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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3

    화창한 날씨, 내리쬐는 햇빛 속에서 우거진 녹색 속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땀을 흘리고 있는 루크가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여름이 아닌 한겨울인데다가, 마법으로 언제나 적절한 체온을 조절하는 루크가 땀을 흘리는 경우도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따지고 보면 그렇게 이상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이곳은 언제나 식물이 자라기에 완벽한 날씨가 유지되는 아린세이아였고, 식물이 자라기 좋은 날씨란 인간에게는 굉장히 덥고 습한 경우에 속하는 날씨였으며, 현재 루크는 자신의 마력이 식물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에 마력을 스스로 봉인한 상태로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아린세이아의 코어라고 할 수 있는 곳, 성 위에 지어진 공중정원.

    이곳을 손질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 뿐이었으므로.

    아무리 자신의 일손을 대신할 인형이 있더라도, 자신이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다.

    이전에도 루크는 시가르마타를 돌려보낸 대가로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한여름의 날씨를 몸소 체험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덥고 습한 날씨는 그 전에는 겪을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에이레스의 여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거의 열대 우림과 맞먹는 수준의 날씨.

    덕분에 식물이 잘 자라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루크는 그 끔찍한 열기와 습도를 맨 몸으로 감당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루크는 삽을 땅에 박아 고정시켜서 몸을 기대며 흐르는 땀을 목에 걸린 수건으로 닦으며 중얼거렸다.

    “후우, 참으로 무더운 날씨구나.”

    모든 식물이 이런 열대기온에 잘 자라는 것은 아니기는 했지만, 코어 역할을 해야하는 이 공중정원의 식물들 특성상 그만한 발열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나저나, 사소한 것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마력억제제를 주사해 봤는데, 효과가 너무 좋지 않은가?

    이 정도면 일반 비행기를 타기 전에 사용하면 마력 감지기에도 안 걸릴 것이 분명하다.

    기존의 마력 탐지기는 마나의 움직임을 감지해 그 양과 위험도를 측정하고 경고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 약물로 움직임을 제한하고 고정시켜버리면 아티팩트를 써도 타인이 알 길이 없다.

    ‘으음, 용법을 잘 조절해서 사용하면 잠입을 할 때에도 상당히 유용할지도.’

    대마법사의 가장 큰 약점은 존재감을 숨기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물론 루크가 제대로 된 마법사라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았겠지만, 현재 루크의 경우는 그 경지보다 마나의 양이 기형적으로 많은 경우였기에 단순히 존재감을 숨기는 것 자체도 꽤나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약물을 사용한다면…….

    “아니, 지금은 그런 걸 고민할 때가 아니지.”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제 볼을 몇번 찰싹 소리가 나게 때리면서 정신을 다잡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보다는 몸을 움직여야 할 때.

    왜냐하면 지금의 아린세이아는 현실과 시간의 흐름이 동일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역천의 모래시계라는 신화시대의 아티팩트가 있다고는 해도, 그건 정해진 범위의 시간을 되돌리고 가속하는 정도의 아티팩트.

    게다가 온전한 상태도 아닌 불완전한 상태의 모래시계는 결국 시간을 붙잡아두는 역할밖에 할 수 없다.

    마치 가까운 옛날에 만들어진 드워프들의 골동품, ‘카세트 테이프’라고 불리우는 아티팩트처럼 말이다.

    따라서 루크는 시간을 가능한한 뒤로 돌려둔 채, 모래시계를 정지시켜두고서 정원을 가꾸는 중이었다.

    기껏 정원을 모두 가꿔놓은 상태에서 시간을 되돌리면, 정원은 가꿔지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리니까, 지금과 같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때엔 그 아티팩트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역시나 날씨가 더워서 그런가, 작업에 집중이 안 된다.

    그래도 작업을 멈추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똑똑똑.

    -루크, 밥 먹을 시간이야.

    “이런.”

    이렇게, 흐름이 또 끊겨버리니까.

    —–

    “오늘도 운동 했니?”

    “후우, 네.”

    방에서 나온 루크의 모습은 오늘도 사우나라도 한 것처럼 땀에 푹 절어 있었다.

    요즘 방에서 무슨 운동을 하는지, 최근에는 항상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오곤 한다.

    아무리 집이 따듯하다지만, 그래도 한 겨울인데 저렇게까지 땀을 흘리면 감기에 걸리지는 않으려나.

    예르나가 그런 걱정을 하던 순간이었다.

    “아, 엄마. 나 오늘도 저녁은 안 먹어요.”

    “오늘도?”

    예르나가 걱정을 담아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이렇게 루크가 식사를 거르는 것도 최근에 자주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왜? 오늘 입맛이 없어?”

    “아뇨, 오늘은 점심에 많이 먹어서요.”

    루크는 많이 먹었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 2인분 정도밖에 안 되는 양이었다.

    많게는 20인분도 먹을 수 있는 루크니까 많이 먹었다기엔 턱없이 모자란 양이다.

    게다가, 격한 운동까지 했으면 더더욱…….

