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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8

   메시지가 떠오르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안개가 한층 더 짙어진다.

   

   허여멀건했던 연기에 잿빛이 섞이는 것을 본 나는 다급히 신성을 끌어올려 방패 위에 마법을 새겼다.

   

   방패를 기반으로 하여 펼쳐지는 신성의 영역이 주변의 안개를 물리며 안전한 구역을 형성한다.

   

   나의 옆에 있던 변태 사도와 페이비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변태사도는 친구들에게 여신의 축복이 담긴 장신구를 건네어주었고 페이비는 내 신성 위에 자신의 신성을 덧씌우는 걸로 주변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영애님. 이건.”

   “치졸한 쓰레기 악신이 개짓거리를 하려는 모양이야.”

   “…역시 그런가요.”

   

   악신의 추종자들과 싸우는 최전선에 있었으며 얼마 전에는 나와 함께 어둠의 악신에게 대적해보기까지 했던 페이비는 지금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공허의 악신 하나의 권능만 하더라도 충분히 위협적인데 거기에 악신의 주인 아그라까지 끼어든 게 현 상황인데 어찌 위기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죄송해요.”

   

   …응? 죄송해? 뭐가? 페이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갤 갸웃거리던 나는 그녀가 이은 말을 듣고 헛웃음을 흘렸다.

   

   “영애께서 다른 분들을 제게 맡겨주셨는데.”

   

   내 웃음을 질책이라 생각한 듯 페이비는 한층 더 목소리를 낮췄다.

   

   “전 그 믿음에 보답하긴커녕 저분들을 위험에.”

   

   그 모습을 가만 보던 나는 까치발을 들어 페이비의 콧잔등을 꾹 눌렀다.

   

   깜짝 놀란 페이비는 두 손으로 자신의 코를 가리며 뒤로 물러섰다.

   

   “허접 성녀가 바보짓을 할 걸 내가 몰랐다고 생각해?”

   “…아.”

   “신앙심은 다 살로 가버린 건가? 이러니까 음란 성녀가 되지.”

   “으. 음란 성녀라뇨!”

   

   얼굴이 벌개진 페이비를 보며 키득거리던 나는 나의 신성이 머무르는 자리를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믿어. 너 같은 허접이랑 나와는 차원이 다르니까.”

   

   눈을 끔뻑이던 페이비는 그제서야 안심을 한 듯 슬며시 웃음을 지어보였다.

   

   “…네. 믿을게요.”

   

   그녀가 안심한 것을 확인한 나는 친구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악신에 대한 것은 몰라도 위험하다는 것만큼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이야기를 해 줄 생각이었다.

   

   허나 그 곳에는 나보다 먼저 변태사도가 가 있었다.

   

   나를 상대할 때를 제외한다면 여신의 사도임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믿음직스러운 그는 친구들에게 아무 일도 없을 것이란 확신을 심어주고 있었다.

   

   그를 보고 안도한 나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 안개 너머의 풍경을 살피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어느새 검게 물들어버린 안개는 저 너머를 바라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무의식중에 혀를 찰 뻔 했던 나는 그를 억지로 억눌렀다.

   

   내가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내가 무너져 내리면 친구들에게도 불안과 걱정이 전해질 터. 어떤 위협이 닥칠지 모르는 지금 이 상황에서 난 굳건한 존재로 남아야 한다.

   

   ‘…할아버지.’

   

   유일하게 약한 티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불렀더니 할아버지가 장난스런 목소리로 답을 했다.

   

   <왜 그러느냐? 언제는 아그라가 제발 좀 와주면 좋겠다 그러더니.>

   ‘그건 다른 던전의 일이고요! 여긴 아니라고요!’

   

   내가 최근 아그라의 개입을 두려워하지 않은 까닭은 그 녀석이 만들어낼 변수가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그라가 어떤 던전에서 무얼 할 수 있는지 완벽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난 기꺼이 아그라의 개입을 환영했다.

