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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8

        

       마법사들이 모래를 조종해 불을 꺼뜨린 이후에도 건물은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섬광과 불꽃은 사라졌지만 열기는 어느 정도 남아 후끈했으며, 모래로 뒤덮인 바닥을 잘못 밟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폭탄이 터져나간다.

         

       “돌겠군….”

         

       지뢰인지 폭탄인지는 모른다.

       그들이 전쟁터에서 구르고 구른 베테랑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있다.

         

       저 장소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

         

       저 텅 비어버린 건물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괴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는 괴물의 아가리가 닫히고, 날카로운 이빨과 뜨거움이 몸을 녹여버리는 불꽃이 존재하는 괴물의 내장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저런 장소에서 무사할 수 있겠냐고?

         

       모른다.

         

       입구조차도 조금만 걸으면 폭탄이 펑펑 터지는데, 저 깊은 안쪽에 무엇이 존재할 줄 알겠는가.

         

       지금까지야 역장과 장비로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안쪽도 그럴까?

       저 안쪽에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사할 수 있을까?

         

       “로봇 투입하자.”

         

       결국 그들은 안에 직접 진입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성이 너무 높았으니까.

       육체적으로도 위험했고, 정신적으로도 위험했다.

         

       저 빌어먹을 곳에 들어갔다 나온다면 PTSD에 걸려서 일을 그만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로봇.

         

       자신들 대신에 희생해줄, 기계를 안에 들여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는 얼마 전 일본 정부에서 ‘지뢰 제거용 로봇’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뉴스에서 보았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일본은 국민 전체가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그런 고루하고 전통을 지키는 인상과는 다르게 로봇 기술은 세계에서도 최상위권에 올라가 있었다. 몇몇 기술의 경우에는 아예 세계 정상의 자리에 있을 정도.

         

       당연하게도 이런 로봇 기술은 여러 곳에서 활용되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지뢰 제거용 로봇이었다.

         

       일본에서 만든 지뢰 제거용 로봇은 첨단 마공학과 제련 기술의 결정체라 불릴법한 성능이었다. 제련과 연금 기술로 만들어낸 합금은 어지간한 폭발에는 찌그러지지조차 않는 어마어마한 강도를 자랑했으며, ‘SF영화에서나 볼법한 성능’이라며 언론에서 호들갑 떨었던 합금 성능은 어지간한 열 속에서도 녹거나 망가지지 않고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일본이 자랑하는 로봇 기술로 만들어냈기에 관절이 상하거나 중요 부위가 파손되어 어이없게 망가지는 경우도 거의 없이, 아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전쟁터에서 오래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들기까지 했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조가 매우 복잡하고 들어간 부품이 많아서 수리가 어렵기는 했다.

       단가가 너무 높아서 납품 계약을 맺기도 힘들었고, 양산하기에 코스트가 높고 불량률이 너무 높아서 지금은 극소량밖에 생산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성능이 어마어마하게 뛰어난데 말이다.

         

       “로봇, 그거 뉴스로 보긴 했는데…. 쓸만할까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더 나을 텐데….”

         

       “사람이 더 낫기야 하겠지. 근데 저 안에 또 들어갈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로봇을 기다리는 게 좋겠군요.”

         

       “그래야지….”

         

       “근데 로봇 말입니다. 저희 쪽에 납품된 게 있었습니까?”

         

       “아니?”

         

       “그럼 로봇을 어떻게…?”

         

       “쯧. 너희라면 로봇 성능 검증할 수 있는 기회 날려버릴 것 같냐? 우리가 말 꺼내면 좋다고 달려올 거다.”

         

       물론 미리 사전에 이야기되어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상황이 지뢰 제거용 로봇’의 성능을 증명하기 딱 좋은 기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토대로 위에다가 요청했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으니 로봇 개발한 곳과 연계해서 로봇을 투입하면 안 되겠냐고 말이다.

         

       끼이이익-!

         

       “여기가 현장입니까?!”

         

       그들의 생각대로 로봇을 개발한 곳에서는 지금 이 상황이 돈 주고도 못 사는 엄청난 광고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고, 연구원들과 로봇을 끌고 현장에 왔다.

         

       그냥 평범하게 온 것도 아니고, 전용기까지 써서 정말로 날아왔다.

         

       그리고 연구원들로 끝이 아니었다.

         

       로봇을 만든 회사에서 요청한 것인지 방송국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든 인원들과 TV에서 여러 번 보았던 간판급 아나운서와 리포터들, 거기에 하늘을 메운 방송국 헬기까지.

         

       다시 현장이 어수선해졌다.

         

       이 북적거림은 어쩌면 희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저 로봇이 이 상황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

       안에 설치되어 있는 폭탄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무력화시키며 저 건물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것이라는 신뢰.

         

       그 신뢰와 믿음이 있기에 방송국이 이렇게 벌떼처럼 달려든 것이겠지.

         

       일본의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로봇이 일본에 터진 재난을 해결하는 ‘감동적인 영상’을 찍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이번 테러에 대해서 취재하고 싶은데 정부와 오사카부에서 난리를 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기회가 왔기에 잡아챈 것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그것을 알아야 한다.

