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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7

       뜻밖의 단어가 나왔다.

         

       ‘희생이라.’

         

       지난밤 그녀가 다녀간 뒤.

         

       백우진은 나름대로 전대 궁주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어가며 정보를 모을 필요도 없었다.

         

       금여울.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북해빙궁 인근의 마을 사람들과 거래를 터온 그녀의 정보 중에는 전대 궁주에 대한 것들도 제법 많았기에.

         

       그녀에게서 얻은 정보는 딱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성군(聖君).’

         

       어진 임금.

         

       북해빙궁의 권역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아우를 만큼 지혜로웠고.

         

       그들 모두가 평온 속에 잠들 수 있을 만큼 강인했다.

         

       그랬던 그녀는 대체 무엇으로부터 제 목숨을 희생한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만년빙정과 관련되어 있습니까?”

         

       그녀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오염된 만년빙정을 정화하는 데에는 순수한 음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대 궁주는 무림 전역을 뒤져도 적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하다고 일컬어지는 인물.

         

       그녀는 제 몸까지 버려가며 만년빙정을 정화하려다 끝내 목숨을 잃고 만 것 아닐까.

         

       그의 물음에 용설란의 고개가 미약하게 끄덕여진다.

         

       “…대협 말씀대로예요. 어머니께선 오염된 만년빙정을 정화하기 위해 기운을 쏟아내셨죠.”

         

       순수한 음기만이 오염된 만년빙정을 정화할 수단임을 알게 된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제 모든 기운을 만년빙정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부족했다.

         

       만년빙정을 좀먹고 있던 검은 부분이 많이 희석되어 사라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염된 부분이 진이 빠져버린 전대 궁주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한 줌의 진기조차 남지 않은 그녀를 향해 어마어마한 냉기가 불어닥친 것.

         

       제아무리 빙공을 극한까지 익힌 고수라고 해도 내공 없이 만년빙정의 한기를 이겨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기를 쏟아낸 탓에 허약해진 어머니께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어요.”

         

       온몸이 얼어붙은 이가 맞이할 결말은 싸늘한 죽음뿐.

         

       “전대 궁주셨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저는 빙궁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준비가 덜 된 상태로 궁주 자리를 물려받게 되었고…, 그 뒤는 보시다시피.”

         

       그녀는 처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와 달리 전…, 만년빙정의 오염을 씻어낼 만큼 고강하지 않아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제 목숨을 내걸 만큼 숭고하지도 못하고요. 그래서 마을 처녀들의 음기를 부탁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고, 혹한의 추위를 뚫고 당도한 손님께 무리한 부탁까지 드리고 있답니다.”

         

       마주하고 있던 눈을 슬며시 아래로 내리는 그녀.

         

       부끄러움을 느끼는 듯했다.

         

       전대 궁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제 초라한 행보에.

         

       부족한 경지, 마음의 무게, 하물며 수완까지.

         

       겉으로 드러난 것들만 놓고 따지면 그녀가 느끼는 것처럼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나.

         

       “어려운 상황에서 이어받아 굉장히 잘 꾸려나가고 있다는 뜻이군요?”

       “……?”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을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어려워진 살림을 훌륭히 이끌고 있다고 자랑하려던 것 아니었습니까?”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여전히 두 사람의 속내는 드러나지 않았으니 당장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기 힘든 상황.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말들을 그냥 듣고 넘겨서는 안 된다.

         

       변변찮은 위로의 말이라도 던져야만 한다.

         

       그래야 그녀가 위로를 들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볼 수 있을 테니.

         

       백우진의 말을 들은 그녀는 웃었다.

         

       “호호…! 대협께선 같은 말도 참 예쁘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말이라는 것이 그렇다.

         

       누군가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고, 또 누군가는 천 냥의 빚을 지게 되는 것.

         

       백우진은 말로 상대를 조지는 데에 매우 능숙하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기분 좋게 받아들일지도 안다.

         

       어쩌면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를 죽이고 싶어 하는 남정네들이 넘쳐나고, 사랑해 마지않는 여인 또한 많은 이유는.

         

       “…맞아요. 저는 제게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어요.”

         

       그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다시금 고개를 들어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우진과 눈을 마주하며 말을 잇는다.

         

       “제게 주어진 것 중에…, 백 대협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제법 간절해 보이는 그녀의 물음에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돕겠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대협.”

       “별말씀을.”

         

       웃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백우진.

         

       그녀는 모를 것이다.

         

       제가 보지 못하는 그의 눈이 더없이 싸늘하게 식어 있음을.

         

         

       * * *

         

         

       눈 덮인 설원을 묵묵히 걸어가기를 며칠.

         

       광활하게 펼쳐진 평야가 끝이 나고, 저 멀리 이파리 한 장 달리지 않은 앙상한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나타난다.

         

       다시 반나절 동안 나무와 나무 사이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지나가면.

         

       “저기예요.”

         

       앞서 걸어가던 그녀가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곳에 제법 커다란 동굴이 보인다.

         

       동굴에 들어서기 전, 함께 온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가 말하길, 동굴 내부는 이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춥다고 했다.

         

       그래서 함께 떠나온 무인 중 대다수는 이곳에 남아야 한다고.

         

       야영지는 동굴로 따라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쉼터 역할이었다.

         

       그들이 야영지를 조성하는 사이, 백우진은 먹물로 칠한 듯 어두컴컴한 동굴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춥긴 하겠어.”

         

       느껴진다.

