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35

       앨리스가 뭘 할지 생각은 해 봤었다.

        

       하지만 정작 예상은 못 했다.

        

       이쪽 세상에서 앨리스의 취미는 크게 따지면 하나였다.

        

       문화 컨텐츠 탐방.

        

       이 나라의 것일 수도 있고, 다른 나라의 것일 수도 있다. 앨리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나 애니메이션. 책도 많이 사다 읽었고.

        

       당연히 게임이나 피규어 구매도 있는데, 피규어는 지난번에 바니걸 클레어를 산 이후로는 산 적 없고, 게임은 크게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앨리스가 영화 같은 것을 같이 보자고 할 줄 알았는데.

        

       “……프라모델?”

        

       그렇다.

        

       앨리스는 우리를 이끌고 프라모델을 사러 갔다.

        

       용산의 상가가 많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용산역 자체에 딸린 상가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그 쇼핑몰에는 애들 장난감 파는 곳이나 게임 파는 곳이 꽤 있었는데, 그중에서 프라모델 판매장에 간 것이다.

        

       “이쪽은 접착제 같은 게 없어도 조립할 수 있다더라.”

        

       그건 알고 있는데.

        

       앨리스가 우릴 이끌고 간 곳은, 아마 로봇 애니메이션으로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유명하지 않을까 싶은 프랜차이즈를 소유한 일본 프라모델 회사의 직영점.

        

       “……만들어보고 싶었습니까?”

        

       “어릴 때부터 예술에 관심이 있기는 했지.”

        

       그랬던가?

        

       이쪽 세상에서 앨리스가 좋아하는 컨텐츠들을 보면 그럴싸하기도 했다.

        

       내가 조금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자, 앨리스는 조금 부끄러운 듯 말했다.

        

       “그야 네 앞에서는 티를 낸 적이 없거든. 그게…… 약점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예술을 좋아하는 게 어떻게 약점이 됩니까?”

        

       “황제는 그런 유약한 취미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유약…….

        

       하긴 황제가 방 안에서 로봇 프라모델 같은 거 조립하고 있으면 조금 깰 것 같긴 하다.

        

       차라리 미니어처 같은 거라면 그럴싸하지만.

        

       “그러니까, 여기서 하나 사서 다 같이 조립하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뭐, 나쁠 거 없지.

        

       어른이 되면서 조립할 시간도 별로 없고, 그냥 전시만 할 거면 프라모델보다는 피규어가 낫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그냥 피규어를 샀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이제는 시간이 남아도네.

        

       아마 제국으로 돌아가도 한동안은 남아돌지 않을까.

        

       이렇게 다섯 명에서 오손도손 모여 놀 일은 거의 없게 되겠지만.

        

       “어떤 것으로 구입하고 싶으십니까?”

        

       “글쎄. 기왕이면 조금 부품 많고 큰 모델이 좋지 않을까? 다섯 명이 다 같이 조립하면 되니까.”

        

       하긴, 이쪽은 비싼 모델일수록 오히려 채색 없이도 그럴싸한 모습이 나온다.

        

       나는 앨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우와, 진짜 많네.”

        

       집으로 돌아와 상자를 열자 거의 쏟아지듯 하는 런너 더미를 보고 앨리스는 조금 기쁜 듯 말했다.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 이런 취미가 있다는 것도 몰랐구나.

        

       의외로 레나와 잘 맞는 성격이지 않을까? 저쪽 세상에 아직 프라모델은 없지만, 그래도 이런 거 모으는 거 좋아하는 건 그 애도 마찬가지니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슬슬 그립긴 하네.

        

       나는 쓰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좋아, 여기 도구야.”

        

       앨리스는 즐겁게 웃으며 모두에게 프라모델용 니퍼를 나누어 주었다.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그냥 다 같이 즐기려고 하는 거잖아? 망가지면 망가진 대로 조립해서 그럴싸하게만 만들어보자.”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조금 비싼 모델이긴 했지만, 그래도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오늘은 앨리스의 날인걸.

        

       순서대로 돌아가면 나의 날도 올 거고 말이다.

        

       “저, 저는 손재주가 별로 없어서…….”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조금 망가져도 괜찮아.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거지, 결과물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V자 형태의 뿔이 부러지면 엄청나게 신경 쓰일 것 같은데…… 괜히 지적하면 더 오타쿠 같아 보일 테니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방 안은 니퍼 똑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아니, 가득 찼다고 하긴 조금 그렇다. 니퍼 소리는 간헐적으로 들리고, 중간중간 부품이 끼워지며 딱, 하고 맞아들어가는 소리, 설명서를 부스럭거리는 소리나 런너 봉투를 뜯는 소리가 더 자주 들리는 것 같았다.

        

       모두가 별다른 말이 없었다.

        

       “너무 집중해서 그런가?”

        

       그 침묵이 조금 어색했는지, 클레어가 입을 열었다.

        

       “네, 확실히, 만드는 동안에는 집중이 되네요. 조각 같은 것을 만드는 것 보다는 훨씬 쉽습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집중하지 않으면 실수를 하게 돼요.”

        

       “응. 그래서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어. 만드는 동안 잡생각이 안 든다고 하니까.”

        

       샤를로트의 말에 앨리스가 대답했다.

