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길 잃은 드워프 ( 2 )
유별나게 짧지만 굵직한 팔다리, 느티나무처럼 풍성하게 자라난 수염.
특유의 꼬장꼬장하고 성질 더러워 보이는 눈매까지.
앞에 보이는 이는 애덤이 기억하는 스승님의 모습과 아주 똑같았다.
“…아니, 아니지! 성지에 계실 스승님이 내 대장간에 있을 리가 없지. 너는 무엇이냐 이 삿된 것아! 당장 내 앞에서 썩 꺼져라!”
애덤이 눈앞의 드워프를 향해 망치를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허나 오푸스 팔락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도리어 오푸스 팔락이 버럭 소리쳤다.
“어느 장인이 분신처럼 다뤄야 할 망치를 검처럼 휘두르냐! 당장 내려놓지 못해!”
“아…!”
애덤은 그제야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 진짜 스승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서 망치를 휘두르는데 이런 말을 할 사람은 뼛속까지 대장장이인 스승님밖에 없었다.
“스승님!”
“막내야!”
스승과 제자의 눈물겨운 상봉이 이루어졌다.
“아니, 그런데 여기는 도대체 어쩐 일이십니까 스승님?”
애덤이 천장을 바라봤다.
뻥 뚫린 천장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구멍 바로 아래 앉아 있는 것은 오푸스 팔락.
…설마하니 자신이 못 보던 사이에 스승님들이 하늘을 나는 재주를 익힌 것은 아닐 테고.
“그, 어흠. 그, 그게 말이다….”
오푸스 팔락은 말을 더듬었다.
술을 진탕 마신 상태로 이상한 구멍에 빠졌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창피했다.
‘드워프 체면이 있지. 어떻게 막내 앞에서 술에 취했다는 얘기를 해.’
술에 취했다는 것이 부끄러운 오푸스 팔락.
“뭐어.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다. 자세한 건 묻지 말거라.”
“예, 스승님.”
애덤은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그의 스승님이 보통 대단한 분이시던가.
신의 일꾼이시니 어련히 제 앞가림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얌전히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애덤의 생각과는 달리 오푸스 팔락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제자가 있는 곳이면 여기는 분명 지상일 터,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위대하신 분께서 분명 자신을 찾으실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지금 뭘 만들고 있던 거 아니냐?”
“아. 한번 봐주시렵니까?”
오푸스 팔락은 애덤이 두들기고 있던 것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는 단번에 말하기를.
“막내가 지상에 가더니 실력이 많이 죽었구나.”
“……하하. 스승님의 눈에 차려면 한참 멀었지요.”
“내 이번에 깨달은 작은 재주나 하나 보여주지. 보고 배울 수 있으면 배워봐라. 거기 안 쓰는 망치 좀 빌려주고.”
애덤이 냉큼 예비용 망치를 넘겼다.
오푸스 팔락은 몇 번 망치를 만지며 무게 중심을 가늠했다.
그러더니 머리 위로 망치를 들어 올려 힘차게 주괴를 내리찍었다.
카ㅡㅡㅡ앙!
“허.”
단순한 쇠 울림이 아니다.
평생 불 앞에서 쇠를 두들긴 애덤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카ㅡㅡㅡㅡ앙! 카ㅡㅡㅡㅡ앙! 카ㅡㅡㅡㅡ앙!
오푸스 팔락은 기계처럼 규칙적으로 주괴를 두들겼다.
불똥이 사방으로 튀고, 힘찬 망치질 아래 들뜬 주괴가 신음하며 형태를 바꾸었다.
불과 금속이 자아내는 합주곡.
애덤은 홀린 듯 오푸스 팔락의 작업을 지켜봤다.
“자. 끝났다.”
“…헛. 버, 벌써?”
한바탕 홀린 기분이다.
애덤은 오푸스 팔락이 자랑스레 들고 있는 결과물을 바라봤다.
오푸스 팔락의 작업을 지켜보며 애덤은 무수한 상상을 했다.
스승님의 손에서 무엇이 만들어질지, 얼마나 걸작품이 탄생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렘을 주체할 수 없었다.
‘스승님이 뭘 만들고 계신 걸까? 무난한 검? 그것도 아니면 방패? 투척 도끼?’
모두 아니었다.
애덤은 눈을 찌푸리며 바라보다가, 다시 부비적거리고, 잔뜩 찌푸리며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설마 벌써 노안이 온 것일까.
“……스, 스승님. 이건… 이건 갑옷 아닙니까?”
“음! 갑옷이지!”
“그, 그것도 체, 사슬 갑옷인데…. 이, 이걸 지금… 제, 제가 보는 앞에서?”
“그래. 네가 쓰고 있던 주괴로 솜씨 좀 부려봤다.”