         

       저곳에서 연신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한기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이 정도로 느껴진다면 과연 저 내부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겪지 않아도 느껴지는 추위에 가볍게 몸서리치는 사이.

         

       “대협.”

         

       조용한 걸음으로 그의 등 뒤로 다가선 연희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무슨 일이오.”

         

       그가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동굴 안쪽에 대협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답이 있습니다.”

         

       바라던 답이라.

         

       백우진이 원하는 답은 하나였다.

         

       용설란과 연희.

         

       둘 중 누가 진짜고, 누가 진짜인 척 연기하는 가짜인가.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오?”

       “정확히는 얼어붙은 궁주님의 시신을 유심히 살펴봐 주십시오.”

         

       얼어붙은 궁주의 시신.

         

       거기에 자신이 원하는 정답도 함께 잠들어 있는 것일까.

         

       “알겠소.”

         

       짤막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야영지 조성이 완료되었다.

         

       그 말인즉, 동굴 안으로 들어설 시간이 되었다는 뜻.

         

       동굴 입구 쪽으로 향하자 그곳에 용설란을 비롯한 소수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연희의 얼굴도 보인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용설란이 가벼이 미소 띤 얼굴로 물어왔다.

         

       “아, 대협. 지금 출발할까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그녀를 필두로 떠나는 인원들이 하나둘씩 동굴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찾아오는 극적인 변화.

         

       후우웅-!

         

       가볍게 부는 한 줄기 바람조차 살을 엘 것처럼 싸늘하다.

         

       더 놀라운 건 현경에 다다른 그의 신체조차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

         

       오랜만에 느끼는 서늘한 추위에 인상을 찡그리는 백우진.

         

       ‘장난 아니네.’

         

       추위에 감각이 조금씩 둔해지는 것을 느끼고 곧장 내공을 끌어올리자, 몸 곳곳을 찌르던 추위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

         

       평소보다 내공 소모가 빨라지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감각이 둔해지는 것보단 나으니.

         

       온통 얼어붙은 길을 반 시진 정도 걸어 들어가자, 저 멀리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온다.

         

       “저곳이 출구예요.”

         

       마침내 당도한 동굴의 끝.

         

       용설란의 뒤를 따라 동굴을 나선 끝에 보이는 것은.

         

       “허….”

         

       보이는 모든 것이 새하얀 순백의 세계.

         

       일견 아름다워 보이는 세상이었으나, 세계 곳곳에 새하얀 미려함을 방해하는 것들이 놓여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몰아닥치는 거센 한기에 선 채로 온몸이 얼어버린 이들의 시체.

         

       얼음만 녹으면 당장에라도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생한 상태 그대로 보존된 시체들을 가리키며 백우진이 물었다.

         

       “저들은 어쩌다 저리 되었습니까?”

         

       그러자 용설란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분들은…, 전대 궁주님들이세요.”

       “전대 궁주들이라면….”

         

       며칠 전 그녀가 해주었던 말들이 떠오른다.

         

       역대 궁주 중 일부는 만년빙정을 취하려다 도리어 화를 입고 죽음에 이르렀다고 했던가.

         

       “섣불리 만년빙정을 취하려다 도리어 화를 입으신 분들이죠.”

       “으음….”

         

       곳곳에 놓인 얼어붙은 시체들은 전부 같은 방향을 바라본 채로 서 있다.

         

       백우진은 용설란과 함께 시체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가득 들어찬 한기가 더욱 거세진다.

         

       그럴 때마다 내공 소모량 또한 부담을 한 움큼씩 더해가는 도중.

         

       마침내 백우진은 보게 되었다.

         

       순백의 세계 속에서 아름다운 빛과 매서운 한기를 연신 뿜어대는 새하얀 구슬을.

         

       “저것이 만년빙정….”

         

       아니, 아니다.

         

       보자마자 알겠다.

         

       저것은 만년빙정이 아니라, 수행신주야말로 옳은 이름이라는 것을.

         

       주변에 쏟아지는 한기는 그만큼 거대하고, 웅장했다.

         

       신의 힘이 아니고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그리고 새하얀 구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마찬가지로 얼어붙은 시체 한 구가 서 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불의의 습격을 당해 뒤틀린 몸까지.

         

       얼어붙기 직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품은 채 얼어붙어 있는 백발의 여인.

         

       용설란이 힘겹게 입술을 뗐다.

         

       “저분이…, 전대 궁주님이자, 제 어머니세요.”

         

       꽝꽝 얼어 있는 얼음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용설란과 닮아 있었다.

         

       용설란이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딱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정도.

         

       ‘얼어붙은 전대 궁주의 시신에 답이 숨어 있다.’

         

       연희의 말을 떠올린 백우진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어붙은 그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다른 시체들에게선 없는, 오직 그녀의 시체에서만 보이는 특이점을.

         

       더욱 가까이 확인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백우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더욱 거센 한기가 휘몰아친다.

         

       마치 너는 이곳으로 오면 안 된다고, 연신 경고하는 듯한 느낌.

         

       하나 아랑곳하지 않고 마침내 그녀의 시신 앞에 선 그는 마침내 확신했다.

         

       ‘만년빙정 때문이 아니야.’

         

       그녀의 죽음은 만년빙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아니, 그보다 더 앞선 한 가지 전제가 잘못되었다.

         

       전대 궁주이자, 용설란의 어머니인 용선아.

         

       “…살아 있어.”

         

       그녀는 아직 살아 있다.

         

       그것도 꽁꽁 얼어붙은 채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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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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