한 열이 나는 것 같기는 한데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체온과는 뭔가 다른 성질의 것인 것만 같았다.

         

       사람 흉내를 내는 요괴를 옆에 두었을 때 이런 느낌이 들 것이다.

         

       ‘의뢰만 아니었다면 절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인간이로군.’

         

       ‘사람 분위기 한번 끔찍하네. 사람 잡아다가 도축하고 먹고 다니던 식인마도 저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일본이 로봇으로 유명하다던데 사이보그라도 개발한 건가.’

         

       용병들은 고용주에게서 섬찟함을 느끼며 감각을 곤두세웠다.

       고용주를 뒤에다 놓고 걸어가는 와중에도 등 뒤에 신경을 집중해 고용주의 기척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고용주가 아군임을 깨닫고 있음에도 등 뒤에서 칼을 찔릴 것 같은 묘한 느낌에 긴장감을 잔뜩 끌어올렸다.

         

       “흐음.”

         

       이러한 용병들의 기색을 눈치챈 걸까?

         

       고용주는 용병들의 등 뒤에다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고용한 사람이고, 여러분이 활약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제가 도움을 드릴지언정 방해할 일은 없을 겁니다.”

         

       표면적으로는 ‘전투력이 없어 보이는 고용주가 작전에 따라오는 것을 염려하는 용병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하는 말’처럼 느끼게 만드는 말.

         

       하지만 그 속에는 ‘나는 너희의 뒤통수를 칠 생각이 없다.’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용병들은 묘한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일단 고용주의 말을 믿기로 했다.

       일단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니 배신을 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용병들을 소모품처럼 굴리고, 임무를 끝내고 돌아온 용병들을 사냥개처럼 삶아 먹으려 드는 고용주들 특유의 느낌이 없었다.

       그런 족속들은 작전에 따라오기는커녕 안전한 곳에 처박혀 있는 것이 보통이다.

       작전 자체의 위험함이나 눈먼 공격에 맞아서 죽을 수 있는 가능성도 가능성이지만, 작전에 따라가게 된다면 ‘자신의 안전’을 용병들에게 담보로 맡겨놓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것을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자신을 따라오는 이 정체불명의 고용주는 ‘나는 배신할 생각이 없다.’라는 최소한의 믿음을 용병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용주 자체의 꺼림칙함은 둘째 치고서라도 말이다.

         

       ‘뭐…. 괜찮겠지….’

         

       용병들은 애써 낙관적인 생각을 품으며 나아갔다.

       앞으로, 앞으로.

         

       어둠을 헤치며 앞으로.

         

       그렇게 어느 정도 걸었을까.

         

       그들의 앞에 마침내 목적지가 보였다.

         

       고용주가 이르기를 줄리엣 포인트(J Point).

       실제 명칭은 ‘일본 오사카부 민속학 연구소’.

         

       민속학 학자들이 정부와 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연구소로서, 오사카의 민속학을 연구한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겉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

         

       민속학을 연구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쨌든 연구하기는 했고, 주기적으로 논문도 내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이는 그저 실체를 숨기기 위한 위장.

         

       일본 오사카부 민속학 연구소는 단순히 민속학을 연구하기 위한 곳이 아닌, 주물과 주술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군사 시설에 가까운 곳이었다.

         

       아니, 어쩌면 군사 시설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수도 있었다.

       군대를 가지지 못하는 일본이 어떻게든 헌법을 피해서 무력을 갖기 위해 친 발버둥이었으니까.

         

       일본은 온갖 콘텐츠와 캠페인을 이용해 능력자들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만들었으며, 능력자가 된다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광고하며 재능 있는 이들이 능력자가 되게 유도했다. 음양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주술이나 마법이 연관된 학부에 더 많은 지원금을 주면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노림수는 맞아떨어졌다.

       무인의 세력과 강함으로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국가가 되었으며, 음양사 역시 일본 내부에서만 강력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는 했으나 꽤 쓸만한 전력이 되어주었으니까.

       다른 나라의 주술사들 대부분이 자신의 목적만을 우선시한 채 온갖 기행들을 벌이고 다닌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얌전히 정부 기관에 들어와서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는 음양사는 선녀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있는 이 연구소는 이러한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세워진 곳이었다.

         

       오사카 지역의 주물과 주술.

       그리고 세계 2차 대전 당시 약탈해왔던 주술과 주물을 연구하기 위해 세워놓은 비밀 연구소.

         

       이 연구소에서는 지금도 활발하게 연구가 이어지고 있었다.

         

       주물과 주술을 군사적으로 써먹기 위해서.

       혹은 권력자들의 입맛에 따라 사용하기 위해서.

         

       뭐…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권력자들이 주물을 연구하고, 주술을 연구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까.

         

       적잖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는 하지만 방법만 알면 쓸 수 있는 주술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위급 상황에서의 구명줄이 될 수도 있다.

       막말로 목숨 잃어야 하는 상황에서 팔다리, 내장 좀 주고 살아날 수 있다면 이득 아니겠는가.

         

       게다가 주물 역시 마찬가지.

       아티팩트와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주물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정적에게 저주를 날릴 수도 있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거나 중요한 국면에서 행운을 불러올 수도 있는 물건이다. 때에 따라서는 질병이 낫기도 하고, 건강을 얻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그다지 없었고, 대부분은 끔찍한 성능을 발휘하거나 끔찍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기는 했지만….

         

       뭐 수많은 돌 사이에서 옥을 찾으려 하는 것이 연구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세계 각국의 권력자들은 주물을 연구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주물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하지만…이러한 기조는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불만스러운 것이었으니.

         

       “그다지 마음에 드는 건물은 아니로군요.”

         

       용병들의 뒤를 따르던 고용주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건물을 바라보았다.

         

       주위 풍경에 잘 어우러지도록 디자인된 이름다운 건물을.

         

       “게다가 경비도 꽤 삼엄한 편이고요.”

         

       현대적이면서도 일본의 멋을 잃지 않은 모습의 건물.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기에 예술작품처럼 보이는 거대한 건물.

         

       “괜찮습니다. 저 정도 경비라면 얼마든지 뚫을 수 있습니다.”

         

       용병과 고용주는 건물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눴다.

         

       “EMP랑 폭탄이 있는데 저걸 못 뚫겠습니까?”

         

       “그렇습니까?”

         

       평온한 어조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럼 갑시다.”

         

       흉흉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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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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