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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3

       VR세상에서 빠져나온 회사의 사장은 VR기기의 뚜껑을 열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려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기기의 외각을 붙잡고서 일어나려 해봐도 팔이건 다리건 힘이 제대로 들어가는 곳이 없었기에 사장은 모든 걸 포기하고 쿠션에 몸을 뉘었다.

       죽을 것 같다.

       

       과장해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눈을 감으면 영원한 수면을 취하게 될 것 같아.

       

       VR세상에서 죽어라 구른 것이니만큼 닳은 것은 내 정신뿐일 텐데 왜 VR세상의 일이 현실의 육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

       

       이 또한 화령님의 권능이려나.

       

       회사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자랑하는 사장이 이 꼴이 된 것은 스스로의 업보였다.

       

       화령이라는 괴물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옆에서 깝죽거리며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으니.

       

       덕분에 사장은 화령에게 VR세상으로 끌려가 고행이라 불러 마땅한 수련을 받게 됐다.

       

       처음 VR세상에서 화령을 마주했을 때 사장은 그래봐야 VR에서의 일인데 힘들어봐야 얼마나 힘들겠냐는 생각을 했다.

       

       엔리 같은 스트리머야 현실에서 고된 일을 겪을 일이 없으니 화령의 앞에서 쭈그러들 수밖에 없지만 자신은 현실에서도 온갖 위기와 고난을 거쳐 온 사람이지 않은가.

       

       정신력이라는 부분에선 여러 초월자들도 인정하는 인간이 바로 사장이라는 사람일지어니. 그는 화령이 무얼 시키더라도 버텨낼 자신이 있었다.

       

       ‘호오. 근성은 나쁘지 않구나. 굴릴 맛이 나겠어.’

       

       그 자신감이 오만으로 판명된 것은 수련이 시작되고서 대략 두 시간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강인한 정신력은 화령의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했다.

       

       강인한 정신을 지니고 있다면 그만큼 고된 수련을 시키면 되는 일.

       

       엔리나 당소일을 가르칠 때와는 다르게 조금의 가감도 두지 않고 사장을 굴린 화령은 사장 스스로가 지닌 한계를 느끼게 만들어줬다.

       

       ‘흐억… 흡… 더 이상… 무리…’

       ‘무슨 헛소리냐.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사장은 해저에 널부러진 불가사리가 되어 꿈틀거리게 된 후에도 장장 네 시간을 더 구르고 나서야 화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슬슬 방송을 해야 해서 말이야.’

       ‘…오늘은이라뇨? 화령님? 화령님?!’

       

       정확하게는 화령의 손아귀에서 잠시 풀려났다고 해야 하리라.

       

       그녀는 아직 사장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으니까.

       

       화령님에게 직접 수련을 받기 위해 일부러 도발을 한 것도 없잖아 있긴 하다만 이건 좀 정도가 심하네.

       

       이런 짓을 며칠이나 했다간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골병이 들어서 죽을 것 같아.

       

       똑똑.

       

       “사장님. 반그로우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죽어가는 사장의 목소리를 잇듯 문이 열린다.

       

       그 소리를 들은 사장은 VR기기 안에서 팔을 들어 휘적휘적 내젓는 것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린 후 들었던 팔을 쿠션 위로 내던졌다.

       

       “VR안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셨기에 이런 꼴이 되신 겁니까?”

       

       VR기기 속 초췌해진 사장의 모습을 확인한 반그로우가 의아함을 표시하자 사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수련이라는 이름의 고문을 당했지.”

       “사장님께서 이런 꼴이 된 건 회사 설립 초기 이후로 오랜만이네요.”

       “네가 못 봐서 그렇지 그 후에도 자주 이렇게 됐었어.”

       “그랬습니까? 안정화가 된 후로는 항상 백수마냥 놀고 먹고 계신 줄 알았는데.”

       “너무해.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데.”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사장은 자신의 고생을 몰라주는 부하가 밉다며 우는 시늉을 했지만 반그로우의 표정에는 자그마한 미동도 없었다.

       

       그저 이 인간이 또 지랄을 하는구나라는 귀찮음만이 눈빛에 더해질 뿐.

       

       그 따가움을 느낀 걸까. 사장은 뒷목을 주무르고는 화제를 바꿨다.