   

   그렇지만 이 곳은 아니다.

   

   이 곳에 생겨난 변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변수다.

   

   다른 악신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곳에 아그라가 개입하는 경우는 나조차도 처음이란 말이다.

   

   <그것도 네가 바란 것이지 않으냐?>

   ‘그…건 그렇지만! 지금 전 혼자가 아니잖아요! 그건 혼자일 때의 이야기에요!’

   

   그래. 내가 새로운 무언가가 있길 바란 건 사실이다.

   

   숲의 풍경이 너무도 지루해서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소리친 것도 맞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 위험을 감당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친구들이 옆에 있을 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잘못으로 내가 다치고 힘들어지는 건 상관없어! 그건 얼마든 감수할 수 있다고!

   

   그렇지만 내가 잘못해서 친구들이 무언가 잘못되게 된다면 난!

   

   <…루시.>

   

   갑작스레 진중해진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의 동요를 짓누른다.

   

   <좀 진정을 하거라. 네 친구들보다 네가 더 당황을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거라. 너는 이런 곳에서 곤욕을 치를 만큼. 음. 허접이더냐.>

   “푸핫!”

   

   고풍스러운 목소리로 흘러나온 허접이란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만 나는 다른 이들의 의아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허. 빨리 대답하거라. 루시. 넌.>

   ‘알겠어요. 알겠다고요. 그러니까 그 멋진 중년 목소리로 허접이라 그러지 마요. 이 상황에 폭소하면 진짜 미친 년 같잖아요.’

   

   그래. 할아버지의 말이 맞아. 내가 소울 아카데미에 들인 시간이 얼마인데 이런 변수가 생겼다고 위험해 질 리가 없잖아.

   

   거기에 지금 나와 함께하는 멤버도 내가 게임을 할 때보다 훨씬 더 좋잖아.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가 잘못될 걸 걱정한다?

   

   이건 소울 아카데미의 썩은물인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야!

   

   긴 한숨을 내쉬는 걸로 복잡한 생각을 떨친 나는 생각을 이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을 했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말 밖에 못하는 노친네이니 이런 거라도 해야지.>

   ‘그것도 그렇긴 해요. 이런 것도 안 하면 할아버지는 그냥 시끄러운 무기일 뿐이니까.’

   <루시? 시끄러운 무기라는 표현은 굉장이 무례한 듯 하다만?>

   ‘하여튼.’

   <그런 식으로 넘어가려.>

   ‘하여튼!’

   

   할아버지의 추궁을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멈춘 나는 메이스를 다잡으며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는 이런 거 본 적 있어요?’

   <있지. 우리 때는 모든 악신이 제 힘을 갖추었을 시절이니까.>

   

   지금처럼 악신들이 모두 봉인되어 제 힘을 내지 못할 때가 아니라 모든 악신이 대지에서 날뛸 때 최전선에서 싸워왔던 할아버지는 그 때가 떠오르는 듯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조언 좀 해주시겠어요?’

   <다른 악신의 권능이 도사리는 곳에 아그라가 개입한다는 것은 그 권능이 강화된다는 이야기다. 아예 다른 변수가 생겨나진 않아.>

   ‘공허의 악신이 지닌 권능에 한정된다는 소리네요?’

   <그래. 적어도 내가 겪어봤을 때는 그랬다.>

   

   공허의 악신이 펼칠 수 있는 권능에 한정된다면 이야기는 어렵지 않다.

   

   공허의 악신이 완전히 부활했을 때를 기준으로 만든 던전을 수도 없이 공략해 본 나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두 알고 있고 그에 대해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도 기억하고 있다.

   

   좋아. 상황을 정리하고 나니 마냥 나쁘게 느껴지진 않네.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명확하고 말야.

   

   몸 전체에 신성을 끌어 올린 나는 두 눈으로 검은 색의 안개를 관조했다.

   

   그 너머가 보이지는 않지만 상관 없다.

