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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6

       궁정 한 가운데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식량을 본 베니는 펜을 내던지고서 다급히 바깥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흙으로 만들어진 골렘이 계속해서 물건들을 나르고 있었고,

       

       그 옆에 서 있는 팔이 여섯 개 달린 흙색 피부의 여성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이계의 언어로 골렘들에게 무어라무어라 소리를 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시작일 화령은 곰방대를 입에 문 채 가만 그 풍경을 지켜보다 베니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씨익 웃으며 목소리를 냈다.

       

       “왔느냐. 기다리고 있었다.”

       “화령님. 이건 도대체.”

       “말했잖으냐. 그대들을 돕겠노라고.”

       

       이게 그 지원이라 설명해 준 화령은 팔이 여섯 개 달린 여성에게 다가가서는 그녀를 베니의 앞에 세웠다.

       

       “안녕하십니까. 반그로우라고 합니다.”

       “..,칼로텐 왕국의 여왕 베니 칼로텐이라 합니다. 이 곳의 언어를 할 줄 아시는군요?”

       “아뇨. 모릅니다. 옆에 계시는 화령님의 권능에 의해 번역이 되는 것일 테죠. 어쨌건 여왕의 직함을 지닌 분이시니 책임자라 부르는 데 부족함이 없겠군요.”

       “예. 맞습니다.”

       “그럼 현재 대륙에 필요한 식량 규모와 물품에 대해 정리해두신 부분이 있습니까?”

       “…대륙이라 함은. 대륙 전체를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만.”

       

       반그로우의 이야기를 들은 베니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수도에서 사용할 식량만을 지원해준다 그래도 무릎을 꿇어야 할 상황인데 대륙 전체에서 사용할 식량을 지원해 주시겠다니!

       

       “자…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륙 이곳저곳에 살아있는 자들에 대한 조사는 이미 끝마친 상황이다.

       

       전선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짐에 따라 그 인원들을 대륙 여기저기로 파견해 정보를 끌어 모았으니 지금이라도 자료를 내어주는 건 어렵지 않다.

       

       베니가 고민하는 부분은 이를 곧이곧대로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니면 규모를 불려 많은 식량을 받을까하는 점이었다.

       

       지금 대륙에 주어질 지원은 일시적. 훗날 대륙에 사는 이들이 자생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티기 위해서는 역시 최대한 규모를 불려서.

       

       “정확한 계산이 힘든 상황이라면 그냥 최대한 넉넉하게 추정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어차피 이번 한 번으로 지원이 끝날 것도 아니니 초과해서 지원을 드린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이번 한 번이 끝이 아니라고요?”

       “못 들으셨습니까? 화령님께서 당초에 말씀 하신 사안은 대륙이 자생가능할 때까지의 지원이었습니다만.”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베니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파이스가 다급히 그녀를 지지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으리라.

       

       “일단은 마음을 추스르도록 하시죠.”

       

       그 모습을 본 반그로우는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보이곤 베니를 달랬다. “나중에 다시 여쭤보도록.”

       

       “아뇨. 괜찮습니다.”

       

       허나 베니는 그 배려를 거절했다.

       

       파이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특유의 강직한 눈으로 베니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희망을 가져오신 분께 어찌 이 이상의 배려를 바라겠습니까. 반그로우님. 지금 이 곳으로 바로 자료를 가져오게 하겠습니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필요치 않았다. 베니가 눈빛을 보내기도 전에 그 뒤에 도열해있던 신하들이 자료를 가지러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반그로우님.”

       “하하. 감사를 들을 이유는 없습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화령님과의 거래에 응했을 뿐이니까요.”

       

       감사를 전하려면 화령에게 하란 이야기에 베니와 파이스가 방금 전까지 화령이 서 있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나 그 곳에 화령은 존재치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곰방대를 피우고 있던 그녀는 허공에 연기만을 남기고서 자취를 감추어버린 뒤였다.

       

       *

       

       “그 자리에 좀 더 머물렀어도 괜찮았을 듯 하다만?”

       

       베니와 반그로우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구경하다 그 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겠다 싶어 화룡무인의 세상으로 건너왔더니 내 목에 목도리마냥 매달려있던 바루가 목소리를 냈다.

       

       “무얼 하려고 그러겠느냐. 본인이 없어도 이야기는 잘 진행될 터인데.”

       

       본인의 역할은 두 사람의 소통을 이어주는 것으로 끝이다.

       

       그 이후에는 본인이 끼어들어봐야 민폐만 될 뿐. 본인이 바지사장으로나마 단체를 이끌어 보았던 것이 사실이긴하다만 그래봐야 바지사장일 뿐이지 않은가.

       

       대륙 전체를 이끌고 있는 여왕과 거대한 평원에서 만들어지는 식량을 관리하는 이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어봐야 그들의 고견보다 더 나은 답변을 끌어내지 못한다.

       

       그리 이야기를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루는 느슨한 미소로 본인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냥 감사인사를 듣는 것에 서투른 것 아니더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지난 번 종선께서 감사를 표할 때에도 어찌할 줄을 몰라하더니. 이번에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나.”

       “크흠.”

       

       바루 이 녀석. 본인과 지낸지 얼마나 되었다고 본인이라는 인간에 대해 파악한 체를 하는 것인가.