“…….”
애덤이 들고 있는 것은 사슬 갑옷이었다.
반소매처럼 생겼지만, 특유의 찰그락 거리는 소리와 작은 고리가 촘촘하게 엮인 모습까지. 이는 틀림 없는 사슬 갑옷이었다.
“아니, 이, 이걸 어찌. 하, 으?”
애덤은 무어라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사슬 갑옷이 무엇인가. 작은 고리 수천수만 개를 엮어서 만들어야 하는, 극한의 노가다를 요구하는 갑옷이다.
그런데 그런 사슬 갑옷을 이리 순식간에?
아니. 애초에 고리를 묶을 막대도 없었을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그, 그것도 겨우 주괴 하나로…….”
작업을 하고 있던 애덤은 알 수 있다.
오푸스 팔락이 사용한 주괴는 바스타드 소드 한 자루 겨우 만들 정도였다.
“음. 나쁘지 않군.”
“스승님!!”
애덤이 곧장 무릎을 꿇었다.
두 눈에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저를 가르쳐주십쇼! 한 번만 더! 부디!”
“으음…. 그래도 되려나?”
오푸스 팔락은 조금 곤란하다는 듯 수염을 매만졌다. 평소라면 당연히 막내에게 이것저것 알려줬을 것이지만…. 지금 그는 사고로 지상에 떨어진 몸.
나름 성지의 일꾼인데, 이렇게 쉽게 기술을 베풀어도 되는 것인지….
“제가 숨겨둔 맥주 10통을 드리겠습니다.”
“으음.”
“20통!”
“그, 크흠.”
“진짜 더는 못 드립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30통!”
“막내야 뭐하냐, 망치 안 들고.”
오크통 30개로 극적인 협상 타결!
* * * * *
“끄헉, 커허억. 흐으읍….”
숨이 막힌다.
원한 가득한 유령이 앙상한 손을 뻗어 내 목을 졸라오는 듯하다.
잠자는 사이 집에 도둑이 들어와서 금 송아지를 훔쳐 가도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손이 덜덜 떨린다.
“내, 내 특급 에픽 드워프 일꾼 1호가… 일꾼 1호가……!”
사라졌다.
감쪽같이.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아아악!”
내 일꾼 1호! 에픽 드워프!!
에픽 드워프로 승격한 일꾼 1호의 활약은 눈부시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였다.
다른 언 커먼 드워프들보다 작업 속도가 3배는 빨랐으며, 가끔 무기에 장식까지 조각하는 기염을 토했다. 덕분에 골드 쌓이는 속도와 무기 만드는 속도가 평소의 절반 이상으로 올라갔었는데.
“차, 찾아… 찾아야 해…!”
내 특급 노예…가 아니라 에픽 드워프를 되찾아야 한다.
“이, 이베르…. 봤어? 일꾼 1호가 어디로 갔는지 봤어?!”
– 삐이이익? 삐, 삐이ㅡ.
이베르가 고개를 젓는다. 다른 일꾼들도 일꾼 1호의 행방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지 몹시 당황한 기색이다.
“당장 내 일꾼 1호를 찾아와!”
발가르, 이시디움, 미카에르까지.
내 밑으로 총출동시켜서 당장 일꾼 1호를 찾아오게 시켰다.
《조속히 찾아오겠나이다.》
《저만 믿어 주시옵소서, 어버이시여!》
《모든 날개가 창조주의 뜻대로 날아오를 것입니다.》
곧바로 내 명령받은 녀석들이 일꾼 1호를 찾아 퍼지기 시작했다.
두두두두ㅡ!
《ㅡㅡㅡㅡ!! ㅡㅡㅡㅡ!!》
《…ㅡㅡㅡ!!》
북부에서 모든 밤의 기병대가 총출동하여 설산과 설원을 누빈다. 마주치는 마수와 산적들은 무참히 도륙당했다.
《끄르륽? 다, 다리 짧은 인갼…… 차, 찾는다!》
《머, 머 먹으면 안 된다고 햇따……! 끼크흐흑!》
《다리가 짧으면 먹을 허벅지, 사, 살이 없따…!》
악마들이 그림자와 어둠을 숨어들며 음지와 지하를 수색한다. 주로 하급 악마들이 돌아다니며 일꾼 1호를 탐색했다.
《창익 2부대는 동쪽으로, 3부대는 남쪽을 수색한다.》
《기억해라. 턱수염이 수북하고, 팔다리가 매우 짧은 인간이다.》
날개 달린 천사들은 구름과 함께 하늘을 날아다녔다.
밤의 기병, 악마, 천사들이 온 차원을 누비며 일꾼 1호를 찾는 장관이 벌어졌다.
띠링ㅡ!
