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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8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다음 날 아침까지 ‘대체 뭘 하고 놀아야 하나’로 고민만 했다.

        

       모두가 잠든 뒤에도 한참 동안 깨어있다가 겨우겨우 잠들었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이상 바라는 것이 거의 없다’였다.

        

       그냥 다 같이 재미있게 놀았으니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기분이었다.

        

       “일단은 나가죠.”

        

       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 기대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그럼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나가서 어디든지 가면서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 나의 아이디어였다.

        

       “우선, 자전거라도 탈까요?”

        

       “어? 그래도 돼?”

        

       나의 말에 클레어가 눈을 빛냈다.

        

       “대신, 오늘은 천천히 타는 겁니다. 운동한다기보다는 산책한다는 느낌으로.”

        

       “알았어!”

        

       우리는 여의도 공원에 가서, 다 같이 자전거를 타며 즐겼다.

        

       처음에는 여의도 공원에서만 놀까 했는데, 어차피 아침 일찍 나오기도 했고, 체력도 그럭저럭 남아돌았기에 한강으로 가 다른 자전거를 빌려 탔다.

        

       한 명씩 타는 것이 아니라 2인용 자전거도 빌려보고, 먹고 싶은 것도 이것저것 사 먹었다.

        

       “다음에는, 박물관이라도 갈까요?”

        

       “그거 좋네.”

        

       오전에 두 시간 정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논 다음 내가 한 말에, 앨리스가 즐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서울에서 가장 큰 박물관.

        

       하나하나 느긋하게 본다면야 몇 시간씩 걸리겠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우리 중에선 없었다.

        

       심지어 앨리스도 몇 가지 유물에 꽤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그보다는 우리랑 같이 돌아다니는 것이 더 즐거운 모양이었다.

        

       박물관을 나가기 전, 1층에 전시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불상 두 개를 보았다.

        

       “…….”

        

       앨리스는 그 미륵상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앨리스는 한참 동안 서서 그 미륵들을 살펴보았고, 우리는 그 뒤에서 앨리스를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어, 영화라도 볼까요?”

        

       “좋네요.”

        

       하지만 그렇게 대담하는 샤를로트의 눈은 가늘어져 있었다.

        

       나를 탓하려고 그렇게 보는 것 같지는 않고, 슬슬 나의 진의를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결국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아이들이 냈던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따라가는 중이었으니까.

        

       솔직히 영화는 별로 재미없었다.

        

       다른 돈 많이 들인 영화는 지난번 샤를로트가 골랐던 영화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것을 피했던 모양이다.

        

       까놓고 말하자면 1만 5천 원이라는 영화 가격이 조금 아까울 정도였지만—

        

       “팝콘이 맛있었네요.”

        

       영화를 보고 나온 샤를로트는 웃으며 그렇게 말하며, 비어있는 팝콘 통을 보여줬다.

        

       “그래서, 다음은 어떤 일을 하실 거죠? 사실, 슬슬 뭘 할지 머리에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만.”

        

       “…….”

        

       나는 샤를로트의 눈을 피했다.

        

       “사진…… 찍을까요?”

        

       “좋아요!”

        

       나의 질문에 미아가 웃었다.

        

       다른 아이들도 결국,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차렸는지 쓰게 웃었다.

        

       *

        

       그렇다고 사진관에 다시 들른 것은 아니고.

        

       번화가를 걷다 보면 있는 셀프 사진점 있지 않은가. 우리는 거기 들어갔다.

        

       사진 앞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면서, 그야말로 이런저런 사진을 찍었다.

        

       “헤헤.”

        

       인쇄되어 나온 사진을 미아에게 쥐여주었더니, 미아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다른 애들의 얼굴에도 즐거움이 서려 있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음은 내가 맞춰볼게.”

        

       앨리스가 손가락 하나를 들며 조금 뻐기듯 말했다.

        

       “장 보러 가는 거지?”

        

       “…….”

        

       나는 눈을 슬쩍 피했다.

        

       “자, 장은, 대형 마트에서 보도록 하죠.”

        

       내가 나름대로 반항심을 담아 그렇게 말하자, 다른 아이들이 전부 웃었다. 심지어 미아마저.

        

       “좋아, 그럼.”

        

       앨리스가 그렇게 대답하고, 우리는 근처 마트를 향했다.

        

       *

        

       “…….”

        

       “…….”

        

       요리는 나와 샤를로트가 맡게 되었다.

        

       앨리스와 클레어, 미아도 지난 몇 개월 동안 요리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결과물도 꽤 괜찮았고, 먹을 만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역시 샤를로트의 실력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오늘의 요리는 나의 의향을 따라, 내가 자취하던 시절 자주 먹던 된장찌개와 밥, 반찬이었다.

        

       그야말로 ‘집밥’이라는 느낌.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런 식사를 생각보다 자주 하지는 않았네요.”

