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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4

        

       무인은 더 높은 경지에 이를수록 엉덩이의 중량을 키워야 한다.

       엉덩이가 무거워서 자주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뜻이다.

         

       잡일은 이류들이나 하는 일.

       심부름은 일류 무인을 시키면 되고.

       절정쯤 되면 아랫놈들 열 중 하나 정도는 죽어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로소 무게를 잡으며 나타나야 한다.

       초절정 무인들이 괜히 큰일이 다 터져서 뒷북으로 난리를 치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현경쯤 되면?

       현경이 함부로 움직이면 재앙이 덮친다.

       왜냐하면, 현경의 고수가 움직이면 다른 현경의 고수도 움직여야 하니까.

       그러면 무림의 은원이 그렇듯이 현경들이 줄줄이 엮인 채로 너도나도 밖으로 뛰쳐나오고 마는 것이다.

         

       무림의 방식은 애새끼의 방식과 비슷하다.

       고상한 척 있어 보이는 척을 할 뿐, 결국 치고박고 싸운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현경이 치고박고 싸우면, 일곱 살 코흘리개들 싸우듯이 서로 눈탱이가 퍼렇게 물들고 어머니들 출동하여 무릎 꿇고 손 든 상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현경끼리 싸우면 그야말로 자연 파괴의 현장이오, 화탄이라도 쏟아진 듯이 쑥대밭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인적 없는 들판이라면야 밭 주인 혼자서 망쳐버린 농사에 피눈물을 쏟겠지만.

       만약 도시 한복판에서 붙기라도 하면?

         

       청의 고향에서는 상호 확증 파괴라고도 하는 현상으로, 현경들의 정모가 열리면 그 뒷풀이는 저승에서 열린다.

       수십만에서 과장 많이 보태서 수백만이 참가하게 될 성대한 이승 작별식이다.

         

       그러니 현 사도련주인 패천군 부안평 쯤 되면, 원래 사람됨이 가벼워 중력마저 거스르로 방방 뜨는 인물이라도 일단은 점잖은 척을 해야만 한다.

       엉덩이가 묵직하니 자리에서 떨어질 줄 몰라야 하는 것이다.

         

       대신, 그만큼 한 번 움직였을 때의 무게가 남다른 것이었으니.

       그러나 부안평은 광주 혈사의 건을 항의하기 위해 직접 행차했다.

         

       사도련에서 이번 일을 절대 가만히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과도 같았다.

         

       부안평 개인으로서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이참에 광주를 얻어내고 말겠다고.

       진가쯤 되면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오 년쯤 봉문시키거나 다른 동네로 쫓아버릴 속셈이었다.

         

       그리하여 부안평이 생각했다.

         

       이런, 썅. 괜히 왔네.

         

       현경의 고수가 되어도 인생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아니, 혈교는 무슨, 이런, 개 같은.”

         

       “그러게 일단 조사 결과부터 보자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누가 혈교 묻었을 줄 알았겠냐고. 나는 뭐 광주 놈들이 약장수랑 짜고 허풍이라도 친 줄 알았지.”

         

       정작 와서 알아보니, 굳이 알아볼 필요도 없이 저자에 소문이 쨍하니 이 정도면 굳이 진위를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온 김에 책사들이 일을 하기는 했지만.

         

       살월파에서 혈교의 저주받은 괴물을 만들어냈고, 그 재료는 사도련에서 보내준 사악한 단약이다.

       광주선방과 금적방은 그 전에 망했지만, 그놈들 역시 사도련에서 영약을 받았다면서 아주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다.

       그 전에 망하기가 다행으로, 안 그랬으면 혈귀가 세 곳에서 뛰쳐나올 뻔하지 않았나.

         

       “저어, 련주님?”

         

       패력파 문주의 목소리가 떨린다.

       잘 쳐줘도 삼류 문파인 패력파에 무려 사도련주를 모셨으니 당연히 목소리가 떨릴 수밖에는.

       그게 좋은 용건이 아니면 더욱더.

         

       “뭐야, 왜?”

         

       “그, 진가주가, 련주님은 언제 뵐 수 있는 것이냐고 또 인편을 보내서……”

         

       부안평의 표정이 팍 상했다.

         

       원래는 이런 그림이 아니다.

       사도 건아의 고수들을 병풍처럼 쫙 깔아두고는, 진가주를 무릎 꿇린 채로 혈사의 죄를 물어야 했건만.

       오히려 정파 놈들이 신이 나서 우리 얼굴 좀 보자, 할 말 있지 않냐 하고 재촉을 해 대는 것이다.

         

       “사도련주 집에 갔다고 해라.”

         

       “예?”

         

       “집에 갔다고 하라고.”

         

       부안평이 침을 퉤 뱉었다.

         

       “총책사, 짐 싸시오. 집에 가게.”

