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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4

    아린세이아에서 돌아와서 수면을 취하기 전에 가장 먼저 목욕을 하기로 한 루크.

    루크는 따듯한 물을 맞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내일로 이것도 이제 끝인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완성을 해야 해서 이렇게 무리하게 한 것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지치지도 않았을 텐데.

    아무리 이러한 식물을 가꾸는 데에 익숙하고 능숙한 루크라고는 해도, 이런 일은 역시 마음을 꽤 지치게 한다.

    마력의 도움을 일체 받을 수 없는 환경이기에 땀과 습기로 젖어 축축하게 몸에 달라붙어오는 옷과, 숨을 쉴 때마다 폐를 깊숙히 침투해오는 덥고 신성력이 가득 담긴 불편한 공기, 한시도 집중력을 흐트려서는 안 되는 섬세한 계산과 조정작업.

    심지어 거기에 고된 육체노동까지 곁들여지면,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 않은가?

    그래서, 따듯한 목욕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순간만은 굉장히 보람차고 기분좋은 것이었다.

    따듯한 목욕물로 몸을 씻어 내리면, 몸에 쌓인 피로도 땀과 함께 모조리 씻겨 나가는 것만 같으니까.

    루크는 그런 후련함을 담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오늘은 드라마도 못 보겠군, 그래.”

    최근 들어 루크는 저녁쯤에 방영하는 유명TV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다.

    평소에는 그럭저럭 볼 만 하다정도 불과한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것을 해소할 곳을 본능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인지 요즘에는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어찌나 흥미진진했는지, 처음 봤을 때엔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서 밤에 잠을 못 잘 정도였다.

    ‘오늘은 미카가 사실은 재벌가의 핏줄이었다는 게 밝혀질 것 같았는데…….’

    어제까지의 이야기는 옛날부터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온갖 고생과 구박을 받아온 여주인공, 미카의 출생의 비밀을 그동안 ‘내 아들과 맞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갖은 구박을 통해 못살게 굴었던 돈 많은 재벌 여사가 알아버리는 이야기로 끝났다.

    물론 이야기의 전개가 살짝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대본적인 허용이라 생각을 하고 보면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다.

    내용이 어찌 되었든 결국, 사람이 보고 즐거우면 그만인 거니까.

    하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차마 거실에 앉아서 드라마를 볼 정신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드라마는 옛날의 즉흥 연극처럼 한번 관람할 기회를 놓친다고 해서 다시 볼 기회가 완전히 끝나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재방송으로 보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을 하며 루크는 목욕을 마쳤다.

    목욕물로 푹 젖은 머리에서 물을 쭉 짜낸 뒤에는, 으레 그렇듯 체중계에 올라보았다.

    옷의 무게가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몸의 무게를 잴 수 있는 기회는 목욕하고 난 다음의 타이밍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었다.

    “흐음, 확실히. 무게가 조금 늘었어…….”

    이는 물론 살이 쪘다는 게 아니었다.

    신성력으로 인한 성장에 대한 이야기지.

    성장은 나쁜 게 아니다.

    자신은 서클이 성장함에 따라 육체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므로, 10서클에 다다르면 아마 완숙한 성인 여성의 모습에 다다르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으니 그러한 성장은 10서클을 목표로 하는 자신이 오히려 바라는 바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서클은 그대로인데 신성력의 영향으로 몸의 밸런스가 망가졌다는 증거이므로,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않다.

    마력을 통한 보호조치도 최소한으로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아무래도 아린세이아의 신성력 때문인가, 요즘 들어 몸이 ‘불균형’하게 성장하는 게 확 눈에 띈다.

    안 그래도 요새 10살 치곤 성장이 너무 빠르다며 주변에서 눈총을 받고 있는 와중에 여기서 더욱 성장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문제가 된다.

    게다가, 흉부가 압박되는 느낌이 썩 안락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자신이 신성력이라는 힘의 원리에 대해 완전히 무지함에 있다.

    마력이 아닌 신성력에 관해서는 루크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으므로 완전히 무해하다 섣불리 결론 내릴 수가 없다.

    신성력이 섞이면 그야말로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그것이 설령, 마법적으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뭔가 뱃살도 살짝 나온 것 같은데, 이건 기분탓이겠지?’

    그쪽의 성장 외에도, 최근에는 왠지 뱃살이 뭔가 조금이지만 손으로 잡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다.

    이는 루크로서는 정말이지 억울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아린세이아에서 그렇게 힘들게 몸을 움직였는데!

    심지어 최근에는 식사와 간식조차 줄이지 않았던가?

    항상 완벽에 가깝게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자신이, 나태의 상징인 뱃살이 잡힌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렇게 생각하며 루크는 자신의 아랫배를 살짝 꼬집어 보았다.

    -말랑.

    “…….”

    루크는 손가락으로 느껴지는 한없이 말랑한 감촉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상하다, 이럴리가 없는데.

    하지만, 근육 하나 느껴지지 않는 이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은 대체 뭔가?

    이래서야, 정말로 자신이 살이라도 찐 것 같지 않은가.

    ‘……설마.’

    성장이 아니라, 정말로 쪘단 말인가?

    이 내가??

    ‘말도안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일과에서 살이 찌는 건 마법적으로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사건에 신성력이 얽힌다면 루크라도 역시나 장담할 수가 없다.

    그 옛날에도 신성력은 무어라 명확히 정의내릴 수 없는 변덕스러운 성질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과거 무계획적인 폭식이나 나태함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신성력 때문에 뱃살이 붙을 수도 있다는 거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당분간 아린세이아는 통하지 않으면서 경과를 지켜볼 수밖에.

