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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4

       백린사왕은 수백 년간 이어진 기나긴 제 삶을 되돌아봤다.

         

       살면서 이토록 어이없고, 황당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 그것보다도 먹이 사슬의 가장 윗자리에 군림하던 자신이 이토록 쪼그라든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맞겠다.

         

       키싯.

         

       없다.

         

       간혹 영역이 맞닿아 있는 호전적인 영물이 몇 번인가 달려들기는 했으나, 그것 또한 수십 년도 전의 일.

         

       호되게 패배한 이후로 놈은 꼬리를 만 채 영역 안으로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

         

       자신은 영물 중의 영물, 뱀들의 왕, 포식자 위에 군림하는 포식자.

         

       키시시….

         

       …였는데.

         

       어째서 지금은 이토록 처량한 신세로 전락해버린 것일까.

         

       푸념 섞인 한숨과 함께 혀를 날름거리는 백린사왕.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기다란 몸을 타고 무언가가 꿀렁거리며 올라온다.

         

       퉷!

         

       감정이 다분히 섞인 소리와 함께 바닥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구슬 같은 것이 떨어진다.

         

       위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구슬은 백린사왕의 살아온 수백 년의 정수.

         

       바로 내단이었다.

         

       “이야, 이게 이쪽 동네 내단이구나.”

         

       기다렸다는 듯이 구슬을 집어 드는 백우진.

         

       백린사왕은 그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혀를 날름거렸다.

         

       어떻게 저런 인간이 있을 수 있지?

         

       내단은 제 위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위액은 강철조차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산성을 지니고 있건만.

         

       저 인간의 손은 대체 어떻게 돼 먹었기에 저것을 쥐고도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

         

       시싯…!

         

       저 인간과 끝까지 싸우지 않고 내단의 반을 내어주기로 한 것이 정답이었구나.

         

       그는 제 생각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

         

       그나마 한 가지 봐줄 만한 구석이 있다면 약속 하나는 정확하게 지킨다는 것 정도일까.

         

       “읏차.”

         

       쩌적!

         

       그가 사과 쪼개듯 힘을 주자, 양손으로 쥐고 있던 내단이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진다.

         

       백우진은 그중 하나를 백린사왕에게 도로 내밀었다.

         

       “자, 여기 네 거.”

         

       크싯….

         

       어차피 내 것을 돌려받는 것뿐인데 아량 베푸는 것처럼 생색은.

         

       불만 섞인 소리를 내며 내밀어진 손바닥 위에 놓인 반쪽짜리 내단을 혀로 감싸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는다.

         

       허전한 자리에 다시금 차오르는 기운.

         

       크시시시!

         

       평소의 반밖에 되지 않는 기운에 백린사왕은 끝끝내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려댔다.

         

       수백 년간 박박 긁어모은 기운이 하루아침에 반토막이 나버리다니!

         

       마치 인생의 절반을 손해본 듯한 기분이 들어 참을 수가 없었다.

         

       이에 당황한 백우진이 황급히 그의 몸 위로 올라가 머리를 가볍게 두들기며 위로해주었다.

         

       “야, 야. 왜 또 그렇게 서럽게 울고 그러냐? 응? 내가 미안해.”

         

       키싯…!

         

       머리를 가볍게 도리질치는 백린사왕.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내단을 강탈해간 놈에게 위로를 받는 게 더 수치스러웠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백우진이 제 호리병을 꺼내 들어 보였다.

         

       “야, 대신 내가 좋은 거 줄게.”

         

       키싯…?

         

       좋은 거라니.

         

       백린사왕이 은근슬쩍 곁눈질하며 관심을 보이자, 히죽 웃는 백우진.

         

       “너 술 마셔봤냐?”

         

       술이라.

         

       분명 인간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였던가.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들었던 것 같다.

         

       “형이 인마, 이 세상에 둘도 없이 귀한 술이 있거든? 그거 나눠 줄 테니까, 입 좀 벌려봐.”

         

       궁금했다.

         

       술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맛이고, 또 기분이 좋아지면 얼마나 좋아질는지.

         

       그가 슬쩍 아가리를 벌리자, 머리 위에 올라탄 백우진이 마개를 연 호리병을 뒤집었다.

         

       콸콸콸!

         

       작은 주둥이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투명한 술.

         

       혀를 움직여가며 술의 맛을 음미한 백린사왕의 눈이 부릅뜨인다.

         

       키, 키시싯…!

         

       이, 이 맛은!