         

       결국, 뭐 어쩌겠나.

       기세 좋게 나갔다가 하는 일 없이 그저 광주의 영세한 사파 하나에 콕 박혀있다 맥없이 돌아오고 말았다.

       체면이 상해도 이리 상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거기서 무얼 하겠나.

       사도련주가 직접 나서면 그때부터는 련의 공식 입장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미안하다 하면 사도련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단체와 단체의 일에서 잘못을 인정한다고 하면 그만큼의 이권을 내어주는 일이다.

       그러니 그럴 수도 없고.

         

       적반하장으로 감히 사도 건아를 해치다니 운운했다간 온 세상이 사도련과 혈교가 손을 잡았다고 수군거릴 것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얌전히 돌아와서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정도다.

         

       우리 사도건아합종연합회는 광주의 혈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우리 사도련 이름을 사칭해서 정사 무림의 분열을 꾀하는 혈교의 비열한 책략일 뿐이다.

       너희만 피해자냐? 우리도 피해자다.

       하지만 광주에서는 손 뗄 테니 이쯤에서 묻어두지 않을래? 하고.

         

       “혈교 새끼들, 웬일로 정파만 골라 쏙쏙 조지고 다니길래 도움이 좀 되나 싶더니만, 역시 전혀 도움이 안 돼. 다 찢어죽여야 해, 개 같은 놈들.”

         

       “좋게 생각하시죠. 그래도 련주님 덕분에 정파 놈들도 우리 사도련을 의심하지는 않잖습니까? 다 련주님의 영도 덕분이지요.”

         

       “씹.”

         

       그야 사도련주가 직접 광주 혈사에 항의하러 나섰다가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비추고 돌아가 버렸으니까.

       그 자체부터가 벌써 광주에 혈교 묻은 줄 모르고 왔다는 뜻이 된다.

       사도련주의 체면은 좀 심하게 상했지만, 그 결백 하나는 기막히게 증명한 셈이었다.

         

       그래서 부안평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결백을 증명하기는 개뿔.

       혈교가 관련되어서 신난 놈들은 정파 놈들이지,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결국 사도련이 아니겠는가.

         

       거기에 또 거슬리는 년이 하나.

         

       “하. 총책, 천화검 그 애송이를 가만히 놔둬야 하겠소?”

         

       “이제는 명분이 좀. 차라리 광주에 안 가셨으면 모르겠는데,”

         

       “왜! 그년이 사도련을 얼마나 우습게 알겠소? 남녕에서부터 아주 정의의 협사가 나셨어. 해봐야 사람 써는 년이 무슨 정의의 협객 나셨다고. 혈교 아니었으면 그냥 천하의 살성일 뿐이잖소.”

         

       “혈교가 있었으니 문제가 아닙니까. 뭐라 하시렵니까? 그저 혈교에 속아서 괴물을 만들었을 뿐인, 죄 없는 선량한 사도 건아를 마구 해치다니, 우리는 용서할 수 없다?”

         

       “남녕 건은?”

         

       “역시 뭐라고 하실 겁니까? 계림검파를 멸문시키려던 사도련의 죄 없는 전투부대를 몰살시켰다고 하실 겁니까? 그리고 남녕 건은 천화검이 아니라 왕부가 개입한 일입니다만.”

         

       “나도 아오! 내가 몰라서 그러나! 좀 옆에 앉아서 맞아맞아 맞장구나 좀 쳐주면 안 되오? 얄밉잖아! 어린 년이 경지가 높으니까 하는 짓마다 진상이잖아!”

         

       후기지수가 악인참이니 뭐니 젊은 혈기에 일을 저지르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의외로 그 폐해란 크지 않다.

         

       후기지수는 기본적으로 약하다.

       물론 절정 무인쯤 되는 녀석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후기지수들은 명가의 자식들이라 이미 어려서부터 사문과 가문을 대표한다는 의미를 교육받는다.

       그러니 명가의 자식들은 청년 중에서는 고수라고 할 수 있지만, 정작 악인참이니 협사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칼부터 뽑아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쁜 놈 죽어라! 하고 칼을 마구 휘두르는 놈들은 어차피 애송이들 뿐이다.

       애송이 중 위험한 놈들은 생각 없이 칼을 휘두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천화검은 초절정이다.

       강기를 다루는 고수다.

       그런 년이 악인은 전부 죽어야 한다면서 마구 칼을 휘둘러댄다?

         

       광주선방이 바로 그렇다.

       양민 몇을 베었다고 격분한 천화검이 그대로 쳐들어가서 몰살을 시켰다더라.

         

       솔직히 사파에 양민 좀 안 베는 놈들이 어디 있겠나.

       원래 양민들이란 본보기로 하나씩 잡아 죽이고 해야 말을 듣는 짐승들이기도 하고.