        

       참고로 손재주가 없다고 걱정했던 미아는 우리 중에서 가장 집중하여 조립하고 있었다.

        

       손으로 뭔가를 쪼물딱거리는 게 작은 동물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집중하고 있는데 머리를 쓰다듬는 건 조금 곤란하겠지.

        

       “언제부터였습니까?”

        

       “응?”

        

       프라모델 부품들을 하나하나 조립하면서 물어보자, 앨리스가 되물었다. 역시 그쪽도 부품을 보는 채였다.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 말입니다. 소설이나, 그림 같은…… 그런 것들을 좋아했습니까?”

        

       “…….”

        

       앨리스는 잠깐 생각하다가,

        

       “내가 종종 신문 읽을 때 있었잖아?”

        

       “예. 국제 정세를 알아야겠다고 했었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네 컷 만화를 보고 싶어서였어.”

        

       “혹시 신문을 신문사별로 전부 구매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까?”

        

       “뭐, 그렇지.”

        

       앨리스는 키득거렸다.

        

       “언제부터…… 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네. 그냥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어.”

        

       하긴, 나도 언제부터 만화 같은 걸 좋아했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언제부터 만화책을 사기 시작했냐고 물어보면 중학생 때부터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그냥 그때부터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생겼기 때문이었고.

        

       주로 부모님께서 주시는 용돈이었지.

        

       “나는 네 앞에서 이것저것 많이 숨겨왔잖아? 나중에는 숨기지 않는 게 더 어렵더라. 내가 보는 너는 너무 완벽해서, 네가 뭔가 알아버리면 나한테 실망할 것 같았어.”

        

       “…….”

        

       나는 잠깐 프라모델 부품을 만지작거리다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앨리스가 완벽했는데요.”

        

       “응?”

        

       “저는 시험을 보기 전 몇 번이고 시간을 돌려가며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다가 뭔가 놓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시간을 돌려가며 반드시 이해하고, 암기했죠. 그나마 양심은 지키겠다고 시험을 두 번씩 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무튼 반칙을 하긴 했다는 소리입니다.”

        

       나는 다시 부품을 맞추기 시작했다.

        

       딱, 하고 맞아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잠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고도 저의 원래 실력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내왔습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법을 알았죠. 그래서 저는 당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어쩌면 시간을 되돌려 답만 외워 시험을 보지 않았던 것도, 당신이 노력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 고마워?”

        

       내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자 앨리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언니, 언니.”

        

       우리가 잠깐 이야기를 끊자, 클레어가 나를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나는?”

        

       “예?”

        

       “나는 어땠어?”

        

       “…….”

        

       아니, 그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잖아, 우리는.

        

       “……저를 잘 따르는 귀엽고 착한 아이였죠. 그때는 엄청나게 얌전했던 것 같은데.”

        

       “지금도 얌전하잖아?”

        

       “어딜 봐서 얌전합니까?”

        

       “언니. 다음에 달리기할 때 코스 왕복 한 번을 추가할게.”

        

       “물론 얌전합니다. 아마 제가 알고 있는 아이 중 가장 얌전하네요.”

        

       내 말에 클레어는 내 쪽으로 혀를 내밀어 보였다. 빈말이라는 걸 아는 모양이다.

        

       자리에 잠깐 웃음이 일었다.

        

       그래도 클레어가 분위기는 잘 읽는단 말이야.

        

       자칫 잘못했으면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질 뻔했다.

        

       *

        

       “…….”

        

       “어때?”

        

       다 만들어진, 하얀색과 파란색을 기조로 만들어진 그 로봇을 보면서 앨리스가 물었다.

        

       “좋네.”

        

       “좋습니다.”

        

       클레어와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다 같이 만들어서 더 뿌듯한 것 같네요.”

        

       “처음 만들어보는데도 꽤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샤를로트와 미아도 그렇게 말했다.

        

       처음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였다. 본격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처럼 부품을 갈거나 연마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 꽤 준수한 모양이 나왔다. 하긴, 원래 이 회사 제품이 이러니까.

        

       우리는 그걸 일단 TV 앞 피규어 대열 가장 오른쪽에 세웠다.

        

       미소녀 행렬 제일 끝에 있는 로봇이라 조금 어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훨씬 나았다. 어차피 다 같은 오타쿠 용품이라 그런 건가?

        

       “좋아, 나는 만족했어.”

        

       앨리스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그렇게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누구 차례지?”

        

       “제 차례네요.”

        

       샤를로트가 나서며 말했다.

        

       “물론, 뭘 하고 싶은지는 준비해 두었습니다.”

        

       활짝 웃는 샤를로트는 꼭 동화 속의 공주님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회식이 있었던 날이라서ㅠ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Ilham Senjaya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노벨피아 독자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첫 작을 완성할 수 있을지조차 걱정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벌써 작품을 몇 개나 완성하게 되었네요. 아직 제가 보기에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제 글이 완벽해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완벽한 글이 아니라, 제가 들려드리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은 거니까요. 그저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서 조금씩 나아지려 노력할 뿐입니다.

    제 새로운 작품도 마음에 들어해주셔서 다행입니다. 저도 가끔 어떤 소설의 최신 전개를 읽고 조바심이 나면 그 작가님의 전작을 읽고는 하는데, 여러분도 제 전작들을 읽으며 즐거워하실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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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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