《성도의 ‘콜로세움’에서 제 2회, 결투 축제가 진행 중입니다!》
“지금 이런 걸 볼 때가 아니야. 일꾼 1호를 찾는 게 먼저라고.”
평소라면 룰루랄라 구경하러 갔을 테지만, 타이밍이 안 좋았다.
성지의 특급 일꾼이 탈주… 도주? 탈출? 모르겠다. 짐작 가는 이유가 하도 많아야지.
‘내가 맥주도 먹여주고, 온천도 만들어주고,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숙소도 만들어줬는데. 뭐가 불만이라서 탈출한 거냐.’
하루 20시간 노동이 힘들었나?
그것도 아니면 하루 맥주 2통 제한 때문에?
아니면… 에픽 드워프라고 내가 특별히 일을 더 시켜서?
“겨우 다른 드워프들이 일하는 양의 3배 더 시켰을 뿐인데.”
다른 녀석들보다 작업 속도가 3배 빠르면, 일감도 3배 더 많아지는 게 ‘상식’이잖아.
《ㅡㅡㅡ…ㅡㅡㅡㅡ!》
밤의 기병대가 북부에서 찾을 수 없었다고 보고를 해왔다.
《끄키헤엑…. 키, 키 작은 인간?! 찾아따!》
하급 악마들이 뭔가를 찾았다고 외쳤지만, 그럴 때마다 고블린이나 동네 꼬맹이들을 잡아 온 것이었다.
“넌 그냥 죽어라.”
꽈릉!
-《키헤엑!》
마지막 희망을 걸 곳은 천사들뿐.
‘제발, 제발 좀 찾아라. 제발…!’
허나, 희망은 간절했던 만큼 가장 처참하게 부서졌다.
-《…송구합니다. 백방으로 살폈으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온 대륙을 가장 빠르고 넓게 살핀 천사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끄하아아악!”
일꾼 1호의 완벽한 실종!
그것도 에픽 드워프가, 다른 언 커먼 드워프들보다 무려 2단계나 높은 일꾼이!
“내, 내 일꾼이! 내 특급 일꾼이ㅡ!”
일꾼 1호를 찾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손해가 커진다.
이틀이면 자원 손해가 30퍼센트, 사흘이면 60퍼센트, 나흘, 닷새로 이어지면…
“커헉!”
잠깐 상상한 것만으로도 일주일 동안 악몽을 꿀 것 같은 기분!
– “아직 아닙니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아직 찾을 수 있습니다!”
주화입마에 들기 직전 케넬름의 외침이 들려왔다.
덕분에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렸다.
“아직…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어디에서?
“…이미 밤의 기병대가 북부를 샅샅이 뒤졌고, 악마들이 온갖 음지와 지하를 수색했어. 거기에 천사들이 온 대륙을 거의 다 찾아봤다고….”
연옥이나 탄탈로스, 심연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직접 나서서 전부 찾아봤는데 흔적도 찾지 못했다.
– “아직 딱 한 곳, 찾지 않은 곳이 있지 않습니까!”
케넬름이 우렁차게 외치며 <세계 탐험 모드>의 지도를 가리켰다.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곳,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성도? 성도를 안 찾아봤다고?”
가만 생각해보면 케넬름의 말대로였다.
밤의 기병대는 북부에서만 돌아다녔고, 악마들은 애초부터 성도 근처에 얼씬도 못 한다. 천사들은….
“아니 천사들은 성도를 안 찾아보고 뭐 한 거야?”
– “가장 맡은 구역이 넓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넓고 빠르게 수색하느라 성도를 놓쳤다는 것.
한 줄기 희망이 되살아난다.
“그러면 혹시… 아니, 진짜로?”
화면이 돌아간다.
저 멀리 세워진 콜로세움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환호와 함성.
허나 내 시선은 올곧게 성도의 거리만을 향했다.
“어디냐…. 어디 있는 거야….”
보이라는 일꾼 1호 대신 까만 멍멍이만 돌아다니는 성도의 거리.
초조함이 더욱 커져간다.
아드득, 까드득.
나만의 특급 노예. 다른 일꾼들보다 일을 3배나 잘하는 너를 절대 놔줄 수 없어. 반드시 찾아내고 말 거야.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점점 판이 커지기 시작하는 축제…! 그야말로 대혼돈의 장… 혹은 개꿀잼의 장? 무엇이든 팡팡 터지는 에피소드가 될 것 같군요…! 작가인 저도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3일간의 연휴!!
뜻 깊은 3.1절의 의미를 기리며 푹 휴식을 취하실 수 있도록… 눈 앞을 가리는 숙면 안대의 저주를 걸어드리겠습니다! 하루에 최소 7시간의 숙면을 보장하는 저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