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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5

    그렇게 다이튼과 예르나는 짧은 휴가를 내고  루크를 비롯한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온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요즘들어 휴가를 쓰는 시기가 잦은 것 같아서 눈치가 보이고 있기는 했다.

    원래 예르나는 휴가가 쌓여도 전혀 쓰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쉬는 날에도 숲에 얼굴을 비출 정도로 숲지기 일에 푹 빠져 살았던지라 그런 예르나가 휴가를 가지고 무어라 이야기를 꺼내오는 대원들은 없었다고 한다지만, 아무래도 다이튼의 경우는 달랐다.

    경력도 2년밖에 안 된데다가 직급도 그다지 높지 않은 주제에 벌써부터 휴가를 마구 끌어다 쓰는 모습은 딱히 숲지기가 아니라 사회에서 하더라도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니까.

    허나, 그런데도 숲지기들은 그런 다이튼에게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르나가 직접 다이튼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대원들에게 털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을 대원들에게는 놀라울 법도 한 이야기였지만, 사실 그건 그렇게까지 급작스럽고 충격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니, 대부분은 오히려 ‘이제야 말하는 건가’ 하는 정도의 반응이었다. 

    사실, 웬만한 숲지기들은 다이튼이 예르나와 결혼을 했다는 것을 진작에 이미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휴가를 겹쳐 사용하는데다가, 종종 정확히 같은 시간에 함께 출근을 하고, 또 예르나의 도시락은 질이 높아졌는데, 반대로 다이튼이 싸온 도시락의 품질은 떨어졌으며, 가끔 주말이 지나서 예르나의 혈색이 좋아진 날에는 어김없이 다이튼이 눈에 띄게 피곤해했다.

    이 정도로 힌트를 주었다면 모르는 게 오히려 바보다.

    거기에 이전에 루크가 다이튼의 이름을 부르며 방송을 급히 종료하는 방송사고를 낸 그 시점에서는 이미 그들이 사실상 가족이 되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까지 티가 났다는 사실은 예르나와 다이튼으로서는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뭐, 그래도 덕분에 서로 얼굴 붉히거나 하는 일 없이 휴가를 쓸 수 있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조수석에 앉아있던 다이튼은 옆자리에서 조용히 운전을 하는 예르나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쳐 살짝 웃어보였다.

    그러자 예르나 역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들에 별 이유는 없었다.

    지금은 그저 서로 보기만 해도 좋은 때였다.

    살짝 시선을 돌려 뒷좌석에 앉은 디아나와 파이리스를 보아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온천에 간다는 기대와, 모르는 풍경에 대한 설레임으로 즐거워하는 모습.

    그렇기에 아이들의 표정 역시 밝기만 했다.

    반면, 루크의 표정은 미묘하기 짝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고작 목욕을 하기 위해서 먼 길을 이동해야한다는 사실이 루크에겐 썩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목욕이 싫다는 건 물론 아니다.

    따지자면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지.

    따듯한 물에 몸을 씻어내리는 것은 루크도 굉장히 좋아하는 감각이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그런 감각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싶다.

    다만, 루크가 불만인 점은 적절한 수질과 온도를 두루 갖춘 목욕물을 구하기 어려웠던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같이 수도꼭지를 돌리기만 하면 깨끗하고 따듯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시대에 굳이 몸을 씻기 위해 이렇게 노력을 들여야 되냐는 것이다.

    그건 이토록 편한 세상에서 너무나 불편한 이야기 아닌가.

    루크가 과거 ‘온천여행’이라는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그 전에 온천이라는 것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온천이라 해 봤자 결국은 그저 덥힌 목욕 물.

    차이점이라면 마법을 통해 데운 물인가, 자연을 통해 데운 물인가 정도다.

    그 차이에서 미묘하게 마법적인 차이점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 미묘한 차이도 이런저런 향초를 통해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받은 경품은 4인 숙박권 아닌가?

