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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6

   숲에 처음으로 진입했을 때 나는 숲 전체에 도사린 스산한 기운을 느끼고 기대감을 품었다.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심각하다는 건 알아. 내가 얼마나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를 구할 수 있고 없고가 달려있다는 것 또한.

   

   그렇지만 말야. 새로운 컨텐츠에 대한 기대를 품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뻔하고 뻔한 굴레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는 게 얼마나 기쁜 줄 알아?!

   

   아카데미 던전이라는 새로운 컨텐츠를 공략하면서 나는 내가 왜 썩은물이 되었는지를 새삼 느꼈어.

   

   불가능에 가까운 무언가에 도전하고 성공했을 때에 찾아오는 쾌감은 내가 없뎃 끝에 망겜이 되어버린 소울 아카데미를 붙잡고 있던 이유였다는 걸!

   

   교수들이 준비한 것을 넘어서며 즐거움을 느꼈던 나는 이번에도 저들이 내게 신선함을 선사해주길 바랐다.

   

   그 동안 내가 악신의 세력을 상대하면서 온갖 훼방을 놓았는데 설마 아무런 준비도 안 했겠냐고 생각을 했지.

   

   모드 급의 괴상한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회심의 무언가가 있길 바랐단 말이다.

   

   허나 내 기대는 배신당했다. 내가 숲의 중심까지 돌아다니면서 본 숲의 광경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흔한 던전과 별 다를 것 없었으니까.

   

   <…상대의 계략이 허술하면 좋은 것 아니더냐?>

   

   내 실망을 본 할아버지가 어이없다는 티를 냈지만 난 도저히 할아버지의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는 할아버지의 말이 옳다는 걸 알았지만 감성이 고갤 끄덕이는 걸 거부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카데미가 문제야!

   

   그 놈들이 새로운 던전을 꽤 괜찮게 만드는 바람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기대를 해버렸잖아!

   

   아카데미의 교수들만 아니었어도 기대해서 배신당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젠장! 두고 보자! 교수놈들! 네놈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던전이 강간당하는 걸 보여주마!

   

   <근데 말이다. 루시야. 이 숲을 점거한 이들이 던전 안에 모든 걸 바쳤을 가능성은 없느냐? 숲보다는 던전 안이 힘을 펼치기 더 좋은 장소이지 않으냐.>

   ‘그럴 수도 있겠죠.’

   <그래. 그러니 아직 안심을 할 때가…>

   ‘근데 그래봐야 던전이잖아요. 그것도 멍청한 놈들이 곰을 기반으로 만든 던전.’

   

   이 숲에 들어오기 전이라면 기대를 품어봤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 숲의 구조를 보고 나니 기대가 싹 사라져 버렸다.

   

   나름대로 공을 들여 만든 구석이 눈에 보이는 이 숲조차도 내가 아는 공허의 특성에서 벗어나질 못하는데 저 던전 안이라도 무엇이 다르겠는가.

   

   저들이 심혈을 기울였다 한들 모드의 사악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어찌 기대를 품겠느냐는 말이다!

   

   썩은물인 나조차도 피를 토하게 만들었던 모드 던전을 떠올리니 새삼 그 제작자가 대단하다는 것이 느껴지네.

   

   빌어먹을 허접 주신님! 다른 보상은 됐으니까 그럴 듯한 던전 좀 만들어서 던져주면 안 돼?

   

   당신이 그 개같은 모드의 제작자라면 날 위한 던전 몇 개 정도는 줄 수 있잖아!

   

   “그래서 누가 들어갈 거지?”

   

   던전의 입구를 앞에 두고서 한참 투덜거리던 나는 뮤러의 물음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이 던전에는 한 사람밖에 들어갈 수 없을 듯 한데.”

   

   처음 나와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내 지휘에 의문을 품던 뮤러였지만 지금은 내가 무언가 결정을 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숲을 돌아다니는 잠시 동안 태도가 전혀 달라진 그의 모습은 내게 자그마한 불안감을 선사했다.

