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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7

    그렇게 루크는 예르나와 함께 ‘여탕’이라 쓰여진 쪽으로 향했다. 

    사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성별에 따라서 온천의 입장을 달리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목욕이란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한 행위.

    그렇기에 당연히 옷을 입고서는 할 수가 없다.

    옷을 입은 채로는 피부를 씻을 수 없으니 말이다.

    용변을 보기 위해 존재하는 화장실도 그러했고, 옷을 갈아입기 위한 탈의실도 그러했는데, 완전히 나체가 되어서 몸을 씻는 온천에서 그러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겠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현대의 온천 문화에 대해 완전히 문외한인 루크조차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이치였다.

    물론, 이 온천에 가족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루크가 당첨되어 가져온 이용권이 무려 Vip이용권이었던 덕분에, 객실에 언제든 자유롭게 이용가능한 노천탕이 포함되어 있었기도 했고.

    하지만 다이튼과 함께 목욕을 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루크로서는 분명히 꺼려지는 일이었다.

    아무리 가족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기간이 고작 1년도 되지 않아서 실제로 오랜기간 동고동락한 가족이라는 인식은 루크나 다이튼이나 옅은 상태였고, 평소 다이튼과 친하게 지내며 스스럼없이 대한다고 해도, 자신의 나체를 드러내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었으니까.

    아마 그걸 알기에 예르나도 가족탕에 대한 언급을 굳이 하지 않은 것이겠지.

    그리고 그 문제를 뒤늦게 깨달은 루크 역시 예르나의 그 말에는 어느정도 의견을 같이했다.

    이 몸을 다른 남자의 눈에 닿게 하기 싫다는 느낌도 아예 없다고 할 수도 없었으니.

    자신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절대 같을 수가 없는 법이다.

    자신이 있을 때에는 탕에 들어오지 말라고 해 둘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다이튼에게 일방적으로 손해를 요구하는 것이라 바르지 못한 주장이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신이 몸을 옮기는 게 이치에 맞겠지.

    가족탕은 나중에 시간이 되면 천천히 즐기기로 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루크는 목제 바가지의 안쪽을 살폈다.

    “흐음.”

    빈틈 없이 제작된 매끄러운 바가지.

    아마도, 목욕 중 따듯하게 덥혀진 물을 퍼내어 몸에 뿌리는 용도로 쓰일 것이다.

    그 안쪽엔 머리를 감을 수 있는 샴푸와 린스등의 목욕용품을 포함하여, 머리가 물에 닿지 않도록 머리를 틀어 올릴 수 있는 헤어밴드와 몸을 닦을 수건, 갈아입을 옷까지 모두 알맞게 준비되어 있었다.

    낭비가 없다.

    그 중에서 준비된 의상은 방금전에 자신이 목욕가운이 아니냐고 이야기했던 바로 그 의상이다.

    루크는 그 의상을 집어 올리며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목욕가운 같은데…….’

     

    입는 방법이나, 전체적인 모양새나 말이다.

    그런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예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 옷 다 갈아입었니? 다 입었으면 디아나하고 파이리스 옷 갈아입는 것 좀 도와줄래?”

    “아, 네! 잠시만요!”

    루크는 일단은 의상을 갈아입어 보기로 했다.

    —-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루크는 옷을 갈아입은 뒤 예르나와 함께 디아나와 파이리스의 옷까지 갈아입히고 머리를 올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옷차림에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 최종적으로 검토해보았다.

    “음.”

    막상 입어보니 생각보다 이상하단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편하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설계된 목욕가운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 때문인지 마찬가지로 굉장히 편했다.

    차이점이라면 조금 더 단이 길고 몸을 감싸안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안쪽의 모습이 타인에게 보일 걱정으로부터 조금은 더 자유로워서 마음이 놓인다는 점 정도일까?

    거기에서 특별히 수인을 위한 꼬리구멍까지 존재하여서 꼬리조차도 편안한 것이, 오히려 집에 있는 목욕가운보다도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의상을 입어본 루크의 인상은 전체적으로 만족이었다.

    나중에 집에서 입을 목적으로 비슷한 걸 하나 구매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 때, 예르나가 물었다.

    “어때, 옷은 괜찮아?”

    “네, 되게 편하네요. 가능하면 집에 하나 가져다 두고 싶을 정도로요.”

    처음에 변태 같은 옷이라고 해서 싫어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막상 입어보니까 루크는 그 옷이 상당히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집에 가져가서 입고 싶을 정도라니.

    그에 예르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돌아갈 때 다같이 하나 사자. 아까 설명에 그런 걸 살 수 있는 상점도 있다고 들었거든.”

    과연, 입어본 옷이 맘에 들면 바로 살 수도 있게 해 두었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번거롭게 찾아볼 필요도 없으니 루크로서도 반가운 일이다.

    “네, 좋아요.”