    반면에 가족들은 5인이고.

    굳이 이렇게 수고스럽게, 거기다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목욕만을 위해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 루크에겐 그저 이해하기 어려운 광인의 행동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리 가정집의 욕탕과 온천은 그 시설의 규모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이렇게 비교하기가 굉장히 미묘하다.

    그러니까, 비유를 하자면 세계적인 셰프가 있는 가정집에서 굳이 조금 더 넓은 테이블을 보겠다고 동네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외식을 나가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도 루크가 이렇게 그들을 따라나선 것은, 전에 나중에 시간이 되면 같이 가자고 제 입으로 직접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아린세이아를 쓸 수 없으니 순간이동도 할 수 없고…….’ 

    안타깝게도 루크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아린세이아가 인공지능을 형성하기 위해 한창 바쁘게 작동하고 있을 시기인지라 사용할 수가 없다.

    ……헌데, 다이어트에 좋다니.

    온천에 가자고 할 때, 예르나와 다이튼이 그랬다.

    최근 온천에 그런 효능이 있다는 게 마법적으로 밝혀졌다던가, 어쨌다던가.

    비록 다이튼은 바보라서 제대로 설명은 못 하는 듯 보였고, 예르나는 제대로 알아본 게 아니라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의견은 일치하는 듯 보였다.

    아니, 뭐.

    그 이야기가 5000년 전의 지식으로는 알아낼 수 없었던 효능이 기술의 발전으로 이번에 추가적으로 알려진 건지, 아니면 그저 우둔한 민중을 속여 돈을 갈취하기 위한 기업의 마케팅수단에 불과한 이야기인지, 그런 건 확실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루크에게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다이어트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왕 가는거, 한시라도 빨리 확인해 보는 게 마음이 편해서 그러는 것 뿐.

    그래, 그런거다.

    ……그리고, 너무 큰 기대를 품으면 실망하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루크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얼른 도착이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하아…….”

    그리고 바로 그 때, 루크의 미묘한 표정을 읽은 다이튼이 입을 열었다.

    “야, 루크. 여행인데 표정이 왜 그래? 뭐 불편한 거라도 있어?”

    그런 다이튼의 물음에 루크는 문득 자신의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았나를 반성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딱히, 불편한 건 없다만. 왜 그러지?”

    “아니, 나는 네가 표정이 안 좋길래, 허리에 그 벨트 때문에 배가 부대끼나 싶어서. 아, 그거 불편하면 그냥 벗어 버리지그래?”

    아무래도 다이튼은 옷차림이 불편하지는 않나 걱정을 해 준 모양이다.

    하지만 딱히 복장에서 불편한 점은 없는데.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내 벨트의 장력은 전과 다를 바 없이 동일해. 불편한 건 전혀 없으니 안심하거라.”

    그러자 다이튼은 그거 참 다행이라는 듯, 과장되게 안심한 억양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

    그리고 잠시 후, 다이튼이 다시 물어왔다.

    “그나저나, 그 벨트가 되게 맘에 들었나봐? 항상 그렇게 입는 걸 보면 말이야.”

    “음, 뭐, 그렇지.”

    “그렇게 입는 이유라도 있어?”

    “음, 단순하게 말하자면 옷맵시 때문이지. 펑퍼짐한 옷은 허리에서 이렇게 벨트를 하지 않으면 배가 붕 뜨거든. 그러면 남들이 언뜻 봤을 때 살이 쪄 보일 것 아닌가. 그래서 착용하는 거다.”

    “아아-. 그렇구나? 뭐, 그런거면.”

    “……?”

    그 말에 루크는 예민하게 귀를 쫑긋거렸다.

    ‘뭐, 그런거면’?

    단순히 걱정과 질문을 받은 것 치고는 기분이 뭔가 이상하다.

    뭔가 숨겨진 의도가 분명 있는 것 같아서 찝찝한데…….

    “다이튼, ‘그런거면’이 대체 무슨 뜻이지?”