         

       그러니 천화검을 가만히 놔두면, 도대체 어디까지 다 죽이겠다고 설칠 것인가.

       가는 데마다 사파를 불태울 년을 가만히 놔둬야 하나?

       그것도 협행이랍시고 살육을 통해 천하의 인심만 사는 년을?

       련 차원에서의 조치가 필요한 때다.

         

       그런데 하필이면 혈교가 묻어버리는 바람에.

         

       “조금만 참으시지요. 그렇게 날뛰던 년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얌전해지겠습니까? 지금까지는 재수가 좋았더라도, 결국엔 큰 사고를 치고 말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답답해서 그래! 답답해서! 무림대회 전까지 사고를 쳐야 사도공적 선포라도 할 거 아뇨! 무림대회가 끝나고 나서야 선포하면 모양 빠지잖아!”

         

       “으음.”

         

       총책사 순웅 역시 그에는 딱히 방책이 없다.

         

       그러나, 의외로 정답은 가까이에 있는 법이라던가.

         

       “련주님, 천화검 그년이, 그년이……!”

         

       오후 접견 시간에 대뜸 엎드려 통곡하는 이 청년의 이름은 왕대양, 녹림 총채주 왕철군의 셋째 아들 되시겠다.

         

       그에, 사도련주와 총책사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한다.

         

       ‘사고, 이미 쳤군요?“

         

       ’사고는 벌써 친 것 같은데?‘

         

       하고.

         

         

       —-

         

         

       서문수린은 심란하다.

         

       녹림 토벌은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단신으로 쳐들어가 총채주의 목을 베고 산채를 불태운 일이 보통 일이겠나.

       진짜로 가능했나 혹은 어떤 야료나 꼼수가 있었든 간에 온 천하가 깜짝 놀랄 만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지만.

         

       하지만 서문수린이 생각하는 보통 일이란 상대가 어떤 놈이냐 그게 가능한 일이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보자면, 그냥 산적을 해치웠을 뿐이 아니겠나.

         

       그냥 동네 야산의 허름한 산채나 불태웠다면 그냥 평범한 협행이라 잘했구나 하고 칭찬이나 했을 터다.

       하지만 동네 야산이 천자산으로, 허름한 산채가 제 일 채로 바뀌었을 뿐인데 경솔했다고 야단을 쳐야겠는가.

       작은 도적은 베어도 되고 큰 도적은 베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겠는가.

         

       “으음.”

         

       서문수린이 난을 치던 종이를 스윽 옆으로 밀어버리고 만다.

         

       협의의 문제가 아니라 원한의 문제다.

         

       총채주를 베고 본채를 불태웠다고?

         

       그러면, 이제 누군가 산적 떼를 규합하여 녹림을 계승하려면, 혹은 계승하고 나면 일단 제자에게 복수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안 되겠으면 청이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던가.

         

       반대로 말해서, 청을 해치우면 누구라도 간단히 녹림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녹림이란 누구라도 쉬이 욕심을 낼 만한 세력이기도 하고.

         

       거기에 양광 땅에 머무르면서 한 일 역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사파의 전투단을 박살냈다고?

       대놓고 남의 문파에 쳐들어가서 병기를 휘둘렀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자에게 상황이 이러하니 네가 너무 경솔했노라고, 그렇게 꾸중하고 싶지는 않았다.

         

       뭐라고 할 것인가?

         

       협행도 좋지만, 상대를 가리면서 해라?

       아무리 사악한 놈들이라지만, 사파련의 체면도 좀 생각해 줘라?

         

       그렇지 않으면 제자가 위험할 테니까?

       네 목숨부터 건사하고서 협행을 해라?

         

       그런 비겁한 소리는 하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 서문수린 본인이 그렇게 비겁한 논리에 따라서 굽히며 살아온 역사가 없다.

         

       여광견. 미친개가 왜 미친개인지 아는가?

       상대를 안 가리고 일단 물어뜯기 때문에 미친개다.

         

       그러니 서문수린의 고민이 깊다.

         

       강호행을 내보내면 제자의 곧고 굳은 협의(협의!)에 또 사고를 치고 말 텐데.

       겨우 초절정의 무위로 험난한 강호에서 그 원한을 어찌 감당할꼬.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새삼 제자의 경지가 참으로 아쉽다.

       최연소 초절정을 이루고 나서는 만족했다 생각했건만, 사람의 욕심이 이러한 것인지.

         

       하지만 화경은 초절정과는 달리 하루 이틀로 이룰 만한 경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제 막 협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제자의 강호행을 막아서고 싶지도 않다.

         

       그러면 어떻게?

       일단은 안전한 곳으로 좀 돌려야겠다.

         

       그리고 마침 다음 일정이 그렇지 않던가.

         

       그리고 유림의 거장인 시강학사쯤 되면, 제자가 고심하는 바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글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데..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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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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