   

   좋게 보자면 뮤러가 날 인정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여태 내 주변에 이상한 놈들이 하도 많다 보니 뮤러도 거기에 끼어드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단 말이지.

   

   “왜 그러지?”

   

   뮤러의 의문에 고갤 내젓는 것으로 답한 나는 함께하는 이들을 살피며 누굴 데려갈지 고민했다.

   

   숲에서 보았던 것들을 생각해보면 무력적인 부분에서 골치를 앓을 가능성은 낮을 것 같아. 그렇지만 저 안에서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니.

   

   “변태 사도.”

   

   상당한 무력을 지녔으며 흑마법에 대응할 수도 있는 이 녀석을 데려가는 게 맞겠지.

   

   …이 역겨운 놈이랑 둘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게 짜증나긴 하지만 이게 합리적이니까.

   

   “날 위해서 죽어라 구를 기회를 줄게. 기쁘지?”

   “예!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신이 언급되기 무섭게 앞으로 튀어나온 그는 자신만만한 웃음과 함께 주변으로 고갤 돌렸다.

   

   그 곳에는 선택받지 못해 쭈구리가 된 칼과 얼빠여우가 있었다.

   

   변태 사도. 이 자식 설마 두 사람보다 먼저 선택 받은 거에 우월감을 느끼는 거야? 사도라는 작자가 그래도 돼?!

   

   “…이건 다 내가 약하기 때문인가.”

   “…본녀의 본신이 이 곳에 오기만 했다면.”

   “거기 멍청이들. 너네 쉬라고 내버려 두는 거 아니거든? 바깥에서 개처럼 구르라는 거야. 강아지답게.”

   

   우울해 하는 두 사람에게 바깥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야기했지만 두 사람의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비시와 뮤러가 둘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음에도 그랬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이마를 붙잡고 저들이 혹할 이야기를 해주었다. 열심히 일하면 변태 사도를 시켜 따로 장신구를 만들어주겠다고 말이다.

   

   “최선을 다하마!”

   “아가씨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퍼뜩 고개를 치켜드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진짜 개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욕한 거 아니다. 산책 나가자 그러면 꼬리 흔드는 개들 같다고 생각한 거다.

   

   하여튼 두 사람을 달래는 데 성공한 나는 메이스와 방패를 쥐고 던전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섰다.

   

   “영애? 왜 준비를 하시는 겁니까?”

   “뭐야. 변태사도. 나랑 같이 들어가기 싫어? 좋다고 난리치더니 이젠 방해된다는 거야?”

   “아뇨.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러한 종류의 던전은 한 사람밖에 들어갈 수 없지 않습니까.”

   “그건 허접한 너희들의 이야기고. 난 예외야.”

   “…예?”

   

   변태사도의 의문 앞에 이를 어찌 설명해야 고민하던 나는 말로 설명해봐야 끝이 없을 거란 생각에 일단 변태사도를 걷어차 던전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서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다른 이들에게 전한 후 그 뒤를 따랐다.

   

   “…어떻게.”

   

   먼저 안에 들어와있던 변태사도는 당혹스러운 듯 내 얼굴을 살폈다.

   

   “내가 환상을 보고 있는 건가?”

   “나랑 환상도 구분 못 하는 거야?♡ 이런 눈썰미를 가진 허접이 사도라니♡ 이딴 변태가 모시는 까마귀 수준도 알만 하네♡”

   “끓어오르는 이 감정. 진짜 영애시군요. 놀랍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변태사도의 감탄을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넘겨버린 나는 던전의 풍경을 눈에 새겼다.

   

   우리가 발을 디딘 장소는 방금 전에 보았던 숲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빛 하나 없이 어두운 장소라는 것. 그리고 숲 전체에 스산한 연기가 퍼져 있다는 것 정도일까.

   

    연기 안에 담겨 있는 악신의 기운을 느낀 나는 방패를 기점으로 해서 주변으로 신성을 퍼트렸다.

   

   그러자 연기가 걷히며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때보다도 더 성장하셨군요.”

   “당연하지. 난 천재니까.”