         

       놀란 마음에 외치긴 했지만, 사실 무엇과 비교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십 년 응축되어 있던 한기를 한입에 집어삼켰을 때?

         

       아니, 그때조차도 이런 극상의 맛은 느껴보지 못했다.

         

       키이이….

         

       아, 좋다.

         

       콸콸 쏟아지는 술이라는 것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지금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고 바랄 정도.

         

       “어이구, 이 녀석 아주 잘 마시네.”

         

       하도 잘 마시기에 끊임없이 부어주었고, 하도 행복하여 끊임없이 마셨다.

         

       그 끝은 정해져 있었다.

         

       쿠웅…!

         

       거대한 몸뚱어리가 취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을 들이켠 녀석이 정신을 잃고 힘없이 쓰러지는 결말이었다.

         

         

       * * *

         

         

       어제의 적이, 오늘은 친구가 되었다.

         

       백린사왕과 백우진의 이야기였다.

         

       술로 일치단결한 두 사람은 놀랍도록 죽이 잘 맞았다.

         

       얼마나 잘 맞았냐면.

         

       키시싯…!

         

       “기분 좋다고? 나도 그래! 오랜만에 겨뤄볼 만한 술 상대를 만나서, 푸헤헤헷!”

         

       키시시싯!

         

       “너도 그렇다고? 야, 자식아. 너는 어제 술을 처음 마셔 놓고서 그런 말을 하냐.”

         

       키이잇!

         

       “뭐? 주력(酒歷)에 잘 마시냐 못 마시냐만 중요할 뿐, 다른 것은 중요치 않아? 우헤헤! 그 말이 정답이다, 정답이야!”

         

       키시시싯!

         

       이제는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서로 대화가 통할 정도.

         

       두 사람, 아니, 인간 하나와 영물 하나는 그렇게 사흘 밤낮을 술로 지새웠다.

         

       마음 같아선 몇날 며칠이든 술로 지새우고 싶었으나, 둘에게 허락된 시간은 딱 거기까지였다.

         

       “미안하다, 야.”

         

       백우진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탓이었다.

         

       키싯….

         

       우울한 표정으로 그를 배웅하는 백린사왕.

         

       마지막으로 술잔을 나누며 슬슬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즈음.

         

       백우진이 중얼거렸다.

         

       “으음…, 원래는 내단을 전부 가져가기로 했는데 반만 가져왔다고 뭐라고 하진 않겠지?”

         

       약속한 것은 백린사왕의 내단 전부였다.

         

       그러나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은 절반뿐.

         

       물론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테니 면전에 대고 핍박은 안 하려나.

         

       백린사왕의 민감한 감각에 그의 목소리가 전부 또렷하게 들렸다.

         

       키시….

         

       아무래도 자신을 살리기 위해 포기한 절반의 내단 때문에 난감한 모양.

         

       뻔뻔하기 그지없었던 그때의 모습이 이제는 희생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같은 종족도 아닌 자신을 살리기 위해 난처함을 감수하려 하다니!

         

       키이이이…!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쌓은 우정의 진한 맛이 아닐까!

         

       백린사왕은 생각했다.

         

       혹여 그를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을까.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제 절반의 내단으로 부족하다면….

         

       키이…?

         

       남의 내단을 더 얹어주면 그만 아닐?까?

         

       때마침 적합한 영물도 있다.

         

       자신과는 달리 성격이 더럽고, 포악한 영물 한 마리가.

         

       키키키키!

         

       그야말로 기발한 생각에 백린사왕의 입에서 음흉한 웃음이 연신 새어 나왔다.

         

         

       * * *

         

         

       백우진이 북해빙궁을 나선지도 어느덧 열흘째.

         

       용설란은 그가 남기고 간 조원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한편.

         

       “오늘 그들은 무얼 했나요?”

       “…오늘도 역시 수련뿐입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고 있었다.

         

       하나 열흘째 보고를 받다 보니 슬슬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광검신이 떠나는 날부터 지금까지 쭉 수련밖에 안 하다니…, 수련 못 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어 있는 걸까.”

         

       그들의 일과가 열흘째 평행선을 내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련.

         

       오로지 수련뿐.

         

       새벽에 일어나 수련을 시작하여 끼니를 챙길 때를 제외하면 전부 연무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수련을 해서일까….”

         

       짧다면 한없이 짧은 열흘 사이에, 그녀는 놀라운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말았다.

         

       “설마 화경에 올라서다니.”

         

       그가 남기고 간 조원 중 한 사람이 화경에 올라섰다.

         

       그 이름이….