       

       “반그로우. 네 세상에 비축 중인 식량 상황이 어떻게 되지?”

       “회사의 인원이 사용하는 거라면 수백년간 쓸 수 있을 만큼 쌓여있죠.”

       “그 중에서 한 대륙을 반 년 정도 먹여 살릴 분량을 뺄 수 있을까?”

       “대륙이라는 단어가 무척 포괄적이네요.”

       “그건 미안. 나도 아직 수치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상태라. 대륙이라 해도 그리 많지는 않을 거야. 길고 긴 전쟁과 기아로 많이들 죽었을 테니.”

       “그렇지 않더라도 식량을 제공하는 거야 별 문제없습니다만. 어디에 쓰시려 그러십니까?”

       “훗날을 위해 은혜를 좀 입혀두려고.”

       

       이번 일로 회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한 둘이 아니다.

       

       이번의 구원으로 이 세상의 호의를 품은 다른 세상의 사람들.

       

       화령과의 좋은 관계.

       

       파이스에게 입힐 거대한 은혜.

       

       거기에 더해 그 곳에 존재하는 차원을 다루는 대마법사에.

       

       회사에 존재하는 광신이라는 위협을 떨칠 것까지 생각을 해보면 대륙에 지원을 하는 건 회사의 입장에서도 손해 볼 것 없는 일이다.

       

       괜히 온갖 일을 겪으며 실리를 추구하게 된 사장이 화령의 제안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겠는가.

       

       VR기기에 기대어 앉아 악당처럼 비릿한 웃음을 짓는 사장이었지만 정작 그를 내려다보는 반그로우의 눈빛은 한심하단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핑계로 다른 세상을 돕겠단 거군요?”

       “…아니. 실리라니까?”

       “네에. 네에. 잘 알겠습니다. 식량을 따로 빼둬야겠네요.”

       “저기. 아무리 초창기 멤버라도 그렇지 사장의 위엄을 좀 지켜줘야 하는 게.”

       “배고프시죠? 원기회복이 될만한 걸 만들어서 가져다 드릴게요.”

       “저기 내 말 안 들려? 저기?”

       

       *

       

       회사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던 날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즈음.

       

       나는 엔리와 바루에게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있었다.

       

       광신을 떨쳐낸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본인이 처참한 실패를 하는 편이 옳단 걸 안다.

       

       그렇지만 말이다. 본인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본인이 요리라는 걸 제대로 배운 지가 얼마 안 되었다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이들의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게 어찌 달가울 수 있겠느냐!

       

       물론 이런 노력으로 여러 세상의 제일가는 음식에 비견되는 것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본인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 세상에 쌓여있을 길고도 긴 요리의 역사를 하루 이틀만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다만 그 옆에 놔두었을 때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본인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아라야. 사정은 알겠다만 그렇다고 우리를 피험체로 쓰는 것은 너무하지 않으냐.”

       “맞아요! 안 그래도 요즘 다이어트하느라 하루 한 끼밖에 못 먹는데 그 중 하나를 이런 걸로 떼워야하는 제 심정을 느껴 보시라고요!”

       

       나는 두 사람의 불평을 무시했다.

       

       처음에 시식을 자처한 것이 저 둘일 지언데 어찌 본인에게 불평불만을 말하는 지 이해할 수 없구나.

       

       바루 같은 경우에는 선계를 복원한 은혜를 갚겠다며 시식대에 앉았고. 엔리 같은 경우에는 컨텐츠가 될 것 같으니 하겠다며 신나서 달려왔는데 왜 본인에게 불평을 고한단 말인가.

       

       “특히 엔리 씨는 제 요리가 엉망진창이라는 불평으로 마이튜브 조회수 백만을 찍었으면서 투덜대는 게 말이 된다 생각해요?”

       “…그치마아아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무작정 징징거리는 엔리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중화식 냄비를 붙잡았다.

       

       재료의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는 마무리만하면 된다.

       

       삼매진화를 피워 중식의 화력을 만들어 낸 후 냄비를 기름으로 코팅한다.

       

       그런 후에 밥을 던져 넣고. 계란을 풀고. 밥알 사이사이에 그를 깃들게 한 후.

       

       …흠? 화력이 너무 강했나? 밥알 사이에 깃들기도 전에 계란이 익어버리다니.

       

       아니다. 아직은 괜찮다.

