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9

   “그래서, 아마 조만간 TV에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터넷 방송에서 TV 나오는 것 말해도 되냐’고 물었을 때 그래도 된다는 말을 들어, 우리는 그냥 말해버리기로 했다.

   [근데 이제야 나오냐는 느낌도 있네요]

   [ㄹㅇ 국뽕최적화 아님ㅋㅋㅋ]

   “한국인인데 무슨 국뽕입니까?”

   [아 그것도 그렇네]

   [우우]

   [우우 쓰레기 우우]

   우리더러 국뽕 최적화라고 했던 사람이 곧장 그랜절을 박았다.

   [제가 죄송합니다]

   띠링.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정당한 금액을 주며 사과한다면 받아주는 게 예의지. 애초에 말한 것도, 사과도 그냥 장난이긴 했지만.

   “다만 방영 시기는 미정입니다. 저희 사연을 듣고 나서 조금 더 알아볼 것이 있다고 하셨으니까요.”

   [설마 게임사랑 접촉하나?]

   [아 게임 캐릭터랑 이름도 똑같고 생긴 것도 똑같은데 못 참지]

   [ㄹㅇㅋㅋ]

   “글쎄요, 저도 거기까지는 듣지 못해서.”

   말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적당히 잘랐다.

   “그런데 신기하긴 했어. 이런 식으로 찍어가서 편집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옆에 있던 클레어가 말했다.

   확실히, 뭔가 프로라는 느낌이 있었지. 웹캠으로 찍은 것을 편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스튜디오에 가서 방송한다면 그건 또 다르겠지? 물론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지만.

   “아, 그리고, 우리가 찍은 사진이 나왔습니다.”

   [오오]

   [보여주세요!]

   [보고싶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만 일어난 게 아니라, 방송하러 모여있는 다섯 사람이 모두 일어났다.

   작은 사진은 우리 모두 책상에 올려두었고, 큰 사진은 액자째로 방송 방 바로 밖에 미리 가져다 두었던 것이다.

   역시 미리 준비해둔 그림 세워두는 스탠드를 펼치고, 우리는 그 위에 액자 두 개를 올렸다.

   “어떻습니까?”

   “잘 나왔지?”

   [진짜 가족사진이네 ㅋㅋㅋㅋㅋ]

   [미아는 진짜 딸처럼 찍혔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우리 모두 동갑입니다.”

   내 말에 미아가 볼을 살짝 부풀렸다. 괜히 어려 보인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들려서 그런가?

   뭐, 그래도, 우리 모두 사진에 만족했다.

   사진은 요청대로 색 보정 외에 다른 수정은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우리가 예쁘긴 했다.

   누가 보면 코스프레 사진이냐고 물어볼 법한 모습이었지만…… 지난 몇 년, 그리고 몇 개월 동안 아이들의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보아온 나는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다.

   “이 큰 사진 두 개는 거실에 걸어둘 생각입니다.”

   내 말에 채팅창에서는 다시 가족사진 드립이 올라왔다.

   뭐, 가족 맞긴 하지.

   그런 감각으로 찍긴 했으니까.

   *

   사진을 다시 방 바깥에 가져다 두고, 우리는 다시 카메라 앞에 모였다.

   “그럼, 이제 게임의 남은 후일담 부분을 플레이하겠습니다.”

   나는 게임 세팅으로 바꾸고 컨트롤러를 들며 말했다.

   “그런데, 남은 플레이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2~3시간?]

   [4시간정도]

   [저는 3시간정도 걸렸어요]

   게임 전체 플레이 시간과 비교하면 얼마 안 남았다.

   “그럼 오늘은 한 번에 모두 클리어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곤 버튼을 눌렀다.

   게임은 지난번 끝났던 시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정확히는,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작했다.

   실비아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여신과의 전투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다고 시간이 돌아갔다기보다는…….

   [……클레어.]

   [앨리스.]

   학교에서 마주친 두 사람.

   클레어는 내가 알고 있는 클레어처럼 포니테일을 한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작의 모습처럼 살짝 웨이브 진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

   하긴 평소에 헤어스타일이 자주 바뀌는 캐릭터이긴 했지만.

   교복 단추도 두 개씩이나 풀어 어딘가 퇴폐적인 느낌이 나는 그 캐릭터를 보고—

   “으엑.”

   클레어는 기겁했다.

   하긴, 나라도 게임에서 실비아가 바니걸 차림으로 나왔으면 기겁했을 것이다.

   ……내가 직접 입어본 적은 있긴 하다만.

   원래 이 시점에서 클레어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전작에서는 클레어가 죽었고, 그래서 황제의 계획이 완전히 망가졌으니까.

   [건강해 보이네.]

   [너도 마찬가지야. 다행이라고 해줄까?]