    루크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적당히 이전의 몸무게를 유지하도록 체중계를 보며 폴리모프를 조절해 잠옷을 걸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

    그렇게 터덜터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루크는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스윽, 슥.

    천천히 빗을 빗어내리던 루크의 손에, 돌연 힘이 실렸다.

    뚝, 몇가닥의 머리카락이 끊어졌다.

    아무래도 아까의 일로 평정심이 유지되지 않는 것 같아 루크는 결국 빗을 내려놓았다.

    손가락에 잡히던 뱃살을 생각하니 다시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만 같다.

    마법사에겐 불확실한 결론만큼 불쾌한 것도 없다.

    이미 다소의 부작용은 예상을 했다만, 뱃살은 좀 심하지 않은가.

    괜히 찝찝하고 기분이 나쁘다.

    루크는 결국 오늘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서랍을 열었다.

    그렇게 그 안에 고이 모셔져있던 물건을 보는 순간, 루크는 그간의 스트레스가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 내가 이것 덕분에 그동안 버텼지.

    가히 예술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영롱한 마석의 자태.

    이건 과거라면 보는 것 만으로도 돈을 내야 했을 수준이다.

    세월이 지나 발전한 기술들의 덕분인지, 아니면 호미르 개인의 출중한 실력 덕분인지 사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루크가 보기에는 정말로 멋진 결과물이었다.

    지금은 이 엄청난 수준의 세공을 이뤄낸 기술자, 호미르에게 찬사를.

    루크는 서랍에서 안경을 꺼내어 더욱 그 모습을 자세히 살피며 웃음지었다.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 광채인가!’

    아무리 힘들고 지치는 일이 있어도 마석의 이 깨끗한 광택을 보면 그 피로감이 모조리 날아가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멋진 세공품이라고 하더라도 본래라면 재료는 그저 재료라고 생각하고 봤겠지만, 지금은 드래곤 특유의 탐욕이 발휘된 것인지 진심으로 웃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게만 보인다.

    이 보석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 가만히 있다가도 웃음이 나오고, 종종 머릿속이 그것에 대한 것으로 꽉 차버리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래.

    자신은 이 보석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렇기에 이것은 절대로 허투루 사용할 수 없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리라.

    휴대용 컴퓨터? 그건 너무 크고 불편하다. 심지어 유사시에 일일이 조작하며 원하는 값을 알아내기엔 더더욱 어렵다.

    휴대폰? 그건 또 섬세하게 조작하기엔 불편하고, 유사시에 꺼내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은 컴퓨터와 똑같아 불편하다.

    급할 게 없는 평상시라면 몰라도, 정신없는 전투중에 계산을 보조해 주는 등의 도움을 받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역시, 사람처럼 말 몇 마디만으로 스스로 판단해서 완벽하게 처리해 주는 것이 최고가 아닌가?

    안 그래도 그 부분에 관해선 최근 생각해둔 게 있었다.

    딥러닝이라고 하던가?

    일일이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 알고리즘을 짤 필요가 없이, 처음부터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하여 끝없이 발전하는 방식의 인챈트 이론이 최근 학계에서 연구중이라 하더라.

    이는 이미 리브와 케이트를 비롯해 스스로 사고가 가능한 골렘을 만들어낸 루크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의 연구였다.

    아무리 자연스러워도 리브와 케이트도 결국은 루크가 인간적인 사고를 하는 것 처럼 보이도록 정교하게 모조하여 만들어낸 일종의 패턴에 불과하다.

    스스로 어느정도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단순히 의사소통방식과 행동의 선호도 변화 정도의 영역이지, 정말 사람처럼 배운 것을 토대로 완전히 새로운 지평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확히 배운 것을 행하는 정도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이 이론과 기술을 사용한다면, 이론상 인간보다도 훨씬 뛰어난 지성을 만들 수가 있다.

    어쩌면, 제작자인 자신보다 더 뛰어난 존재가 나올 지도 모르고.

    ‘이로써 연동을 비롯한 준비는 다 끝났다. 남은 건 시간의 문제.’

    사실, 이미 아린세이아에서 정원 재손질을 하며 이미지는 전부 주입했다.

    이제 남은 것은 스스로 학습을 시작한 컴퓨터, ‘아린세이아’가 마침내 자신에게 말을 건네올 정도로 성장하기까지 기다리는 것 뿐.

    과연 어떤 인격이 나타나게 될까?

    이는 제작자도 전혀 예측할 수 없기에, 첫만남이 굉장히 설레인다.

    그렇게 황홀하게 보석을 가만히 바라보던 루크는 조심히 부드러운 천에 감싸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다.

    만약 이름이 완성되면 어떻게 부를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역시, 인공지능의 이름을 레니에라고 칭하는 건 조금 주책맞으려나?’

    분명 그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건만, 막상 레니에가 들으면 좀 불편해 할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동안 꾸준히 성장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사실 살 찐거 맞았다고 합니다.
    Ts미소녀는 아무리 먹어도 살 안찌고 관리 안해도 예쁜게 국룰이라지만, 루크의 예쁨은 철저한 자기관리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루크는 누가 자기 안예쁘다고 하면 그래서 화내는 거에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관리하는데 감히!’라는 느낌인거죠.

    아무튼…….

    처음엔 다이튼의 오해였지만 이제는 진짜로 다이어트에 관심이 생겨버린 루크입니다.
    이렇게 다이튼은 또 한번 맞췄군요.
    이 정도면 다이튼은 루크학 석사정도는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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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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