    아무래도 장사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분명하군.

    그리고 그 순간, 파이리스는 자신의 옷차림과 머리모양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으, 머리가 이상해! 나 머리에 동그란 게 생겼어!”

    파이가 말하는 머리 위의 동그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머리카락 뭉치에 불과했다.

    단지 욕탕에 들어가기 위해 머리를 말아 올린 상태였을 뿐.

    아마 한번도 머리를 묶어본 경험이 없는 파이리스에겐 낯선 감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은 답답할 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약간의 답답함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정령, 파이리스에겐 굉장히 이상한 감각이었을 것이다.

    “그만 만져, 파이. 그거 언니가 힘들게 해 준 거잖아. 자꾸 그렇게 만지작대면 풀리고 말 거야.”

    그래, 그건 루크가 굉장히 힘들게 말아 올려 준 머리모양이었다.

    사실 간단한 거였지만, 파이리스가 그 새를 못 참고 자꾸만 머리를 움직여 대서 말이다.

    어쨌든 디아나가 경고했으나, 파이리스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머리를 만지작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머리카락이 풀려 흘러내리는 결과를 낳았다.

    “파이리스! 또 머리를 풀었나! 네가 자꾸 그러면 온천을 못 가잖느냐!”

    그리고 그 파이리스가 낳은 그 결과는, 루크가 다시 파이리스를 붙잡아 머리를 묶는 결과를 낳았고.

    인과의 굴레다.

    파이리스는 또 머리를 묶기 싫다며 발버둥을 쳤다.

    “싫어ㅡ, 나 그냥 안 묶을래!”

    “안돼! 뜨거운 물에 머리를 오래 담가두면 결이 상하니까 내리지 말라고 내 몇번을 말하나!”

    하지만 루크는 그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파이리스의 머리를 묶었다.

    싫어해도 어쩔 수 없다.

    뜨거운 물에 머리가 오랫동안 담겨 있으면, 머릿결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

    안 그래도 파이리스의 머릿결은 루크와 닮아서 곱슬기가 있는 탓에, 관리하지 않으면 제멋대로 완전히 엉켜서 흉한 덩어리가 되거나, 그저 윤기라곤 전혀 없는 개털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런 꼴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루크 자신이 못 보는 성격이다.

    루크는 본래 깔끔하고 정돈된 것을 선호하고, 집안에 어질러진 것이 있으면 반드시 치워놓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것은 파이리스에게도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가족이라면, 조금 넓은 분류로 넣었을 때 ‘집 안’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그 왜, 사람의 행색을 보면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은 어떨지, 방이 어떨지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는 말도 있고.

    게다가 이왕 자신과 닮은 꼴이면, 파이리스도 자신을 가꾸는 법에 익숙해져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루크는 그게 파이리스의 명예에,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명예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파이리스에겐 그런 것 보다는 당장의 불편함이 중요했을 뿐이다.

    “으에엑-.”

    “온천에 가고 싶으면 조용히 하거라.”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예르나는 그저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언제봐도, 정말 잘 어울리는 자매야.

    참 행복해 보이는 것 같다.

    —-

    그렇게 루크가 파이리스의 칭얼거림으로인해 온천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을 무렵, 다이튼은 이미 탕에 들어와 있었다.

    “오.”

    다이튼은 감탄했다.

    노천탕이라서 돌길과 풀, 목제 정자등으로 깔끔하게 조성된 경관에 소나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도 굉장히 멋지고, 겨울이라 추울 수도 있을 법 하건만, 물 온도가 그 균형을 정말 환상적으로 이루어 주어서 겨울이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여탕도 이런 느낌이려나?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으어……. 좋다.”

    다이튼은 저절로 감탄성을 내었다.

    그 정도로 굉장히 좋은 장소였으니까.

    다만 한가지, 이곳의 가장 큰 문제점을 이야기하자면…….

    이 공간에서 등을 밀어줄 사람도 없이, 자신만이 홀로 있다는 점일까.

    “…….”

    다이튼은 시야 한켠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아빠와 아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빠, 어때? 등 시원하지?”

    “어, 그래 좋구나.”

    그 모습이 정말 너무나도 부럽다.

    나도 등에 손 안 닿는데.

    헌데 그걸 누구한테 부탁을 하려고 해도, 아무도 자신의 주변으로 오질 않아서 말을 붙이기도 어렵다.

    그러니 마치 온 세상이 자신을 따돌리기라도 하는 듯 한 느낌이 든다.

    “내가 진짜 반드시 아들을 낳고 만다.”

    다이튼의 목표는 이제부터, 이런 때에 자신의 등을 밀어줄 아들을 만드는 것이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왁자지껄한 예르나파티와, 초라한 다이튼.
    정말 엄청난 비교가 되네요…….

    근데 진짜 욕탕에 저런 사람 나오면 누구든 눈 깔고 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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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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