   두 사람은 서로에게 틱틱 던지듯 말을 건넸다.

   “여러분도 그 세계에서 저런 분위기였습니까?”

   “그, 그래도 저것보다는 나았어.”

   “그래. 저렇게까지…… 냉랭하지는 않았어.”

   클레어와 앨리스가 각각 대답했다.

   [좋겠어, 앨리스. 결국 차기 황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잖아?]

   [누구 씨 덕분에 말이지. ‘목숨 걸고’ 나를 구해줬, 잖아?]

   말을 하던 앨리스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말을 중간에 살짝 끊었다.

   […….]

   클레어는 그런 앨리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도, 어딘가 이상한 걸 느끼고 있는 모양이네.]

   그리고 클레어가 말했다.

   [맞아. 나는 ‘목숨 걸고’ 너를 구했지. 덕분에 아버지의 계획은 완전히 망가졌고, 너는 차기 황제가 될 위치에 오를 수 있었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목숨을 걸고’ 너를 구할 수 있었을까?]

   클레어는 팔짱을 낀 채 검지만 까딱까딱 움직이며 말했다.

   [분명히, 그 공격은…… 맞고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

   앨리스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은 또 있어.]

   앨리스는 클레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과거야.]

   [내 과거가 왜?]

   [그렇잖아. 너는…… 그런 상황에 있었으면서, 어떻게 무사히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을까? 그 어린아이가?]

   [뭐야, 지금 시비 거는 거야? 내가 그 남자들한테 범해지기라도 해야 했다고?]

   바로 격분하는 클레어에게 한 손을 들어 보인 뒤, 앨리스는 말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나는 분명 너에게 그 과거를 들었던 기분이 들어. 하지만 이상하게, 그 부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어째서일까?]

   […….]

   [사실은 너도 석연치 않은 거지? 이상하게 말이 안 되는 부분을 생각할 때마다, 여러 가지 사실이 동시에 떠올라. 이랬던 것 같기도, 저랬던 것 같기도 하면서.]

   [헛소리.]

   결국 클레어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앨리스의 옆을 휙 지나가 버렸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결국에는 잘된 일이잖아. 그냥 해피엔딩을 만끽하라고. 누가 목숨 걸고 구해준 건데.]

   […….]

   클레어의 말에, 앨리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화면이 바뀌어서, 레오.

   [공주님.]

   [샤를로트라고 불러도 되는데요.]

   “…….”

   샤를로트가 뭔가 굉장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해도 좋습니다만?”

   “제가 어째서 레오에게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죠?”

   나는 다시 화면을 보았다.

   한쪽 손이 수줍게 올라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있었다. 물론 모션만 그럴 뿐이지 진짜 머리카락이 유연하게 귀 뒤로 넘어가게 할 기술력이 밀레니엄 사에는 없긴 했지만.

   “아마 제가 호감도를 엄청나게 올려두었기 때문일 겁니다.”

   스토리가 대단히 바뀌지는 않는다. 특정 이벤트 장면에서 나올 캐릭터가 바뀌는 정도.

   처음에는 앨리스와 내가 서로에게 떠밀면서 서로를 공략하게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샤를로트를 공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이 장면에서 나올 인물은 샤를로트뿐만이 아니라, 호감도를 최대치까지 올린 캐릭터겠지.

   “…….”

   샤를로트가 나를 말없이 노려보아서, 나는 얼른 고개를 다시 모니터로 돌리고 게임에 집중했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조금 어색하게 말을 놓는 레오.

   [꽃을 보고 있었어요.]

   샤를로트는 레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쿡쿡 웃었다.

   그리고,

   [제가 말을 놓아도 된다고 한지가 언제인데……?]

   말을 하다가, 중간에 끊었다.

   [언제, 였죠?]

   [분명히…… 1학기 때 였던 것 같아.]

   [여름 방학 이후가 아니고요?]

   두 사람의 기억이 겹치지 않았다.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그랬던, 것 같기도?]

   [저도 이야기를 듣고 보니 1학기 때 였던 것…… 같은데요.]

   두 시점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전작과 이번 작품에서 그 이벤트가 각각 다른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실비아가 죽어가면서 한 말이 이거구나.

   실비아는 자기 존재가 이들이 선택한 미래에 걸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길 만들어내 이들이 이루어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세상을 자기 질서에 맞게 뜯어고치려던 여신을 배신하고 싸운 것이다.

   [ㅠㅠㅠㅠ]

   [실비아쨩..]

   아무리 봐도 내용을 전부 알고 있을 양반들이 그런 채팅을 치니까 조금 웃기다.

   [이건, 이상하네요.]

   샤를로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상해.]

   레오도 거기 동의했다.

   [다시 한번,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아.]

   왠지 다음 내용이 어떨지 조금 예상이 되었다.