   

   던전 안의 풍경은 내가 아는 것과 동일해.

   

   숲에 퍼진 연기 속 권능도 마찬가지야.

   

   인지를 교란시키는 이 연기는 분명 공허의 던전이 지닌 특성 중 하나지.

   

   흐음. 이 안도 내가 모니터 너머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건가.

   

   그렇다면 이 끝에 도사리고 있을 것도 마찬가지겠네.

   

   곰을 구하는 일은 쉽겠어.

   

   “변태 사도.”

   “예. 말씀하십시오.”

   “난 이 기분 나쁜 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거든? 뒤처지기만 해 봐. 잘근잘근 밟아줄 거야.”

   “으음. 그렇게 말씀하시면 뒤처지고 싶어집니다만.”

   “…”

   “하하. 농담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변태 사도의 웃음에서 시선을 떼어내고서 내달릴 준비를 한다.

   

   눈을 감고. 숨을 가다듬고. 몸 전체로 신성을 퍼트리고. 근육을 풀고. 머릿 속으로 동선을 설계한 다음.

   

   다시금 앞을 바라본다.

   

   “따라 와.”

   

   한 걸음을 내딛은 순간 주변의 풍경이 바뀐다.

   

   초인의 영역에 이른 육신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속도.

   

   그를 가로 막듯 나무 뿌리들이 치솟아 오르지만 그들은 나를 붙잡지 못한다.

   

   어디에서 무엇이 일어날지 모두 알고 있는데 무얼 걱정하겠는가.

   

   “영애의 공략은 그야말로 예지의 경지군요.”

   

   그런 나의 뒤를 따라오는 변태사도는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여유로워보였다.

   

   예술 교단의 사도이며 오랜 기간 이 세상 위를 돌아다녔던 강자인 그에게 내 속도는 충분히 따라올 만한 무언가였던 것이다.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머네.

   

   여유로워 보이는 변태 사도를 보며 피식 웃은 나는 한층 더 속도를 올렸다.

   

   우리를 가로 막으려는 식물들을 돌파하고, 주변에서 솟아 오르는 동물들의 공격을 회피하고,

   

   나아가고 또 다시 나아간 끝에 또 다시 숲의 중심부 앞에 도착한 나는 곰을 상대할 준비를 했다.

   

   숲의 주인인 곰은 분명 강하다.

   

   주먹질만으로 사람을 찢어버릴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지.

   

   그렇지만 강자의 반열에 들어섰냐고 물어보면 난 아니라고 답을 하겠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공격이라는 건 투기장에서 마주했던 라샤의 공격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런 규격 외의 무력이 아니라면 지금의 나는 무엇이라도 막을 자신이 있다.

   

   누군가를 막을 무력은 없을 지언정 모든 걸 막아내는 방패는 될 수 있는 것이 나니까.

   

   그렇게 어그로를 끌어주면 변태 사도가 알아서 제압을 해주겠.

   

   <…어라?>

   

   곰과의 전투를 생각하며 발을 움직이던 중 할아버지가 의문 어린 목소리를 냈다.

   

   ‘왜 그러세요?’

   <기이하구나. 저 안 쪽에서 주신의 신성이 느껴져.>

   ‘…네?’

   

   이게… 무슨 소리지?

   

   주신의 신성이 던전 안에서 왜 느껴져?

   

   여기는 악신의 던전이니까 휴식 구역 같은 것도 없잖아.

   

   <이는 꼭. 그래. 네 친우의 것과 닮았구나.>

   ‘페이비요? 페이비가 왜 여기 있어요? 걔는 지금 다른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데.’

   <나도 안다. 그렇지만 저기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그녀의 것이다.>

   

   할아버지의 감지가 어긋날 리는 없다.

   영웅 중 하나인 그의 감각은 그 누구도 따라 잡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하니까.

   

   성기사인 그가 공허의 기운에 의해 교란 당했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왜 저 멀리에서 페이비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거지?

   

   ‘…일단 방향 알려주세요.’

   <알겠다. 지금 있는 곳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가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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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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