    “그래도 운동을 했으면 배가 고플텐데.”

    “괜찮아요. 피곤하니까 그냥 씻고 자려구요.”

    “……그래, 그러렴.”

    결국 예르나는 식탁이 아니라 욕실로 간다는 루크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먹이는 것도 좋은 건 아니니까.

    게다가 얼마나 지쳤는지, 평소에는 마법으로 뿔을 숨기기도 하는데 전혀 숨기지도 못하고 있고 말이다.

    결국 예르나는 다시 혼자서 털레털레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다이튼이 물었다.

    “오늘도 안 먹겠대?”

    “응, 점심에 많이 먹어서 안 먹겠다고 하네. 

    예르나는 다이튼의 질문에 힘없이 대답했다.

    “루크가 점심에 밥 말고 또 뭐 먹었던가?”

    “글쎄……. 난 모르겠네, 걔가 숨겨둔 과자가 얼마나 있는지 몰라서. 아무튼, 그래서 안 먹겠대?”

    “응. 목욕하고 바로 잘 거래.”

    “그렇구만.”

    다이튼은 식탁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파이리스를 향해 말했다.

    “먹어라, 네 언니는 오늘도 안 먹는단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놀라운 기세로 음식을 먹어치우는 파이리스의 모습을 보며, 예르나는 루크가 비교되어 더욱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렇게 잘 먹던 아이가 갑자기 왜 저러는 것인지.

    “표정이 왜 그래, 예르나?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루크가 자꾸 식사를 거르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

    예르나의 걱정에 다이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신경 꺼, 저거 지금 다이어트 하는 중이라니까.”

    다이튼의 말에 예르나는 그러고보니 루크가 체중계에 요즘 자주 올라가는 빈도가 엄청 늘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체중을 잴 때마다 점점 표정이 심각해지고 있던 것, 심지어는 평소에 즐겨먹던 간식들도 다 끊었고, 과자랑 같이 먹던 차도 요즘엔 그냥 차만 마신다는 것도.

    그래, 이 정도면 예르나도 루크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다이어트? 아니, 걔가 대체 뺄 살이 어디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딱 보기 좋은 몸매가 아닌가?

    옛날에는 너무 말라서 걱정이었는데, 요즘은 얼마나 예쁜지, 오랜만에 본 소르비가 질투를 다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루크가 갑자기 다이어트라니,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는 뭔가 심각한 문제를 발견한 걸까?

    그렇게 예르나는 ‘루크는 왜 다이어트를 하는가’라는 주제로 잠깐 고민을 해 보았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예르나는 애초에 채식으로 살이 잘 찌지 않는 엘프이기도 했고, 동시에 몇 십년을 숲지기로 살아오며 강도높은 훈련을 꾸준히 해 왔으므로 다이어트를 따로 해야 겠다는 생각을 품어 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예르나에겐 아무래도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심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좋아하는 애라도 생겼나?’

    최근에 방에 인형이 없어도 마치 전화라도 하는 것 처럼 방에 틀어박혀서 한참동안 떠들고 웃는다던가, 사랑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를 엄청 몰입해서 본다던가, 휴대폰을 조작하는 시간이 엄청 늘었다던가,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던 휴대폰 내용을 이제는 전혀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다던가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가정이었다.

    맙소사, 설마 정말로 좋아하는 아이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만약 그렇다면 루크를 그렇게 만든 남자애는 대체 누구지?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예르나의 생각은 루크에 대한 걱정으로 회귀했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도 밥을 굶는 방법은 좋지 않을 텐데…….’

    뭔가 루크가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으려나.

    예르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테이블에 앉아 자연스럽게 TV를 켰다.

    왜냐하면, 식사시간에 TV를 보면서 TV 속의 주제에 대해 가족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꽤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TV를 볼 수 있게 된 이후로는 항상 켜두는 편이다.

    -띡.

    TV에서는 한창 토픽이 진행중인 상태였다.

    -……요즘 겨울방학을 맞아 놀러갈 곳을 찾는 가족이 부쩍 늘었다고 하는데요! 이번 겨울은 온천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온천은 무려,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마법적으로 밝혀졌다고 하니까요!

    예르나는 TV를 켜자마자 들려온 문장 속, 다이어트라는 말이 오늘처럼 귀에 선명하게 꽂혀온 적이 없었다.

    “온천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좋구나…….”

    예르나가 그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다이튼이 식사하던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그거 예전에 루크가 여행권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 그러네. 이번 기회에 한번 가 보는 것도-.”

    그 순간, 누군가 식탁을 내리쳤다.

    바로, 예전부터 온천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던 파이리스였다.

    -탕!!

    “온천?! 가자! 갈래!!”

    “으악, 파이! 뭐하는거야! 다 튀잖아!”

    디아나가 원망섞인 비명을 질렀지만, 파이리스는 이미 온천에 대한 기대감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기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8살배기 여자아이의 원망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감정에 예민한 정령이면서도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과연 루크는 정말로 다이어트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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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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