       

       이후에 마무리만 잘 하면 돼.

       

       야채를 집어넣고. 소금과 미원으로 간을 하고. 냄비를 움직여 음식간의 조화를 완성하면!

       

       “자. 먹어보거라.”

       

       마무리를 지은 볶음밥을 접시에 담아 두 사람에게 내어 주었더니 바루와 엔리의 얼굴에 의심이 깃들었다.

       

       “…계란이 따로 노는 것을 제외한다면 모양새는 나쁘지 않구나.”

       “으엑. 딱 모양만 괜찮았네요. 간이 파멸적이에요.”

       “짜구나. 너무나도 짜.”

       “짜다고? 그게?”

       

       기이하군. 본인이 슬쩍 맛을 보았을 때는 충분히 먹을 만한 수준이라 생각했다만.

       

       “요리하는 뒷모습만 보면 장인이 따로 없는데 어찌 결과물은 이런 것일까.”

       “아라씨는 그냥 얼굴마담만 하셔야 한다니까요.”

       

       최근 들어 자주 함께하다 보니 사이가 좋아진 엔리와 바루의 협공에 본인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에 아무런 맛도 안 난다 그러기에 소금을 좀 더 쳐보았다만 이번에는 짜단 것이냐.

       

       뭐 그리 혀가 까다로운 것인지 원.

       

       저 정도면 충분히 먹을만한 수준이지 않은가.

       

       품 안에서 곰방대를 꺼내어 입에 물려던 그 순간 이 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하나는 백호고 다른 하나는 지난 번 회사에서 만났던 반그로우라는 자인가.

       

       문 앞으로 나가 복도를 걷고 있는 이들을 맞이해 주었더니 두 사람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백호는 그렇다 치고 회사의 요리사가 여기는 어쩐 일인가?”

       “화령님께서 회사에 식량지원을 요청하셨다 들어서요. 저는 회사의 요리사임과 동시에 회사에 식량을 관리하는 역할도 역임하고 있거든요.”

       “일주일만에 온 것을 보면 자세한 정보를 알아내러 온 것인가.”

       “아뇨. 준비가 끝났다는 말씀을 드리려고요.”

       

       벌써 지원의 준비가 끝났다고? 한 대륙을 먹여 살릴 식량을 겨우 일주일 만에 준비했다니.

       

       순간 농담을 하는 것일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반그로우의 표정도 백호의 표정도 태연하기 그지없었으니까.

       

       “놀랍군. 회사의 역량이 이 정도나 되는가.”

       “저희 회사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거대하거든요.”

       “호오. 그것 참.”

       

       좋은 소식을 들고 온 이를 마냥 바깥에 세워둘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일반인분이 왜 여기에.”

       

       반그로우는 엔리의 모습을 보고서 순간 당황한 듯 했지만 백호의 설명을 듣고서 경계를 풀었다.

       

       “화령님의 친우분이시군요.”

       “네. 엔리라고 합니다.”

       “반그로우입니다. 요리사로 일하는… 저. 엔리씨. 여기에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은 도대체?”

       

       엔리와 인사를 나누던 반그로우의 시선이 내가 만든 볶음밥쪽으로 향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라니. 너무하군. 나름 공을 들여 만든 것이거늘.

       

       “아라 씨가 연습 삼아 만든 요리에요.”

       “요리요? 이게?”

       “…쯧. 먹을 수 있으면 요리지. 뭐 그리 불평이 많으냐.”

       

       짜증이 나서 곰방대를 입에 문 채 투덜거렸더니 반그로우가 고개를 팩 돌려서는 날 노려봤다.

       

       “기본이 안 되어 있잖아요! 채소는 덜 익었고! 계란은 탔고! 밥은 눌었고! 기름은 풍성하고! 재료의 조화 자체가 안 되어 있는데 이를 어찌 요리라고 할 수 있습니까!”

       

       반그로우의 눈가에서 묻어나는 선명한 분노가 당혹스러웠다.

       

       이 놈은 본인이 두렵지도 않은가?

       

       “이건 재료에 대한 모욕입니다! 아아아! 일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지금은 그런 걸 할 때가 아니에요!”

       “반그로우님? 좀 진정을.”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화령님! 빨리 이리로 와 보세요! 빨리요!”

       “어? 어. 그래. 알겠다. 가마.”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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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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