   

   내가 보려는 것은 세상의 풍경이 아니라 안개 사이에 보이는 빈틈이니까.

   

   미적 감각은 지금 이 상황에는 그리 의미 있지 않아.

   

   지금 내가 자리한 모든 곳이 아름답지 못하다 외치는 이 감각은 내가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냐.

   

   그렇지만 약점 파악은 아니다. 상대가 제일 곤란해 할 만한 곳을 보여주는 이 스킬은 지금도 이 안개의 주인이 껄끄러워 하는 곳을 알려주었다.

   

   “허접들.”

   

   목소리에 신성을 담아 외치자 내게로 친구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난 그들 모두의 눈동자를 마주하고서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뒤처지면 버리고 갈 거니까 알아서 따라와.”

   

   그러자 친구들이 각자의 무기를 다잡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변태 사도는 내 곁으로 다가와 자신이 보기에 이상한 곳을 알려주었다.

   

   분명 변태 사도도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지?

   

   이 녀석은 나보다 그걸 사용하는 데에 능숙할 테니 그걸 통해 지적을 해 준 걸 거야.

   

   약점 파악이 지적한 것과 변태 사도가 말해준 곳이 비슷한 걸 보면 분명해.

   

   나중에 약점 파악조차 먹히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이 녀석에게 도움을 청해봐야겠어.

   

   “가자.”

   

   안개가 머무는 곳으로 발을 움직이자 내 신성을 피해 안개가 걷힌다.

   

   그에 따라 드러난 것은 어두컴컴한 숲의 정경이었다.

   

   달조차도 떠오르지 않은 어둡고 어두운 밤의 숲을 닮은 풍경은 바로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구별하기 어렵게 했다.

   

   대충 보기에도 무언가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을 듯한 숲을 앞에 둔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숲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택했다.

   

   어차피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닌데 무얼 하러 상대의 규칙을 따라줘야 하냐고.

   

   안 그래?

   

   “얼빵아.”

   “왜 그러시나요. 영애?”

   “저 앞까지 모조리 다 날려버려. 할 수 있지?”

   

   인벤토리에서 마력이 담긴 보석을 꺼내 건네주며 묻자 조이가 자신만만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물건이 있다면 얼마든 할 수 있죠.”

   

   보석을 받아든 조이는 자신의 주변에 몇 개의 마법진을 띄웠다.

   

   척 보기에도 복잡해보이는 그것들은 나 따위의 지식으로는 감히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그 마법진안에 담긴 힘이 무척이나 강대하다는 것.

   

   자신이 띄워 준 마법진을 결합한 조이는 자신의 키의 세 배는 될 법한 마법진을 앞에 띄우고는 그 가운데에 보석을 넣었다.

   

   그러자 보석 안에 있던 마력이 마법진 안으로 빨려들어가며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여파에 주의하세요. 여러분들.”

   

   조이의 마법을 한 마디로 묘사하자면 포격이었다.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정면에 존재하는 모든 걸 분쇄할 포격말이다.

   

   그 안에 담긴 힘을 확인한 나는 저 포격이 숲에 쏘아진다면 숲에 커다란 구멍을 낼 것을 확신함과 동시에 조이의 성장에 감탄했다.

   

   허나 내 확신도.

   

   나의 감탄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우리의 주변을 휘감던 안개가 하나로 뭉쳐 조이의 포격을 막아낸 것이다.

   

   위력이 줄어든 조이의 포격은 숲을 관통하지 못한 채 입구 부분만을 파괴한 채 사라져 버렸다.

   

   “…에?”

   

   얼빵한 조이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려버린 나는 뭉쳐있던 검은 안개가 흩어지는 걸 보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흐으응. 룰을 준수하라 그거야?

   

   뭐. 알겠어.

   

   아그라 네가 바라는 대로 해줄게. 근데 그런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을 거야.

   

   넌 나한테 셀 수 없이 패배한 허~접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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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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