        

       된장찌개 맛을 보던 샤를로트가 문득 그렇게 말했다.

        

       “어, 그랬습니까?”

        

       “예. 생각해보면, 당신은 언제나 우리 입에 맞춰서 식사를 골랐죠.”

        

       클레어와 앨리스만 있었던 초기에는 내 입맛에 맞췄던 것 같은데.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애들이 매운 음식을 너무 못 먹어서 매운 음식 먹는 것을 조금 자제하고, 너무 호불호 갈릴 것 같은 음식들은 애초에 자제하는 식으로 식단을 바꿔갔던 것 같다.

        

       나는 이미 아제르나에서 몇 년이나 살다 온 사람이다.

        

       황궁의 음식에 입맛이 맞춰지긴 했지만, 그래도 종종 그 아제르나의 맛대가리 없는 몇몇 음식들을 먹어가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의 입맛을 억지로 나에게 맞추는 것보다는 내가 그 애들한테 맞춰주는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너무 배려만 받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네요. 생각해보면 여기도 당신 집이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입니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만약 제가 혼자 이곳에서 살았다면, 그 복권이 당첨되었더라도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겠죠.”

        

       내가 밥그릇에 밥을 덜면서 말하자, 샤를로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도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는 있었을 겁니다. 새 인연을 만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그뿐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여러분과 만나 행복할 수 있었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라고 하면 너무 허무하겠죠.”

        

       그렇다.

        

       내가 아제르나 제국에서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을 버텼을까.

        

       몇 번이나 시간을 돌려가면서 내 캐릭터 구축을 왜 했을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을 만나서, 관계를 쌓고, 해피엔딩에 이르기 위해서였다.

        

       그랬으니, 이것으로 되었다.

        

       “……아까, 놀려서 미안해요.”

        

       “네?”

        

       “아뇨, 그냥. 생각나지 않아서 우리를 따라 한다고만…….”

        

       ……그거 맞는데.

        

       “당신은 그저, 저희와 함께 지내는 게 즐거웠을 뿐이었네요.”

        

       아니, 그것도 맞긴 한데.

        

       맞긴 한데, 조금 틀린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나는 표정에 무게를 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로트 혼자 그렇게 생각해주는 데 거절할 필요가 없지.

        

       샤를로트는 웃었다.

        

       그게 내 생각을 읽어서인지, 아니면 나의 그 생각이 기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

        

       달그락달그락.

        

       밥그릇에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정겹다.

        

       자취방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수저 부딪치는 소리가 공연히 귀를 긁는 기분이 드는데,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리면 그런 우울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오늘, 재미있었어.”

        

       앨리스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맞아, 진짜 재미있었어, 언니.”

        

       클레어도 웃으며 말했다.

        

       “영화도, 다 보고 다시 생각해보니 무슨 뜻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샤를로트는 조금 쓰게 웃었고,

        

       “사진은 잘 챙겨놨어요!”

        

       미아는 활짝 웃었다.

        

       “그렇습니까?”

        

       나도 웃으며 말했다.

        

       “즐거웠으면, 됐습니다.”

        

       그래, 그거면 된 거다.

        

       다 같이 얻어낸 해피엔딩.

        

       내가 제일 원하던 것이 그거였으니까.

        

       뭐 대단한 뜻이나 의미가 필요한 게 아니다.

        

       이야기에 숨겨진 철학적 뜻이라든지, 비유라든지,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내가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채, 몸만 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러면 어쩌겠나.

        

       내가 즐겁다면 그것으로 된 거지.

        

       “언젠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신의 힘을 완전히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여러분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함께 올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거 진짜 좋겠네.”

        

       클레어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벌써 친구들과 온 것을 상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게, 정말.”

        

       앨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소피아에게 이 나라의 피자를 선물해주고 싶군요. 파인애플을 잔뜩 올려서.”

        

       자기만 고통받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보다는 커피에 물 탄 것을 커피랍시고 대접하는 게 더 잘 먹힐 것 같은데.

        

       뭐, 둘 다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는 주기적으로 여기 돌아와서 놀 수 있게 되는 걸까요?”

        

       미아가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잠깐 바라보다가, 미아를 보았다.

        

       “정말 열심히 연구해야겠네요.”

        

       “그러게. 이 비싼 집을 그냥 비워두는 건 수지타산에 맞지 않지.”

        

       샤를로트와 앨리스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우릴 기다리는 시청자들도!”

        

       클레어가 젓가락을 확 들면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참 클레어다운 발언이었다.

        

       “그러게요. 우리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방송을 보던 사람들이 우울해할 테니까요. 1년에 몇 번씩이라도 얼굴을 보이도록 하죠.”

        

       나의 말에,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

        

       뭐, 지금은 그걸 따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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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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