    루크의 날카로운 질문에 다이튼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아니 그냥 뭐, 모처럼의 외출인데 저번에 예르나하고 샀다던 그 새옷은 이번에 왜 안입었나, 해서. 혹시 나중에 보니까 별로 맘에 안 들어? 아니면 갑자기 몸에 안 맞게 되기라도 한 거야?”

    멈칫, 그 말에 루크의 움직임이 돌연 멈췄다.

    ……‘갑자기 안 맞게 됐냐’라고?

    설마, 다이튼은 지금 자신이 뱃살이 살쪘다고 돌려서 까는 중인 건가?

    루크는 이내 발끈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허! 불쾌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군! 며칠 전에 산 옷이 갑자기 안 맞게 되었을 리가 없잖아! 그 옷은 그냥 나중에 입으려고 놔둔거야!”

    루체스트의 사업 설명회가 불과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괜히 밖에 입고 다니다가 필요한 순간에 못 입는 걸 경계하는 것이지, 절대 살이 쪄서 못 입게 된 게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며칠만에 새로 산 옷이 안 맞을 정도로 살이 찔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루크가 아무리 그렇게 외쳐본다 한들, 온천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좋다는 말에 몸을 움찔거리고 말았던 순간의 루크를 기억하고 있는 다이튼에겐 그저 조악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저렇게 말해도 루크가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아니, 그냥 물어본 건데 왜 그렇게 성을 내. 너무하네. 예르나 지금 운전중인데 정신사납게, 내가 너한테 뭐, 살쪘다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에 루크는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지금 말했잖아!”

    “아.”

    이런, 말했네.

    그러자 그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디아나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거들어왔다.

    “언니, 살쪘어?”

    아이들의 순수함은 때로 그 무엇보다 날카로운 창이 된다.

    그 날카로움에 베인 루크는 화들짝 놀라 비명처럼 외쳤다.

    “무, 무슨 소리야!? 살이 쪘다니! 이건 그냥 다이튼의 모함이야!”

    루크가 그렇게 외쳤지만, 다이튼은 루크의 말을 적당히 무시하면서 신경을 살살 긁었다.

    “야, 그거 살 좀 쪘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온천에서 땀 한번 쫙 빼면 정말로 진짜로 살이 빠진다고 TV에서 그랬다니까?”

    그러자 루크는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부여잡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이게 일반적으로 살이 찐 게 절대 아닌데, 그렇다고 정말 살이 안 쪘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고…….

    갑갑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운전중인 차 안에서 다이튼을 쥐고 흔들 수도 없고,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 두는데, 다이어트 때문에 혹해서 가는 게 아니라 약속했으니까 가는 거다! 알겠어?”

    “아, 그랬지?”

    “아, 그랬지?, 가 아니라, 그래! 그대가 굳이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어도 갔을 거란 말이다!”

    반면 루크의 그 모습을 보는 다이튼은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루크는 조금만 장난쳐도 반응이 저렇게 좋으니, 정말 요즘은 루크 놀리는 맛에 사는 것 같다.

    아무래도 예전에 루크에게 직간접적으로 당한 것이 많아서 그런지, 루크가 장난으로 화를 내거나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마치 그동안 쌓여온 사소한 복수가 이뤄지는 듯한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러니 루크에게는 장난을 끊을 수가 없다.

    그 답답한 상황에 루크는 결국, 그 단어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엄마!”

    그러자, 조용히 운전에 집중하고 있던 예르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다이튼, 루크 좀 그만 놀려. 그러다 내리면 어쩌려고.”

    “아하하. 알겠어. 그만할게.”

    예르나의 질책에 다이튼은 루크를 긁는 말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부터 이 정도 선에서 그만 놀리려고 했다.

    사실, 루크의 관절꺾기와 꼬집기 등에서 벗어나기엔 이미 늦어버린 것 같긴 하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빠는 딸내미 놀리는 맛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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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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