         

       이 희망 역시 누군가가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테러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만들기 위한 누군가의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쪽에 시선을 쏠리게 만드는 것.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자잘한 것에 신경을 덜 쓰게 만들고, 돋보기를 들이대지 않게 만드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원했고, 원했기에 행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이루어지고 있으니.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 * *

         

         

         

       한국에서는 인질극이.

       일본에서는 로봇의 지뢰 제거 쇼가.

         

       두 나라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공포와 희망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두 곳에 비해 주목이 덜 되었을 뿐, 만만치 않은 재난을 겪고 있는 장소가 있었다.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가 평등하게 고난을 겪고 있는 장소가 말이다.

         

       “くそ! くそ! くそ-!!!”

         

       “씨발! 막아! 막으라고! 저 새끼 굴러오잖아!”

         

       “역장 밖에 뭐라도 해서 속도를 늦춰야 해!”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섬.

       구름에 모습을 숨긴 달빛이 희미하게 가라앉은 어두컴컴한 섬.

       곳곳에 어둠이 가라앉은 채 동이 틀 때를 간절히 기다리는 바로 그곳.

         

       독도였다.

         

       퉁-!

       퉁-!

       퉁–!!!

         

       어둠이 내려앉은 독도는 끔찍하고 처절했다.

         

       사람들은 베이스캠프에 모인 채 공포에 질려서 덜덜 떨거나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며, 모든 사람은 눈을 부릅뜬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방벽이 있고, 그 방벽 너머에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그것은 말 그대로 ‘무언가’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외형을 가진 것들이었다.

         

       쿵-!

       쿠웅-!

         

       사람 시체를 물에 불린 다음 뭉치면 저런 모습이 나오는 걸까?

       고깃덩어리를 물을 묻힌 찰흙처럼 이리저리 짓뭉개고 주물럭거린 후 붙이면 저런 끔찍한 몰골이 되는 걸까?

         

       그것들의 외형은 보고 있기만 하더라도 토악질이 날 것 같았다.

         

       경단처럼 둥그런 몸체.

       주택을 연상케 만드는 거대한 크기.

       녹았다가 굳기라도 한 것처럼 흘러내린 피부.

       규칙성 없이 박혀있는 수많은 눈코입, 그리고 팔다리.

         

       그것들은 팔다리를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며 베이스캠프에 설치된 역장을 두들기고 있었다.

       몸에 촉수처럼 돋아난 팔다리를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며 역장에 손짓과 발짓했고, 몇몇 영리한 녀석들은 경사진 곳까지 올라간 뒤 굴러서 역장에 부딪히는 식으로 몸통 박치기하기도 했다. 몇몇 특이하게 생긴 녀석들은 몸에 돋아난 팔다리를 이용해 입을 쫙 찢어서 사람도 삼킬 수 있을법한 크기로 만든 뒤 역장을 베어먹으려 시도하기도 했고, 몸을 넝마처럼 만든 뒤 역장에 달라붙기도 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의 장면이요, 현세에 도래한 악몽이라.

         

       꿈에서조차 보기 싫은 모습이었다.

         

       “에너지 잔량은?”

         

       “현재 배터리는 40% 정도 남았습니다!”

         

       “예비 배터리는?!”

         

       “있기는 한데…. 지금 저 녀석들 공격에 핫 플러깅(hot plugging) 기능이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이런 씨발! 그게 왜 고장이 나?! 진짜 고장났어?! 다시 확인해 봐! 그거 고장 나면 역장 유지되는 상태에서 배터리 교체 못 한다고!”

         

       “진짜 고장 났습니다! 안에 회로가 타버렸어요!”

         

       “우와 미치겠네…!”

         

       더 끔찍한 것은 저 악몽들이 물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악귀들을 물리치겠다며 호기롭게 독도에 발을 디딘 이조차도 학을 떼게 만드는, 강력한 물리력을 말이다.

         

       쿵-!

       쿠우우우웅-!

         

       둔중한 소리.

         

       몸에 돋아난 짧고 얇은 팔로 후려치는데도 중장비로 때리는 것처럼 육중한 소리를 낸다.

       게다가 저 악귀들이 몸을 굴러서 역장에 부딪칠 때는 진짜 건물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나기도 한다. 마치 건물 부술 때 사용하는 쇠공으로 후려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끔찍한 위력이었다.

         

       “저딴 게 대체 왜….”

         

       사람의 형체에서 한참은 벗어난 듯한 끔찍한 외형에 말도 안 되는 물리력.

       귀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저 빌어먹을 악귀는 일반적인 악귀와는 다르다고 말이다.

         

       등장한 순간 도시를 파괴하고 나라를 말아먹는다는 대악귀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악귀라고 보기에는 너무 강했다.

         

       지나칠 정도로 말이다.

         

       독하기 짝이 없는 물귀신에서 비롯된 녀석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버팁시다! 일단 날이 밝을 때까지만 버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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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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