         

       “도 소저였나…?”

         

       흑산도가의 장녀.

         

       사흑련주의 무남독녀.

         

       그녀를 본 순간 참으로 놀랐다.

         

       지금까지 사내로 알려졌다가 뒤늦게 여인임을 밝힌 그녀의 미색이 너무나도 대단하여.

         

       “어찌 지금까지 숨기고 살았는지.”

         

       그 미색을 숨기고 살아온 세월도 놀랍고, 젊은 나이에 화경에 올라선 것은 더더욱 놀랍다.

         

       호부(虎父) 밑에 견자(犬子) 없다더니.

         

       아무래도 그 말이 맞는 모양.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화경에 올라선 것은 그녀뿐이지만, 백우진의 조원들은 전부 초절정.

         

       적당한 깨달음만 얻으면 모두가 화경에 올라설 수도 있음이니.

         

       ‘어쩌면 전원 화경으로 이루어진 정예를 보게 될지도.’

         

       그때를 생각하니 몸이 떨린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그녀가 뒤에 선 이에게 물었다.

         

       “천광검신 쪽에선…, 아직 아무런 기별도 없나요?”

       “그렇습니다. 백린사왕의 영역으로 들어갔다는 기별 외에는 전해진 소식이 없습니다.”

       “흐음…, 이상하네요.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천광검신이 백린사왕에게 패배할 확률은…, 없겠죠?”

         

       그녀의 물음에 단호히 고개를 젓는 여인.

         

       “아예 없진 않겠습니다만, 그럴 확률은 매우 낮을 것으로 사료 됩니다.”

       “그렇겠죠….”

       “그보단 백린사왕을 수색하는 데에 시간이 걸려서 늦는 것일지도 모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용설란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마치려던 그때.

         

       “구, 궁주님!”

         

       북해빙궁의 치안을 담당하는 빙궁수호대 소속 무인 중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기별도 없이 궁주의 집무실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들어섰다.

         

       그녀의 무례함에 용설란의 짙은 눈썹이 찡그려지는 찰나.

         

       “저, 적습입니다!”

         

       수호대원의 입에서 튀어나온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그녀의 얼굴을 굳게 만들었다.

         

       “적습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의아했다.

         

       북해 지역은 온전히 북해빙궁의 영역.

         

       이를 넘어 자신들을 도모할 미친 세력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자 무인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외쳤다.

         

       “배, 백린사왕!”

       “뭣…?”

       “백린사왕이 본궁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오고 있습니다!”

         

       빠르게 식어가는 피.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일이 설마 벌어지고 만 것인가.

         

       “…당장 성문으로 가겠어요.”

         

       신법을 극한으로 운용하여 내달린 그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성문에 당도했다.

         

       성문 밖을 멀리 내다보자, 저 멀리서 거대한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거대한 물체가 보인다.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비늘.

         

       그리고 포효.

         

       키시시시-!

         

       “백린사왕…!”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백우진에게 토벌을 부탁한 백린사왕이 대체 무슨 연유로 빙궁을 향해 들이닥친단 말인가.

         

       “설마….”

         

       아찔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백린사왕의 힘이 천광검신 백우진보다 뛰어났다면.

         

       며칠간의 사투 끝에 그를 죽이고, 분노하여 더 많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 달려오는 거라면?

         

       “아, 안 돼.”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그녀가 외친다.

         

       “다들 전투 준비!”

         

       성문 위와 아래로 모여든 빙궁의 무인들이 내공을 순환하며 적을 맞이할 준비를 마칠 무렵.

         

       그사이 더욱 가까워진 백린사왕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인다.

         

       동시에 작은 점 하나가 보인다.

         

       이에 의아함을 느낀 그녀가 다른 이들에게 물었다.

         

       “저기…, 백린사왕의 머리 위에 뭔가 있지 않나요?”

       “그런 것 같습니다.”

       “제 눈에도 보입니다.”

         

       장로들이 앞다투어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 제 눈이 잘못 본 것은 아닌 모양.

         

       그렇다면 무엇일까.

         

       백린사왕의 머리 위에 놓인 저것은.

         

       그리고 백린사왕이 빙궁을 향해 조금 더 가까워졌을 때.

         

       “헉…!”

       “저, 저건 설마!”

         

       그들은 알게 되었다.

         

       “처, 천광검신!”

         

       백린사왕의 머리 위에서 백우진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음을.

         

       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저게 도대체…?”

         

       백린사왕을 토벌하라고 보냈더니, 산 채로 데려오는 건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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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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