       

       본인이 물론 감사를 들을 일이 적은 인생을 살았던 것은 사실이다만 그런 것에 당혹을 느낄 정도로 감성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이 닳고 닳은 노친네가 그런 것을 부담스러워 할 리가 있나.

       

       “무언가를 부수고 죽이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는 녀석이 고맙단 이야기에는 서투르다니 이것 참.”

       

       귀여운 구석이 있다며 키득거리는 바루의 목소리가 거슬려서 녀석의 목덜미를 붙잡아 시선을 마주했다.

       

       “바루. 자꾸 그러며는 아피스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수가 있다.”

       “…적당히 하마.”

       “그래. 적당히 해야지.”

       

       입을 꾹 다문 바루를 머리에 올린 본인은 세상의 공간을 좁혀가며 선계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도 그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것은 검선이었다.

       

       가만 앉아있기엔 심심했던 듯 검을 휘두르고 있던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깊게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구원자시여.”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이냐.”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말로 본인을 편히 대하던 것이 왜 정중한 체를 하는 것이야.

       

       죽을 날이 다 되어서 사람이 뒤바뀌기라도 한 게냐?

       

       “죽음으로 가득하던 선계에 생을 주신 분께 어찌 공손하지 않겠습니까.”

       “…하아. 그냥 평소대로 해라. 이 놈아. 하루 아침에 표정을 바꾸는 쪽이 오히려 불쾌하다.”

       “그렇더냐? 그럼 어쩔 수 없지.”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녀석은 종선이건 다른 신선놈들이건 간에 나를 향해 예의를 차려야한다 난리를 친다고 투덜거렸다.

       

       “그대가 그를 원치 않을 것이라 이야기해보아도 마찬가지더군.”

       “즉, 선계로 향하면 이러한 꼴을 수도 없이 마주해야한단 것이냐?”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듯 하다만?”

       

       검선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선계로 향하기 싫단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저들의 협력을 구해야 하는 것이 본인의 입장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잘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움직여 선계에 발을 들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서서히 회복되어가고 있는 대지의 모습이었다.

       

       바닥에 피어난 새싹. 말라버린 나뭇가지의 위에 피어나는 자그마한 잎들. 저 멀리까지 퍼져 있는 생기.

       

       겨우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죽어가던 대지에는 생명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것이 신선들의 능력인가.

       

       과거 본인의 살던 곳에서 선계를 박살낼 적엔 저들의 유용함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저들을 이용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허나 지금은 아니다. 저들을 이용해 한 세계를 구원할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신선이란 존재는 더할 나위없이 든든한 것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원자시여.”

       

       선계의 풍경을 보며 이들의 협력을 강제하길 잘했다 생각하고 있으려니 종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요 며칠 고생을 한 것인지 자신의 육신만하던 거대한 배가 반으로 줄어 있었다.

       

       “당신께서 힘을 써주신 덕분에 선계가 서서히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선계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겠죠.”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감사를 전하는 종선에게서는 극진한 공손함이 담겨 있었다.

       

       본인이 슬쩍 미간을 찌푸린다면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박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구나.

       

       “구원자께서…”

       “그냥 아라라고 불러라. 괜한 호칭으로 불러봐야 거슬릴 뿐이니.”

       “…아라님께서 이 곳에 오신 까닭은 저희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까?”

       “그래.”

       

       본인이 이들에게 바라는 역할은 명확하다.

       

       대륙 이곳저곳으로 향하며 그 곳에 식량을 나누어줄 것.

       

       그와 함께 그 곳의 대지를 회복시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할 것.

       

       이외에도 그 장소에 필요한 여러 도움을 내어줄 것.

       

       본인의 입장에서야 신선을 하수라 여기지만 보통 신선이란 것은 여러 수련을 통해 인간의 격을 뛰어넘은 괴물들이다.

       

       뛰어난 도술 실력을 지닌 신령인 바루마저도 존경을 표하는 것이 이 녀석들이니. 분명 어렵잖게 본인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줄 테지.

       

       “이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들! 모이거라!”

       

       종선이 목소리를 드높이자 여기저기에서 신선들이 튀어나와서는 일련의 규율을 갖추었다.

       

       얼핏 보기에 그 수는 백에 달할 지경.

       

       저들의 규모를 보고 만족스럽게 고갤 주억거리던 중 갑자기 종선이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합니다! 아라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라님!””

       

       선계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을 듣고 있으려니 절로 곰방대 쪽으로 손이 향했다.

       

       내 이 녀석들에게 과거의 방식대로 요리를 대접해야겠구나.

       

       그것을 먹고서 한 둘 정도 저승을 구경하고 오면 이 존경심이 조금이라도 덜해지겠지.

       

       “하하. 아라야. 지금도 무척이나 껄끄러워하고 있구나.”

       

       입술을 우물거리는 내 모습이 웃겨 보였던 것일까.

       

       바루가 꼬리를 흔들면서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냈다.

       

       평소라면 저를 귀엽다 생각하고 말 본인이었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이를 가만 내버려두었다간 나쁜 버릇이 둘 게 분명했으니까.

       

       “일주일간 아피스 금지다.”

       “…뭐?”

       “배달음식도 금지다. 내 그대에게 환단만을 허락하겠다.”

       “잠! 잠깐! 아라야! 먹을 것 가지고 그러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느니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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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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